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42화 (142/388)

◈ 46. 부러지지 않는 검 (2)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증명의 땅의 검투사들은 죽거나 재기불능의 부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질 좋은 포션도, 항시 대기 중인 사제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경기가 치러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몇몇 검투사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기 깨기’ 룰을 정하기도 했다.

서로의 육신이 아닌 ‘검’만을 노려 상처 없이 승패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이를 떠올린 증명의 땅의 전 챔피언, 리카르도 핀토가 히죽 미소 지었다.

새하얀 치아가 맹수의 송곳니처럼 흉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히 나한테 무기 깨기 승부를 걸어?’

당연한 말이지만, ‘무기 깨기’의 승패는 검의 품질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전설의 명검이라 할지라도 시골 촌부의 손에 쥐어지면 목검만 못한 법이고, 싸구려 철검이라 할지라도 소드마스터가 들면 능히 바위도 벨 수 있었다.

허나 ‘검의 품질은 승부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리카르도 핀토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을 터였다.

‘애초에 내가 일리아 린제이에게 승산을 보는 것도, 이 검 덕분이니까.’

명검의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두 수 정도 차이 나는 고수로부터 버틸 수 있게 해 주고, 한 수 차이 나는 실력자와 동수를 이루게 해 주며, 비슷한 실력의 검사를 상대로는 시종일관 흐름을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어떨까?

자신보다 검술 실력도 모자란 주제에.

자신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검을 든 저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승부를 제안한 걸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받아 주마!’

리카르도 핀토는 이를 받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웃음기를 거둔 그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타하앗!”

쒜에엑-!

콰아아앙!

두 거검(巨劍)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에 관객들 대부분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두 검투사의 검이 계속해서 서로를 탐했다.

마치 주인의 몸뚱이에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이를 구경하던 몇몇 검투사들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지금의 경기가 어떠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미친, 자신 있나?”

“네 말대로 미친 거겠지. 아무리 요술검이라고 해도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를 상대로…….”

“평범하게 가서는 못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일부는 멍청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카르도 핀토의 검술은 마스터와 비견된다고 알려졌으니,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의 명성보다 더욱 대단한 것이 넘버링 소드의 명성이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은 때때로 안 좋은 판단을 내리고는 하니까.’

그렇다.

결국 처음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일반 관객들이야 경기의 재미를 위해 아이른을 추켜세웠지만, 오랜 세월 검의 길에 몸담고 있던 베테랑 검사들은 알고 있었다.

리카르도 핀토와 넘버링 소드가 만나면 어떠한 결과가 벌어지는지. 얼마나 대단한 시너지가 나는지.

어쩌면 그는…… 정말로 소드마스터를 이겨 버릴지도 모른다.

때문에, 검투사들의 시선은 벌써 다음 경기를 향하고 있었다.

허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

아이른 파레이라가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

그가 어떤 수련을 해 왔고, 어떤 재능을 가졌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섰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

주디스, 그리고 브랫 로이드는 여타 검사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무대를 지켜봤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른의 어리석음을 질타해도, 그의 판단을 아쉬워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둘을 보며 몇몇이 또 중얼거렸다. 크로노의 출신끼리 끈끈한 면이 있다고. 약간의 비꼼이 담긴 음성이었다.

허나 주디스와 브랫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것은 같은 크로노의 수련생인 아이른 파레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합의 시작으로부터 10분이 지났을 무렵.

베테랑 검사들을 포함한 관객들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콰앙!

검이 부딪힌다.

콰앙!

콰아앙!

또 부딪힌다. 계속해서 부딪힌다.

콰아아앙!

그야말로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만큼 끊임없이, 쉴 새 없이 금속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린아이라면 귀가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릴 만한 상황이었다.

허나 이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 깨지는 거지?”

그것은 혼잣말이되 혼잣말이 아니었다. 검투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의 생각을 대변한 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검은 그 대단한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가 아니던가.

심지어 이를 들고 있는 사람은 리카르도 핀토였다.

제트 프로스트를 제외하면 엑스퍼트 중 당할 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 버텨 내고 있다고?

아무리 요술로 만들어졌다지만, 저렇게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검으로?

그런데…….

심지어, 그게 전부인 것도 아니었다.

리카르도 핀토의 검에 아지랑이 같은 빛이 피어나는 걸 본 검사 하나가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리카르도가 밀린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발현’을 통해 체내의 오러를 뽑아내고, ‘집중’을 통해 그것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그 결과물이 지금 리카르도 핀토의 검에 피어난 아지랑이로, 웬만한 소드 엑스퍼트들조차 엄두도 못 내는 상승기예였다.

허나 이것은 겉보기에만 화려할 뿐, 실전에서 쓰기는 적합하지 않은 오러 운용이었다.

