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66화 (166/388)

◈ 55. 주디스의 방식 (1)

아주 오랜 세월, 무술을 탐구하는 고대의 무도가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왔다.

때로는 긴 수련을 거치며, 때로는 타인과 깨달음을 나누며, 때로는 두렵고 끔찍한 악마들과 싸워 나가며.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오러 6개념이었다.

축기, 강화, 경화, 개화, 집중, 발현으로 이어지는 개념은 옛 영웅들로부터 지금의 검가, 검술관으로 이어지며 저마다의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인간들이 이러한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오크들이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러 운용의 거대한 틀을 정립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정령술’이라는 그들만의 강점을 통해 독자적이면서도 특별한 오러 운용법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인간들이 그러했듯, 오크들 역시 영웅들로부터 각 부족의 전사들로 그러한 지식이 이어졌고, 현재에 이르러 그것은 ‘오행신공(五行神功)’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행신공. 그것도 두르칼리 고위 전사들의 오행신공!’

부족장 타라칸의 말을 들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세히 아는 바는 없었다.

그가 아는 정령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쿠바르가 가끔씩 말해 주었던 게 전부였으니까.

오행신공에 대해서도 이번 여정에서 처음 들었을 뿐이다.

허나, 이것이 대단한 기회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름 아닌 카라쿰을 대륙의 10대 강자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바로 두르칼리의 오행신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오러 운용법이 모두에게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쿠바르에게 들었다.

오행신공의 근간은 오러를 다루는 것에 있지만, 정령술의 비중 역시 적은 편이 아니라고.

그렇기 때문에 정령에 대한 재능이 없는 이는 입문조차 할 수 없다고.

당장 타라칸만 봐도 그랬다. 부족장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러에서는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아이른은 확신했다.

하나만큼은, 적어도 다섯 가지 정령의 기운 중 ‘금기(金氣)’만은 자신이 제대로 다루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꿈속 사내의 쇠말뚝마저 결국에는 다뤄 냈으니까.’

그의 가슴속, 눈동자에 진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한 마음을 품은 것은 비단 아이른만이 아니었다.

주디스 역시 ‘오행신공’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타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조건 배워야 해!’

물, 대지, 나무, 금속.

이것들은 모르겠다. 전혀 관심 없었다.

허나 불만큼은 달랐다.

크로노 검술관에서 이안 관주의 검무(劍舞)를 목도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주디스는 초지일관 불의 강점을 검에 담기 위해 노력해 왔다.

뜨거움이야말로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 역시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족장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러한 와중에도, 브랫의 머릿속에는 좋지 못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있었다.

‘이걸 두르칼리의 다른 고위 전사들이 용인할까?’

만약 부족장 타라칸, 그리고 대전사 카라쿰이 부족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일 테니까.

허나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두르칼리의 분위기는 비교적 고위 전사, 그러니까 인간 사회로 비유하면 귀족들의 힘이 꽤나 강한 느낌이었다.

당장 마스터 할리파, 정령사 고르하가 보였던 모습만 봐도 그랬다.

아니, 그 전에 군트와 그의 부하들이 주디스에게 보였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과연 부족 전체의 보물이라 할 만한 오행신공을 자신들이 가져가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브랫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마스터 할리파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산에서 내려온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할리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군트를 포함해 세 명의 오크가 더 있었는데, 타라칸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모두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타라칸, 카라쿰을 포함한 모두가 할리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입을 열었다.

“부족장님, 저는 반대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할리파?”

“반대로 제가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째서 이런 중대한 안건을 홀로 결정하려 하십니까? 다름 아닌 오행신공입니다. 두르칼리 부족의 위대한 전사들이 수백 년간 목숨을 바쳐 다듬어 낸 오러와 정령 운용의 정수, 그것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어찌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

“단순히 넘기는 것이 아닐세. 옛 영웅들도 말씀하시지 않았나.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라고. 우리가 무술에 대한 깨달음을 꽁꽁 싸매고만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두르칼리가 이만한 성세를 누렸을까? 그렇지 않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이들뿐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다른 부족의 오크들이, 인간들이, 때로는 엘프들마저 우리와 지식을 공유했어. 그들 역시 오행신공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이야.”

타라칸과 할리파의 대화는 오크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쿠바르를 제외한 아이른 일행은 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할리파가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주디스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썩어들어 갔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과 별개로 개 같은 것은 개 같은 것.

심사가 꼬인 주디스가 퉤 하고 침을 뱉으려다, 그 모습이 애써 자신들을 변호하고 있을 타라칸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갑자기 끼어든 군트가 대륙 공용어로 말을 내뱉자 그녀의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부족장님! 그들은 위대한 전사로서의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

“백번 양보해서 소드마스터인 둘과 옛 영웅의 후손인 로이드 가의 자제, 저들은 자격이 있을지 몰라도…… 저 붉은 머리의 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문도, 자신 스스로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을뿐더러 오크 전체를 모욕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 새끼가…….”

주디스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옆에 서 있던 브랫의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로.

어쩌면 할리파의 귀에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푸른 머리의 청년은 주디스를 질책할 수 없었다.

당장 그부터가 군트의 말에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의 뜨거운 시선이 할리파 측 오크들을 향해 쏟아졌다.

허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셋째 아들의 말을 들은 할리파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군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 말의 옳고 그름은 별개로 치더라도, 저 인간 검사가 아직 전사로사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구르가르의 당부가 있었다. 이들 넷은 장차 두르칼리의 번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것 역시 고려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여, 대 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고르하를 비롯한 정령사들과 다른 전사들의 말 역시 들어봐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트의 영향을 받았음인가.

어느새 대륙 공용어를 쓰고 있는 할리파를 바라보며 쿠바르와 4인방은 침묵을 지켰고, 카라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족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자신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깊은 한숨을 내쉰 타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회의를 열어야겠어.”

