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46화 (146/388)

◈ 48.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 (3)

증명의 땅의 3번째 경기장, 영광의 땅을 가득 채운 황금색 빛줄기.

그 직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아이른 파레이라의 대검.

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관객들도, 그들보다 보는 눈이 좋은 레벨 킹의 검투사들도, 심지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요셉과 카리사 플로이드도 마찬가지였다.

경험 많은 그들로서도 난생처음 접하는 기이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조금 전의 황금빛이, 저 검에 스며든 건가?’

‘검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단순히 모양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 역시 달라졌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제로 눈길을 잡아끄는 묘한 기운.

그것을 느낀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그들 사이에 얌전히 섞여 있던 고양이 요술사, 루루가 과거를 떠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네.’

아이른 파레이라와의 첫 만남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당시의 루루는 자신이 제자로 삼을 만한 매력적인 존재를 찾고 있었고, 아이른은 대충 보기에는 계곡에 수백 수천 개씩 쌓여 있는 조약돌처럼 흔해 빠진 느낌이었으니까.

허나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그의 노력이 가슴속에 깊게 박혀 있던 사내의 의지마저 이겨 냈을 때.

그때부터 아이른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제자가 되어 버렸다.

‘그때랑 비슷하네. 나한테 요술 알려 달라고 했을 때.’

무대 위의 멋진 제자를 바라보며,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을 위한 뜨거운 마음으로 꿈속의 사내를 극복했던 6년 전과 지금은 꽤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으니, 당시의 아이른은 꿈속의 사내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사내의 의지를 이겨 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이 루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물론 꿈속 사내의 의지를 품어낸 건 아이른의 마음이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그렇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일 구석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터.

결국 사내의 의지 역시 아이른의 마음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지금껏 지켜봤던 바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물론 지금 당장 알아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상념을 떨쳐낸 루루가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그러자 상대인 일리아 린제이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홀로 검을 휘두르는 아이른의 모습이 보였다.

휘익!

가볍게 검을 내리긋는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검은 온전히 자신의 검이었다.

아니, 검조차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움직이고 있는 느낌.

그 기묘하면서도 친숙한 감각에 아이른이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의 검술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했다.

후우웅!

묵직하게, 허나 답답하지 않게 공간을 점해 나가는 특유의 대검술.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강철의 칼날은 그 자체로 굳어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을 품고, 때로는 물을 품고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난데없는 검무(劍舞).

허나 관객들 누구도 이에 의아해하거나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새 황금의 요술검이 아닌, 검사 아이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전자인 일리아 린제이조차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실해졌다.

눈앞의 상대는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의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상태였다.

헌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

하늘검.

린제이 가의 시초인 디온 린제이가 만들어 낸 위대한 검술.

그것이 아이른의 검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을 본 순간, 일리아는 그에게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더욱 큰 불을 지폈다.

몸 구석구석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챔피언이 검을 들었다.

표정은 전에 없이 강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

그녀의 기운을 느낀 도전자,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검무를 그만두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늘검이 아니었다. 크로노식 대검술과 꿈속 사내의 검술을 자기식대로 해석한,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자세.

당연한 말이지만, 대검술이라고 해서 무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리아의 하늘검이 유려하되 허무하게 흩날리지 않듯, 아이른의 검 역시 묵직하되 둔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못지않은 예리함이 함께 느껴졌다.

그것을 일리아 린제이 역시 알아챘다.

그렇기에, 챔피언은 더 많은 힘을 끌어내 짓쳐들 수밖에 없었다.

파앗-!

콰아아앙!

돌진, 그리고 격돌.

그 이후에 쏟아지는 무지막지한 칼날의 폭풍!

그 하나하나가 바위도 으스러뜨릴 만한 힘을 담고 있었다. 일리아의 공격은 전보다 확연히 강해져 있었다.

허나 힘이 강하다고 해서 위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고고하게 하늘을 유영하며, 날카롭게 악마의 목을 베어내는 하늘검 특유의 정교함은 오히려 처음이 훨씬 나았다.

그렇기에 아이른은 전과 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점차 두터워지는 도전자의 방어가 챔피언의 공간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관객들도 싸움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밀어낸다.

일리아 린제이, 챔피언을 밀어낸다.

모든 검사들이 꿈꾸는 위대한 경지에 오른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마침내 우위를 점했다!

그 사실이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할 때, 강하게 검을 휘두른 챔피언이 반작용력을 이용해 크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타는 듯한 시선으로 도전자를 바라봤다.

“허억, 헉, 허억…….”

“후우, 후…….”

챔피언도 도전자도, 숨이 거칠었다.

