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51화 (151/388)

◈ 49. 새로운 동료 (3)

아이른 파레이라는 신비한 꿈을 꾼다.

의문의 사내가 종일 검을 수련하는 꿈인데, 예전에는 혼자만의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일행 모두가 이 사실을 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사내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단서가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고?’

쿠바르의 스승님이?

도대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아요? 무슨 점이라도 봐서 아는 건가? 아니, 근데 애초에 그거 다 사기라면서?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으면 더 일찍 말하지, 왜 지금까지 안 말하고 있었어요?”

성격 급한 주디스가 우다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허나 주디스 전문 조련사인 브랫을 포함해, 그 누구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점술사가 쿠바르처럼 사이비는 아니라는 것을, 아이른은 잘 알고 있다.

당장 고양이 요술사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존재일진데, 용한 점술사가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쿠바르에게 처음 받았던 쪽지도 평범한 건 아니었지.’

하지만 쿠바르가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이유만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른은 대답을 바란다는 듯 오크 점술사를 쳐다봤고,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스승님을 뵈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네.”

“네?”

“스승님이 있는 곳은 오크의 영역에서도 가장 번성한 곳인데, 그곳에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니,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군. 하여튼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을 꺼리는 이가 있거든.”

“…….”

“비겁한 말이지만, 나는 도저히 그곳에 혼자 갈 자신이 없었어.”

쿠바르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말을 이어 갔다.

평소 그의 말솜씨를 생각하면 상당히 두서없는 이야기.

허나 감정만큼은 가슴에서 꺼내 보인 듯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떠돌이 생활을 하고 싶어서 대륙을 돌아다닌 게 아니었구나.’

전혀 몰랐다.

지금까지 쿠바르는 항상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이끌어 줬다.

걱정도, 불안도, 슬픔도 전혀 없어 보였다.

마치 모든 것에 초연한 존재처럼 여유롭게 대륙을 쏘다니는 그를 보며 약간은 부럽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던 아이른이었다.

오해였다.

쿠바르는 그저 속에 담아 두고, 감춰 두고 있었을 뿐. 그 역시 나름의 속사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

아이른은 그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또 고마웠다.

이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 처음보다 훨씬 쿠바르와 가까워졌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것이 역으로 아이른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쿠바르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지만, 그는 아직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주디스가 앞장섰다. 답답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소리 높여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니, 오크인가?”

“오크네.”

“그래, 그 오크가 누군데요? 나쁜 놈이에요? 엄청 강해요? 어떤 자식이길래 그렇게 겁을 먹고 있어요?”

주디스의 목소리에는 약간이지만 짜증이 담겨 있었다.

용한 점술사를 만나러 가는 것, 물론 나쁘진 않다.

사이비이긴 하지만, 쿠바르가 갖고 있는 점에 대한 철학은 그녀의 입장에서도 들어줄 만한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고,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그로 인해 스스로 딛고 일어날 힘과 의지를 부여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쿠바르의 스승을 만나는 것은 아이른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터였다.

‘아마 일리아, 저 자식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역시 그런 건 너무 추상적이었다.

현재의 주디스는 그 무엇보다 직관적인, 직접적으로 자신의 ‘검술 실력’에 도움이 되는 수행을 원했다.

예전에 말했듯 ‘선혈의 악마’의 무덤을 찾아가 옛 영웅의 깨달음을 좇는다거나.

전 챔피언 리카르도 핀토에게 부탁해서 그의 아버지이자 소드마스터인 해리슨 핀토를 찾아간다거나.

혹은 다시금 라티온에 찾아가 간판을 부술 각오로 떼를 쓴다거나.

그런 것에 비해, 쿠바르의 스승을 찾아가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느낌이 강했다.

허나 이어지는 쿠바르의 말을 듣고 난 뒤, 주디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나쁜 이는 아니네. 오히려 훌륭한…… 아니, 이건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군.”

“아오, 이 양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답답…….”

