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22화 (122/388)

◈ 39. 소드마스터를 이기려면 (1)

“제정신이야?”

일리아 린제이가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물었다.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누구도 깰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이그넷의 최연소 소드마스터 기록을 정복한 사람이다.

아니, 그런 수식어조차 필요하지 않다.

‘소드마스터’는 그 자체로 찬란하기 그지없는 이름이었으니까.

‘그런 나를 꺾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리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아이른을 훑어봤다.

예전보다 훨씬 발달한 육체, 그리고 방금 드러냈던 기운.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지난 5년 반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을.

아마 웬만한 소드 엑스퍼트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나는 못 이겨.’

당연한 말이었다.

엑스퍼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엑스퍼트.

마스터의 경지에는 절대로 비빌 수 없다.

검사들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의 어린아이들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른은 당당했다.

“응. 제정신이야.”

“…….”

“지금 당장 이긴다고는 안 했잖아. 남은 네 달,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널 따라잡을 거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빙긋 미소 지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일리아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아는 아이른은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가끔은 속이 답답할 정도로 무뚝뚝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순한.

그렇기에 더 눈길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이른이 이런 도발을…….’

아니, 도발조차 아니었다.

눈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120일 만에 자신을 꺾을 실력을 갖춰 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로지 자신을 막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내가 이러는 건 널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아이른의 달라진 모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검술관에서도 그랬던 적 있잖아. 의견 충돌로 잠깐 소원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풀고, 화해하고…….”

“…….”

“이번 일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 나는.”

“…….”

“4달 후, 한번 멋지게 싸워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른이 일리아에게 손을 뻗었다. 악수하자는 제스처였다.

물론 그녀는 받아 주지 않았다.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응.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예전의 너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

“내 말이 진짜라는 걸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말을 마친 아이른이 어색하게 손을 회수했다.

허나 표정만큼은 확신이 넘쳐흘렀다.

그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일리아가 멍한 눈빛을 보내는데, 문을 나서는 아이른이 잠시 멈춰선 뒤에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싫은 소리만 잔뜩 해서 미안해.”

“…….”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다음에 보자.”

덜컥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떠났다.

덩그러니 남겨진 일리아 린제이는 한참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돌아가고, 방금 있었던 일을 찬찬히 곱씹을 여력을 찾은 순간.

일리아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어째서…….’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그녀가 느낀 것은 짙은 서운함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따라온, 그보다 훨씬 큰 기쁨과 반가움이 그러한 감정을 뒤덮었다.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있어 일리아 린제이가 소중하듯, 그녀에게 있어서도 그는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존재가 자신을 정면에서 부정했다.

단순히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했다. 억지로라도 멈춰 세우겠다고 했다.

그것이 일리아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묻혀 있던 서운함이 드러나고, 그보다 더 깊은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을 불태우는 화마(火魔)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그런 그녀를 진정시킨 것은, 옛 추억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일리아 린제이가 서랍 한구석을 뒤졌다.

그리고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성장해버린 신체 때문에 더는 착용하기 힘들어진, 복수초가 음각된 은팔찌, 그리고 편지.

모두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신에게 건네준 것들이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꺼낸 편지를 조심스레 펼쳐, 안의 내용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몸을 잠식해 갔던 화마가 잠잠해졌다.

일리아가 생각했다.

‘그래. 아이른이 날 싫어할 리가 없어.’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던 자신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해 줬던 존재.

자신의 험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바보같이 순한 모습으로 다가와 화해를 청했던 존재.

그런 그가 다른 녀석들과, 오빠와 자신의 가문을 헐뜯는 멍청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품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의견 차이일 뿐이구나.’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잠시 생각이 엇갈렸을 뿐이다.

물론 누구의 생각이 맞는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아이른…… 아무리 너라도…….”

져 줄 생각은 절대 없어.

조용히 중얼거린 일리아 린제이가 다시금 고개를 숙여 아이른의 편지를 바라봤다.

두 번 더 내용을 읽어 내린 그녀가 조심스레 팔찌와 서신을 서랍에 넣으며 생각했다.

조만간 사제님을 찾아가야겠다고.

* * *

“시팔, 시팔시팔시발.”

시원하게 욕설 한 사발을 쏟아낸 당찬 여성, 주디스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를 거닐었다.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꽤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저 멀리, 하늘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어찌 감정이 좋을 수 있겠는가.

다만 처음의 충격과 우울함, 열패감은 상당 부분 떨쳐낸 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투쟁의 불꽃을 피워낼 연료로 바꿔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 인정할게. 지금은 네가 나보다 훨씬 위야.’

주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머리가 찰랑찰랑 휘날릴 정도로 크게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엑스퍼트고, 일리아 린제이는 소드마스터니까.

