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44화 (144/388)

◈ 48.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 (1)

증명의 땅 챔피언 결정전.

이러한 큰 경기가 잡힌 날이면 아이젠마르크트는 전날부터 축제 분위기가 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릴 것 없이 누가 이길까에 대한 토론을 이어 가고, 싸움의 흐름이 어떠할까에 대한 의견들을 줄줄이 내놓는다.

물론 일리아 린제이가 챔피언에 오른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소드마스터의 검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제성은 여전했지만, 승패를 향한 관심은 한참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엑스퍼트는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역사 전체를 겨우 뒤져야 찾을까 말까 한 언더독의 반란을 바라기에는 일리아 린제이의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그러나 오늘, 최강의 도전자가 나선다.

그 사실에 아이젠마르크트에는 아침부터 굉장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굉장한데? 레벨 킹 검투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왔잖아?”

“당연하지. 이 경기를 놓치고 싶은 검사가 누가 있겠어. 잘 봐, 검투사들뿐만이 아니라 주변 영지 귀족들도 엄청 왔다고.”

“어? 저 사람은 설마…… 제트 프로스트?”

“맞는 거 같은데? 아니, 제트 프로스트만 온 게 아니잖아?”

“유명 검술관의 관주들도 죄다 몰려왔어. 라티온의 요셉과 카리사도 왔다고!”

요셉과 카리사는 검술도시 라티온에서도 손에 꼽히는 검술관의 주인으로, 둘 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초인이었다.

웬만해서는 근거지를 떠나지 않는 그들조차 먼 길을 왔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새삼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자리!

바로 그곳에, 바로 그 순간에 자신들이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뭉텅뭉텅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들 누구보다도 가장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은 바로 위클리 아레나의 수석 기자, 힌츠였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계속해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힌츠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구나…….”

지금까지 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

처음은 그러려니 했다.

평민 출신 검투사가 20세에 챔피언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아쉽긴 했지만, 이를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신성, 일리아 린제이가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에는 그보다 훨씬 큰 후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실수였지만, 두 번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다.

기자로서의 감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으면서, 다른 이들과 똑같이 일이 터지고 나서야 감탄하는 일밖에 못하다니!

그것이 너무나도 분했고, 너무나도 아쉬웠다. 꿈에서도 그 때의 일들이 나타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머저리 같던 자신에게 주어진 세 번째 기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고.

남들보다 훨씬 일찍, 훨씬 가까운 곳에서 역사가 쓰이는 것을 목격했다.

단순히 지켜보기만 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인 지금, 엘프 힌츠는 인간 세상에 나온 후로 가장 짜릿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의 기분은 이보다 더하겠지.’

힌츠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과연, 지금 무대에 서 있는 저 둘은 어떤 생각으로 상대를 마주하고 있을까?

긴장하고 있을까?

즐거워하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그들 역시 자신처럼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헛! 시작한다!”

“이봐, 조용히들 해! 이제 한다고!”

“조용! 조용!”

잠시 후, 무대 위로 올라온 심판을 본 대중이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정말이지 놀랍도록 고요해진 분위기.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늘의 주인공들이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관객들은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모든 확인 절차가 끝나고,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요술대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다는 듯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일리아 린제이도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두어 번 검을 휘두른 그녀가 돌격 자세를 취했다.

당장이라도 비수가 쏘아져 나갈 것 같은 위험천만한 분위기가 관객석의 가장 끝까지 퍼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 끝에 검이 닿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심판의 외침과 함께, 챔피언 결정전이 시작되었다.

퍼엉!

시작은, 모두가 예상했듯이 일리아 린제이의 돌격으로 이뤄졌다.

공간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듯한 그녀의 공격에 레벨 킹의 검투사들조차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렇지 않았다. 단단한 방패를 장비한 듯 대검을 앞세운 그가 무겁게 상대의 공격을 쳐 냈다.

터엉!

검과 검이 부딪히고, 일리아 린제이는 쏘아졌던 것과 비슷할 정도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챔피언의 맹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퍼엉!

카강-!

일리아의 발 구르는 소리, 그리고 검 부딪히는 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울려 퍼졌다.

그 간격이 몹시 짧았다. 마치 지근거리에서 검을 나누는 것처럼.

허나 그렇지 않았다.

챔피언은 놀랄 만큼 무대를 크게 쓰며 도전자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는데, 돌진하고 다시 물러나는 거리만 해도 한 번에 수십 미터를 넘나들 정도였다.

상식적인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

움직임이 단조로운 것도 아니었다.

직선으로 치고 나가는 듯하다가 관성 따위 없는 존재인 것처럼 우뚝 멈춰서고, 눈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돌다가도 원심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 주고.

심지어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는 기예마저 가끔 선보였는데, 이를 알아챈 레벨 킹의 검투사들은 눈이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무슨 수를 쓴 거야?’

자신들의 실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경지!