“하지만 뒤의 질문에는 확실히 답해 줄 수 있겠군. 강하네. 굉장히 강하네. 아마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더.”

“…….”

“…….”

놀라운 발언이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4명이 누구인가.

바로 ‘황금의 27기’라 불리는, 크로노의 압도적인 재능들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던 천재들이다.

헌데, 그런 그들이 전부 덤벼도 이기기 힘든 강자라고?

모두가 말을 잃었다.

허나 쿠바르의 입에서 그의 정체가 밝혀지자, 넷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동의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주디스가 결정 났다는 듯 크게 말했다.

“좋아요. 거기 갑시다!”

“괜찮겠나? 아니, 물론 자네들이 날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을 꺼낸 거긴 하지만…….”

“괜찮으냐고요? 당연히 괜찮지! 라티온 영감쟁이들도, 검술명가들도 우리들 안 받아 주는 마당에 그만한 강자랑 겨뤄볼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갑시다. 무조건 거기로 갑시다!”

“…….”

잔뜩 흥분한 주디스로부터 시선을 거둔 쿠바르가,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항상 여유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미안함이 잔뜩 담긴 눈빛.

이를 마주보던 아이른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나쁠 것 없죠.”

“……다들 동의한다면, 저도 좋아요.”

“오와, 우리 오크 부족 가는 거야? 나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신난다! 거기 타이호이 열매 엄청 많다고 했지? 좋아! 좋아!”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루루를 포함해, 모두가 흔쾌히 쿠바르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오크 점술사는 잠시 입을 열지 못하다가, 감정을 한번 꿀꺽 삼킨 다음에야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물론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감정을 수습한 그는 보다 자세하게 자신의 사정을 일행에게 털어놓았고, 크로노 4인방과 루루는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쿠바르의 얼굴에 복잡하지만 기쁜 듯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그리하여,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가장 큰 오크 도시, 두르칼리.

모두의 얼굴에 새로운 기대감이 차올랐다.

* * *

일리아 린제이가 파티에 합류하고, 쿠바르의 부탁으로 인해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후.

일행은 각각 아이젠마르크트에서의 인연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엥? 뭔 소리야. 정리할 게 뭐가 있어? 여기 사는 지인이라도 있었어?”

“사교성 없는 녀석. 여기서 지낸 시간이 4달이나 되는데 친구 하나 못 만든 네가 이상한 거야.”

“허허, 브랫과 함께 사귄 술친구가 몇 있지. 그들과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것 같구만.”

“검술관에만 있어서 그런지, 성격이 모나서 그런지…….”

“뒤진다 진짜.”

브랫 로이드와 쿠바르는 그간 연을 맺었던 주민들과 돌아가면서 술자리를 가졌고.

“고마웠네. 자네가 날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자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한 번 들르게. 그때는 더욱 완성도 높은 존 드류 식 검술을 보여 주도록 하지. 아, 그…… 루루한테 말 좀 해 줄 수 있나? 다음에 볼 때는, 부담스러우니까 돈 좀 그만 뿌리라고…….”

아이른은 그레이슨, 힌츠, 존 드류와 덕담을 주고받으며 아이젠마르크트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남겼다.

물론 일리아 린제이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 엠마.”

“…….”

아이른, 브랫, 쿠바르와 달리 외부에서 사귄 인연은 없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깊고 짙은 마음으로 자신을 아껴 주고, 위해 주고, 걱정해 줬던 존재, 호위기사 엠마 가르시아.

늦었지만, 아주 늦었지만…… 그녀에게는 미안했고, 고마웠다는 말을 꼭 해야만 했다.

“어쩜 이리 바보 같았을까.”

“…….”

“나와 상관도 없는 멍청이들의 말에는 그렇게 집착해 놓고, 누구보다 가까이서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닙니다, 아가씨.”

세차게 고개를 젓는 엠마 가르시아.

하지만 그녀의 눈시울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는 상태였다.

