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29화 (129/388)

◈ 41. 얼마면 돼 (2)

“…….”

아이젠마르크트의 일타강사, 존 드류는 지금껏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검술을 가르쳤다.

검술의 ‘검’ 자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의 소문만 듣고 찾아온 시골 청년.

라이벌 가문의 장자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하던 귀족 자제.

취미 겸 건강을 위해 검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부잣집 어르신까지.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이들과 일 얘기를 했고, 돈 얘기를 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느냐.

얼마까지 감당하실 수 있느냐.

그러한 의미를 내포한 질문을 돌려서 던지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말하며 간을 보다가, 뽑아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뽑아먹는다.

그것이 존 드류가 협상 테이블에 임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고양이랑 돈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데…….’

아니, 돈 이야기는 무슨.

애초에 말 안 통하는 짐승과 무슨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존 드류는 세게 눈을 감았다 뜨고,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기도 하며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그에게 검은 고양이, 루루가 담담히 말했다.

“꿈 아니야.”

“……어떻게 내 생각을?”

“내가 얘기하는 걸 보고 나면 대부분 그런 반응이니까. 그런데 너도 그럴 줄은 몰랐네. 대궐 같은 집 살아서 요술사 정도는 자주 봤을 줄 알았는데.”

‘네가 그냥 요술사냐!’

고양이 요술사라니, 평생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다.

그래도 상황 이해는 단박에 되었다.

그 어떤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든 간에, 앞에 ‘요술사’라는 단어가 붙으면 대부분 해결된다.

지금도 그랬다.

고개를 끄덕인 존 드류가 지그시 고양이를 바라봤다.

검은 고양이 요술사, 루루 역시 존 드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존 드류는 이마와 등에 조금씩 땀이 맺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을…… 못 읽겠어!’

종족이 다르기 때문일까.

고양이의 얼굴 표정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수십 년 간 돈을 받고 거래를 해 왔기 때문일까.

존 드류는 제법 사람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편이었고, 그를 이용해 대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는 했다.

아니, 애초에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것부터가 상황이 급하다는 방증이었기에, 그는 항상 여유로운 자세로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소위 배짱 장사를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존 드류가 다시 고양이를 바라봤다.

고양이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

또다시 정적.

그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존 드류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뒷발로 턱을 벅벅 긁은 루루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머리 굴리지 마.”

“어, 으응?”

“괜히 머리 아프게 안 그래도 된다고. 원하는 건 돈이잖아. 최대한 많은 돈을 받고 싶은 거잖아. 그렇잖아?”

“……앞서 말했지만, 나는 이제 생활이 꽤 윤택해진 참이라 돈은…….”

“그러니까, 그런 말은 그만해도 된다니까? 더 많이 뜯어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

‘요술사라 그런가? 내 마음을 이렇게 정확하게 읽다니.’

요술사의 나라, 세자르 공국과 정반대에 위치한 지역이기에 요술사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뛰어난 이들은 사람의 눈만 보고도 어느 정도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들었다.

이를 떠올린 존 드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상대의 시선을 피한 그가 뭐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허공에 손을 쑤욱 집어넣은 루루가, 번쩍번쩍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놓았다.

황금 생쥐 한 마리.

투둑

두 마리, 세 마리.

투두두두두두둑

넷, 다섯, 여섯…….

도합 열 마리의 황금 생쥐가 테이블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존 드류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고양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으잇차.”

터억!

등껍질 윗부분에 빨간색 루비가 박혀 있는 황금 거북이와.

터어억!

양손에 파란색 사파이어를 들고 있는, 황금으로 빚어진 수행사제.

터어어억!

마지막으로 묘안석이 박혀 있는 황금 고양이를 꺼내 놓은 루루가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말했다.

“아마 이 정도면 부족하진 않을 거야.”

“…….”

“왜, 부족해?”

“……아니, 아닙니다.”

존 드류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말투도 전보다 훨씬 공손해진 상태.

평소의 그였다면 ‘혹시 호구인가?’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배짱을 부렸을 테지만…….

‘안 돼. 이 사람…… 아니, 고양이는…….’

약간의 이득을 더 취하려다가, 지금 굴러들어온 행운마저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생각을 마친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루루,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인사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객님.”

90도로 내려오는 존 드류의 허리를 보며, 루루가 아이른에게 말했다.

“역시 돈은 이렇게 써야 해.”

