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23화 (123/388)

◈ 39. 소드마스터를 이기려면 (2)

대가(Master).

자신의 분야에서 굉장한 실력을 쌓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이들에게만 붙는 수식어다.

물론 ‘마스터’의 기준이 명확하게 정해진 분야는 극히 적다.

대부분은 여러 사람들의 주관적, 정성적인 판단에 의해 흐릿한 선을 그어 놓을 뿐.

그렇기에 마스터라 불리는 이들 중 몇몇은 ‘저 사람이 정녕 마스터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물론…….

‘검은 예외지.’

그렇다. 검은 예외다.

수십 년을 검술에 매진한 뛰어난 검사도, 평생을 농사일에만 매진한 평범한 촌부도 소드마스터와 소드마스터가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오러 소드(Aura Sword).

그 찬란한 휘광을 검에 휘두른 자를, 어찌 다른 검사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겠는가.

“후우.”

브랫 로이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경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스터와 엑스퍼트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른 파레이라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자신에게 방법을 묻는 그를 보고 있자니, 가슴 어딘가가 꽉 막힌 듯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

“내가 알기로는, 엑스퍼트의 극한에 다다른 검사 몇이 소드마스터를 꺾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던데.”

“……그렇긴 합니다.”

브랫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바르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나긴 검술의 역사에 있어서, 엑스퍼트의 반란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지금까지 회자되겠는가.

그야말로 기적 같은 확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아이른은 그런 것 따윈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 안 한다의 문제라고 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브랫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허나 진지하게 쿠바르의 말에 대답했다.

“엑스퍼트가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밀리지 않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오러 소드를 견딜 수 있을 만한 명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그냥 훌륭한 정도면 안 된다.

역사나 신화 속에 언급될 만큼 엄청난 명검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러 소드의 무지막지한 절삭력을 버텨 낼 수 있다.

일단 검을 맞부딪칠 수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최고의 대장장이, 불카누스가 만든 검 정도가 아니고서는…….’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한 번의 격돌에도 수수깡처럼 검이 부러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 상황은 조금 달랐다.

물끄러미 아이른을 쳐다보던 브랫이 말했다.

“네 검.”

“요술검?”

“그래, 그 요술검. 얼마나 단단한 거야? 솔직하게 말해라. 꽤 훌륭하단 건 알고 있지만, 오러 소드를 상대할 수 없다면…….”

“아마 괜찮을 거야.”

“음?”

“아니, 괜찮아. 검을 놓치는 게 문제가 되면 됐지, 이 검이 부러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이라면 모르겠다.

데린쿠의 대장장이들에게 검의 손질을 맡겼던 그때라면, 이렇게까지 강한 확신은 가지지 못했을 터였다.

허나 지금의 아이른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냥 그랬다. 자신은 몰라도 자신의 검에 대해서만큼은 자신감이 무한히 샘솟았다.

‘……완전히 아무 생각도 없던 건 아니었군.’

브랫도 그것을 느꼈다.

이제야 조금 답답함이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상대의 검을 모조리 피해낼 정도로 수준이 뛰어난 게 아니라면, 경기 도중에는 무조건 검을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싸움에 있어서 오러 소드는 그야말로 무적이다.

그 흉악한 절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머지 두 조건은 그나마 달성하기 쉽다는 게 브랫의 생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첫 번째에 비해 쉬운 것이지, 나머지 것들도 흉악한 조건이기 그지없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조건은 고유 기술이다. 검으로서 정점에 달한 소드마스터조차 당황케 할 정도로 뛰어나고, 날카롭고,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한 검술.”

소드마스터는 경험과 재능의 총체다.

둘 어느 쪽의 비율이 높든 간에, 경지에 오르며 쌓아 왔던 수많은 실전과 깨달음이 상대의 검술에 대한 완벽한 대처를 가능케 만드는 것이다.

그런 철옹성과 같은 마스터의 방어를 뚫기 위해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절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얘기한 브랫이 숨을 골랐다.