일리아의 말도 고마웠지만, 그보다는 지난 몇 년에 비해 훨씬, 훨씬 편해 보이는 아가씨의 얼굴을 보니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잘 다녀올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부모님께도 지금까지 너무 미안했고, 감사했다고 전해줘. 더 씩씩해져서……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겠다고도.”

“소드마스터를 제가 어찌 감히 걱정할까요. 오히려 아가씨가 절 걱정해 주셔야죠. 호위 임무도 제대로 못 하고 쫓겨난 걸 가주께서 보시면, 저는 그날로 기사 작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어요.”

“어? 정말?”

“당연히 농담이죠.”

“아니…….”

“근데 진짜 혼나긴 할 거예요, 아마.”

“…….”

“그래도 괜찮아요.”

그간의 마음고생을 몇 마디 농담만으로 모조리 털어 버린 엠마 가르시아.

그녀가 천천히, 부드럽게 일리아 린제이를 품에 안았다.

가신이 주인에게 하는 것치고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

하지만 일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 상대의 따스함을 느낄 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있는 친구 분들과 함께…… 더 멋있는 기사가, 검사가 되어 돌아오세요. 믿고 있겠습니다.”

“……꼭 그럴게.”

그 말을 끝으로 일리아 린제이는 1년 가까이 머물렀던 저택을 떠났고, 호위기사 엠마 가르시아는 멀어지는 주인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슬프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쁜 얼굴.

일리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아가씨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했다.

* * *

4인방이 재회하고 4일 뒤.

모든 주변정리를 끝낸 일행이 아이젠마르크트를 벗어났다.

증명의 땅 관계자를 비롯한 온갖 검투 관련 종사자들이 제발 떠나지 말라고 사정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야옹!

미야아오-

이야아아오옹-!

“잘 있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휙-!

휘릭!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고양이들에게 연어 한 뭉텅이씩을 던져 준 루루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도시를 벗어나는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

그렇듯 앞서 나아가는 4인을 바라보며, 쿠바르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젊고, 또 이렇게 강한 파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정말로 그랬다.

넷 중 두 명은 모든 검사들이 바라마지않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상태고, 나머지 둘 역시 엑스퍼트들 중 당할 자가 몇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심지어 그런 그들의 평균 나이가 20세였으니, 그야말로 세상이 놀랄 파티가 대륙에 나서는 셈이었다.

‘심지어 검술만 강한 것이 아니지.’

쿠바르가 지난 4달, 아니 여행 사이에 봐 왔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 브랫 로이드.

괴롭고 지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상황조차 성장을 위한 원동력으로 승화시키는, 거대한 불꽃처럼 열정적인 주디스.

마찬가지로 괴로운 상황에 빠져 헤매기도 했으나, 결국 제자리를 찾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일리아 린제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어렵고 불편한 상황이라도 결코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서 끝끝내 이겨내는…… 아이른 파레이라.’

여기까지 생각한 쿠바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젊은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이 자리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배운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아마 저들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여전히 대륙을 겉돌며 살아갔을 것이다.

영원히 용기내지 못한 채,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갈 생각 따위 하지 못하고 말이다.

“쿠바르!”

“음? 왜 그러나?”

그때, 홱 하고 뒤돌아선 주디스가 그를 불렀다.

쿠바르가 물음표를 띄우자,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 여정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쿠바르의 의뢰를 들어주는 셈이잖아요. 그렇죠?”

“어어, 그렇게 되나? 의뢰가 아니라 부탁이긴 하지만…….”

“뭐 그게 그거죠. 하여튼, 의뢰 받은 입장이니까 두르칼리까지는 우리가 가이드할게요.”

“으응?”

“쿠바르는 편히 쉬어도 된다는 말이니까, 그런 줄 알라고요.”

“……허허, 정말 그래도 되나?”

쿠바르가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가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하긴 했지만, 그건 가이드를 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거였다.

헌데 그런 부분마저 배려해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그러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하루가 지난 뒤.

‘……그냥 내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파티를 보며, 쿠바르는 다시 자신이 나서는 쪽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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