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4화 (134/388)

◈ 43. 세 번째 폭풍 (1)

“…….”

루카스 깁슨.

엑스퍼트이자, 레벨 퀸의 무대에 합당한 실력을 갖췄다고 알려진 검사.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오늘 경기의 승리를 장담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루카스 깁슨은 대중과 기자들의 예측대로 자신이 약세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직전에 상대했던 녀석…… 나도 겨뤄 본 적 있지.’

자신보다는 분명히 낮은 실력.

하지만 결코 형편없는 실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상대를 일격에 꺾을 정도라면, 저 크로노의 수련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보다 윗줄의 실력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최대한 단단하게 가자.’

그렇기에 루카스 깁슨이 세운 초반 전략은 방어에 치중된 것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상대의 동작을 관찰하며, 어떤 공격이든 받아 내기 쉬운 자세로 임한다.

딱히 특별한 계획은 아니었다.

아마 아이른 파레이라와 상대했던 모든 검사들이 자신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했을 터다.

상대 선수가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정도는 모두가 파악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과 자신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으니.

‘나는 엑스퍼트고…… 지금까지 저 청년이 만난 녀석들은 아니었다는 거지.’

경기 시작 직전, 루카스 깁슨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승부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절대 편하게 무대를 내려보내지는 않겠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화제의 유망주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

빈틈.

그랬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분명한 빈틈이었다.

실력의 부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방심.

거기에서 비롯된 미세한 균열이 아이른 파레이라의 곳곳에 퍼지는 순간, 루카스 깁슨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시작!”

파앗-!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후 루카스 깁슨은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해 쇄도했다.

눈에는 잠시 꺼졌던 승리에 대한 집착이 진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순간마저 망설이고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검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속으로 강하게 외친 그는 레이피어를 든 것처럼 한 손으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 오른팔을 쭉 뻗어 깊숙이 상대의 명치를 찔렀다.

위력은 부족하지만, 순간적으로 상대의 간격을 공략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공격.

하나 그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아이른의 눈빛을 보며, 그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

여유로운 것을 넘어 얼빠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표정이 변한다.

흐리멍덩하던 눈에도 안광이 번뜩인다.

그에 따라 빈틈으로 가득했던 자세가 밀도 높게 메워지고, 기도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단단해진다.

루카스 깁슨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뻗어 나가는 검을 회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 전에 아이른 파레이라의 거대한 검이 유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어엉-!

……철그럭!

일검(一劍).

아이른은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루카스 깁슨의 검을 저 멀리 날려 버린 뒤, 상대에게 예를 표했다.

그럴 때까지도 심판을 비롯한 모든 관객들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계속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 박자 늦게 상황을 인지한 심판이 큰 목소리로 승부의 결과를 알렸고, 비로소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름을 연호했다.

“우와아아! 뭐야, 저거!”

“또 한 방이야! 또 한 방이라고!”

“결국 끝까지 자기가 한 말을 지켰잖아?”

“아니, 상대가 엑스퍼튼데 이게 어떻게 된…….”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지축을 울리는 듯한 관객들의 함성 소리.

그 속에서 넋이 나간 듯이 서 있던 루카스 깁슨이 한 차례 고개를 흔든 뒤, 억지로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일격에 검을 놓친 것?

그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와중이었고, 상대는 이를 역이용했다.

게다가 자신은 양손이 아닌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있었으니, 공격이 읽힌 순간부터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진짜 중요한 건, 저자가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도했다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니 알겠다.

처음에 보였던 빈틈은 빈틈이 아니었고, 그러한 빈틈을 공격한 것 역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대의 의도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경험만큼은 상대보다 훨씬 풍부할 거라 자부했던 자신이 20대 초반 검사의 계략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수 싸움과 속임수, 그것을 파악하고 역이용하는 것까지 모두 검술의 한 부분이다.

그러한 부분에서 볼 때, 자신은 완패했다.

씁쓸한 웃음을 지은 루카스 깁슨이 아이른에게 말했다.

“승급 축하하네. 좋은 승부였어.”

“감사합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패자는 무대를 퇴장했고, 승자는 계속해서 이어질 검투 경기 진행자의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방금 전의 시합을 복기했다.

완벽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 깔끔한 승리.

하지만 아이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현재 자신의 실력이, 여전히 일리아 린제이에 비해 한참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일리아 린제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애초에 자신의 수법에 넘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20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라고는 하나,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다.

그러한 경지까지 올라가며 겪었을 고난을 생각하면, 양은 몰라도 질적으로 훨씬 대단한 경험을 쌓았을 거라 생각하는 게 맞았다.

‘아니, 그 전에…… 일리아가 루카스 깁슨과 마찬가지로 한 손 찌르기 공격을 해 왔다면, 나는 그걸 걷어 낼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루카스의 검을 놓치게 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한참 떨어졌기 때문.

반대로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경우를 생각하니, 정반대의 상황이 그려졌다.