얻을 수 있는 기댓값에 비해 힘의 낭비가 훨씬 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리카르도 핀토가 명백히 수세에 몰려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허나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리카르도 핀토의 검을 쳐다본 아이른 파레이라가, 거리를 벌려 힘을 낭비시키는 대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콰아아아앙!

지금까지 들렸던 것 중 가장 커다란 소리!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굉음이 퍼졌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귀를 막을 생각도 않은 채, 사람들은 멍하니 두 검사의 무대를 바라봤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독무대였다.

지금 이 순간 관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오직 하나, 아이른 파레이라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퍼걱!

“……!”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소리와 함께, 경기가 끝이 났다.

처음의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부러진 검을 들고 망연자실 서있는 리카르도 핀토.

그런 그에게 조용히 예를 표한 뒤 어딘가를 바라보는 아이른 파레이라.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외침은 필요 없었다.

검투 경기 진행자의 인터뷰도 필요 없었다.

흥분에 가득 찬 관객들이 한마음 한목소리가 되어 승자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된 경기장.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매치는 내달, 4월에 펼쳐질 챔피언 결정전.

일리아 린제이 vs 아이른 파레이라!

마침내 결정난 꿈의 대진에 사람들이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

아이른 파레이라의 시선을 외면한 현 증명의 땅의 챔피언이,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 *

아이른 파레이라와 리카르도 핀토의 경기가 있고 하루 뒤, 관객들이 바라마지않는 챔피언 결정전의 일정이 공개됐다.

약 2주 뒤인 4월 13일로, 아이른 일행이 아이젠마르크트에 방문한지 4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매번 그렇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편을 갈라 승패를 예측했다.

누군가는 소드마스터인 일리아 린제이가 당연히 이길 거라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마저 부러뜨려 버린 요술검의 주인이 이변을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게 하나 있었으니.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은 능히 오러 소드를 받아낼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진짜 사건이 터질 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말이야. 리카르도 핀토가 그랬다며? 검도 대단하지만, 검술도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고. 그러면 진짜 마스터 상대로 가능성 있는 거 아니야?”

“확실한 건, 지금까지 도전했던 녀석들보다는 훨씬 승산이 보인다는 거지. 나는 전 재산 털어서라도 표 구해서 간다.”

“나도!”

“나도!”

그야말로 아이젠마르크트의 모든 주민들이 경기장에 몰려들 것 같은 상황.

그렇듯 불처럼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부우웅!

일리아 린제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저택에서 검을 갈고닦았다.

지켜보는 사람은 오직 한 명, 호위기사인 엠마 가르시아뿐.

헌데 그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아끼는 아가씨가, 괴롭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헉…….”

고된 수련에 체력이 동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주인인 일리아 린제이는 이 정도로 지칠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였다. 최연소 소드마스터이자 증명의 땅의 챔피언인 그녀를 누가 감히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면에서만은, 지금의 아가씨는 평범한 농사꾼보다도 약해 보였다.

강박, 그리고 불안.

일리아 린제이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떠올리며, 엠마 가르시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실 필요는 없는데…….’

크로노 검술관에서 돌아온 뒤의 아가씨는 항상 그랬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고, 안심하지 못했다.

멋대로 떠들어재끼는 인간군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같이 정신과 육신을 갈아 넣었으며, 중요한 날이 있을 때면 그러한 면이 극도로 심해졌다.

말릴 수도 없었다. 억지로 휴식을 취하는 주인의 모습을 한번 본 뒤로, 엠마는 다시는 그러한 권유를 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워 하셨지…….’

“헉, 크헉, 후우…….”

일리아 린제이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여전히 호흡은 거칠었고,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소드마스터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는 꼴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모습은 사라져 갔다.

부웅!

“후우.”

부우웅-!

“후우우…….”

일리아 린제이가 날카롭게, 더욱 더 날카롭게 자신을 갈아나갔다. 마치 검을 갈듯이.

그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 나머지 건드리면 깨질 정도로 얇아졌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그만큼 예리해졌다는 뜻이니까. 부서지기 전에 찌르면 그만이다.

고개를 끄덕인 일리아가 검술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호위기사는 언제까지고 지켜보았다.

* * *

4월 12일.

모든 이들이 고대하는 챔피언 결정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실에 긴장할 법도 하건만, 검에 집중하는 아이른 파레이라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

축기, 강화, 경화, 개화, 집중, 발현.

오러 운용의 기본 개념들을 확인한 그가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실패한 오러 소드에 또다시 도전하기 위해서였는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명상이야?”

왠지 모를 기시감.

예비 수련생 시절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이른이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린 아이른이, 그때와는 달리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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