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64화 (164/388)

◈ 54. 점술사 구르가르 (1)

“휴, 생각보단 높이 있구만. 관리하는 양반들 힘들게 왜 굳이 이런 곳에 무덤 자리를…… 자네들, 괜찮나?”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미안하네, 이것저것 챙기게 해서. 그래도 스승님의 유언이니 너무 귀찮게 생각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희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맞습니다! 게다가 구르가르 님께서는 평소에도 저희에게 신경 많이 써 주셨습니다. 이렇게나마 보은할 수 있어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허……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정말로.”

잡일꾼들의 말을 들은 쿠바르가 푸근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비롯한 여섯의 오크들은 성채의 바깥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 정상에 쿠바르의 스승, 구르가르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성묘하는 것뿐이라면 굳이 여럿이 올 필요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고대 원시 부족에서 조상을 위해 행하는 전통 의식, ‘제사’를 지내려는 것.

물론 쿠바르가 자발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이런 의식이 예전에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롯한 오크들이 제사상과 음식, 그 밖의 잡다한 물건들을 등에 지고 동산을 올라가는 것은…… 이것이 구르가르의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거 참, 유언을 남기실 거면 그냥 남기실 것이지, 왜 굳이 수수께끼로…….”

연신 투덜거리며 산을 오르는 쿠바르와, 그런 그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잡일꾼들.

그들은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고,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제사를 준비했다.

“어휴, 쉬고 계십시오!”

“쿠바르 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제자 된 도리로 스승의 제사를 그대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리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에는 충분히 익숙해진 참이니, 염려할 필요 없네.”

“하지만…….”

“어허!”

쿠바르는 자신을 만류하는 오크들을 무릅쓰고 바쁘게 제기를 배열하고, 준비한 음식을 쌓아놓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다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귀찮은 부분도 많았다. 사실 잘 이해도 안 됐다.

쿠바르는 어떤 방식이 됐건 간에 죽은 이후의 의식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딱히 이런다고 스승님께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지.’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생각은 바뀌어 갔으니.

이러한 의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조용히 후회를 쏟아내는 쿠바르와, 이를 못 들은 척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잡일꾼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제사 준비는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끝이 났다.

이윽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망자(亡者) 구르가르를 위한 제사가 진행되었다.

화르륵

불의 정령으로 향을 피우고.

꼴꼴꼴

준비된 그릇에 세 번 나누어 술을 따르고.

꾸벅

제주(祭主)인 쿠바르가 두 번 절을 한 뒤, 나머지 오크들과 다시 함께 두 번 절한다.

이후로도 의식은 매끄럽게 이어졌고, 마침내 모든 절차를 마친 쿠바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도 어느덧 촉촉한 물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고생했네. 밥이나 먹지.”

“예.”

“예, 나리.”

제사 음식 앞에 자리한 여섯 오크들이 차분하게 식기를 들었다.

가짓수는 많았지만 고급스러운 음식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구르가르의 입맛이 그랬다.

두르칼리에서 가장 뛰어난 점술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쿠바르가 투덜거렸다.

“평소에 좋은 것 좀 드시지. 먹을 만한 게 없구나.”

“하하하…….”

잡일꾼들이 웃음으로 농담을 받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식사를 이어 갔다.

물론 이 자리에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술도 함께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이것은 쿠바르의 입맛에 맞는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대부분의 것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던 스승님이었지만, 술만큼은 다른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욕심을 부리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 비싸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하지만…….’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지그시 노려보던 쿠바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술잔을 노려봐야 스승님은 보이지 않는다.

비치는 것은 못난 자신의 얼굴뿐.

그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단번에 잔의 내용물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고, 크으 소리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옆을 쳐다봤다.

그리고 기겁했다.

마지막 기억보다 20년가량 늙어 보이는 구르가르가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

“허허, 숨넘어가겠다, 이 녀석아. 그러다가 내 꼴 난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비단 쿠바르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나머지 다섯의 오크들도 경악의 시선으로 구르가르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구르가르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현실의 존재가 아닌 듯 희끄무레한 그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생각했다.

‘영혼?’

“영혼 맞아. 오랜만에 이승에 오니까 좋구만. 제자야, 술이나 한 잔 따라 보거라.”

“아…….”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쿠바르가 황급히 술을 따랐고, 구르가르가 이를 받아 마셨다.

유령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의 몸통이 이런저런 사물을 관통했는데, 술잔만은 똑바로 집어들 수 있었다.

크으, 소리와 함께 잔을 머리에 털어낸 구르가르가 물었다.

“술 많이 가져왔지?”

“……열 병쯤 더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그, 그럼, 지금 가져오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잡일꾼들을 보며, 그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가는 김에 그…… 인간 친구들도 불러오면 좋겠군.”

* * *

아이른 일행과 군트 일행은 아무런 말도 없이, 빠른 속도로 성채 밖의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마음 같아서는 뛰어 올라가고 싶었다. 그 정도로 궁금했고, 그 정도로 흥미로웠다.

다행히 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오크와 인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르가르의 무덤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

“…….”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사제지간을 목격하였다.

