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52화 (152/388)

◈ 50. 뭐 하는 분들이세요 (1)

“마차는 이 몸이 몰도록 하지.”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던 쿠바르를 대신해 4인방이 나서기로 마음먹었을 때, 마차 모는 일을 자원한 것은 브랫 로이드였다.

평소에도 마부 일을 하는 쿠바르 옆에서 말상대를 많이 했던 그였기에, 또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자주 탔었던 그였기에 자신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그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덜컹, 덜컹!

“음! 으음!”

“야! 제대로 안 모냐!”

“마차는 처음이라 그렇다.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쿠바르가 몰 때보다 승차감이 나빠지긴 했지만, 브랫은 나쁘지 않게 마차를 몰았다.

연신 투덜대던 주디스도 한 시간쯤 후에는 군소리를 하지 않을 정도로 배우는 속도 역시 빨랐다.

허나 진짜 중요한 것은, 브랫이 약간의 방향치였다는 점이다.

“뭐야? 점심 때면 마을 하나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지도가 잘못됐다.”

“지도가 잘못되긴, 네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그런 거잖아!”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최단 직선거리로만 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몇 번 꺾다 보면 조금씩 오차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

“어쩔 수 없긴 개뿔!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가야겠구만!”

“…….”

주디스와 브랫이 말다툼하는 것을 보며 쿠바르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난생처음 마차를 모는 것치고는 준수한 편이었고, 방향이야 자신이 조금씩 잡아 주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러한 생각은 마을에 들어간 이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숙박비는 다해서 32실버입니다.”

“알겠습니다. 여기…….”

‘아니, 잠깐! 이 정도 시설에 32실버는 너무 비싸잖아!’

다들 모자람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루루, 브랫, 일리아의 금전 감각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상대 쪽에서 살살 눈치를 보고 대충 부른 가격에 모조리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쿠바르는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재정이 풍부하고 부족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값을 깎기는커녕 두세 배 바가지를 쓰고 들어가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무슨 대도시 초호화 건물도 아니고. 이 정도 방에 32실버라는 게 말이 돼? 뭔 개수작이야?”

“허허, 아가씨. 개수작이라니, 어른한테 말 그렇게 함부로 하면…….”

“뭐? 어른? 말을 함부로? 이 새끼가 좋은 말로 넘어가려고 했더니…….”

그렇다고 금전 개념이 잡혀 있는 주디스가 나서는 건 더 큰 문제였다.

최근 들어 화가 많아졌는지, 틈만 나면 언성을 높이는 그녀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뒤늦게 끼어든 아이른이 아니었다면 뭔가가 부서지고도 남았을 터였는데, 이러한 일이 몇 번 연속으로 벌어지자 쿠바르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제쳐 둘 정도로 끔찍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일리아 린제이의 요리 실력이었다.

“야! 미쳤어! 비싼 고기가지고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야!”

“개짓거리라니. 말을 왜 그렇게 해?”

각자 하나씩 일을 맡았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음인가.

마을 간의 거리가 애매해서 노숙 준비를 하던 때, 이번 저녁은 자신이 해 보겠다고 말했던 일리아였다.

일행 모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은 허락해 줬는데, 뭔가 어려운 요리를 시도한 게 아니라 그냥 고기를 굽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완성된 음식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분명히 질 좋은 소고기를 구웠을 텐데, 그릇 위에 올라온 것은 정체불명의 무언가였다.

포크와 나이프를 갖다 댄 브랫이 살짝 한숨을 쉰 뒤, 조용히 중얼거렸다.

“뒤틀린 황천의 고블린 가죽이로군.”

“뭐……!”

“브랫 말이 맞는데? 아니, 차라리 완전히 태운 거면 이해라도 하지.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이딴 게 나온 거야? 조리 과정 설명 좀 해 봐.”

“딱히 이상한 짓 안 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고기를 씻고, 팬에 기름 붓고, 불 피워서…….”

“돌았냐? 깔끔하게 정육된 고기를 왜 물에 씻어! 그리고 기름 얼마나 썼어!”

“이 정도……?”

