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50화 (150/388)

◈ 49. 새로운 동료 (2)

쏟아지는 눈물과 감정을 추스른 후.

일리아는 아이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침내 결정했다.

가문에 복귀하는 대신,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함께 조금 더 수행을 이어 나가기로 말이다.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 여정 내내 아이른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곳에 오기 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없이 부유하던 와중에 구조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었다.

주디스, 브랫 로이드, 그리고 쿠바르라는 오크와 고양이 요술사 루루.

사실 뒤의 둘은 괜찮았다.

기본적으로 낯가림이 적은 이들이기에, 적당히 사정 설명을 하면 반겨 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브랫과 주디스는……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네.’

아이른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야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다지만, 둘은 예비 수련생 시절에도 일리아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오히려 사이가 나쁜 축에 속했다.

물론 주디스의 경우, 일리아가 검술관을 떠나기 전에 감정을 풀긴 했지만 이미 그때로부터 6년이나 지난 상태.

게다가 아이젠마르크트에서 몇 번이고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는 척도 안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리아 쪽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피했던 것이다.

즉, 현재의 그들은…… 초면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괜찮을까?”

일리아가 물었다.

원체 표정이 없는 얼굴이라 티가 나진 않지만, 아이른은 그녀가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마주친 그가 엷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문제없을 거야. 기본적으로 다 좋은 애들이니까. 오해가 좀 있긴 하지만…… 검술관 때도 다퉜다가 잘 풀었잖아?”

“그렇긴 한데.”

“괜찮아. 나도 있으니까. 이제라도 사과하고, 함께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설마 뭐라 하겠어?”

“음…….”

“내가 잘 말해 볼게. 걱정하지 마.”

평소보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한 아이른과, 그런 아이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일리아.

마침내 긴 대화를 끝낸 둘이 존 드류의 저택으로 향했다.

수련 동기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일부러 비켜 줬는지, 방 안에는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싫은데.”

“응?”

“반대라고. 지금까지 내내 무시해 놓고 이제와서 갑자기 합류하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반대할 거라 생각했던 주디스 대신, 브랫 로이드가 더 차가운 반응을 보인 것.

예상치 못한 그의 대응에 아이른은 말문이 막혔고, 일리아 역시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더욱 당황한 것은 주디스였다.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아이른이 일리아를 만나러 나간 순간부터 어느 정도 이러한 일을 예상했던 둘이다.

브랫은 이러나저러나 별 상관없다고 했고, 자신은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한껏 굽히지 않는 이상 받아 줄 생각은 없다고 했던 차였다.

헌데 대뜸 ‘안 된다!’ 하며 엄포를 놓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야, 너…….”

“일리아 린제이.”

허나 주디스의 말은 브랫에 의해 곧바로 잘렸다.

평소라면 바로 뭐라 했을 텐데, 표정이 생각보다 훨씬 진지했다.

그녀는 발끈하는 대신 상황을 지켜보자는 듯 팔짱을 꼈고, 아이른과 일리아 역시 긴장한 얼굴로 브랫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 여기 합류하려는 이유가 뭐야?”

“나, 나는…….”

“뭐, 대충 예상은 간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격려하고, 또 격려받으면서 나아가기 위해. 성장해 나가기 위해. 그런 거겠지.”

“맞…….”

“그럼 이번엔 다른 걸 물어볼까. 네가 생각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건…….”

“아마 아이른 파레이라, 딱 하나겠지. 주디스나 나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않을 테고.”

“…….”

“아닌가?”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끊는 브랫 로이드의 무례한 화법.

허나 일리아 린제이는 이에 화를 낼 수도, 뭐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란 말은 못 하는군. 하긴, 그게 당연하지. 애초에 우리들과도 제대로 된 신뢰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 아이른만 따로 불러서 얘기하진 않았을 거야. 너희들이 밖에서 나눈 비밀 얘기, 네 속사정, 네가 지금까지 우릴 무시했던 이유, 그 밖의 것들도 빠짐없이 우리한테 털어놨겠지. 안 그래?”

“…….”

“그게 힘들다면,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아이른과 따로 파티를 꾸리는 게 맞는 거고.”

냉정한 말.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이른과 일리아는 물론이고, 주디스마저 눈치를 볼 정도였다.

생각보다 훨씬 험악한 브랫의 태도에 오히려 일리아에 대한 동정심이 들 정도였는데, 그러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작금의 분위기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처음 말을 꺼낸 브랫 로이드뿐.

그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뒤늦게 한숨을 쉬며 재차 입을 열었다.

“후우…… 물론 아이른 성격상 그건 안 되겠지. 우리도 잡고, 일리아도 함께 끌고 가려고…… 그러고 싶지?”

“…….”

브랫의 눈빛을 받은 아이른이 우물쭈물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조용히 중얼거린 브랫이 일리아를 쳐다봤다.

뭔가 할 말 없냐는 듯한 시선이었는데, 일리아는 살짝 시선을 떨어뜨린 채 푹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결국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

주디스도, 아이른도, 일리아도 도대체 지금의 모임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브랫이 셋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좋아. 우리가 한 발짝 양보하지. 네가 먼저 하기 힘들다면, 우리가 먼저 하마.”

“……?”

