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54화 (154/388)

◈ 50. 뭐 하는 분들이세요 (3)

대륙 북서부에서 나고 3자란 상단의 말단 직원, 프레드릭은 다른 이들에 비해 타 지역의 소문에 관심이 많았다.

비록 지금은 촌구석에서 짐이나 나르는 처지였지만, 언젠가는 자기 이름을 내걸고 대륙을 쥐락펴락할 만한 대 상단을 꾸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자고로 훌륭한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에 민감해야 하고, 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관한 정보였다.

주변에서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하는 일에나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프레드릭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십거리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헉!”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일리아, 아이른, 브랫, 주디스.

이 네 명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의 이름인지를 말이다.

“뭐야, 갑자기?”

갑작스레 이상한 소리를 내는 조수를 쳐다보며, 상단 직원 켄잘이 확 인상을 썼다.

이놈은 종종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편하게 대하면 안 되는 타입이었다.

허나 자신을 무서워하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프레드릭이 여전히 놀란 표정을 유지한 채 그의 곁으로 찰싹 붙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처럼, 소리를 죽여 귓속말을 했다.

“켄잘 님.”

“뭐야, 징그럽게. 안 떨어져?”

“중요한 얘기라서 그럽니다. 저기 저 사람들, 누군지 아십니까?”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저 사람들, 엄청난 검사들입니다.”

“뭐?”

“최근에 크로노 검술관의 황금세대가 증명의 땅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 못 들어 보셨습니까?”

“들어는 본 것 같은데…… 왜? 설마 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고?”

“맞습니다! 이름이 똑같습니다! 심지어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까지 있습니다!”

아직 아이른이 소드마스터에 올랐다는 것까지는 듣지 못한 프레드릭이었다.

허나 지금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크로노 수련생 27기와 아이른 파레이라,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내려 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이마를 딱 소리 나게 때린 켄잘이 말했다.

“아악! 왜…….”

“헛소리하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해.”

“아니, 헛소리라니…… 이름이 같다니까요?”

“이 자식아, 이름만 같으면 다냐? 나도 지금부터 율리우스로 이름 바꾸면, 어? 신성왕국 백기사단장으로 행세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나이도 얼추 비슷해 보이는데…….”

“그럼 말해 봐라. 그런 대단한 양반들이 왜 대륙의 오지인 여기까지 왔고, 왜 우리 상단에 껴서 가겠냐? 어? 한창 검투장에서 어마어마한 대전료 받으면서 경기 뛰고 있을 양반들이.”

“그건…….”

프레드릭의 말문이 막혔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며 켄잘이 한숨을 쉬었다.

“어휴, 생각 좀 해라. 어? 딱 봐도 자기들 이름 밝히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뭐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거 보니 귀족일 수는 있겠다만…… 후우, 더 말을 말자.”

혀를 쯧쯧 차며 앞으로 걸어가는 켄잘.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단 직원 프레드릭은 입을 삐죽였다.

‘아니면 아닌 거지, 머리는 왜 때려.’

게다가 맞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젊은 상단 직원의 마음에 오기가 생겼다.

상식적으로 켄잘의 말이 더 설득력 있긴 하지만, 항상 혼나기만 하는 처지이다 보니 순순히 수긍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이런 촌구석에서 보기 힘든 묘한 분위기.

게다가 오크 점술사와 말하는 고양이라는 신기한 존재들까지 있는 파티가 아무런 비밀도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일 터.

‘내가 그 비밀을 밝혀 주겠어!’

결연한 표정으로 다짐한 프레드릭이 눈을 빛냈다.

그렇게 상단 말단 직원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 * *

‘……엄청 애매하네.’

아이른 일행이 상단에 합류한 지 3일 차.

그동안 프레드릭은 여러 잔심부름을 하면서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워들었다.

대화의 내용을 통해 정체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대단한 검사들이니까, 분명 굉장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야. 특히 브랫 로이드와 일리아 린제이는 고위 귀족이니까, 어쩌면 대륙의 정세나 외교적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지.’

허나 그렇지 않았다.

프레드릭은 지난 3일간 돌아다니며 엿들은 그들의 대화 내용을 하나씩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발효주의 왕은 와인이라고들 하지.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하네. 신은 인류에게 포도를 선물했고, 악마는 인류에게 포도주 담그는 법을 선물했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행복을,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건 역시 맥주라고 생각하는…….”

