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65화 (165/388)

◈ 54. 점술사 구르가르 (2)

“음, 나왔군.”

“브랫.”

브랫 로이드가 구르가르의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를 기다리던 아이른 일행이 동시에 모여들었다.

주디스도 마찬가지였다.

크로노 검술관 동기들의 놀림 덕분에 예전보다 미신을 멀리하게 된 그녀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크 점술사 구르가르가 보여줬던 카리스마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것도 모자라, 마스터를 분위기만으로 쫓아낼 정도라니!’

그야말로 대 요술사조차 보일 수 없는 기적.

주디스의 마음은 구르가르에게 점을 볼 생각으로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호명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허나 그런 감정과 별개로, 브랫에게 점이 어땠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열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주디스는 그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땠어, 브랫?”

다행히 일리아 린제이가 그녀를 대신해 질문을 던졌다.

모두의 시선이 브랫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훌륭하다.”

“그래? 엄청 용한가?”

“쿠바르랑 달라?”

“다르다. 확실히 달라.”

“아니, 이보게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뭐가 되나…….”

“하지만, 쿠바르는 돌팔이가 맞잖아요.”

“허어…….”

쿠바르의 한탄을 뒤로한 채, 아이른과 일리아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전부 점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브랫이 또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점의 내용을 남에게 말할 수는 없다. 효험이 사라진다.”

‘그게 뭔 개소리야?’

주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뭣보다 저 말을 한 게 브랫이라는 점이 더 어이없었다.

점 따위는 미신이라며 관심도 안 주던 녀석이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허나 반대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저 녀석조차 홀릴 정도라면, 구르가르는 정말로 대단한 점술사라는 뜻이다.

“주디스, 들어오게.”

“오! 아, 음.”

마침 이름이 호명된 것도 자신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은 주디스가 뒤늦게 표정을 관리했다.

민망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가 구르가르를 향해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이었다.

“연애 운에 관심 있나?”

“예?”

“연애 운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네.”

“…….”

주디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머나먼 두르칼리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는 용맹한 오크 전사들과 맞붙어보기 위해, 그리고 점을 통해 자신의 성장 방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성장이라 함은 당연히 검, 무력의 성장을 뜻했다.

구르가르 역시 이를 모르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이미 죽어버린 상태긴 했지만, 어찌 됐건 그는 대륙 최고의 점술사가 아닌가.

‘아니, 오히려 죽어서 더 능력이 강해졌을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저 늙다리 오크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침 여기 오기 직전 짜증 나는 일이 있었기에, 주디스는 이를 여유롭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죠.”

“제대로라니, 무슨 소리인가?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네만.”

“아니 지금…… 하, 됐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검, 검술에 관한 조언이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강해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소드마스터, 아니 그보다도 더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이런 걸 알려 주세요.”

“안 알려 줄 건데?”

“…….”

주디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 갔다.

머리에 열이 몰린 듯 피부가 머리 색처럼 붉어졌고, 입 안쪽에서는 무언가가 부드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폭발하기 직전의 징조였다.

평소보다 더 여유 없는 상태의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구르가르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어차피 내가 하는 말, 받아들일 생각 없잖아?”

“네?”

“나뿐만이 아니지. 지금껏 자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고수들 여럿이 조언을 해 줬겠지만, 자네는 듣지 않았겠지. 마음을 바꿔먹을 생각도 없고. 그런 고집쟁이한테 내가 어떻게 검술 조언을 해 주나? 더군다나 나는 검사도 아닌데 말이야.”

“…….”

“안 그런가?”

다시금 할 말이 궁해진 주디스가 불편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구르가르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의 조언을 받았고, 그 대부분을 외면했다.

검술의 세세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브랫, 아이른과 함께한 논검의 경우에는 그들의 조언을 이것저것 참고했지만, 검을 수련하는 자세, 방향성에 있어서 주디스는 틀림없는 고집쟁이였다.

101번째 검사인 제트 프로스트의 말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있고, 애초에 검술관을 떠나 대륙 여행을 시작한 것도 이안 관주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은 상태지만…….

‘젠장, 어쩌라고!’

재차 화가 치밀어 오른 주디스가 눈을 치켜떴다.

자신도 자신이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안다.

사고를 유연하게 바꿔 보려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여 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태생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환경 때문인지 주디스는 그 어떠한 거시적인 조언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

허나 그러한 사실을 대 점술사인 구르가르에게 또다시 확인받자, 마치 ‘네 한계는 여기까지다!’ 하는 듯한 말을 들은 느낌이라 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 고집, 나쁘지 않아.”

뒤에 이어진 구르가르의 말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그녀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

“나쁘지 않다고. 애초에 자네는 특이해. 모든 사람들이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지는 것을 싫어한다지만, 수차례 한계에 봉착하다 보면 어느 수준에서 만족하곤 하지. 괴롭거든. 아무리 들이받아도, 두드려도 뚫리지 않는 벽에 주구장창 도전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기 마련이지. 주변인들도 만류하기 마련이야.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방법을 찾으라느니,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느니…….”

“…….”

“하지만 자네는 그럴 수 없는 성격이지. 그렇지 않나?”

“……예.”

주디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구르가르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자네에 대해 가장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네일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면, 그런 자신이 이런저런 훌륭한 조언을 들었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면…… 그 고집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겠지.”

“…….”

“자네의 방식으로 나아가게. 주디스의 방식으로, 주디스만이 걸을 수 있는 길로, 주디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발을 들여놓는 것…… 어떤가, 나는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아, 물론 편협해질 필요까지는 없지만 말이야.

뒷말을 덧붙인 구르가르가 테이블에 손을 가져갔다. 언제 준비했는지도 모를 찻물을 들이키던 그가 앗 뜨거! 소리와 함께 잔을 놓쳤다.