“아오, 기름을 두른 수준이 아니라 고기를 기름통에 빠뜨린 거잖아!”

“…….”

길길이 날뛰는 주디스를 바라보던 일리아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증명의 땅을 오시하던 챔피언의 위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모습이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브랫과 루루는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심지어 가장 든든한 우군인 아이른마저 고기를 몇 번 찔러 보고는 조용히 식기를 내려놓았는데, 이에 울컥한 일리아가 굳은 얼굴로 자신의 접시 위에 고깃덩이를 덜어갔다.

그리고 나이프가 잘 들어가지 않자, 무의식적으로 오러 소드를 뿜어냈다.

우우웅……

서걱-

챙그랑-!

“…….”

“…….”

“아, 소드마스터라 일부러 질기게 조리했구나.”

“…….”

접시째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진 고기.

일리아는 침울한 표정으로 마차 안에 들어갔고,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쿠바르가 말했다.

“그냥 내가 하던 일은 내가 하겠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내가 부탁하는 거로 하지.”

“그럴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그러죠.”

“그러자!”

아이른, 브랫, 주디스, 루루가 동시에 대답했고, 그날 이후로 다시 파티에 평화가 찾아왔다.

지체 높은 가문의 귀한 아가씨였던 일리아는 그제야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모든 면에서 어수룩한 면을 보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우우우웅-!

“……지금 보여 준 것처럼, 이런 식으로 오러를 활용하면 훨씬 다채롭게 움직일 수 있어.”

“음, 확실히 그렇군. 하지만 숙련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아. 내 경우는 물을 밀어내는 느낌으로, 이런 식으로 하면 좀 더…….”

“아아, 그렇군. 확실히 아까보다 수월하다.”

“일리아?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맞나?”

“으응. 비슷해.”

“흐음.”

어김없이 찾아온 주디스, 브랫 로이드의 주도 하에 시작된 논검(論劍).

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아이른 파레이라와는 다르게, 일리아 린제이는 시작부터 검술과 오러 운용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뽐냈다.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털어놓는 그녀를 아이른이 ‘오러를 보는 눈’을 사용해 보조했고, 브랫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이를 습득했다.

“…….”

이를 지켜보며, 주디스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좋은 일이다. 무려 두 명의 소드마스터가 각자의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고 있다.

심지어 브랫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흐름을 주도하진 못했지만, 가끔씩 일리아조차 놀랄 만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져 놓는 모습에 자존심 강한 주디스조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젠장.’

다시 한번 찾아온 열패감.

그것을 최대한 속으로 숨기며, 그녀 역시 최선을 다해 논검에 임했다.

논검뿐만이 아니라 실전 대련에서도 최선을 다해 두 천재, 아니 세 천재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덕분에 정체 상태였던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을 느꼈지만.

“아아, 이젠 확실히 알겠다. 이런 느낌이군.”

“네 방식도 상당히 유용한데? 도움이 됐어.”

“고마워, 브랫.”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고 내 할 거를 하자.’

‘아니, 신경 써야지. 더 집착하고 더 곱씹어야지.

‘그래서 그 힘으로 저 녀석들 모조리 따라잡아야지. 그게 맞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번뇌.

계속해서 쌓여가는 압박감.

그 모든 것을 뚫어내며, 주디스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가끔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모조리 참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 이런 조그만 마을에 이런 귀한 술이 있다니!”

“그렇군요. 확실히…… 음. 그러고 보니, 일리아 합류하고 나서 제대로 된 환영회도 안 했군요.”

“아아, 그렇군! 그럼 이참에 환영회나 할까? 이 맛 좋은 술과 함께 말이야!”

‘저 미친 주정뱅이들 같으니!’

쿵짝이 잘 맞는 쿠바르와 브랫 로이드를 보며, 주디스는 괜히 화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둘이 원래 저런 녀석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자신 역시 예전 흑역사에서 벗어나 종종 술을 마시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저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감정이 좋지 않았다.

