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6화 (136/388)

◈ 43. 세 번째 폭풍 (3)

오러.

검사를 포함한 무술가가 끊임없이 단련하여 얻을 수 있는 힘으로, 마법사의 마나와 비견되는 신비로운 능력이다.

검사는 이를 이용하여 아름드리나무를 완력으로 뽑아낼 수도 있고, 커다란 바위를 검으로 가를 수도 있다.

물론 이를 눈으로 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체내에 있는 오러를 바깥으로 뿜어내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어려우며, 이것이 유형화할 정도로 집약시키는 것은 더더욱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

지금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할 오러가 보이고 있었다.

샬롯&빅터의 경우처럼 검에 오러를 두른 것은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의 오러 소드가 아니라면 그런 짓은 대부분 낭비였다.

게다가 두 검투사에겐 그럴 만한 실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러가 요술처럼 눈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인가?

놀랍게도, 정말로 그랬다.

마치 사람 모양의 물통에 담긴 물처럼 전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검투사의 오러.

심지어 밀도마저도 느껴졌다.

미세하지만 오른쪽의 대검을 들고 있는 사내의 오러가 조금 더 진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검투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검의 사내는 묵직하게 중심을 지키고 서 있었고, 보다 가벼운 검을 든 이는 반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걸음을 움직였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아이른은 알아챘다.

가벼운 검의 사내가 소용돌이처럼 조금씩 안으로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앗-!

잠시 후, 빙글빙글 돌던 사내가 급작스럽게 쏘아져 나갔다. 정직한 돌진은 아니었다.

이미 그전에 발의 움직임으로, 어깨의 모션으로 속임수 동작을 넣은 것을 아이른은 확인했다.

타이밍을 뺏긴 대검 사내가 살짝 급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내 상대의 상단 공격이 짓쳐들어왔다.

터엉-!

상단 공격이 아니었다.

타격 직전, 사냥감을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경로를 바꾼 검이 대검 사내의 발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당황한 그가 억지로 검을 틀었고, 순식간에 다섯 합이 교환되었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검의 사내가 리드하고 있는 상황.

오러의 양으로만 보면 반대의 결과가 나와야 했지만, 아이른은 어째서 이러한 흐름이 벌어지는지 알 것만 같았다.

두 검투사의 내부를 흐르는 오러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이 명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둘의 몸에 들어찬 오러는, 단순히 물그릇에 있는 물처럼 담겨 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였다.

휘이익-!

검을 휘두르는 동작에 맞춰 팔과 어깨, 허리의 빛이 강해지고.

타앗!

멀리 거리를 벌릴 때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듯, 하체의 오러가 강렬한 빛을 뿌렸다.

마치 동작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근육들이 역동적으로 기민하게, 복잡하게 기능하는 느낌이었는데, 아이른은 이와 비슷한 것을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바로 크로노 검술관에서 타인의 근육, 그리고 관절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했을 때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 그가 주시하는 것은 몸뚱이 자체가 아니라 그 몸뚱이를 보조하는 오러가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점이랄까.

아이른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두 검투사의 시합을 지켜봤다.

“시합 끝! 승자는 도노반입니다!”

“아악! 내 돈!”

“하하하, 거 봐! 도노반이 이긴다고 했지!”

“아니, 저 자식은 덩칫값도 못 하고 한참 쪼그만 녀석한테 지네…….”

“싸움이 어디 덩치로만 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여성 검사들은 죄다 저 밑바닥에 있게?”

“닥쳐! 돈 땄으면 조용히 있어?”

“싫은데? 싫은데? 이걸로 오늘 저녁은 소고기나 먹어야겠다! 으하하하하!”

“이 새끼가 진짜!”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결과가 났다.

초반의 흐름대로 가벼운 검을 든 사내의 승리였다.

잠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던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의 양은 대검 사내가 많았지만, 오러를 얼마나 매끄럽고 적절하게 다루었느냐를 생각하면 도노반이라는 이름의 검사가 더 나았다.

검술도 검술이었지만, 오러 운용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었다.

그리고 이는 아이른에게 있어서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일리아 린제이와의 커다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흡.”

아이른은 승자 인터뷰를 하는 도노반의 몸을 주시했다.

그러자, 다시금 그의 내부에 담긴 오러가 보였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조금 전과는 차이가 있지만, 말하고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약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보를 전투할 때 참고할 수 있다면…….’

심리전, 수 싸움에서 훨씬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당장 방금의 싸움만 해도 그랬다.

도노반이라는 검사는 상대의 주변을 돌면서 두 번의 속임수를 썼는데, 그 동작만큼은 존 드류에게 꼼수를 배운 아이른조차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돌격하지 않았을 때와 진짜로 돌격했을 때의 모션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허나 그에 비해 오러의 흐름은 완전히 달랐는데, 진심으로 파고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이전 두 번의 움직임에서는 오러의 약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잘 파악하고 활용한다면, 실전에서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팬으로 보이는 몇몇 이들이 보였지만, 사인을 해 줄 정신은 없었다.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한 그는 빠르게 경기장을 나서며 생각을 정리했다.

상대의 오러를 투시하는 눈.

이것이 요술인지, 아니면 자신의 날카로운 감각이 극대화되어 벌어진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새로이 자각한 이 능력을, 검을 쓰면서도 지장 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숙달하는 게 중요했다.

‘당장 가서 수련해야겠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경기장 밖을 나서는데, 또다시 익숙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로이드 가의 특징인 푸른 머릿결.

브랫 로이드였다.

주디스는 어디 갔는지 혼자 움직이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역시 자신을 발견했다.

저벅저벅 다가온 브랫 로이드가 말했다.

“너도 경기를 보러 왔군.”

“……응. 다른 검투사들 보면서 배울 게 있나 생각하고 있었어. 너는 왜?”