그 대단한 제트 프로스트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승부를 점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5년 후, 10년 후라면.’

……솔직히 말해, 10년으로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크로노 검술관의 부관주인 케이라 핀의 배우자, 쿤은 이안 관주를 꺾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절치부심하지 않았는가.

“……두고 봐라.”

주디스가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낮고 흉포한 목소리를 냈다.

이겨낼 것이다.

끝끝내 이겨낼 것이다.

비록 지금은 한참 낮은 곳에서 녀석을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일지라도, 언젠가는 아득바득 그곳까지 기어 올라가 같은 선상에 서고 말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알겠냐고오오오오!”

“아, 깜짝이야!”

“뭔 일이야?”

“갑자기 뭔…… 미친 사람인가?”

대로변에서 갑자기 괴성을 지른 주디스를 보며 여러 사람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숙소의 앞까지 도착한 그녀가 헷, 하고 웃음 지은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일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브랫 로이드, 아이른 파레이라, 루루에 쿠바르까지.

오랜만에 다섯 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쁘지 않은 기분을 느낀 그녀가 평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브랫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음?”

아니, 브랫뿐만이 아니었다.

루루야 고양이다 보니 표정을 잘 읽을 수 없다지만, 오크인 쿠바르는 그래도 인간과 비슷하다 보니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요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브랫과 쿠바르, 둘 다 아이른을 요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브랫이 황당하다는 말투로 아이른과 일리아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아이른은 소드마스터와 4달 안에 결판을 내기로 했다. 그것도 검술로.”

“…….”

“예전부터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미친 짓을 벌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브랫이 재차 맥주를 들이켰다.

그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른의 실력이 나이답지 않게 대단한 것은 맞다.

아마 증명의 땅에서도 굉장히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4달 안에 마스터를 꺾을 정도로 성장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쿠바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루루만이 아이른의 의견을 적극 지지했다.

“멋있어, 아이른! 역시 요술사는 이래야지! 불가능한 걸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면 평생 한계를 못 깨! 나는 아이른이 소드마스터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진짜로 믿어!”

“답이 없는 고양이군.”

“너, 혼난다!”

아이른의 품에서 펄쩍 뛰어오른 루루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한창 수련에 매진하느라 얌전했던 그였는데, 오늘은 꽤 신이 난 모습이었다.

물론 제3자가 보기에는 귀엽기만 할 뿐.

아마 평소의 주디스였다면 루루를 껴안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렸을 것이다.

그녀는 옷에 고양이 털이 묻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주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나도.”

“응?”

“나도, 한다.”

“뭘?”

“나도 도전한다고! 일리아 린제이, 그 자식하고 결판내러 왔으니까, 나도 챔피언 노린다!”

쾅!

주디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루루와 브랫, 아이른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고, 쿠바르는 주먹이 부딪힌 자리를 바라봤다.

다행히 흠집이 나지 않았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주디스가 다시 한번 주먹을 내리쳤다.

콰앙!

콰지직-!

“아, 안 돼!”

“아이른, 너만 잘난 거 아니다! 나도 자존심, 승부욕 하면 어디 가서 안 지는 사람이야!”

“…….”

“하, 하여튼 그렇게 알아! 나 수련하러 간다.”

“어디에서…….”

“어디든!”

아이른의 말에 빼액 소리 지른 주디스가 여관을 나서기 위해 움직이다, 카운터에 들러 은화 한 닢을 건넸다.

테이블 파손에 대한 배상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상식적으로 변한 그녀를 보며 브랫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일리아가 아니라 너한테 자극받았네. 그럴 만도 하지.”

누군가가 상식 밖의 목표를 설정한다.

이를 본 대부분은 비웃음을 던지겠지만, 주디스는 아니다.

그 상식 밖의 목표를 세우지 못했던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고, 그보다 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아는 주디스는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푸른 머리 청년이 아이른 파레이라를 쳐다봤다.

주디스야 원래 그런 녀석이라 치고, 이 녀석은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승부를 제안했는가.

“아이른.”

“응?”

“자신 있어?”

“무슨 자신?”

“일리아 이길 자신. 뭔가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없는데?”

너무나도 당당한 발언.

브랫이 멈칫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아이른이 재차 말했다.

“지금 일은 할 수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야.”

“…….”

“한다, 안 한다가 중요한 문제지. 그리고 나는 무조건 할 거야.”

아이른이 엄숙하고 진지하게 선언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브랫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도와줘.”

“뭐?”

“어떻게 해야 소드마스터를 이길 수 있을까?”

“……?”

“지금부터 아이디어 회의라도 해 보자.”

“……미친놈.”

아이른에게는 꽤 점잖은 말투를 사용해 오던 그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브랫이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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