“…….”

“어? 아니야?”

“……네 말이 맞아, 루루.”

아이른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쩌면 대륙 최고의 부자는 강대국들의 왕이나 귀족들이 아니라, 눈앞의 이 검은 고양이가 아닐까.

자연스레 루루의 과거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넘기기로 했다.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굳이 캐묻기도 그렇고, 일단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인 아이른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부하처럼 시립해 있는 존 드류를 보며, 그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런데 곧바로 지도에 임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물론입니다! 자, 저를 따라 수련실로 이동하시죠!”

처음과 달리 과할 정도로 친절해진 임시 스승의 웃는 얼굴을 보며, 아이른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소문만큼 실력 있는 사람이기를…….’

* * *

존 드류는 없어 보이는 외모를 타고났다.

정확히 말하면 못생겼다.

어릴 적부터 또래들에게 ‘못난이’라며 놀림을 받았고, 입이 험한 녀석들로부터 멧돼지니 몬스터니 하는 치욕적인 단어도 많이 들어 봤다.

다행히 녀석들보다 힘도 좋고 덩치도 세서 패 줄 수는 있었지만, 뒤에서 소곤거리는 것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특히 그 대상이 여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래서일까. 그는 유독 겉치레에 집착하고, 명성에 집착했다.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검을 배워 검투장에 나갔고, 동성 친구들에게 으스대기 위해 버는 돈을 족족 사치품을 사는 데 소비했다.

존 드류의 번쩍번쩍한 패션은 오로지 ‘있어 보이기’ 위한 일념하에 완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없어 보였다.

그 때문이었다.

존 드류가 아이른 파레이라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말이다.

‘잘생겼어. 재수 없게.’

햇볕 따위는 알아서 피해 가는지, 우유를 섞어 놓은 듯 새하얀 피부에 잡티조차 보이지 않는다.

파란색 눈망울을 비롯한 이목구비는 살짝 유약해 보이지만 호감 가게 잘 자리 잡혔고, 금색의 머릿결 역시 귀족적인 느낌이 났다.

그런 얼굴을 받쳐 주는 몸도 훌륭했다.

‘이런 녀석이 실력까지 좋아지면, 여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지겠지.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 대여섯 명씩 만날 테고,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만나는 거 아니야.’

속에서 열등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허나 존 드류는 절대로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눈을 통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고양이 요술사, 루루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돈을 받고 검을 가르친다.

존 드류는 그 행위에 있어서만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소위 ‘프로’였다.

협상 과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든, 감정이 상했든, 아니면 반대로 기분이 좋아졌든 간에 상관없다.

자신은 고객이 지불한 돈에 어울리는 가르침을 주어야 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돈값 하자, 존 드류. 검술 지도야말로 네 가장 큰 자부심이다.’

그가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지켜보던 루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이른은 이를 눈치채지 못 하고 실내 연무장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장식품 따위가 여기저기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대신 기자들이나 들고 다닐법한 마법 사진기 같은 게 구석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시선을 알아챈 존 드류가 말했다.

“고객님의 검술 하나하나를 촬영할 마법 촬영기입니다. 사진과 달리 움직이는 동작 전부를 기록할 수 있죠.”

“아,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스승님인걸요.”

“나한테도 편하게 해.”

“……그럼 조금 편하게 하겠네. 우선, 자네가 펼칠 수 있는 모든 검술 동작을 보여 주게.”

“지금 말인가요?”

“그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기왕이면 가상의 상대를 설정해 두고 펼치는 게 좋겠군.”

“뭐야? 그러느니, 네가 직접 상대해 주면 더 편한 거 아니야?”

루루가 불쑥 끼어들었으나, 존 드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 비록 엑스퍼트 초입에 머무르는 몸이지만, 안목과 지식, 경험만은 마스터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네. 이 청년은 나보다 강할 게 뻔하니, 내가 직접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

“솔직히 말해 궁금하군. 자네, 정체를 숨긴 5대 검술명가의 자제라도 되나? 머리나 외모를 마법으로 변형한 건가? 아니면, 은거한 소드마스터의 제자?”

“……크로노의 정식 수련생입니다.”

말을 하는 아이른의 표정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윗줄의 검사가 하수의 실력을 알아보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존 드류는 자기 입으로 자신의 실력이 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대로 안목이 뛰어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동시에 실력과 상관없이 자신을 가르칠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으음, 그렇군. 소문의 그 27기인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말도 안 되게 강한 거 같은데…….”

