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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49화 (149/388)

◈ 49. 새로운 동료 (1)

“……잠시, 잠깐.”

몸을 반쯤 일으킨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방 안의 풍경을 훑어봤다.

폭풍이 지나간 듯 여기저기 나뒹구는 물건들.

그리고 방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들.

‘아니, 이렇게 많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 안 깼던 거야?’

항상 꾸는 꿈 때문에 잠귀가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책 없이 자고 있었을 줄이야.

이런 생각을 하던 아이른이 흠칫 몸을 떨었다.

설마 하는 표정을 지은 그가 루루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나 얼마나 자고 있었는지…….”

“오늘로 꼬박 3일 잤어.”

“사흘?”

“응.”

“딱 사흘?”

“그렇다니까.”

“휴…….”

아이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꾸었던 꿈이 아닌, 훨씬 특별했던 꿈.

그렇기에 일어난 순간 걱정부터 들었다.

혹시 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요술세계에 빨려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보다 훨씬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은 아닐까 하고.

허나 기우였다.

물론 3일도 긴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년 단위로 시간이 흐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루루도 그런 아이른의 생각에 동의했다.

“나도 걱정 많이 했어! 요술세계로 들어갔을 때 느꼈던 거랑 비슷할 정도로 커다란 힘이 느껴졌거든.”

“그랬어?”

“응! 느낌은 조금 다르긴 한데, 아무튼 엄청 강렬한……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미야옹-!

야아아옹!

검은 고양이가 말했고, 이를 따라 열댓 마리의 고양이들도 입을 열었다.

아이른이 ‘쟤들은 뭐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루루가 깜빡 잊었다는 듯 손뼉을 치며 설명했다.

“아, 쟤들은 내 친구들이야. 4달이나 있다 보니 좀 많아졌어.”

“친구들?”

“응. 내가 걱정돼서 따라왔는데…… 이젠 가라고 해야겠다. 얘들아, 이제 괜찮아! 가 봐도 돼! 나중에 맛있는 거 갖고 갈게!”

야아옹

이야아옹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녀석들이 열린 창문으로 폴짝폴짝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란 아이른이 창문가로 다가갔다. 이곳이 1층이 아닌 2층이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루루의 요술에 휩싸인 고양이들은 투명 의자에 앉은 듯 안락한 자세로 바닥에 착지하였다.

그리고 호다닥 어디론가 사라졌다.

“…….”

“그래서, 별 일 없었어? 혹시 이번에도 꿈이 변했어?”

“아, 응.”

아이른이 진중한 표정을 지은 뒤, 루루에게 자신의 꿈을 설명했다.

사실 길게 풀 것도 없었다.

3일이나 흘렀다고는 하지만, 막상 꿈속의 일은 노인과 싸운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느낌이 있었지.’

특히 마지막이 그랬다.

자신을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멀리 떠나가는 노인.

그의 뒷모습은,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사람의 뒷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쿠바르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스런 표정이 시큰둥해질 때까지, 그러니까 특별한 꿈이 있었던 후로 나흘이 더 지났을 때까지.

아이른은 사내에 대한 어떠한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상당한 찝찝함을 안겨 줬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꿈에서만 등장했던 사내를 어떻게 쫓아갈 것인가?

심지어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혹시나 해서 역사에 박식한 브랫에게 예상가는 인물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그도 아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과거의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기도 하고…….’

결국 아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내에 대한 의문을 잠시 뒤로 미룬 채 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우우우웅-!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러 소드(Aura Sword).

오러 운용 6개념의 총화이자, 소드마스터를 상징하는 최고, 최강의 기술.

아이른은 이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물론 경기 당일에도, 꿈속에서도 수월하게 성공했던 바지만, 오러 소드라고 다 같은 오러 소드가 아니었다.

얼마나 더 빠르게 오러를 뽑아낼 수 있느냐.

얼마나 더 안정적으로 오러를 유지할 수 있느냐.