“여어, 왔구만. 으음? 부르지 않은 양반들도 왔네요.”

“그러게 말이야. 군트, 자네는 뭐 하러 왔나?”

“…….”

너무나도 뻔뻔하게 대응하는 쿠바르와 구르가르를 보며, 군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살아 있는 느낌은 아니다.

허나 죽어 있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전령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쿠바르의 복귀만 해도 탐탁지 않은 상황인데, 그의 스승까지 부활하다니?

머리가 지끈지끈할 지경이었다.

그때, 그런 그의 머릿속을 들여 보기라도 한 듯 구르가르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봐, 군트.”

“……예, 구르가르 님.”

“오래 있지 않을 거야. 그럴 능력도 없어.”

“…….”

“그냥 오랜만에 만난 제자와 담소도 나누고, 술도 마시고, 제자가 용기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귀인들께 감사 인사도 하고, 보답이라 하긴 뭐하지만 점도 좀 봐주고…… 그렇게 할 일 다 마치면 어련히 돌아갈 테니, 그렇게 똥 씹은 표정 하지 말게.”

“…….”

“자네들도 마찬가지야. 오랜만에 보는 건데 얼굴들 좀 펴.”

구르가르의 시선이 군트, 아이른 일행의 뒤를 향했다.

어느새 도착한 두르칼리의 권력자, 마스터 할리파 일행이 군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대편 길목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오크들은 대 정령사 고르하와 그의 측근들로, 17년 전 쿠바르를 지지했던 세력이었다.

할리파에 비하면 처지긴 하나 여전히 드높은 권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로 자리가 꽉 차니 자연스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하나하나 만만치 않은 느낌이야.’

오크들의 면면을 살핀 아이른 파레이라가 표정을 굳혔다.

카라쿰 다음 가는 전사라는 위명답게, 할리파의 기백은 엄청났다.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듯 단단해 보이는 육체가 그를 절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 정령사라 불리는 고르하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인간 세상에선 저평가 받는 정령사라지만, 그가 느끼기엔 엑스퍼트는커녕 웬만한 마스터보다도 강할 것처럼 보였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쿠바르의 스승님을 뵐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아니, 애초에 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오크 최고의 점술사라지만, 이미 죽은 자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저렇듯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 줄 정도로 굉장한 오크라면, 정말로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줄지도 모른다.

꿈속 사내의 정체를 알려 주고, 그의 의도를 파악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희망사항일 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이 숨 막힐 듯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구르가르에게 그러한 부탁을 하느냐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해결되었다.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난 구르가르가 중앙에 바로 서더니, 죽 둘러선 오크들을 한차례씩 바라봤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갇혀 살았다.”

“…….”

“어려서는 세간의 상식에 갇혀 살았고, 조금 머리가 굵어서는 부족의 규율에 갇혀 살았지. 입신해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정치판에 갇혀 사느라 하나 있던 제자도 떠나보내고, 쓸쓸히 살았지. 그러다 죽었다.”

그것은 넋두리였다.

넋이 직접 넋두리를 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으나,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구르가르는 평생 담아 놓기만 하고 내뱉지 못했던 말들을 작정이라도 한 듯 쏟아냈고, 그에 따라 철가면 같던 할리파의 얼굴도, 고르하의 얼굴도 미묘하게 녹아내렸다.

그들은 어느새 하늘로부터 고개를 돌린 구르가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구르가르는 한참이나 바라봤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는 자의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졌다.

“초대하지 않은 이들은 전부 자리를 비켜 주게.”

“…….”

“두르칼리가 아닌 이들의 점을 봐주는 게 규율을 어기는 거라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은 몸이야. 더는 이승의 법도로 나를 옭아매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

“이거 하나 장담하지. 오늘의 일은 부족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을 거야. 아니, 오히려 두르칼리와 오크 전체에 있어서 커다란 복이 될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그만 나를 편하게 해 줬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구르가르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조촐한 천막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거기, 청년.”

“……저 말입니까?”

“그래. 퍼렁청년. 들어오게.”

“…….”

묘한 카리스마를 느낀 브랫 로이드가 구르가르를 따라 천막으로 들어갔다.

얇은 천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어떠한 기척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할리파가 후우,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돌아가자.”

“……우리도 가자.”

고르하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도착했던 두 일파가 마찬가지로 동시에 자리를 떠났다.

그리하여 남게 된 것은 제자인 쿠바르와, 그의 동반자인 브랫 로이드, 주디스, 일리아 린제이뿐.

“……안에서 무슨 얘기 하고 있을까?”

“글쎄.”

“…….”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천막을 쳐다보는 세 젊은이.

그들을 보며, 쿠바르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그 시각.

브랫 로이드를 앞에 둔 구르가르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자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점쳐 주지.”

“……그게 무엇입니까.”

브랫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본디 점 따위는 미신이라 생각해 믿지 않던 그였으나, 생각이 달라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죽음에서 돌아온 신비로운 점술사의 이야기를 허투루 들을 정도로 꽉 막힌 인간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런 면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경청하는 자세로 구르가르의 말을 기다렸고,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연애운일세.”

“…….”

잠시 고민하던 브랫 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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