“으음, 그냥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마시는 게 좋은 거 아닐까요? 그래서 그런데, 대륙 동부에는 쌀로 만든 발효주도 있다고 합니다. 탁주와 청주 두 종류라고 하는데 그 맛이…….”

시종일관 술 얘기를 떠들어대는 브랫 로이드와 오크 점술사.

“일리아, 왜 그래? 또 머리가 복잡해?”

“아, 으응. 조금…….”

“말했잖아! 그럴 땐 멍하니 비워 내는 게 좋다니까. 걸어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런가?”

“응. 자, 따라 해 봐. 머엉…….”

“머엉…….”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멍한 상태에 빠져드는 일리아 린제이와 말하는 고양이.

“야, 야.”

“……왜.”

“심심하니까 아무 말이나 해봐. 재밌는 거로.”

“……모래가 울면 뭔지 알아? 흙흙이야.”

“…….”

“……어, 그러니까, 모래가 울면 촉촉해지고, 흙이 모래보다 촉촉하니까 흙흙이라고 한 건데, 그게 우는 소리랑 비슷…….”

“쿠바르가 알려 줬냐?”

“응…….”

“그냥 조용히 있어라. 차라리 술 얘기에 끼는 게 낫겠네.”

“미안.”

연신 실없는 농담을 쏟아내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리고 주디스.

대륙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검사들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대화 내용이었다.

허나 아예 의심을 거두기에는, 그들이 식사 때마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또 달랐다.

“걸음걸이에 발현 섞는 거 말인데, 잘 활용하면 공중에서도 방향 바꿀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하지. 강하게 터뜨리듯이 쏘아내면 확실히…….”

“으음, 급한 상황이나…… 아니면, 일부러 공중에 뜬 다음에 함정으로 써먹을 수도 있겠군.”

“그러고 보니 쿠바르, 오크 전사들은 싸울 때 정령술을 섞는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있지. 내가 쓰는 것처럼 아예 정령술 그 자체를 함께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예 오러 운용에 다섯 정령의 묘리를 녹여내기도 하는데, 우리들 말로는 ‘오행신공(五行神功)’이라고…….”

“그럼 그분도 그…… 오행신공? 그걸 쓰나요?”

“정령술도 쓰네. 둘 다 쓰지. 왜, 흥미 있나?”

“예. 어떤 흐름인지 눈으로 보고 싶네요.”

“야, 혼자만 알지 말고 본 다음에 우리들한테도 설명해 줘.”

‘……이런 거 보면 또 대단한 검사들 같기도 하고.’

프레드릭은 검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럴듯한 것’과 ‘진짜 있어 보이는 것’의 차이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나름 여러 용병들을 상대해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판단으로 볼 때, 저들이 뭔가가 있는 사람들인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괴리감이 너무 크단 말이지.’

“흠…….”

프레드릭이 유심히 4명의 검사들을 지켜봤다.

마치 탐정과 같은 날카로운 눈초리.

물론 이를 두고 보고 있을 켄잘이 아니었다.

빠악

“아악! 왜 때려요!”

“멍 때리고 있지 말고 식사 준비나 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꼭 폭력을 써야만…….”

“그래, 네 말대로 폭력을 써야만 움직이니까 손을 들지. 매 더 벌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여!”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자기 할 일을 찾아가는 켄잘.

프레드릭은 그런 그가 아주 못마땅했지만, 자신이 딴청을 부리던 건 사실이라 입만 툭 튀어나온 채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저녁 식사를 끝낸 상인과 용병들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 잘 먹었다.”

“밖에서 먹는 것 답지 않게 맛있어서 좋구만.”

“날씨도 선선하니 나름 괜찮고. 여름 근처에는 북쪽으로 가는 의뢰도 괜찮구만.”

“이대로 도적떼만 안 만나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봐, 만나면 때려죽일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냐?”

“기왕이면 별일 없이 끝나는 게 좋으니까 그러지. 뭐 됐고, 소화나 시킬 겸 대련이나 할까?”

“흠, 그럴까? 아직 날도 밝고…….”

자리에서 일어난 두 용병이 서로의 병장기를 꺼내 들고 식사 장소 옆으로 빠졌다.

평소에는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걸음을 재촉했던 탓에 밥 먹고 수다 좀 떨다 바로 자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일찍 야영을 준비한 터라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흠, 우리도 몸이나 풀까?”