얼마나 더 강한, 거대한 오러를 형성할 수 있느냐.

이것에 따라 같은 소드마스터라 하여도 하늘과 땅 만큼의 실력 차이가 난다는 말을 들었으니, 나태할 틈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오러 소드’에만 집중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었다.

물론 오러 소드는 위대하다.

그 무엇이라도 베어낼 수 있고, 그 어떤 공격이라도 막아 낼 수 있는 전설의 무기를 손에 든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무기라고 해도 그것을 든 사람이 일곱 살짜리 꼬맹이라면, 그 위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결국 달라진 건 없어.’

여전히 검술은 중요하고, 보법은 중요하다.

존 드류로부터 배운 심리전과 수 싸움 역시 중요하고, 오러 운용의 기본 6개념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즉,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행하면서, 아니 더욱 발전시켜 나가면서 오러 소드도 함께 활용하는 것이 옳다.

아이른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마치 아직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사람처럼 열심히 수련했다.

그 모습을 본 쿠바르와 존 드류가 혀를 내둘렀고, 주디스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그보다 더 격렬한 수련을 이어 갔다.

브랫은 그런 주디스를 말없이 지켜봤다.

그렇듯 예전과 다름없는 하루가 또 한 번 지나갈 무렵.

“존 드류 주인님.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응? 손님?”

“예. 다만, 주인님 손님은 아니고…… 아이른 파레이라 님의 손님입니다. 일리아 린제이 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아이른 파레이라가 일리아 린제이의 저택에 방문하고 일주일.

마침내, 그녀가 찾아왔다.

* * *

“잘 지냈어?”

“응. 너는?”

“……그럭저럭.”

“그렇구나.”

“으응.”

“…….”

“…….”

증명의 땅에서 가장 강한 두 검사의 만남은, 생각보다 훨씬 어색했다.

아이른도, 일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누군가가 말을 주도하지도 못한 채 둘은 존 드류의 드넓은 정원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만 흐르기를 5분.

아이른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툼의 시작도 자신이고, 억지로 화해를 청한 것도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아는 자신을 찾아왔다.

그렇다면 그 후의 흐름 역시 자신이 주도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당당히 저택을 찾아갔을 때와 달리, 지금은 도저히 괜찮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 잘 지내자고 해야 하나?’

‘대놓고 물어봐야 하나? 무슨 일 있던 거 아니냐고?’

‘오빠의 일을 물어보는 건…… 조금 그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하지?’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뻥 터질 것만 같았다.

다행인 건, 그러기 전에 일리아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는 점이다.

“……선물.”

“응?”

“선물 궁금하면 직접 오라며.”

“아…….”

맞다.

분명히 그랬다. 상황이 어색하다 보니 깜빡 잊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물이 준비가 안 된 건 아니었다.

일리아가 언제 자신을 찾아오든 바로 꺼낼 수 있도록, 마법 배낭 안에 넣어 둔 상태였다.

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할지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어떻게든 나오게 하려고 일부러 더 당당하게 말했던 건데, 막상 확인받을 시간이 다가오자 챔피언 결정전에 나설 때만큼 가슴이 떨렸다.

‘괜찮아. 그래도 혹시 몰라서 여러 개 준비했잖아.’

고개를 끄덕인 아이른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일리아가 그런 그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몹시 부담스러운 눈빛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보여 줄 수는 없는 일.

침을 꿀꺽 삼킨 아이른이 주섬주섬 선물들을 꺼내놓았다.

목록을 확인한 일리아가 눈을 빛냈다.

첫 번째로 꺼낸 선물, 팔찌에 새겨진 문양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복수초(Adonis)구나.”

“아, 응. 사실……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예전에 줬던 거는 이제 안 맞을 거 같아서, 아, 그러니까 그때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으니까 새로 선물로 줘도 괜찮을 것 같아서…….”

“…….”

“또, 똑같은 거 주면 약간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해서, 다른 것들도 준비했어.”