물론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의 주디스라면 모를까, 지금의 주디스는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곳에 자신이 멋대로 화를 쏟아낼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쿠바르야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와중에도 한 번도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진짜 어른이었고, 아이른은 보고 있으면 열이 뻗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진 녀석이지만……

저 바보같이 착한 녀석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었다. 루루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브랫은…….

‘아니, 생각하지 말자.’

세차게 고개를 휘저은 주디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술을 구경하는 일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 녀석은 조금 짜증 나긴 해.’

물론 정말로 싫다거나, 억하심정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파티의 다른 이들에 비해 쌓인 정이 적은 건 사실.

꼬인 심사를 풀기에는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심한 뭔가를 할 생각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도, 가벼운 장난 정도는 괜찮겠지.’

빙긋 웃은 주디스가 그녀를 불렀다.

“일리아.”

“응?”

“술 마셔 본 적 있어?”

“아니.”

“그래? 그럼 이참에 마셔 보면 되겠네.”

“으음…… 괜찮을까? 이거 엄청 독한 술 같은데, 내가 마셔도 괜찮…….”

일리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도중이었다.

얄밉게 한쪽 입꼬리를 올린 주디스가, 작지만 명료한 목소리로 말했다.

“쫄?”

“…….”

짧은 한마디.

귀족들 사이에서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속어에 가까운 단어.

허나 의미만은 그 어떤 고상한 단어들보다 분명하게 전해졌다.

‘진정해.’

일리아 린제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알지 않나. 주디스는 옛날부터 저랬다.

아니, 짓궂은 걸 넘어 짜증이 솟구쳤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무척 귀여운 수준이었다.

“쫄?”

“……그래. 너도 마실 거지?”

허나 한 번 더 이어진 주디스의 도발에는, 도저히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번쩍 하고 눈을 뜬 일리아가 뒷말을 덧붙였다.

“내기라도 할까?”

“뭐? 내기?”

“그래. 똑같이 한 잔씩 마시는 거야. 한쪽이 졌다고 하거나, 정신 잃을 때까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하아, 나 참…….”

“저기, 일리아…….”

“주디스, 일리아. 둘 다 그쯤 하지?”

“오오! 나 이런 거 예전에 많이 봤어! 승부야? 술로 승부하는 거야?”

“허허, 허허허허.”

루루와 쿠바르가 관망하는 가운데, 아이른과 브랫이 두 여자를 말리기 위해 노력했다.

술이 약한 주디스와 술을 처음 마시는 일리아가 술내기를 벌이면 피해는 누가 보는가?

당연히 정신 멀쩡한 그들이 볼 터였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둘이 걱정되기 때문에라도 이 내기는 말리는 게 맞았다.

“……쫄?”

그러나 일리아가 어색한 표정으로 똑같은 단어를 내뱉는 순간.

쾅!

“좋아. 그 승부, 받아들이지. 테이블 따로 잡을까?”

“그래. 이쪽에 잔 두 개 주세요.”

“어, 어어…….”

“…….”

아이른과 브랫이 말릴 틈도 없이 다른 자리로 이동하는 주디스와 일리아.

치열하게 눈싸움을 하는 둘 사이로 40도짜리 위스키병, 그리고 얼음이 담긴 온더락 잔이 놓였다.

그러자 주디스가 말했다.

“얼음 필요 없어요. 아, 너는 필요한가?”

“……이쪽도 필요 없습니다.”

“하하, 당찬 분들이군요! 알겠습니다, 샷 잔으로 드리도록 하죠.”

가게 주인이 사람 좋은 얼굴로 얼음이 담긴 잔을 치운 뒤, 조그마한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독한 위스키를 꼴꼴꼴, 3/4가량 따라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서로만을 지그시 노려봤다.

“…….”

“…….”

숨 막히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무거워졌음을 느끼며, 주디스가 잔을 들었다.

일리아 린제이도 이에 질세라 잔을 들었다. 그러면서 상대의 잔을 살폈다.

혹시나 손을 흔들어 술을 일부러 흘리진 않을까 견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이윽고, 자존심 강한 두 검사가 건배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것이, 주디스가 그날 기억한 마지막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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