“타인에게는 하기 힘든, 가까운 사람에게만 밝힐 수 있는 우리들의 비밀을 먼저 말해 주겠다는 뜻이다. 너도 네 이야기를 꺼내기 편하도록 말이야.”

‘이 자식,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이제야 브랫의 의도를 파악한 주디스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녀석은 일리아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다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기에는 너무 멀어진 상태였으니, 나중에 탈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지?

주디스의 머릿속에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보통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겠다고 하지 않나?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건데…… 주디스는 14살까지 산타를 믿었다.”

“……!”

“……?”

“응?”

“정식 수련생이 된 이후, 산타에게 선물받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욕도 참고, 말도 나긋나긋하게 하고 그랬었지. 물론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곧바로 어마어마하게 욕을 쏟…….”

“야! 이 미친 새끼야! 말할 거면 네 비밀을 풀어야지, 왜 남의 얘기를 네가 하고 지랄이야! 이 미친 개자식이…….”

쿠당탕!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거칠게 일어난 주디스가 브랫 로이드의 멱살을 잡았다.

그냥 잡은 게 아니라 번쩍 들어 올렸다.

발이 허공에 뜬 브랫은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도 평온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른, 일리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산타클로스. 전 세계의 착한 아이들에게 12월 25일에 선물을 안겨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유명한 미신.

허나 너무나 유명하기에 대부분 어린 나이에 진실을 알게 되는데, 주디스가 14살까지 이를 믿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당사자인 주디스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콰당탕! 거칠게 브랫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너도 네 얘기 다 말해라! 대충 넘겼다간 진짜 죽여 버린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아이른 너도!”

“……나도?”

“그래! 그럼 우리 얘기만 듣고 끝내려고 했어?”

“그건 아닌데…….”

“당연히! 당연히 아니어야지. 그리고 일리아!”

“으, 응.”

“설마 남들 다 자기 얘기하는데, 너 혼자 아까처럼 아무 얘기도 안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고 그러진 않겠지?”

“…….”

“그랬다간 진짜, 소드마스터고 뭐고 한쪽 뒤질 때까지 싸우는 거야.”

“……할게, 내 얘기도.”

주디스의 무시무시한 박력을 느낀 일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검술관을 떠나갈 때도 느꼈지만, 주디스는 한 번씩 말도 안 되는 기세를 뿜어낼 때가 있었다.

검술 실력과 상관없이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맹수와 같은 기운이었다.

그것을 야기한 게 ‘산타클로스’라는 것이 우습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른도 마찬가지였다.

“흠흠. 그럼 내 얘기부터 할까.”

오로지 브랫 로이드만이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고, 매끄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과연 무슨 말을 하는지 두고 보자!’라는 눈빛의 주디스는 완전히 무시한 상태였는데, 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크로노 검술관에 들어오기 전의 한참 어렸을 때부터, 예비 수련생 시절 함께 공유했던 추억.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과 검술관을 나와서 겪었던 경험들까지.

브랫 로이드는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가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였다.

그야말로 숨기는 것 하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말할게.”

다음 차례인 주디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랫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다 때려 부술 것처럼 흥분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빈민가 시절을 포함한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름 최선을 다해 풀어낸 뒤, 아이른을 바라봤다.

빙긋 웃은 아이른 역시, 세 동기들이 한 번씩은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성심성의껏 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 명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

일리아 린제이의 눈에는 또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크로노 검술관을 나온 뒤의 6년 동안, 일리아는 홀로 어둡고 좁은 통로를 헤쳐 왔었다.

자신을 둘러싼 대중들의 섬뜩한 눈빛과 역겨운 말, 그리고 그보다 짙고 어두운 상상력과 그로 인해 피어난 두려움이 그녀를 24시간 옥죄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기나긴 어둠을 뚫고 나와 펼쳐진 세상 속에서, 빛이 주는 따스함보다 광활함이 주는 불안함과 막연함이 더 크게 와닿고 있을 때.

거짓 없는 얼굴로 자신의 곁에 다가온 세 명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리하여 시작된 일리아 린제이의 이야기.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천천히, 가닥가닥 끊기며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셋은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예비 수련생 시절로부터 6년.

마침내 넷은 친구로 거듭나게 되었다.

* * *

“허허, 이제 우리가 끼어도 되나?”

“안녕! 반가워! 나는 대륙 최고의 고양이 요술사! 루루라고 해! 네가 받은 곰 인형도 내가 만들었거든! 하하하!”

일리아 린제이를 포함한 넷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끝냈을 때.

오크 점술사 쿠바르와 고양이 요술사 루루가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전혀 어색함 없이 일리아를 대했다.

그녀가 합류하는 것에도 아무런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래?”

“원래 이래.”

일리아가 물었고,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여 줬다.

오히려 일리아의 합류보다 중요하게 다뤄진 안건은,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하는가에 관해서였다.

쿠바르와 루루는 별다른 목적이 없지만, 아이른을 포함한 나머지 넷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검사로서의 성장을 꾀하기 위한 수행.

그것이 이 파티의 목적이었으니, 다음에 찾아갈 곳 역시 그를 위한 장소여야 했다.

그때, 쿠바르가 넌지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내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떤가?”

“쿠바르의 스승님이요?”

“그래, 내 스승님. 어쩌면…….”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이른, 자네의 꿈…… 그 의문의 사내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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