아이른은 횡설수설하며 다른 선물들에 대해 설명했다.

푸른색 사파이어 목걸이를 말할 때는 네게 어울릴 것 같아서, 혹시 거추장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고.

봉제 곰 인형을 말할 때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음악이 나온다고, 자신의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든 거라는 말을 건넸다.

그 밖의 자잘한 것들이 몇 가지 더 나왔는데, 일리아는 끝까지 설명을 듣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른은 여전히 아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물이 뭐가 됐든 상관없어.’

자신의 취향에 맞고 안 맞고.

얼마나 값비싸고, 얼마나 귀한 것이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선물을 건넨 이가 다름 아닌 아이른 파레이라라는 점.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걱정하고, 응원하는 존재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어……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들어.”

“그래?”

“응. 전부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내놔.”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다양한 선물들을 품에 안은 일리아 린제이가 주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눈으로 도장을 찍듯 확인하며 자신이 가져온 마법 주머니에 담아나갔다.

이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지켜보던 아이른이 슬그머니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한참을 앞만 바라보며 앉아있던 일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나, 어떻게 해야 할까?”

“…….”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담담한 목소리.

무표정한 얼굴.

평소의 일리아 린제이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이른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한 상태인지.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처음에 네 얘기를 들을 때는 화도 났고, 짜증도 났고, 인정하기도 싫고…… 그래서, 지기 싫어서 더 악착같이 단련하고, 수련하고, 검을 휘두르고 그랬는데…… 이젠 알잖아? 그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었는지. 내가 아니라 남들의 말만 듣고, 남들 시선 가는대로만 행동했던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이었는지…….”

“…….”

“그런데, 그걸 알아 버리니까, 오히려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엇나갔던 과거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그것은 해결되었다. 아이른이라는 소중한 친구 덕분에.

허나 지금까지의 잘못을 깨달아 버린 순간, 일리아는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을 잃게 되었다.

잘못된 방향이었다 할지라도 이정표는 이정표였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일리아의 마음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돛단배와 다를 것 없는 막막하고 불안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네가 말하길, 예전의 나는 빛이 났다고 했지.”

“그런데 기억이 안 나. 나는, 그때가 기억이 안 나.”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뭘 위해 살아가야 맞는 걸까?”

일리아의 말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처음과 달리 살짝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보다 훨씬 격한 마음의 파동.

표정만은 처음과 같았지만, 아이른은 알 수 있었다.

감정의 파도를 억지로 막아 내고 있는 듯,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물줄기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다행인 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없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도 그랬어.”

“…….”

“저번에 방에서 말한 적 있지. 나, 여기까지 오는 데 일이 엄청 많았다고.”

“……그랬었나?”

“응. 그랬었어. 다시 한번 말해 줄게.”

일리아를 한번 쳐다본 아이른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게 흘려보내듯, 찬찬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검술관주 이안 덕분에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고.

요술 스승 루루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의 검을 들게 되고.

조언자 쿠바르 덕분에 또다시 찾아온 어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씩씩하게, 새로운 여정을 찾아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 그리고 일리아 린제이와 함께 쌓았던 추억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너랑 비슷해. 여전히 내가 가야할 길이 뭔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헤매고 있어. 어쩌면 한참 더 걸릴지도 모르겠어.”

“…….”

“그래도 꿋꿋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건 날 믿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고…… 그건 아마 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여기까지 말한 아이른이 다시금 고개를 돌려 일리아를 바라봤다.

일리아 역시 아이른을 바라봤다. 상대의 푸르고 깊은 눈동자, 그 속에 있는 진심이 마음으로 전해졌다.

“네가 예전에 나를 믿어 줘서,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

“이젠 내가 너를 믿어 줄게. 그러니까…….”

너도, 아니 함께.

함께 잘할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듣는 순간, 일리아 린제이는 지금껏 참았던 감정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몸을 들썩이지도 않고, 커다란 소리를 내지도 않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

이를 바라보며, 아이른 파레이라는 친구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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