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7화 (137/388)

◈ 44. 생명의 불씨 (1)

“……!”

일리아 린제이의 오러 소드를 목도한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는 눈을 부릅뜬 채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검사들의 꿈인 마스터의 경지를 맞이했다는 감동?

그런 것도 없진 않지만, 이미 몇 차례나 마스터를 만난 그에게 있어서는 그렇게까지 큰 부분은 아니었다.

그가 놀란 것은 일리아가 오러 소드를 구현할 때 보여 준 일련의 과정이……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꿈속 사내의 참격을 쓸 때…… 그때의 느낌과 비슷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참격을 날리기 직전과 비슷하다.

체내로부터 오러를 끌어올려 검날에 담아 내고, 집약한 상태.

그 상태에서 몇 가지 과정을 더하자 찬란한 은빛 섬광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안타깝게도 아이른은 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일리아가 오러 소드를 뽑아내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했지만, 그의 오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경기는 이제 시작이고, 검투 내내 일리아는 오러 소드를 유지할 것이다.

물론 금방 끝날 것이 확실하지만, 그 잠깐 동안이라도 ‘오러를 보는 눈’으로 그녀를 관찰한다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일리아가 오러 소드를 거둬 버렸다.

훅 하고 불이 꺼진 양초처럼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간 장검.

아이른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주변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네. 앞으로는 오러 소드를 쓰지 않겠다더니.”

“응? 챔피언이 그런 말도 했어?”

“확실하진 않고…… 나도 주워들은 건데, 기자 중에 하나가 그런 소리를 했다더라고. 최연소 소드마스터에 오른 챔피언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검술로만 따지고 들면 그녀에 비견될 만한 실력자들이 증명의 땅에 많다고 말이야.”

“그런 소리를…….”

“뭐…… 그만큼 증명의 땅 검투사들이 뛰어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챔피언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지.”

“허어,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

“하여튼 대단해. 아무리 그런 말을 들었다 그래도, 자기 최고의 무기를 봉인하고 싸울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

두 관객의 대화를 들은 아이른의 표정이 굳어졌다.

더는 오러 소드를 볼 수 없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일리아가 어떠한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지, 그것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증명만을 해나가는 삶.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남의 인정에 의해서만, 남의 인정을 위해서만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랬다.

‘물론…… 그런 거랑 상관없이 경기는 일리아가 이기겠지만.’

아이른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상한 듯, 딱딱한 표정으로 일리아를 노려보는 랭킹 4위 그레이슨이 보였다.

외관뿐만이 아닌 그의 내부까지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일리아와 비교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다른 하이 랭커들과 견주어 봐도, 그의 오러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으로 보였다.

레벨 퀸까지는 아니어도, 레벨 킹의 최하위권 검투사들과 별 차이가 없는 양이었다.

‘도대체 저 정도의 오러로 어떻게 랭킹 4위에 올라온 거지?’

적지 않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물론 곧 해결될 의문이었다. 아이른은 무대에 집중했고, 이내 심판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파앗-!

먼저 움직인 것은 일리아 린제이였다.

오러 소드를 봉인한 것만으로 할 양보는 다했다는 듯, 미끄러지듯 앞으로 전진한 그녀가 측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레이슨은 당황하지 않고 정확히 한발 물러나 이를 피했다.

그러나 일리아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뱀처럼 휘어진 검의 끝이 기묘한 각도로 상대의 몸통을 찔러 들어왔고, 이번에는 그레이슨 역시 검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카앙!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청명한 금속음.

이를 시작으로, 두 검투사 간의 화려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카앙-

캉, 카강!

콰아앙!

때론 가볍고 빠르게, 때론 강하고 묵직하게.

챔피언의 검이 시종일관 상대를 몰아쳤다.

상단·하단 가릴 것 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그레이슨은 연신 뒤로 물러났다.

“그레이슨! 잘 좀 해 봐!”

“챔피언이 봐주고 있잖아! 평생 도망만 다닐 거냐!”

막아 내기 바쁜 그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허나 아이른은 그러지 않았다.

한껏 놀란 표정을 한 그의 눈이 그레이슨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굉장히 정교하다!’