물론 모두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검투장에 모인 수많은 검사들 가운데서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소드마스터 요셉, 그리고 카리사 플로이드는 챔피언의 기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보법에도 발현을 응용하고 있군…….”

요셉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검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발을 다루는 것이다. 때문에 검사들은 보법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오러로 각력을 강화시키고, 그 힘을 버틸 수 있도록 뼈대와 근육을 경화시킨다.

그로 인해 보일 수 있는 몸놀림은 일반인의 상식을 아득히 앞서나간다.

허나 경지에 이른 검사는 그것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보법을 구사하는데, 바로 발걸음에 ‘발현’을 섞는 것이었다.

지금의 일리아 린제이가 그랬다.

돌진 순간 불꽃을 터뜨리듯, 발바닥으로 오러를 폭발시켜 속도를 더한다.

때로는 수천 개의 가시를 뽑아내 신형을 멈추고, 어떤 때는 물처럼 미끄러운 오러를 뽑아내 상대의 반격을 부드럽게 받아낸다.

그로 인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동작을 구현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웬만한 엑스퍼트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엑스퍼트의 극(極)에 달한 자들만이 시도할 만한 최고난도의 기술.

그러한 기술을 일리아 린제이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펼쳐내고 있었다.

‘작년에 갓 마스터가 됐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러 운용이 매끄러운데.’

‘아직도 스물이 되지 않았다니, 이거 참…….’

카리사 플로이드와 요셉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역시 천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현 챔피언은 또 달랐다.

그들보다도 한 차원 높은 잠재력을 타고났다.

허나 그들의 시선이 일리아 린제이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현혹되지 않고, 온갖 방향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강철처럼 막아 내는 청년.

아이른 파레이라의 실력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세대가 바뀌는 건가?”

“으음.”

악우(惡友), 카리사 플로이드의 중얼거림을 들은 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새로운 바람이 대륙에 몰아치고 있었다.

카강!

캉-!

콰아앙!

물론 그들이 감상에 젖어 있는 순간에도, 두 검투사는 치열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일리아는 공격했고, 아이른은 방어했다.

마치 대장장이가 끊임없이 쇠를 두드리듯 긴 시간이 이어졌지만,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무대에 집중했다.

그러기에는 둘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허나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흐름에 녹아들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 어느새 모두는 지금의 양상이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챔피언의 비수는 그때 날아들었다.

키이잉-!

송곳이 귓속을 후벼 파는 듯한 감각.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공격이 모조리 기억에서 지워질 만큼 날카롭고 예리한 공격이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닌 다른 곳을 노리고 날아들었다는 점이다.

바로 아이란 파레이라의 검!

이제는 아이젠마르크트의 모두가 알고 있는, 대륙 최고의 검으로 자리매김한 대검을 향해 일리아의 공격이 쏘아졌다.

오로지 무기를 깨기 위한 의도만이 가득한 검을 보며 레벨 킹의 검투사들이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도전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여태까지 나왔던 금속음 중 가장 큰 굉음.

훌쩍 뒤로 물러난 일리아 린제이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한 수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공격은 이 한 수를 위한 밑 작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공격이었다.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다.

허나 실패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정확한 대처를 보였고, 완벽하게 자신의 검을 지켜냈다.

아니, 그전에…….

‘제대로 들어갔어도, 부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검이기에.

어떠한 마음으로 빚어낸 검이기에, 이토록 단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에게, 아이른 파레이라가 말했다.

“오러 소드, 보여 주는 게 좋을 거야.”

“…….”

“계속 여유 부리면…… 네 검, 먼저 부러질 수도 있어.”

“……!”

일리아 린제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허나 반박할 수 없었다.

상대가 대비했다고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이득을 본 것은 자신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허나 그 차이를 무시할 정도로 아이른 파레이라의 대검은 단단했다.

가문에서 받은 검조차 버텨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순간, 결심을 내린 챔피언의 검에서 강렬한 빛이 피어났다.

우우우우웅-!

“오, 오러 소드다!”

“챔피언이 다시 오러 소드를 뽑았어!”

“그래, 이래야지! 도전자가 그냥 도전자가 아닌데, 언제까지 여유 부릴 수는 없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가!”

오러 소드(Aura Sword).

소드마스터를 상징하는, 모든 검사들의 이상향과 같은 기술.

그것을 목도한 관객들의 눈빛에 진한 희열이 들어찼고, 쏟아지는 숨결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이른 파레이라의 표정은 대중과는 전혀 달랐다.

‘……그레이슨과 비슷해.’

그 무엇보다 찬란한 은색의 휘광.

허나 그가 집중한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 안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그림자였다.

일리아 린제이 혼자서 키워 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진한 어두움.

심지어 바깥으로 드러난 빛조차 자신을 불태워 만들어 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아이른은 도저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일리아의 문제는 일리아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물론 그러한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전보다 훨씬 사나운 분위기로, 광포한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는 친구를 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재능.

누구보다 이른 나이에 마스터에 도달한 존재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를 향해 짓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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