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30화 (130/388)

◈ 42. 고속 승급 (1)

‘시작하게. 최선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검술을 펼쳐 보라던 존 드류의 말을 들었을 때, 아이른 파레이라는 찰나 간 자신의 행적에 대해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꽤 열심히 검술을 수련했다.

자신의 의지 없이 인형처럼 살아갔던 검술관 시절은 제외하더라도, 그 이후의 아이른은 한시도 허투루 검을 휘둘렀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는 않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노력이라함은 지극한 행동과 지극한 마음이 합쳐져 우러나오는 것.

행동에 있어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아이른이라 할지라도,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항시 최선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었다.

대륙 여행을 처음 결심했을 때와 나중의 마음이 다르고.

요술세계에서 검을 수련했을 때와 나온 후의 마음이 다르다.

알하드 산채에서 향상심을 키웠을 때, 이그넷을 만나서 투쟁심을 느꼈을 때, 주디스와 브랫을 만나서 그러한 불꽃을 더 키웠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아이른 파레이라, 자신은 최선을 다해 검술에 매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할 수 있어.’

대답은 ‘그렇다’였다.

후우웅!

강철처럼 단단한 자세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의지에, 강렬한 염원이 덧씌워진다.

금발의 청년은 그 상태로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일리아 린제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던 사람.

자신이 처음으로 목표로 했었던, 찬란하게 빛나던 사람.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보는 이의 마음마저 뜨겁게 만들었던 그녀의 불꽃이, 지금은 열정이 아닌 자기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막아야 해.’

그렇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 예전으로 되돌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멈춰 세워야 한다.

대화는 통하지 않으니 힘으로라도 멈춰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농도 짙은 마음이 필요하다.

스르륵……

생각을 이어 가는 와중에도, 검술은 끊이지 않고 펼쳐졌다.

오히려 처음보다 매섭게,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고 지나갔다.

아니,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앞에는, 가상의 일리아 린제이가 검을 들고 마주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보다 더욱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후우웅

후웅

후우우웅-!

강했다.

상상 속의 일리아 린제이일지언정, 자신이 만났던 그 어떤 엑스퍼트들보다 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소드마스터였으니까.

세상에 100명밖에 없는 검의 달인이자 역사상 가장 빠른 나이에 오러 소드를 뽑아낸, 대륙 최고의 재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고 들어갈 생각은 없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에 전보다 더욱 뜨거운 불꽃이 일렁거렸다.

“후웁!”

내지르고, 베고, 휘두르고.

“흐으읍!”

막아내고, 물러서고, 다시 전진하고.

그야말로 쉴 틈 없이 검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였다.

존 드류도, 함께 존 드류의 저택을 방문했던 루루도 뇌리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가상의 일리아 린제이와 자신만이 남아 세상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콱!

연무장 바닥에 검을 내리꽂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다른 공간을 보고 있는 것 같던 눈의 초점이 제자리를 찾았고, 다르게 흘러가던 시간도 제자리를 찾았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아이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대충 일주일 정도 지났어.”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아이른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표정을 알 수 없는 루루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 존 드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많이 지났어?”

“이 정도면 짧은 거지. 5년 동안 요술 결계에 들어갔던 걸 생각하면…… 으으. 아직도 그때가 꿈에 나올 지경이야.”

“……미안.”

“아니, 네가 미안할 건 하나도 없지! 하여튼 일주일이면 요술을 각성한 것 치고는 금방이라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팔짱을 낀 루루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각성한 능력은 뭐야?”

“어?”

“잘 모르겠어? 일단 내 생각은 검술과 관련된 능력일 것 같은데…… 검술 선생! 어떻게 생각해?”

“…….”

존 드류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아이른을 쳐다봤다.

일주일 내내 검을 휘두른 것도.

그러고도 아무런 문제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도.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루루의 질문에 대답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려 정신을 차린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것보단, 일단 급한 일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급한 일이요?”

“검투 경기가 잡혔네. 레벨 비숍 무대. 당장 오늘 2시에 시작이야. 오늘 있을 네 번의 경기 중에 자네 시합이 첫 번째거든.”

“……지금이 몇 시죠?”

“정오일세. 한 시간 전까지는 경기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꽤 빠듯한데…….”

존 드류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일주일 내내 쉬지도 못하고 검을 휘두른 이에게 곧바로 경기를 뛰어야 한다고 말하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여유 시간 한 시간이면 충분하네요.”

“응?”

“바로 씻고 준비하겠습니다. 실례지만 욕실을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지.”

존 드류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지만 아이른은 정말로 괜찮았다.

크로노 검술관 시절에는 씻지도 못하고 테스트에 참여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능력을 각성한 건 맞나? 딱히 달라진 건 없는 거 같은데…….’

다급하게 움직이는 존 드류와 달리, 여유로운 표정으로 뒤를 따르는 아이른.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친 그가 증명의 땅 제2 경기장인 기회의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레벨 비숍 검투 경기.

도미닉 VS 아이른 파레이라.

두 검사의 시합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평균적인 비숍 무대보다 관객의 수가 확실히 많았다.

“저 녀석도 크로노 27기라며?”

“그렇다고 하는군.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그래도 27기면 기본적인 실력은 출중하겠지.”

“그래도 인터뷰가 너무 건방지던데? 레벨 퀸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일격에 상대를 제압하겠다니…….”

