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슈퍼 루키들 (3)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은 아이젠마르크에서 꽤 의미 있는 요일이다.
위클리 아레나, 위클리 발할라를 비롯한 검투 관련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의 주민들은 도박을 두 번째로 좋아하고 싸움 구경을 첫 번째로 좋아한다.
비록 생업이 바빠 직접 경기를 구경하러 가진 못하더라도, 관련 기사를 읽으며 강자들에 대한 정보를 쌓아가는 것은 퍽 즐거운 취미였다.
“오, 크로노 검술관 수련생들이 왔잖아?”
그리고 이번 주 검투 관련 잡지는 꽤 내용이 알찼다.
정확히는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유망주 쪽에 관심 가는 인물들이 많았다.
무려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검술관 안에만 박혀 있던 크로노의 정식 수련생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브랫 로이드, 주디스…… 들어 본 적 있는 이름들이야. 황금의 27기에서도 가장 유망하다고 알려진 젊은이들 아닌가?”
“그렇지. 이안 관주가 대외적으로 칭찬을 했다던데…… 그 사람 성격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지.”
“이거, 미래의 소드마스터들이 방문한 거 아니야?”
“에이. 벌써 그런 소리는 좀…… 한때 유망하다고 해서 다 마스터가 되면, 지금 대륙에 마스터가 천 명도 넘게 있게?”
“하긴, 맞는 소리야. 그래도 꽤 높이 올라가긴 하겠지?”
“아마?”
가게 앞 청소를 하던 주민들이 자연스레 27기 수련생들의 성적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검사들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예상하는 것은 아이젠마르크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제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코가 커다란 사내였다.
“그래도 중부 최고의 유망주들인데, 레벨 퀸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레벨 퀸.
증명의 땅의 3번째 경기장인 ‘영광의 땅’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진짜 실력자들에게만 허락되는 등급이다.
크로노 27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큰 코 사내는 그들이 영광스러운 무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콧수염 사내는 얼굴까지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그래도 레벨 퀸은 힘들지.”
“그러니까. 예전이면 몰라도, 요즘 레벨 퀸은 엑스퍼트는 되어야 올라갈 수 있잖아.”
“하지만, 27기 수련생들이 엑스퍼트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에이, 이제 갓 대륙에 나온 애송이들이 무슨…….”
“그래도…….”
곧바로 쏟아지는 반박에 큰 코 사내가 살짝 울컥했다.
이 양반들은 평소에도 자기의 의견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어지는 콧수염 사내의 꽤 논리적이었다.
“자네, 대륙의 소드마스터들이 엑스퍼트에 도달한 평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 잘 모르는데…….”
“20대 초반이야. 물론 그보다 느린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평균은 그렇지. 그리고 브랫 로이드와 주디스의 나이는 아직 20도 안 됐어.”
“아…….”
“이제 알겠지? 내가 왜 힘들다고 했는지 말이야.”
큰 코의 사내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소드마스터들의 어렸을 적과 비교하니 확 체감되었다.
대륙 최고의 천재들조차 10대 때 엑스퍼트에 도달한 이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아무리 크로노 27기의 수석을 다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하지.”
지금껏 잠자코 있던 키가 작은 사내가 말했고, 콧수염과 큰 코 사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미 두 번씩이나 봤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들조차 빛이 바래게 만드는, 압도적인 재능의 검사들을 말이다.
“20살에 마스터가 된 이그넷 크레센시아나, 지금 챔피언인 일리아 린제이 같은 재능이면 뭐…… 레벨 퀸은 물론이고 킹도 가능하지.”
“율리우스 휼 경도 14살에 엑스퍼트에 올랐다며? 이안 관주도 15살이었나? 그렇고. 확실히 그 정도로 엄청난 천재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만.”
“그렇지.”
물론 대화를 나누는 셋 중 누구도 진지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로노 27기의 수련생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아직은 유망주에 불과하다.
그런 그들을 대륙 최강의 검사들, 역사상 최고의 재능들에 비교하는 건 너무 과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크로노의 세 번째 수련생인 아이른 파레이라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가진바 명성에 비해 포부가 너무 허무맹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숍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레벨 룩의 검사들은 보통이 아니야. 아무래도 인지도를 쌓고 싶어서 말을 강하게 한 것 같은데…… 좀 심해.’
‘그래도 얌전한 녀석보다는 자신만만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긴 하는데. 경기 한번 찾아가 볼까? 위클리 아레나에서는 꽤 고평가해 놨던데. 100퍼센트 믿기야 어렵지만.’
‘한 한 달쯤 지나면 대충 견적이 나오려나…… 그때도 언급되고 있으면 한번 보러 가야겠다. 그전에는 주디스 경기나 봐야지. 아무래도 평민 출신은 더 응원하게 된단 말이야.’
잠시 이야기를 멈춘 뒤, 크로노의 세 유망주에 관한 생각을 이어 가는 상인들.
허나 그러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한참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망주들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 주 레벨 킹 대진은 어떻게 돼?”
“이번에 새로 올라온 도의 달인 크로슈하고 랭킹 4위, 그레이슨 킹.”
“오오, 크로슈 경기는 무조건 보고 싶은데…… 젠장, 비상금이라도 털지 않는 한 여유가 없잖아?”