허나 더욱 괴로워 보이는 것은 일리아 린제이였다.

그녀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격하게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일리아 자신도 지금이 한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아이른의 모습과 그러한 빛에 스러지는 자신의 모습.

그것이 마치 이그넷과 자신의 오빠를 연상시켰고, 그 후에 벌어질 일들을 연상시켰다.

순간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힌 그녀가 관객석을 바라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을 느낀 순간, 일리아는 이 경기를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푸화아아악-!

일리아 린제이의 검에서 더욱 강렬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랐다.

솜씨 좋은 세공사가 깎아낸 것처럼 매끄러웠던 검날이 거칠게 변했고, 성스러운 은빛도 더욱 탁한 빛을 발했다.

허나 크기만큼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두 소드마스터의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허나 이를 바라보는 아이른 파레이라는, 오러 소드가 아닌 상대의 마음에 집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내고 있는 소중한 친구를 보며, 그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아마 실제로도 괴로울 것이다.

미래 따위 없다는 듯 모든 힘을 끌어다 쓰는 그녀의 얼굴이 안쓰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어두운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러 소드의 색이 탁해진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저것을 모조리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조용히 중얼거린 아이른 파레이라가, 일리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검에 몰입했다.

“후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천, 수만 번을 도전했고, 모조리 실패했다.

지금 하는 시도는 마치 산처럼 쌓아올려진 돌 더미에 한 개의 돌을 더 올리는 의미 없는 행동과도 같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돌탑을 완성하는 최후의 한 조각.

그게 지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든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우우우우웅……

축기, 강화, 경화, 개화, 집중, 발현.

오러 운용의 기본이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6가지 요소.

이 모든 것을 극한으로 발휘한 순간, 아이른이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다.

탁한 빛의 오러 소드와 함께 짓쳐드는 일리아 린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어지는 사선 베기.

거울을 반전시킨 듯 똑같은 자세에서 펼쳐진 일격이 서로의 검을 두드리는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 날이 점멸하듯 황금색 빛을 뿜어냈다.

아주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오러 소드.

일리아의 것과 달리 순수하기 그지없는 의지의 결정체가, 상대의 검을 가차 없이 부숴 버렸다.

파캉!

울컥-!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지는 검 조각.

그리고 핏줄기를 토해내며 뒤로 물러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챔피언.

아니, 이제는 아니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검투를 지켜보고 있던 심판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승부의 결과를 알렸다.

“스, 승자! 아이른! 아이른 파레이라!”

그리고 그보다 한 박자 늦게,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 우와아아아아아아!”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새로운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아이른 파레이라아아아아!”

“우와악! 우와아아아아앍!”

끝도 없이 연호되는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름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 그리고 그 사이에 간간이 녹아 있는 흐느낌.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된 경기장의 관객들을 향해, 아이른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가 주시하고 있는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일리아 린제이.

무대 바닥에 주저앉은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바라보며, 그가 생각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무너져 있는 일리아 린제이의 눈빛이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막아선 입장이지만, 그녀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른은 자신이 있었다.

항마(降魔)의 기운이 가득한 사내의 의지를 품어낸 덕분에, 지금 일리아의 내부에는 그 어떤 어둠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밖의 다른 기운도 모조리 고갈된 상태라는 것.

다행히 그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가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

그런 아이른 파레이라의 모습을 보며, 일리아 린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당당한 모습으로 가문에 찾아와, 화려한 검술로 자신의 오빠를 꺾은 뒤 사라졌던 이그넷 크레센시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일리아는 뜨거운 분노를 느꼈고, 깊은 분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 앞에 찬란한 모습을 뽐내는 아이른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불길이 아니라, 태양처럼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그의, 그녀의 모습을…….

“일리아.”

일리아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앞까지 다가온 아이른이, 친구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쩌면 더는 친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자신은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을 테니까.

다음날부터 수많은 대중의 시선과 조롱에 찢어발겨질 패배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런 자신이, 저렇게 환하게 빛나는 이의 손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그것은 그녀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꽈악

“……?”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아이른이 일리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으켜 세웠다. 강하게 쥐어진 손에서 적지 않은 힘이 느껴졌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따스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와 마주선 일리아 린제이.

그녀의 눈에 아이른 파레이라의 얼굴이 들어왔다.

예전보다 훨씬 밝은 미소로.

태양처럼 강렬한 열기가 아니라, 모닥불처럼 따스한 온기로 자신을 마주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

“다툰 직후에 말하기 민망하지만, 이제 화해하고 싶은데…….”

“…….”

멋쩍은 표정을 보이는 친구를 보며, 일리아 린제이는 미소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그 시각.

관객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 있던 사제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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