아이른이 느낀 바로는, 일리아와 그레이슨의 오러 차이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수십 년 경험 차이로도, 수 싸움과 심리전에서 100전 100승을 거두더라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그도 한 적이 있다. 바로 존 드류와의 대련이 그랬다.

싸움 전체를 주도하는 전략, 세세한 부분에서 이점을 쌓아가는 전술까지.

양쪽 모두, 존 드류는 모조리 자신을 앞섰다.

허나 진심으로 결투를 치른다면 아이른 자신이 질 순 없었는데, 이는 둘의 오러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검술 실력이 뛰어나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투적 사고가 상대보다 몇 수 앞서있든 상관없다.

그러한 것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 오러의 격차 앞에선 의미가 없어질 뿐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레이슨이 지금 보여 주는 모습은, 그러한 아이른의 상식을 완전히 부숴 놓고 있었다.

카앙!

날아드는 일리아의 검을 앞선 곳에서 받아내 타격점을 흩뜨린다.

그와 함께 중심을 뒤로 빼 충격의 대부분을 흘려내고, 뒷걸음질 치며 다음 공격을 받아내기 편한 자세를 취한다.

단순히 훌륭한 검술, 뛰어난 움직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받쳐주는 완벽한 ‘오러 운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을 받아내는 순간, 그 순간만 오러로 근육과 관절을 강화시켰어. 그러면서 뒤로 뺄 땐 발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오러를 아끼고…….’

필요할 때만 오러를 활용한다.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극도로 아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전력을 끌어내도 막아 내기 힘든 공격이 날아오면, 신체의 쓸모없는 부분에 담긴 오러를 팔과 허리, 발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 집약시켜 힘의 격차를 해소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검사들도, 아니 자신조차도 어느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는 전략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레이슨이 보여 주는 오러 운용의 완성도는, 아이른이 증명의 땅에서 경험했던 이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콰아앙-!

“경기 끝! 승자, 챔피언 일리아 린제이!”

“와아아아아아!”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최연소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별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동원해도, 신기에 가까울 만큼 대단한 검술과 오러 운용을 보여 줘도…… 아끼고 아껴 오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힘이 동나는 것은 그레이슨 쪽이었다.

챔피언에게 쏟아지는 환호 속에 도전자는 묵묵히 무대를 내려섰고, 아이른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는 새 안타까움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은, 성장에 대한 열망.

‘빨리 돌아가야겠어.’

일리아 린제이의 오러 소드.

그레이슨의 신기에 가까운 오러 운용.

짧은 시간이었지만, 둘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몇 번이고 되짚어보고,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의 아이른 파레이라가, 수련을 위해 곧장 경기장을 나섰다.

* * *

결론부터 말하면, 이틀 내내 수련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른은 둘의 비전을 얻는 것에 실패했다.

앞서 말했듯 오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일리아의 오러 소드는 단순히 신체 내부의 오러를 관찰한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곁가지 과정들을 모조리 마스터하지 않는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고난도의 기예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레이슨의 오러 운용법이 만만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리아의 오러 소드와 다르게, 그가 오러를 다루는 방식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따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만약 정해진 검술 동작, 그에 따라 신체 각 부위와 근육, 관절이 어떻게 기능하고 상호 작용하는가…… 이런 것이었다면 수월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오러는 그렇지 않았다.

몸뚱이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개념을, 혼자만의 힘으로 숙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더라도 말이다.

물론.

“쿠바르. 누군가 설득할 일이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으음? 물론이지. 그런 거라면 내가 전문일세. 하하!”

아이른은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극심한 상태인, 아이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소한 다툼’ 상태인 일리아에게 ‘오러 소드 어떻게 만들어?’ 하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랬다간 정말로 절교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런 연이 없는 그레이슨이라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이른의 생각이었다.

‘힌츠 기자의 말대로라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인품도 훌륭하고, 검술 교류에 있어서 꽤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거기에 더해, 그레이슨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쿠바르를 데려가는 이유였다.

돈에 환장하는 존 드류에게는 대륙 최고의 부자인 루루를.

술에 환장하는 그레이슨에게는 대륙 최고의 주정뱅이인 쿠바르를.