“중부 얼간이들만 상대해서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

“어쨌든 재밌겠어. 실제로 일격에 끝내든, 반대로 형편없이 깨지든 술안주로는 충분하니까.”

“그 말도 맞지. 주디스 경기 못 구했을 때만 해도 좀 짜증 났는데…… 이건 이거 나름대로 재미 포인트가 있구만.”

“어이, 꼬마야! 제대로 못 싸우면 욕 한 바가지 먹을 각오도 해라!”

“도미닉! 유망주 딱지도 못 뗀 애송이한테 지는 거 아니지? 서부 검사의 실력을 보여 줘!”

경기 시작 시각인 2시가 가까워짐에 따라 관객들의 함성이 커졌다.

흥분한 몇몇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허나 그들보다 훨씬 흥분한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아이른 파레이라의 상대인 서부 출신 용병, 도미닉이었다.

‘뭐? 레벨 퀸에 오르기 전까지는 전부 일격에 끝내겠다고?’

검투 잡지에 담긴 금발 애송이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도미닉이 입매를 비틀었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을 특정한 게 아님에도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상대가 보통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했다.

중부 최고의 검술관인 크로노의 정식 수련생. 분명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을 터다.

자신이 질 가능성도 충분했다. 거기까지는 인정했다.

‘하지만 일격 패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아니, 지지 않으리라. 레벨 비숍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된 자신의 실력을 똑똑히 알려 주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모든 절차가 끝나고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쪽 검투사들, 무대 위로!”

쾅쾅!

도미닉이 검투 전용 방어구로 뒤덮인 가슴을 세게 두드렸다.

이어서 머리통도 툭툭 두드린 뒤, 성큼성큼 무대에 올랐다. 자기만의 의식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런 반면, 상대인 아이른의 모습은 꽤 차분해 보였다.

별다른 표정 없이, 딱히 상기되지도 않은 얼굴로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

……애송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냥 평범하게 서 있을 뿐인데도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한가락 하긴 한다, 이거지…….’

좋아, 조용히 중얼거린 도미닉이 강하게 양손 검을 쥐었다.

일단은 방어적으로 움직이자.

최대한 간을 보면서, 천천히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한 뒤에 공격에 나서자.

‘녀석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곧바로 달려들 거니까, 그것만 잘 대비하면…….’

“양쪽 모두, 준비됐나?”

전략을 짜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심판이 둘에게 질문을 던졌다.

룰을 이해했고, 싸울 준비가 되었냐는 물음이었다.

도미닉은 준비됐다고 크게 소리쳤고, 아이른 파레이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무대 밖으로 나간 그가 번쩍 손을 올렸다.

도미닉의 감각이 그쪽에 집중되었다.

저 손이 떨어져 내리며 ‘시작’ 소리가 나오는 순간, 녀석은 멧돼지처럼 돌격해 올 것이다.

이미 정해진 사실이다.

답안지를 보고 문제를 푸는 거나 다름없으니, 자신이 훨씬 유리한 고지에…….

“시작!”

터엉!

도미닉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지면을 스치듯이 날아간 아이른 파레이라가, 도미닉 역시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도미닉이 뒤늦게 신형을 돌렸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상태였다.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철그럭

“……어?”

뒤늦게 무대 바닥에 떨어지는 베테랑 용병 도미닉의 검.

놓친 것이 아니었다.

검 전체가 아니라, 중단이 깔끔하게 베어진 검 날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도미닉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고, 마찬가지로 얼이 빠져 있던 심판이 가까스로 승부의 결과를 알렸다.

“시, 시합 종료! 아이른 파레이라의 승리입니다!”

“우, 우와아아아아!”

반응은 격렬했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건방진 인터뷰를 욕하던 사람도, 그의 패기를 좋게 보던 사람도 하나가 되어 환호성을 내질렀다.

결국 그들이 보고 싶은 건 강한 검투사의 멋진 싸움이고, 이를 충족시킨 검투사에게 비난을 쏟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잠시 후, 쓸쓸히 퇴장하는 도미닉 대신 검투 경기 진행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승자를 위한 인터뷰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를 반기지 않는 선수들도 꽤 많았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테지만.’

당연한 소리였다. 그런 걸 꺼리는 인물이 그런 도발적인 인터뷰를 했을 리가 없다.

얼굴에 미소를 품은 진행자가 마법 마이크를 가져다 대며 질문을 던졌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이전의 인터뷰대로 일격에 승리를 따내셨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예?”

의외였다.

그렇게 패기 넘치는 발언을 했던 청년이, 이제 와서 얌전한 태도를 보이다니.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저 말했던 것을 지켰을 뿐,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레벨 퀸에 오르기 전까지는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죄송하지만, 할 일이 있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딱히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담담하고 짧게 인터뷰를 마치고 내려가는 아이른 파레이라.

경기장을 나서는 그의 뒤로 수많은 기자가 따라붙으며 추가 질문을 던졌다.

허나 아이른은 응하지 않았다.

챔피언과 싸우기 위해서는 기자들 역시 잘 상대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검술 수련을 하고 싶어.’

도미닉과 싸우면서 느꼈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얻었는지.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이상, 기자들의 인터뷰에 시간을 뺏길 여유 따윈 없었다.

존 드류의 저택으로 향하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은, 이전보다 진지하게 크로노의 세 번째 수련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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