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5화 (135/388)

◈ 43. 세 번째 폭풍 (2)

아이른 파레이라는 누구인가?

사실 이에 대한 의문은, 그가 레벨 퀸의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가진 바 실력에 비해 알려진 게 너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의 동기인 브랫 로이드, 주디스만 봐도 그렇다.

둘 모두 크로노 검술관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들이지만, 그 비범함 때문에 예전부터 대륙 전체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브랫은 거베라 왕국의 제일가는 천재로, 주디스는 이그넷의 뒤를 잇는 평민 출신 천재 검사로.

심지어 평가가 짠 이안 검술관주에게 칭찬까지 들었기에, 그들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던 실정이었다.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어떤가?

그야말로 아무런 정보도 없다.

브랫, 주디스와 동기라는 것조차 이번에 알려진 사실이고, 이안 관주는 그에 관해 언급한 적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은 둘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지금에 와서는 둘보다 훨씬 강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마저 받고 있었다.

그렇듯 호기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또 한 번 도발적인 인터뷰가 터지자,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 모두가 아이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검투 관련 잡지들은 신이 나서 이런저런 억측으로 짜깁기된 기사들을 찍어내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이젠마르크트 최고의 기자 중 하나인 힌츠 수석기자의 기사가 나온 순간, 모든 관심은 위클리 아레나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위클리 아레나의 ‘아이른 파레이라 특집 기사’는 다른 잡지들과 달리 오로지 사실만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른 파레이라가…… 예비 수련생 시절에 일리아 린제이와 동급이었다고?”

“기사만 보면 그런 뉘앙스던데? 정식 수련생 자리를 건 최종평가에서 그랬다잖아. 한 번에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서 재시험을 쳤고, 그다음에 린제이가 겨우 이겨서 수석, 파레이라는 아깝게 차석이라고.”

“이걸 믿으라고? 허어…….”

“뭐, 안 믿을 도리가 있나? 기사를 보증한 게 다름 아닌 브랫 로이드인데.”

“숨겨진 차석이라니……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기에 소문이 하나도 안 퍼진 거야?”

“너 인마, 기사 다 안 읽었지? 기사 끝에 나와 있잖아! 가문의 일 때문에 두문불출하고 있었다고!”

“미안, 기사 제목 보자마자 너무 놀라서 아직…….”

일리아 린제이와 버금가는 재능!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처음 증명의 땅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 사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존재였다니.

심지어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신원이 확실한 로이드 가의 장자가 직접 보증했는데, 어느 누가 그에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깔 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흥! 어릴 때 비슷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실력 차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약이지.”

“그게 맞아. 그리고, 생각해 봐. 당시에 일리아 린제이는 10대 초반이었고, 아이른 파레이라는 중반이었잖아. 애초에 3살이나 더 먹은 주제에 버금간다느니, 아깝게 졌다느니 같은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그것도 그런데…… 어쨌든 챔피언에 도전한 자격 정도는 충분한 거 아닌가?”

“그건 뭐…… 이제 봐야지. 과연 지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렇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부의 자존심인, 그리고 이미 실력을 증명한 일리아 린제이의 편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최선을 보여 주지 않은 아이른에게는 엄격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시선은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음 경기.

또 다음 경기.

그다음에 치러진 레벨 퀸의 세 번째 경기에서도, 아이른 파레이라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하였다.

“경기 끝! 아이른 파레이라, 승리!”

“또, 또 이겼어!”

“이제 레벨 킹이야! 고작 3경기 만에 레벨 킹에 올라가다니…….”

“안 올려줄 도리가 있나? 지금 모든 사람들이 일리아 린제이 대 아이른 파레이라의 대진만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올려줘야지.”

“하긴……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보면 레벨 킹 하이 랭커들을 제외하면 상대할 자가 없어 보이니까.”

“그렇지. 네 말대로 하이 랭커 한 명만 이기면 곧바로 챔피언과 붙어도 될 것 같은데.”

“허어, 이번 세대는 진짜 대단하군. 이그넷, 일리아도 모자라서 아이른 파레이라까지…….”

도발적인 인터뷰를 세상에 내놓은 지 3주.

단 3주 만에, 아이른 파레이라는 깐깐한 대륙 서부 주민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거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주 특종기사를 들고 찾아오는 ‘위클리 아레나’의 도움도 크게 작용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내가 가르쳐 본 사람들 중 최고의 재능. 이미 ‘가르친다’라는 표현을 쓸 수도 없어.]

아이젠마르크트의 일타강사인 존 드류의 인터뷰.

[아이른 파레이라, 재능만큼이나 노력도 대단한 이번 세대 최고의 유망주.]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뛰어난 실력자로 알려진 제트 프로스트의 인터뷰.

심지어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드마스터, 혹은 미래의 소드마스터만이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명검.

10번째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의 주인이 아이른 파레이라라는 것까지 알려지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더는 불평을 늘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두 달.

어쩌면 더 빠른 시일 내에, 일리아와 아이른의 대결은 성사될 것이다.

오히려 둘이 만나기 전에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른 누군가에게 진다면 몹시 실망할 것이다.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은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물론, 이런 폭풍 같은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와중에도.

“…….”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할 것에만 충실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을 정도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심상 수련에 돌입한다.

쇠말뚝은 여전히 단단했으나, 더는 투박하지 않았다.

일리아 린제이를 만나며 훨씬 거대해진 불길이 쇳덩이 전체를 시뻘겋게 달구었고, 그 위에 사내의 의지보다도 더욱 단단한 아이른의 의지가 떨어져 내렸다.