이렇듯 맞춤형으로 동행자를 데리고 간다면, 자신이 혼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성공 확률이 높아질 터였다.

“후후, 걱정 말게. 술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야.”

“쿠바르만 믿어요.”

“그래. 믿어도 좋아. 그 그레이슨이라는 사내, 올해로 나이가 쉰이라 그랬나?”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왜요?”

“그 나이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개그도 준비했거든. 들어 보겠나? 자네, 모래가 울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어떻게 되는데요?”

“흙흙.”

“…….”

“…….”

둘은 꽤 오랜 시간 고요 속에서 거리를 걸었다.

약 5분 후, 힐끔힐끔 눈치를 보던 쿠바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선 하지 마세요.”

“그러지. 흐음, 그 양반이 무슨 술을 좋아하려나. 일단 종류별로 다 챙겨오긴 했는데…… 아, 저 집인가?”

“그런 것 같네요.”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젠마르크트의 외곽에 위치한, 적당히 넓은 크기의 저택.

증명의 땅의 최상위 랭커임을 감안하면 무척 검소한 느낌이었다.

다른 랭커들은 대궐 같은 집을 짓고, 문지기와 자택 경비병까지 세워 놓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이런 사람이면, 확실히 루루보단 쿠바르가 나을 것 같네.’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를 본 쿠바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이른? 갑자기 왜…….”

콰아아앙!

“아, 아이른? 자네……!”

갑자기 닫힌 대문을 강제로 박살 내는 아이른을 보며 쿠바르가 말을 더듬었다.

주디스도 아니고 아이른이 이런 모습을 보이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가 상황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금발의 청년을 쳐다봤다.

허나 아이른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피부에 와 닿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그가 순식간에 저택 안으로 쏘아져 나갔다.

“자, 잠깐! 같이 가!”

쿠바르는 그런 그의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무언가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서둘러야 했다.

마찬가지로 표정을 굳힌 그가 한껏 정령의 힘을 끌어올렸고, 화염이 폭발하듯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렇게 들어선 곳은, 온통 불이 꺼진 수련실로 보이는 공간.

그리고 그 중심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그레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

정상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감은 눈에서, 양쪽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니, 이미 시간이 꽤 흘렀는지, 문신처럼 굳어 버린 그의 얼굴을 보며 쿠바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인화가…… 진행되고 있어!’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른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가 훨씬 중요하다.

적어도 저자가 완전히 마인이 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허나 늦었다. 그런 쿠바르의 생각을 알았음인지, 내내 눈을 감고 있던 그레이슨이 번쩍 하고 눈을 떴다.

“……무슨 일로 이곳에 방문하였는가.”

“…….”

“나는…… 누군가를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

피가래가 끓는 듯한 음성.

거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하고 불쾌한 감각.

심각한 표정이 된 쿠바르가 생각했다.

이미 늦은 것 같다고.

‘큰일이야. 그레이슨 정도의 강자가 마인이 되다니…….’

마인의 강함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보통은 품고 있는 염원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것을 위해 희생한 대가가 얼마나 큰가.

마지막으로 인간 시절에 얼마나 강한 힘을 보유했는가, 이렇게 세 가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쿠바르의 안목으로 보건대, 그레이슨은 셋 다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검투사 시절보다 강한 존재로 거듭났음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기에 영향을 받은 아이른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역시 중요한 일이었다.

‘이그넷이 경고한 것처럼, 사내의 힘에 휩쓸려 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한 걱정을 품은 쿠바르가 안간힘을 써서 아이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강력한 마인을 두고 시선을 돌리려니 쉽지 않았지만, 그의 상태를 꼭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데.

“괜찮아요, 쿠바르.”

아이른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아직 완전히 마인이 된 게 아니에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훨씬 차분했다.

뭔가를 느낀 쿠바르가 정령사의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

마기에 영향을 받는 강철 같은 사내의 기운.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진하게, 강하게 자신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쇠말뚝의 모습이 아니야.’

쿠바르가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더욱 자세히 아이른의 내부를 바라봤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대충 봐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거대한 불길.

그로 인해 온전한 ‘검’으로 거듭난 사내의 기운은, 아이른의 손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듯 얌전히 그의 의지에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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