“좋지. 열흘 내내 아무것도 안 나타나서 좀 쑤시던 차였어.”

“하긴, 도적이나 몬스터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였으니까.”

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친 용병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았고, 무기를 빼들었다.

그리고 기합과 함께 서로를 향해 검을 부딪혀 갔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주디스가 중얼거렸다.

“단체로 이래도 되나?”

“뭐, 괜찮으니 용병대장이 묵인하는 거겠지. 날 밝으니 시야가 문제될 것도 없고, 경계 보는 사람도 따로 있으니까.”

“그런가? 그럼…….”

우리도 하자, 라고 그녀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일리아 린제이도 일어났다.

한마디 말도 없이, 눈빛 교환만으로 마음이 통한 둘을 보며 주디스가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면 완전 부부 아니야?’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혹시라도 자기 말을 들은 일리아가, 예전에 술 마셨을 때처럼 대처하기 힘든 공격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슬쩍 브랫 쪽을 쳐다본 그녀가 말했다.

“저 녀석들 끝나면 한 번 붙을까?”

“그러지. 일단 구경이나 하자.”

브랫이 말했고, 주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두 검사의 싸움이다.

물론 대련이니만큼 오러 소드는 쓰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울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싸움의 당사자들보다 더욱 뜨거운 눈빛을 뿜어냈고, 옆의 브랫은 호수처럼 차분한 눈동자로 둘의 싸움을 기다렸다.

“뭐야.”

“젊은 귀족 양반들도 대련하네.”

“구경이나 할까?”

“그러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구만.”

주디스와 브랫뿐만이 아니었다. 용병들과 상인들 몇몇도 둘의 대련에 관심을 보였다.

금방 헤어질 사이라 굳이 친분을 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3일 동안 같이 다녔던 사이다보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물론 아이른과 일리아는 그런 주변의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과하게 멀리 떨어진 둘이 검을 빼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른의 경우는 검을 소환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단 사람들이 흠칫 놀랄 때, 일리아 린제이의 몸이 움직였다.

스팟-!

순식간에 아이른의 측면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을, 대부분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비단 상인들뿐만이 아니라 실력 있는 용병들도 그랬다. 예비 동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도약을 하든, 달려가든, 아니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가벼운 동작을 행할 때마저도 복잡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팔을 흔들고, 무릎을 굽히는 등.

검사가 상대의 검을 예측하는 건 이러한 단서들을 미리 파악해 놓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 일리아의 돌진은 근육의 작용을 극도로 배제한, 오러의 운용을 통해 이루어진 기예.

그렇기에 용병들은 일리아의 검이 휘둘러진 다음에야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콰아앙!

물론 아이른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젠마르크트에서 쌓아 올린 수많은 경험, 그리고 오러를 보는 눈.

이를 통해 완성된 그의 방어술은 신기에 가까운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일리아의 선공을 깔끔하게 막아 낸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고, 일리아는 불을 보고 놀란 들짐승처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허나 잠시 후,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재차 짓쳐들어왔다.

완전히 빠질 거라 생각했던 아이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콰앙!

쾅!

카아앙!

호흡을 빼앗은 일리아의 검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졌다. 그야말로 강철 칼날의 폭풍이었다.

정강이에 내리꽂히다가 연어처럼 위로 솟아오르고, 왼쪽을 노렸다가 우상단으로 날아들고.

베기의 궤적을 보이다가 대각선에 가까운 호선을 그리며 찌르기로 전환하고.

마치 서너 명의 검사를 동시에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타하압!”

부우우웅!

연신 밀리던 아이른이 강력한 중단 베기를 선보였다.

태산조차 날려 버릴 만한 위력으로, 일리아가 숨을 들이마실 때를 노린 공격이었다.

물론 상대는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허나 그 덕분에 아이른도 숨을 돌릴 찬스를 얻었다.

직전과 달리 페이크가 아니라, 정말로 뒤로 물러난 은발의 검사.

그런 그녀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금발의 검사.

“…….”

“…….”

주변이 온통 조용해졌다.

대련의 시작은 여럿이 함께했지만, 지금 싸움을 이어가는 이는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밖에 없었다.

둘의 날카로운 기세를 느낀 용병들이 생각했다.

‘뭐 하는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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