“나도 비슷하다. 확실히 레벨 킹은 수준이 높아.”

“그러게.”

아이른이 동의했다.

승리한 도노반도, 패배한 대검 검사도 그 밑의 레벨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듯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브랫의 왼손에 스케치북이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른의 눈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브랫이 스케치북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검투사들을 보며 내가 느낀 부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한 거다.”

“……이게?”

아이른이 한 박자 늦게 물었다.

자신의 머리처럼 온통 푸른색 선으로 가득한 종이.

도대체 뭘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그린 그림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럴 때 보면 브랫도 특이해. 가끔 엉뚱한 면이 있단 말이지.’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브랫 로이드와 함께하며 루루, 쿠바르가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자신을 포함한 셋 모두 대단하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완성된 것은 아마도 브랫일 거라고.

지금 당장은 몰라도, 빠른 시일 내에 그가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 줄 거라는 이야기를 간간이 했던 차였다.

그리고 지금, 아이른 역시 이를 깨달았다.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브랫의 눈을 통해 바라본 그의 마음이 무척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유야 모른다.

앞서 브랫과 주디스를 보며 느낀 분위기처럼, 지금의 감 역시 흐릿하고 애매모호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디스는 어디 간 거지?’

“그런데 주디스랑 같이 온 거 아니었어?”

“음?”

“아까 관람석에서 봤거든.”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이른이 순수하게 질문을 던졌고, 브랫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스케치북을 접은 그가 평소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수련하러 갔다. 애초에 만난 것도 우연히 만난 거야.”

“아, 그래?”

“그래. 너랑 내가 지금 만난 것처럼.”

“그렇구나…….”

아이른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했다.

하지만 그것에 집중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는 이내 웃는 얼굴로 브랫을 보내 주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나도 빨리 수련하러 가야 해서.”

“알았다. 조만간 나도 한번 들르지.”

손을 흔든 뒤 빠르게 사라지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브랫 로이드.

……그리고 잠시 후, 저 뒤에 숨어 있던 주디스가 브랫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왜 갑자기 숨었냐?”

“어, 어?”

“아이른 보고 숨은 건가?”

“아니? 어? 아이른 있었나? 몰랐네. 나 화장실 갔다 온 거야.”

“흐음.”

“……뭐, 왜! 아니…… 하, 됐다. 이제 나 수련하러 간다.”

“또 수련장에 틀어박히려고? 기왕 밖에 나온 거 밥이나 같이 먹지?”

“됐거든? 아이른 저 자식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나 간다!”

다소 높은 목소리로 소리친 주디스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브랫은 이번에도 물끄러미 상대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꼈음인가.

앞으로 나아가던 주디스가 살짝 고개를 돌려 눈치를 보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도 괜찮은 녀석들 나오는 경기 있으면, 말해. 보러 가게.”

“그래. 같이 보러 가자.”

“…….”

브랫의 눈을 바라보던 그녀가 홱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혼자가 되어 버린 로이드 가의 장자.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든 채, 귀족적인 자세로 턱을 쓰다듬던 그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직 갈 길이 멀군.”

* * *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른 파레이라는 존 드류와의 토론도 마다한 채 실전에서 ‘오러를 보는 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수련을 이어 갔다.

다행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혼자 검을 휘두른 것이니 실제 검투 경기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2달이나 시간이 남은 것을 생각하면 문제 될 것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한 활용가치가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아이른이 3일 전에 있었던 검투 경기를 떠올렸다.

그러자 당시의 두 검투사가 보여줬던 오러 운용 방식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졌다.

‘내가 활용하는 방법과 전체적으로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점도 꽤 많아.’

기본적인 부분은 같았다.

오러를 통해 근력을 강화하고, 관절과 근육을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고.

이런 것은 이미 자신도 활용하고 있던 방식이었다.

허나 동작 하나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오러를 다루냐 하는 부분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면, 차이가 적지 않았다.

어떤 면은 자신이 나았고, 어떤 면은 레벨 킹의 검투사들이 더 나았다.

이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교정해나가다 보면, 아마 2달 후의 자신은 더욱 강해져 있을 터.

‘뭣보다…… 보고 배울 사람들은 그 두 명이 끝이 아니니까.’

감았던 눈을 뜬 아이른이 수련실 구석에 걸린 달력을 바라봤다.

2월 13일.

레벨 킹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춘 랭킹 4위 검투사, 그레이슨이 무대에 오르는 날이며.

동시에 증명의 땅의 최고수인 챔피언, 일리아 린제이가 무대에 오르는 날이기도 했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지.”

강하게 중얼거린 아이른이 빠르게 몸을 씻고 증명의 땅으로 향했다.

뒤에서 ‘난 이제 쓸모없어, 난…… 난 쓸모없어…….’라고 중얼거리는 존 드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써 줄 여력이 없었다.

힌츠가 힘써 준 덕분에 예약한 프리미엄 관람석에 자리하여, 조용히 시합을 기다렸다.

일리아 린제이의 검을 본다.

일리아 린제이의 움직임을 보고, 더 나아가 일리아 린제이의 오러를 관찰한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지금의 아이른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였다.

오러 소드(Aura Sword).

오러 소드를 만들어 낼 때의 오러 흐름을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오싹.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아이른은 천천히 팔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물론 잘 진정되진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끝까지 차오른 흥분을 피할 길 없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길 십여 분.

“와아아아!”

“챔피언이다아아!”

“일리아 린제이! 일리아 린제이!”

“서부 최고의 재능!”

“다음 세대의 왕!”

“소드마스터! 최연소 소드마스터!”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크로노 검술관에서 처음 봤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차가운 표정을 한 일리아 린제이가, 검을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우우우웅

은빛의 찬란한 오러 소드 역시, 증명의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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