잠시 후, 산에서 내려온 부족장이 대 회의를 소집했다.

부족의 정예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행신공의 전수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고, 생각보다 빨리 결론이 났다.

할리파의 반대파라 할 수 있는 정령사 고르하조차 그의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 일리아 린제이에게는 오행신공의 전수를 허락한다.

브랫 로이드는 기준에 다소 미흡하나, 고(故) 구르가르의 유지를 존중해 마찬가지로 전수를 허락한다.

허나 주디스는 이를 고려해도 여전히 자격이 모자라므로, 이를 증명하기 위한 자리를 갖는다.

이름하여 전사의 시련.

자신이 뛰어난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3명의 고위 전사들과 연속으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영광스러우면서도 고되기 그지없는 자리.

이 소식을 들은 모두가 주디스를 걱정했으나, 그녀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구르가르 님이 말했잖아. 우리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그럼…….”

그 시련이, 적어도 내가 못 이겨낼 시련은 아니겠지.

그녀의 말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구르가르의 부활이 있던 시점으로부터 일주일 후.

증명의 땅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거대한 경기장에서, 주디스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전사의 시련’이 개최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증명의 땅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부족의 전사와 인간의 싸움을 보기 위해 수많은 오크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일방적으로 오크 전사 쪽을 응원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인간 녀석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주디스? 들어 보지도 못했어. 게다가 나이도 엄청 어리다던데?”

“나이가 어리든 많든 상관없지. 이번 상대가 할리파 님의 세 자제분들이라며? 이걸 이기려면 마스터 말고는 답이 없어.”

“아니, 인간 마스터가 와도 아마 쉽지 않을 거야.”

“그럼! 기본적으로 오크의 육체가 훨씬 우월하니까, 셋이 연달아 상대한다면 마스터라도 힘들 게 분명하지.”

살기 위해 인간들에게 우호적으로 변한 떠돌이 오크들과 달리, 대륙 북서부의 오크들은 인간들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육체적인 강함을 중시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타고난 골격 자체가 왜소한 인간들은 무시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허나 오크들이 인간에 대해 우월감만 느끼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오랜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400년 전에도, 150년 전에도.

오크 전사들은 수많은 마인들의 모가지를 쳐 내고, 적지 않은 악마들의 육신을 찢어놓으며 그들의 용맹함을 대륙에 널리 알렸다.

허나 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항상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린제이 가의 초대 가주인 디온 린제이가 마룡왕의 목을 베어내고.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백기사단장이 일곱 대악마 중 셋을 마계로 돌려보냈다.

심지어 지금의 대륙 최강도 오크가 아니었다.

카라쿰의 위명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안, 쿤, 율리우스 휼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 사실이 오크들에게 적지 않은 열등감을 심어 주었다.

우월감과 열등감.

이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두 상반된 감정을, 이 자리에 모인 오크들은 동시에 품었다.

그리고 이는 부족의 전사에 대한 기대감과 인간 전사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로 표출되었다.

“군트! 형들에게 갈 것 없이 막내 선에서 끝내 버려!”

“군트 님! 박살을 내세요!”

“군트, 파훈, 가람! 누가 됐든 뒤로 넘기지 마!”

“꺼져라, 인간!”

“우우우우우!”

그야말로 단 한명의 오크도 주디스를 응원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

허나 그렇지 않았다.

부족장 타라칸의 옆에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쿠바르만은 주디스의 선전을 간절히 바랐다.

허나 그러한 마음과 별개로 그는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디스를 상대하기로 한 고위 전사들의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할리파의 세 아들…… 하나같이 엑스퍼트 상위권 수준이라고 하던데.’

특히 맏아들인 가람은 마스터를 넘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실력자라고 들었다.

그런 이들을 셋이나 연속으로 꺾어야 한다니, 주디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앓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욱 불리한 점은, 이번 싸움이 검술이 아닌 맨몸격투로 치러진다는 부분이었다.

인간 검사들과 달리, 오크들은 어릴 때부터 맨몸격투도 심도 있게 익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쿠바르가 자신의 스승님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모든 오크들과 다르게, 붉은 머리 인간이 시련을 이겨내기를 빌고 또 빌었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첫 번째 시련을 맡은 군트가 콧방귀를 뀌며 무대에 올랐다. 그의 퉁방울만 한 눈이 주디스를 노려봤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안다.

허나 격투는 오크들의 주특기. 게다가 체격에서도 상대가 안 된다.

자신의 승리를 점친 군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게 진짜 전사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마.”

주디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두 주먹을 들어 올리며 타격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군트가 또다시 웃음을 흘렸다.

나쁘지 않은 자세다. 하지만 체격의 차이 덕분에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핥은 그 역시 태세를 잡았고, 이내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즉시 낮은 자세를 취한 군트가 주디스를 짓뭉갤 기세로 하단 태클을 들어갔다.

흥분에 찬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러한 외침들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빠각!

뒤로 물러나는 척하던 주디스가 순식간에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니킥을 올려 찼다.

뒤로 자빠질 듯 휘청거린 군트가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두꺼운 목과 강인한 턱뼈 덕분에 아직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허나 데미지를 입은 것은 분명했고, 주디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빠르게 달려들었고, 군트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위력적인 주먹질을 연달아 날렸다.

허나 맞지 않았다.

이윽고 뒤를 잡은 주디스가 두 팔로 상대의 목을 감아 졸랐다.

그것이 끝이었다. 잠시 저항하던 군트는 이내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털썩, 지면에 쓰러졌다.

“…….”

“…….”

정적.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주디스가 정신을 잃은 군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진짜 전사가 뭔데, 씹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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