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1화 (131/388)

◈ 42. 고속 승급 (2)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은 검투 경기에 미쳐 있다.

밥 먹으면서 하는 말이 ‘누가 누구에게 이겼나’이고, 술 마시면서 하는 말이 ‘어디의 누가 증명의 땅에 왔다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허나 그런 그들이라 해도 모든 검사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검투장에 몰려드는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많은 검사들 사이에서 더욱 돋보이고, 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가 ‘검술 실력’이었고.

두 번째가 ‘캐릭터’였다.

그리고 증명의 땅에 방문한 검투사들은 대부분 두 번째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력을 높이는 것보다는 자극적인 행동, 도발적인 인터뷰를 통해 이목을 끄는 편이 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다리오가 졌다는군.”

“다리오가 누구…… 아, 레벨 퀸에 올라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놈? 누구한테 졌는데?”

“나도 들은 거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레벨 룩의 중위권 검투사한테 졌다는데? 그러고 보니 다리오 말고 또 입 털던 녀석 하나 있지 않았나? 그…….”

“드웨인? 그 양반도 글렀어. 이기긴 이겼는데, 기대만 못 해. 인터뷰에서 말한 거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실력이야.”

“쯧, 요즘 들어서 더 과장된 인터뷰를 하는 녀석들이 많아진단 말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인터뷰를 해야 한다.

다 큰 성인이 어린아이를 이기는 게 흥미로운 일이 아니듯, 고수가 자신보다 하수를 꺾는다고 아무리 소리쳐 봤자 무관심으로 돌아올 뿐이니까.

그렇기에 빠르게 뜨고 싶은 검사들은 자신이 달성하기 힘든 포부를 일단 질러놓은 뒤, 그것을 수습하지 못하고 침몰해 버린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작자들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제 관객들은 웬만한 인터뷰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 말 지켰던데?”

“누구?”

“그 크로노 정식 수련생 있잖아. 아이른 파레이라.”

“아, 레벨 퀸까지 일격으로만 올라가겠다고 했던 사람?”

“그래. 순식간에 도미닉의 검을 베어냈다고 하더군.”

수많은 거짓말쟁이가 판을 치는 지금이기에…… ‘진짜’의 출현에 주민들은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미닉? 내가 아는 그 도미닉이 맞나? 레벨 비숍 상위권?”

“맞을걸?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증명의 땅에 다른 도미닉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으니까.”

“허어, 아무리 레벨 비숍이라지만 일격에…… 그럼, 진짜 레벨 퀸에 올라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나이가 몇이랬지?”

“스물하나였나? 아니, 스물둘?”

“와…… 대형 루키잖아? 아니, 이미 루키 수준이 아닌데?”

아이른의 경기 결과를 들은 주민 하나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레벨 퀸은 엑스퍼트 급 실력자들만이 올라갈 수 있는 꿈의 무대였다.

그 무대에 20대 초반의 검사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륙 전체에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한 업적이었다.

물론, 그가 말한 발언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그렇지? 재수 없으면 승급전에서 엑스퍼트를 만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레벨 룩에는 아깝게 위로 못 올라간 녀석들이 우글우글하단 말이야. 그런 녀석들을 한 방에 제압하는 건 레벨 킹은 돼야지.”

“그건 그렇고, 이러면 브랫 로이드랑 주디스의 경기 결과가 더 기다려지는데? 아이른 파레이라가 이 정돈데, 에이스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예전보다는 훨씬 호의적인 반응.

허나 단 한 번의 경기만으로 모두의 의심을 불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아이른 파레이라는 여전히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젠마르크트에 도착한 지 11일째.

아직도 세상은 천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 *

“시펄.”

물론 모두가 아이른 파레이라를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존 드류는 알았다. 그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솔직히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자신이 이곳에서 유명하다 한들, 저 정도 재능이면 훨씬 더 뛰어난 스승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이곳은 실력을 증명하는 곳이지, 배우러 오는 곳은 아니잖아? 수련이 하고 싶으면 크로노로 돌아가면 되는 걸 왜 굳이…… 혹시 나 엿 먹이려고 그러나?’

아이른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모르기에, 그리고 어릴 때부터 피해의식이 많았기에 존 드류의 사고는 자꾸 부정적으로 흘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칠 수는 없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기도 했고, 그것을 떠나서 자신이 가르칠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 동안 고객의 검술에 관해 분석하고, 지도 방향을 가다듬은 존 드류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진중한 얼굴로 임시 스승을 바라봤다.

‘어떤 가르침을 내려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듣기로는 본신의 실력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가르치는 실력만은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했다.

특히 단기간에 실적을 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물론 기댓값이 크다 보니 스타일 자체가 맞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지만, 아이른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각성한 요술 때문이었다.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좋아졌어.’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사소한 변화도 아니었다.

아이른의 감각은, 평소에 비해 배 이상이나 예민하게 주변의 상황을 인지하고 파악하고 있었다.

‘마치 예비 수련생 시절…… 중간평가 때 느꼈던 감각이 다시 찾아온 기분이야.’