오히려 이번 경우에는 맞춤으로 준비된 것처럼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크로노 검술관에서, 머레이의 별장에서, 제트 프로스트의 연무장에서 보여 줬던 거대한 참격.

“그걸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할게.”

“노력으로 다 되는 세상이면 그게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냐……라고 말하고 싶지만, 네가 노력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맥주를 한 모금 머금은 브랫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른을 살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명검을 언급했을 때만큼 확신에 찬 표정은 아니었지만, 조바심이 넘쳐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도 전혀 아니었다.

이 자식,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재고 있었구나.

브랫은 살짝 빈정이 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른의 행동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일리아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쨌건 그녀는 소드마스터다.

검사들의 왕. 검사들 중 가장 위대한 100명 중 하나.

그런 일리아를 4달 안에 꺾겠다는 아이른의 말에 괜한 심술이 나는 것은, 자신의 속이 좁기 때문일까?

‘아니,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벌컥벌컥, 브랫이 맥주를 빠르게 들이켰다.

주디스가 화를 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른 파레이라. 좋은 녀석이지만, 이럴 때는 짜증 나는 녀석이기도 하다.

그 생각 한 번으로 감정을 털어 버린 브랫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을 말했다.

“세 번째로, 어떻게 보면 이게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해. 바로…… 소드마스터의 검술에 뒤지지 않는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

“…….”

“뭐,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지. 엑스퍼트의 경지에서 수십 년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검술만큼은 마스터와 비견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니까.”

브랫의 말은 사실이었다.

뛰어난 엑스퍼트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오러 소드의 문제다.

체내에 쌓은 오러의 총량이 부족하든, 그것을 뽑아내는 부분에서 난항을 겪고 있든.

허나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자면, 오러 소드를 제외한 ‘순수 검술’ 부분에 있어서는…… 고절한 엑스퍼트가 젊은 천재 소드마스터보다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트 프로스트다.

검술만을 놓고 봤을 때, 그를 엑스퍼트 급이라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의 검술은 이미 한참 전에 대가의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이게 가장 어렵네.”

“그래. 너한테는 이게 가장 큰 문제지.”

브랫의 말을 들은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알고 있다.

현재 자신의 검술 실력은, 마스터는커녕 엑스퍼트들 중에서도 최고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당장 브랫과 주디스와의 대련에서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오늘 봤던 일리아 린제이의 검술은…….

“대단했지.”

“그래, 대단했다. 일리아는 운 좋게 깨달음을 얻어 마스터가 된 게 아니야. 오러의 완성 이전에 검술을 완성시킨…… 진정한 소드마스터다.”

“…….”

“오러 소드를 막아 낼 방패와 상대의 의표를 찌를 기술을 갖고 있어도 기본 실력에서 밀려 버리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야. 아, 그러고 보니 일리아도 최종 평가 때의 네 모습을 알 테니까, 그 기술 역시 훨씬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군.”

브랫의 말을 끝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처음 말을 꺼냈던 쿠바르도, 열심히 설명하던 브랫도, 당사자인 아이른도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이어 나갔다.

오로지 루루만이 처음과 마찬가지로 힘이 넘쳤는데,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얌전히 앉아서 그루밍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물론 언제까지고 시무룩해 있지만은 않았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힘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브랫이 살짝 놀랐다.

확실히 오늘의 아이른은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그 근거가 무엇일까.

모르겠다.

어쩌면 녀석의 말처럼 가능성 따위 고려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니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니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일리아를 만났을 때를 기점으로, 뭔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드는데…….’

브랫 로이드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아직 120일이나 남았으니까.”

“…….”

“내가 가문에서 여행을 떠나 여기까지 도달한 시간을 합쳐도 다섯 달이 채 안 돼. 그리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성장했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 볼 거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런 그를 보며, 테이블에 모인 모두가 복잡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주디스를 위해 마련됐던 빈자리에 누군가가 엉덩이를 들이댔다.