까앙-!

까앙-!

그렇게 단조된 결과물은, 이제는 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허나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더 섬세하게, 균일하게 검의 면을 펴고, 날을 갈아내고…….’

검의 형태만 취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명검을 만들자.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일리아 린제이와 검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른은 그러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마음속의 검을 다듬은 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존 드류를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쪽이…….”

“그런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쪽이 더 낫지 않나요?”

“……그럴 때는, 으음.”

검술에 대한 존 드류의 가르침은, 이제는 가르침이 아닌 토론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있었다.

현재의 아이른은 파격(破格)적인 검술을 통해 자신의 격(格)을 완전히 정립한 상태.

그렇기에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내는 것이 가능했고, 가끔은 존 드류마저 당황할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뚫어내곤 했다.

그러면 아이른은 또다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를 해석하여 정석에 살을 붙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파격을 소화할 방법을 강구했다.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내가 받은 돈이 얼만데…… 벌써 가르칠 게 떨어지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값을 해야…….’

“검술 선생,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수고비라도 좀 더 얹어줄까?”

“히익, 괘, 괜찮아! 이제 더 안 줘도 괜찮아!”

“응? 왜 그래, 갑자기? 어제 뒤져보니까 예쁜 손목시계가 있어서, 너 주려고 따로 빼 놨…….”

“으아! 으아아아아아!”

‘……왜 저러지?’

돈의 무게에 짓눌려 어디론가 도망가는 존 드류와, 그의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격려금을 쥐여주려고 쫓아가는 루루.

그런 둘을 보며 아이른이 의아해했다.

존 드류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도와주는 그의 태도에 고마움을 느낄 뿐.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도 맞지.’

존 드류와의 토론을 끝낸 뒤, 개인 수련으로 검술을 가다듬던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요술의 영향과 훌륭한 검술 스승의 가르침, 점차 탄력이 붙어가는 심상 수련 덕분에 아이젠마르크트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터를 상대로는 힘에 부쳤다.

마스터는커녕 제트 프로스트와 대결하더라도 질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사실에 좌절하지는 않았다.

빠르게 몸을 씻어낸 아이른이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증명의 땅의 세 번째 경기장인 영광의 땅으로 향했다.

* * *

“어, 어어?”

“아이른 파레이라다!”

“오늘 아이른 파레이라 시합이 있던가? 아닌데? 그런데 왜…….”

“바보야. 소문 못 들었어? 요즘 들어 레벨 킹 검투사들 경기 이것저것 보러 다닌다고 하잖아.”

“아아, 그래? 아무래도 상위 랭커들은 여러모로 경계가 되나 보네. 미리 염탐하러 온 걸 보면…….”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이상하지. 하여튼 촌놈처럼 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이따가 사인해 달라고 하면 해 주려나…….”

경기장의 프리미엄 관람석에 모습을 드러낸 아이른 파레이라를 보며, 관객들이 들뜬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이미 그는 도시 어디를 가도 인파가 몰릴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경기 중에는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아서.’

경기 결과 하나하나에 침이 튀길 정도로 흥분하는 이들이긴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나름 선을 잘 지키는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이었다.

그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데, 아이른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저 멀리, 자신의 맞은편에 브랫 로이드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검투에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더니, 경기는 보러 다니나 보네?’

일리아 린제이를 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아이른, 그런 아이른에게 투쟁심을 불태우는 주디스.

그런 둘과 달리, 브랫은 도시에 도착한 지 3주쯤 뒤부터 검투 경기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쿠바르를 따라 적당히 술을 마시거나, 검과 관련되지 않은 소일거리에 집중하는 참이었다.

사실 이것조차 직접 본 게 아니라 들은 이야기였다.

존 드류를 검술 선생으로 고용한 때부터 거처를 그의 저택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을 오가는 루루가 아니었다면 이조차 모르고 있을 터였다.

‘하여튼 반갑네. 같은 도시에 있긴 해도 최근 본 게 열흘도 더 전이었던 것 같은데…….’

피식 웃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브랫 로이드에게 손을 흔들까 하다가, 관뒀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신경 쓰였고, 오랜만에 발견한 브랫이 어떤 모습으로 경기를 관람하는지 조용히 지켜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티 나지 않게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의 자리에 또 하나의 익숙한 인물이 앉았다.

주디스였다.

아이른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녀 역시 오랜만에 보는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뭔가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브랫은 평소처럼 귀족적인 분위기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주디스는 전에 봤던 것과 비슷하게 부루퉁한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

즉 다른 때와 다를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술로 인해 감이 극도로 예민해진 아이른은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뭔가 분위기가 예전과 다른 것 같은데…….

“오오!”

“시작한다!”

하지만 둘에 대한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고찰이 이어지려는 찰나, 검투 경기가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른은 관객석에서 시선을 거두었고, 이내 두 하이 랭커의 싸움에 집중하였다.

‘분명 이번에도 배울 게 있을 거야.’

다른 관객들이 추측한 것처럼 경계를 위해 경기장 찾은 건 아니었다.

아이른이 이곳에 자리한 이유는, 그보다는 배움을 갈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자신이 정립한 검술과 타인의 검술은 어떻게 다른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좋은가.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일념으로 무장한 아이른이 눈에 불을 켜고 무대에 집중했다.

이윽고 그의 날카로운 눈이 두 검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검의 움직임.

몸의 움직임.

더 나아가서 각 부위의 근육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시선이 어디로 움직이는가, 호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야말로 극한의 집중력을 동원해, 두 하이 랭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해체하듯 분석해 나가던 순간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에,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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