당시의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지금과 비슷했다.

시각을 비롯한 오감이 날카롭게 벼려져 주변을 관찰했고, 기억했다.

마치 집중력이 몇 배는 높아진 것 같은 신비로움 속에서 소년은 모든 상황을 빨아들여 흡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어떤 난해한 가르침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소화하기 힘든 분야더라도 문제없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얼굴로 존 드류의 말을 기다렸고,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우선 내 지도 방향에 대해서 알려 주기 위해, 몇 가지 실전적인 기술을 보여 주지.”

“실전 기술이요?”

“다치게 할 생각은 없네. 그럴 실력도 없고. 하지만 자네를 당황하게 하기는 충분할 거야. 지금부터 시작할 테니 조심하…… 어?”

평온한 얼굴로 주의를 주던 존 드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치 봐서는 안 될 무언가를 본 것처럼. 아이른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

‘실전 기술’의 정체를 깨달은 아이른이 황급히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존 드류의 걸쭉한 침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움찔!

다행히 더러울 꼴을 보는 일은 면했다.

반사 신경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했지만, 그 전에 존 드류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침을 막았다.

황당해하는 아이른에게 그가 말했다.

“그 짧은 사이에 두 번이나 당황했군.”

“하지만, 이건…….”

“알지, 알아. 기술이라고 하기 뭐할 정도로 치졸하고 비겁한 수법인 거.”

“…….”

“내가 미안하네. 사과의 표시로 악수나 한 번 하지.”

진지한 표정의 존 드류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아이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 손에는 방금 날아오던 침이 잔뜩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겁한 그는 반사적으로 반대편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느꼈다.

어느새 단검을 꺼내 든 존 드류의 왼손이 자신의 옆구리에 닿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전히 그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 이런 것들일세. 물론 이렇게 저열한 방식만 있는 건 아니고, 더 치밀하고 섬세한 것들이 많아. 하지만 큰 개념에서 보면 같은 선에 놓여 있지.”

“…….”

“자네, 검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갑자기 던져진 질문.

아이른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고 존 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매일같이 검을 다루는 사람도 막상 구체적인 뜻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법이거든. 검술이라는 게 워낙 큰 개념이다 보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맞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검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 검을 통해 상대의 의도를 파훼하는 것. 단순히 누가 더 힘이 세고 빠른가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체스처럼 치밀한 심리전과 수 싸움을 통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는 것.”

“…….”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검술일세.”

검술은 검을 잘 다루는 방법을 뜻하고, 검을 잘 다룬다고 함은 보통 상대를 무력으로 압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보다 빠르게 검을 내지르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강하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중량 운동을 통해 근육의 크기를 키워 가듯, 자신의 파워를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의 존 드류도 똑같은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육체가 영원히 성장할 거라 믿었고, 자신의 오러가 끝없이 불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벽을 마주했고, 그때부터 존 드류는 다른 관점으로 검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상대의 힘이 나보다 강해도 괜찮아. 상대의 검이 나보다 빨라도 괜찮아. 어른과 아이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소위 체급 차이는 극복할 수 있네. 어떻게? 나의 의도를 관철하고, 상대의 의도를 파훼함으로써.”

“…….”

“내 검사 인생 대부분은 그에 대한 고민으로 이루어졌다네.”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들으니 명확해졌다.

존 드류의 가르침은, 확실히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주기에 적합했다.

검술관과 요술 결계에서 오랫동안 검을 휘두르긴 했지만, 동년배에 비해서도 턱없이 실전 경험이 부족한 그였다.

그러한 단점은 실제로 브랫, 주디스와의 대련 중에도 여러 번 드러났다.

아주 사소한 속임수 한두 번에서 이어진 손해가 굴러가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게, 당장 생각나는 것만 열 개가 넘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야비하진 않았지만…….’

존 드류의 눈빛을 보니, 이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검사 인생 대부분이 속고 속이는 심리전, 소위 ‘꼼수’에 대한 고찰로 채워졌다고 말이다.

그 수법들을 절반, 아니 반의반만 소화해도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 그럼 곧바로 시작하겠네. 우선…….”

그렇게 시작된 존 드류의 지도는,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배우고 체득했던 검술과 지금의 가르침이 매우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꼼수’의 세계가 깊고 넓었기 때문이다.

같은 속임수여도, 보다 세련되고 티 나지 않게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별 것 없는 동작 몇 개를 포석 삼아 커다란 함정으로 유도하는 법도 배우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른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온갖 기상천외한 수법을 생각하다가 기본을 잊은 찰나, 그 틈을 귀신처럼 파고들은 것이다.

‘대단해. 괜히 아이젠마르크트의 일타강사로 불리는 게 아니었어.’

배우면 배울수록 존 드류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임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이른은 더욱 성실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에게 놀라고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 드류가 훨씬 더 경악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분명 내가 가르치고 있는 건 꼼수고, 변수 창출에 특화된 검술인데…….’

왜 정석적인 움직임이 더 좋아지고 있는 거지?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지도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나는 시점.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보는 존 드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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