주디스는 당연히 아니었다. 호리호리한 외형에, 멋들어진 모자를 쓰고 있는 미남이었다.

“힌츠?”

“반갑습니다. 위클리 아레나의 수석 기자, 힌츠라고 합니다.”

“……엘프잖아?”

“예, 그렇습니다. 엘프면서 기자, 기자면서 엘프죠. 하하. 죄송하지만, 합석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필요 없다.”

브랫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라면 크로노 검술관에 있던 시절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27기가 막 황금 기수라는 소문이 났을 때였다.

정식 수련생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아야겠다고 아득바득 밀고 들어오던 녀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독하고, 피곤한 놈들!’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녀석들.

당연히 감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어지는 힌츠 기자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 님을 꺾기 위해 고민 중이시군요.”

“…….”

“앞서 브랫 로이드 님이 말씀해 주신 세 가지 조건, 잘 들었습니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이야기, 과연 크로노 27기 최고의 기재다운 통찰력입니다.”

“……주변에서 엿듣고 있었나?”

“엿듣다니요. 매우 서운합니다. 아무래도 제 귀가 워낙 밝은지라…… 멍하니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온갖 이야기가 들어오는 편입니다.”

“말장난을 할 거면…….”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라면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만 있어도 됩니다. 하지만 증명의 땅의 챔피언이기까지 한 일리아 린제이를 꺾고 싶다면, 그것도 4달이라는 촉박한 기한 내에 꺾고 싶다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뭐요?”

잠자코 힌츠의 말을 듣던 쿠바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굉장히 말이 많은 양반 같은데, 이런 식으로 잘라먹지 않으면 끝도 없이 자기 하고픈 이야기를 늘어놓을 게 뻔했다.

아마 자신의 이런 반응을 유도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궁금증을 푸는 게 우선이었다. 아이른과 루루 역시 비슷한 생각으로 눈앞의 엘프를 바라봤다.

다행히 힌츠는 더 질질 끌지 않았다.

“바로 상품성을 키우는 겁니다.”

“……설명을 부탁합니다.”

“예, 바로 설명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증명의 땅은 설립된 이후 최고로 치열한 상황입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경에 이어서 일리아 린제이 님까지, 짧은 사이에 2번이나 최연소 소드마스터 기록이 바뀌었죠. 덕분에 불카누스의 넘버링 소드처럼, 증명의 땅에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는 좋은 기운이 흐르는 게 아니냐는 미신도 퍼지고 있습니다.”

“…….”

“조용히 폐관 수련을 하던 실력자들이 아이젠마르크트로 몰려옵니다. 옛 챔피언이었던 괴물들이 아이젠마르크트로 몰려옵니다.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검사들도 한가득 몰려들고, 그렇듯 높아진 검투 수준을 기꺼워하며 모여드는 실력자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죠. 하나하나가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순번이 밀려서, 챔피언과의 대결이 성사조차 될 수 없다는 부분을 말하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싸울 기회는 저 멀리 날아갑니다. 증명의 땅은 검투장, 곧 관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무대니까요.”

힌츠의 말을 들은 쿠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챔피언의 몸이 여러 개라면 모를까, 한정된 일정 속에서는 소수의 도전자만이 그녀와 대결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실력은 물론이고, 관객들이 좋아할 흥행성까지 갖추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일행 전체가 생각에 잠겼다.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랫도,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른도 힌츠의 말을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네 번째 조건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반대로 부탁드립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네?”

“제 손을 잡아 주신다면…… 이 아이젠마르크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실력자인 이 힌츠 기자가, 당신을 증명의 땅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꼭, 꼭 저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생적인 가벼운 분위기를 벗어던진 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힌츠.

그의 눈에는 커다란 원석을 발견한 세공사처럼 진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엘프 기자를 보며, 이번에는 브랫도 싫은 소리를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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