“왜? 크로슈 그 양반 동부 출신 아니야?”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고. 자네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어느 정도냐면…….”
세대별로 영재니, 신동이니,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니, 온갖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들이 있다.
허나 그들이 모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고되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무사히 이겨낸 존재들만이 유망주 딱지를 떼고 제대로 된 검사가 될 수 있다.
아이젠마르크트의 주민들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젊은 검사들에게 베테랑만큼의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이 이곳에 도착한 지 3일째.
아직, 세상은 세 번째 천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 * *
그 시각.
몸을 정갈히 하고 사제의 앞에 선 일리아 린제이는 자신의 마음에 담긴 생각을 두서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말을 가릴 것 없이 쏟아내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할 말이 더욱 많았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귀한 인연.
아이른 파레이라 때문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매몰됐다고?’
‘다른 사람의 뒤만 쫓아왔다고?’
‘의미 없다고? 그만두라고?’
‘내가 했던 노력이, 내가 이룬 경지가, 다 쓸모없는 거였단 말이야?’
지난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리아 린제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정해진 길을 걸어왔다.
부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분투를 비웃고, 조롱하는 수많은 눈과 입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자신의 오빠를 헐뜯을 건수만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존재들이라는 생각 덕분이었다.
‘내가 망하기만 기다리는 녀석들의 말 따위에 쓰러지면 안 돼.’
‘아파도 해내야 해. 괴로워도 이겨내야 해.’
‘더 뜨겁게, 더 치열하게 매진하자.’
‘지금의 분노를 연료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해!’
허나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존재가 그 누구도 아닌 아이른 파레이라, 자신의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다음에 보자.’
방문을 나서기 전, 아이른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보였던 표정도, 당시의 분위기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존재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일리아 린제이는 이러한 제 생각을 가감 없이, 살짝 거친 호흡으로 쉼 없이 털어놓았다.
평소의 차가운 표정은 깨진 지 오래.
살짝 눈물마저 맺힌 그녀의 눈이 사제의 새하얀 의복에 꽂혔다.
차마 시선을 올리기는 힘들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상태로, 일리아는 사제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분이 선문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남기고 갔으니, 저도 선문답 하나를 할까 합니다.”
“……선문답이요?”
“예. 짧은 이야기입니다만…… 들어 보시겠습니까?”
일리아는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명쾌하고 직관적인 조언으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던 사제다.
그런 그가 선문답을 한다니 이상하다 여겼지만, 무언가 뜻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옛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느 날, 우락부락한 사내 하나가 거칠게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있는데 늙은 사제 한 명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자네는 저 깃발이 왜 흔들린다고 생각하나? 사내는 대답했습니다. 바람이 부니까 흔들리겠죠.”
“…….”
“그러자 사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자네의 마음이다.”
“…….”
“그 말을 들은 사내가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일리아가 조용히 답했다.
사실 알 것 같기는 했다. 예전에 들어 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변의 환경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상황에 빗대 보면…… 주변의 말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길을 걸으라는 쪽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했다.
결국, 사제님까지 아이른의 말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제가 잔잔한 목소리로 다음 이야기를 말해 줬다.
“잔뜩 성질이 난 사내가 노사제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답니다.”
“…….”
“그리고 말했습니다. 흔들리는 게 마음인지 깃발인지는 모르겠고, 댁 치아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다고.”
“지금 저랑 농담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들어 봤자 머리만 아파지고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말 따위, 흘려들으시라는 뜻입니다. 자매님, 고개를 드시지요.”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리아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맑고 투명한 상대의 눈이 보였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깊은 호수 같은 눈.
“사제는 생각했을 겁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깃발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영향받지 않도록 하자고. 허나 이것은 능력 없는 자의 변명일 뿐입니다.”
“…….”
“그렇지 않습니까? 자매님은 지금껏 불어오는 바람을 모조리 잠재웠습니다. 월광기사단의 정식 기사가 되어 주변 귀족들이 눈을 내리깔게 했고, 증명의 땅의 챔피언이 되어 무지한 대중들의 입을 닥치게 했죠. 그리고 마침내 최연소 소드마스터가 된 지금, 어떻습니까?”
“저를…… 이그넷의 밑에 뒀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기 시작했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제가 일리아의 등을 토닥여 줬다.
일리아는 그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사제의 말이 계속해서 흘러들었다.
“계속 정진하십시오. 계속 노력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대륙의 모든 얼간이들이 입을 다물 때까지.”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잠시 후,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난 일리아 린제이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뜨겁기 그지없는 모습.
이를 웃는 얼굴로 바라본 사제가 고개를 숙였고, 마주 고개를 숙인 일리아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처음 오빠를 잃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한 마음으로.
다시금 채워진 뜨거운 분노가 그녀를 태운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 당장은 너무나도 빛나는 모습이 된 은발의 검사가 방을 나섰다.
“…….”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겨울의 칼바람이 피부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이나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 *
다음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난 아이른 파레이라가 생각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꿈이 변한 것 같다고.
‘……오늘이 처음이 아니야.’
그랬다. 확신한 것은 오늘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변화의 처음은 오늘이 아니었다.
일리아 린제이와의 만남이 있은 날.
그녀의 폭주를 막아 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날.
그날 이후로, 꿈속의 남자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