유령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주디스는 눈조차 감지 않고 점술사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의 화가 많이 누그러진 그녀가, 정중한 태도로 구르가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흘흘, 도움이 됐는가?”

“예.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최근 몇 달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는 붉은 머리의 검사.

구르가르는 그 모습을 기꺼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주디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의 짐이 다소 줄어든 듯, 엷은 미소로 점술사를 쳐다보던 그녀가 예의를 차리며 천막 밖으로 나가려 했다.

허나 그러지 못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주디스를 붙잡았다.

“그래서, 연애 운은 필요 없나? 정말로?”

“…….”

“잘 생각해 보게. 난 대륙 최고의 점술사야. 죽기 전에는 저 남쪽의 왕국에서도 나를 보러 오는 인간 손님들이 있었어. 아, 동부의 엘프들도 간혹 왔지. 하나같이 천금을 들고 왔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내키는 사람만 점을 봐줬네.”

“…….”

“그런 내가, 자네의 연애 운을 봐주고 있다고 말하는데…… 어때.”

정말로, 정말로 연애에 아무런 관심도 없나?

구르가르가 은근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 제안이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주디스는 천막의 문을 손에 쥔 채 침묵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

결국, 조용히 구르가르의 앞으로 다시 돌아온 붉은 머리 검사.

그녀를 바라보며 씨익 웃은 점술사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야. 사실 이쪽이 내 전문이거든.”

* * *

아이른 일행이 구르가르의 무덤에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브랫과 주디스가 점을 봤고, 일리아는 안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마지막 차례가 된 아이른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조금만 있으면, 꿈의 비밀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히 알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모든 신경이 천막에만 쏠려야 정상이건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점을 보고 나온 두 친구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뭐지? 이거?’

아이젠마르크트에서도 몇 번 느낀 적 있다.

아무런 말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이 전부이건만…….

왜 저 둘을 보고 있자니 간질간질하고 묘한 기분이 드는 걸까?

아이른은 쿠바르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았다.

허나 만족스러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눈치면, 그냥 평생 그렇게 살게.”

“예?”

“아, 마침 자네 차례군. 들어가 보게?”

“어? 어어…….”

상대하기 싫다는 듯 자신을 밀어내는 쿠바르.

아이른은 따지고 싶었지만, 그의 말대로 일리아가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가 물었다.

“괜찮았어?”

“……잘 모르겠어.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봐.”

“으음.”

“그래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야.”

“아, 이거…….”

“정말 답답한 순간이 오면 열어 보라더라.”

일리아의 손에 들린 주머니를 본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자신도 쿠바르에게서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었다. 포츈 쿠키 비슷한 것으로, 주머니 안에는 조언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을 터였다.

‘개운한 표정은 아니네…….’

아이른이 일리아의 표정을 살폈다.

확실히 그랬다. 브랫, 주디스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별개로 무언가 얻은 것이 있는지, 후련한 면모도 보이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아니었다. 여전히 어두운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 어두운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는 다소 답답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일리아의 눈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색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묘했다. 그리고 간질간질했다.

그것이 브랫, 주디스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것을 느낀 순간, 아이른은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 미안.”

“뭐가?”

“아니,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어서.”

“괜찮아.”

“으응, 그럼 나도 들어갈게.”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른을, 일리아가 빤히 바라봤다.

그녀 역시 아주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금발의 청년은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애매한 표정으로 천막 안에 몸을 들여놓은 아이른 파레이라.

그를 향해 구르가르가 더없이 진지한 눈빛을 보냈다.

맑으면서도 한없이 깊은 눈동자.

마치 이안 관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두르칼리의 점술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자네의 꿈, 해석할 수 있네.”

“……!”

“정확히는 전생이지. 자네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꿈속의 남자는, 아주 오래 전의 자네라네.”

아이른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루루에게서 전생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 구르가르의 말에는 진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마음이 달아오른 그가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허나 그보다 점술사가 빨랐다.

손을 들어 아이른을 제지시킨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바로 전생을 들여다볼 수는 없네. 개인적인 준비도 필요하고, 쿠바르를 통해 필요한 재료도 수집해야 하고…….”

“……그런가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자네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으니까 말이야. 아니, 자네뿐만 아니라 네명 전부를 위한 선물이라고 해야겠군.”

“선물이요?”

아이른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이미 점을 봐주는 것만 해도, 자신의 전생을 알려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커다란 선물이었다.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음인가. 구르가르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네. 죽어서도 만나지 못할 뻔했던 제자를 데려와 줘서 고맙네. 정말로.”

“…….”

“선물은 그에 대한 보답일세. 아, 이걸 위해서는 타라칸과 상의를 해야 하니…… 나가서 조금 기다려 주면 좋겠군.”

그 말을 끝으로 구르가르는 눈을 감았다.

아이른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지금껏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몸이 전보다 많이 흐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이른이 빠르게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당연한 듯이 카라쿰과 타라칸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디스, 브랫, 일리아가 아이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물? 뭔데?”

“나도 아직 잘…….”

네 검사가 머리를 맞대어 구르가르의 선물을 예상해 봤다.

허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워낙 신비로운 오크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이거다!’ 하는 게 오히려 없었다.

물론 궁금증은 금세 해소되었다.

“그럼, 나중에 보세. 제자야, 다음에는 음식보다 술을 더 많이 깔아라.”

휘리릭-

인사와 함께 증발하듯 사라지는 구르가르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서있는 쿠바르.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앞으로 나서는 두르칼리의 부족장, 타라칸.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에게 그 선물은…… 두르칼리의 고위 전사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오러 운용법이네.”

“……!”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4인방을 향해, 타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오행신공(五行神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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