일리아 린제이의 쏜살같은 찌르기를 막아 내지 못한 자신의 모습 말이다.

‘결국, 일리아를 꺾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참 더 강해져야 해.’

방법?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아이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렇듯 새로이 정신 무장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고 있는데, 어느새 자신의 옆에 도착한 진행자가 뭐라 뭐라 말한 뒤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제대로 못 들었는데.’

그래도 상관없었다.

진행자가 무슨 질문을 했느냐는 별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 이 장소의 주인공은 자신이었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 놓은 말 역시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신을 둘러싼 관객을 쭉 돌아봤다.

그러자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

누구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뜸을 들이던 아이른이 입을 열었다.

“처음 시작의 땅 앞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했던 인터뷰, 모두가 무리라고 손가락질했던 공약.”

“…….”

“마침내 지켰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젊은 초신성의 패기 넘치는 발언에 관객들의 목소리가 또다시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실력도, 재능도, 외모도 훌륭한 데 이어서 흥미로운 입담까지 갖춘 자를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말솜씨 자체가 아주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이른만 한 인재는 증명의 땅 전체를 뒤져 봐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기회의 땅을 졸업하고 새로운 무대로 올라가니, 새로운 포부를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신성을 보며 경기장 전체가 숨을 죽였다.

심판도, 진행자도, 심지어 이미 위의 무대에 있는 몇몇 검투사들마저 그에게 집중했다.

아이른은 질질 끌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3달 안에, 증명의 땅의 챔피언인 일리아 린제이에게 도전하겠습니다.”

“단순히 도전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자 도전하는 게 아닙니다.”

“이기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하여…… 증명의 땅의 새로운 챔피언이 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는 순식간에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당당한 모습으로.

그리고 당일 저녁.

아이젠마르크트는 당돌한 도전자가 내뱉은 ‘도전장’에 대한 이야기로 온통 시끄럽게 되었다.

* * *

“도가 지나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소드마스터가 장난인 줄 알아?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자식이 자꾸 선을 넘네…….”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챔피언은커녕 레벨 킹의 하이 랭커들만 만나도 빌빌거릴 녀석이…….”

“떠받들어 주니까 인기에 취한 건가?”

“쯧, 빨리 레벨 킹에 올라갔으면 좋겠군. 제대로 교육 한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아이른 파레이라의 경기 인터뷰는 순식간에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예전에 했던 인터뷰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주목도였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름값 자체가 커진 것도 한몫했지만, 감히 ‘챔피언’을 입에 담았다는 것에서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현 챔피언이 누구인가?

무려 소드마스터, 그것도 최연소 소드마스터다.

검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부 출신, 그중에서도 5대 검술 명가로 명성 높은 린제이 가의 천재, 일리아 린제이!

그녀는 중부 출신인 크로노의 주인 이안과 신성왕국의 율리우스 휼, 둘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서부 사람들에게 있어 성역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끽해야 이제 레벨 퀸에 오른 녀석이?’

‘레벨 킹의 하이 랭커들도 존경을 표하는 역대 최고의 천재한테, 그런 건방진 말투로?’

물론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이 항상 서부 출신 검사들만 편애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됐건 싸움과 도박에 있어서는 진심을 다 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충분한 실력과 명분을 갖추고 있다면 다른 지역 출신이라도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하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렇지 않다.

실력 역시 한참 더 검증이 필요하고, 명분은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레벨 킹에서 랭킹 10위 안에 들거나.

혹은 증명의 땅 외에서 진하게 엮인 사건이 있거나!

둘 중 하나는 되어야 정상 참작이 되는 것이지, 지금은 그냥 처음 받아 보는 관심에 취해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대중들의 인식은 그랬다.

이를 대변하듯, 아이젠마르크트의 검투 관련 잡지들 역시 당일 저녁 곧바로 이에 관한 칼럼을 담은 호외를 찍어 냈다.

위클리 발할라를 포함한 대부분 주간지들이 아이른 파레이라의 기본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이번 인터뷰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몇몇 기자들은 레벨 킹의 중위권 선에서 충분히 정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악담 비슷한 지문을 써 놓기도 했다.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다음 날.

모든 주간지들이 호외를 찍어 낼 때도 혼자 잠자코 있었던 위클리 아레나가, 아이른 파레이라에 관한 숨겨졌던 사실을 풀어놓았다.

[6년 전, 일리아 린제이와 함께 크로노의 수석을 다퉜던 인물!]

[오랜 시간 베일에 감춰져 있던 비밀스러운 존재, 그 근원에 대해 파고들다!]

당시의 예비 수련생이 아니라면 누구도 알 수 없었을 비밀스러우면서도 충격적인 일화.

‘힌츠 수석기자’라는 신뢰 높은 기자의 검수 하에 나온 기사를 읽으며, 사람들은 전날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이젠마르크트에 도착한 지 35일째.

비로소 세상은, 새로운 천재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증명의 땅에 세 번째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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