“…….”

“뭐, 사실 그건 상관없지. 자네는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왔고, 나는 그 부분을 채워 주기 위해 돈을 받았고. 그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나?”

“맞습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함이네. 자네의 신체 능력, 검술 스타일, 전투 사고, 버릇, 습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파악해야 그에 맞는 지도가 가능하네. 이해했나?”

“예.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게.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해 줬으면 좋겠어. 아, 참고로 무기 진열대는…….”

슈우욱-!

“무기는 괜찮습니다.”

“……자네도 요술사였나.”

“이것밖에 못 하기는 합니다.”

아이른이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고, 고개를 끄덕인 존 드류가 다시 말했다.

“혹시 자네, 그 요술검을 들고 검투장에 나섰나? 검으로서의 성능을 초과한 뭔가를 품고 있다면 문제가 될 텐데…….”

“심사관 몇 명에게 확인받았는데,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내가 원체 오지랖이 넓어서…… 하여튼.”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은 존 드류가 마법 촬영기를 조작한 뒤, 둥실둥실 루루가 떠다니는 곳까지 거리를 벌렸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진지한 표정이 된 그가 나직이 말했다.

“시작하게. 최선을 다해서.”

“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른은 검을 휘둘렀다.

후웅

후우웅

후우웅-!

대검의 무거움을 살린 묵직하면서도 단단한 검술.

허나 결코 수동적이지 않은, 능동적으로 공간을 점해나가는 아이른의 검술이 막힘없이 펼쳐졌다.

존 드류는 놀란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이른의 퍼포먼스가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검술도 검술인데, 신체 능력이 상상 이상이야. 나이는 스물을 겨우 넘겼다 하지 않았나?’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파워풀한 몸놀림.

날 때부터 몸을 단련하고, 오러를 쌓아 왔다고 해도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검술 스타일도 예상과 전혀 달라. 크로노의 수련생이라기에 더 틀에 박힌 모습을 생각했는데…….’

눈앞의 청년은, 자신이 여태껏 봐 왔던 그 어떤 크로노의 검사들과도 다른 검술을 펼쳐내고 있었다.

쇳덩이처럼 묵직하게 중심을 잡으면서도, 공격할 땐 불꽃이 터지듯 폭발적으로 전진하고.

또 수세에 들어설 때는 바다를 품은 것처럼 장중한 분위기를 내뿜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존 드류는 스승으로서의 본분을 잠시 잊은 채, 넋을 놓고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술을 바라봤다.

헌데, 그러한 존재가 그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며 장난감 공을 가지고 놀던 루루.

그가 조용히 존 드류의 옆으로 다가와 아이른 파레이라를 지켜봤다.

오 분, 십 분, 이십 분.

한참을 미동도 없이,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저기? 루루 님? 아니…… 루루 씨?”

무언가 잘못된 것인가?

루루의 진지한 태도를 본 존 드류가 질문을 던졌다.

뭔가 이상하긴 했다.

요술사에 비할 순 없지만 그의 직감 역시 무척 날카로운 편이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고양이 요술사가 답변을 해 주었다.

“각성했네.”

“각성?”

“휴…… 그래도 이번엔 어디 들어가고 그런 건 아니네. 다행이다…….”

“네? 어딜 들어간다니, 그게 무슨…….”

자신도 모르게 다시 존댓말을 쓰는 존 드류.

그의 표정은 지금의 일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금 공중에 떠오른 루루가 조그마한 앞발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먼저 검술을 그만둘 때까지, 절대로 말리지 마.”

“예? 아, 네.”

“절대로. 반나절이 걸리든,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절대로.”

“……네.”

묘한 박력에 압도된 존 드류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루루 역시 고개를 끄덕인 뒤 재차 말을 이어 갔다.

“고마워, 선생. 덕분에 시작부터 효과를 봤네.”

“……아, 네. 감사합니다?”

“이건 보너스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구!”

쑤욱

루루가 허공에 손을 집어넣어 이마에 에메랄드가 박힌 코끼리를 꺼냈다.

그리고 흔쾌히 그것을 존 드류에게 줬다.

그것을 얌전히 건네받은 검술 스승, 1일 차의 못생긴 중년인이 생각했다.

‘아니, 내가 한 게 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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