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12화 (112/388)

◈ 36. 무섭고, 독한 녀석들 (1)

“지금 이게 뭔…….”

하이람의 말을 들은 제트 프로스트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젊은 검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기세를 전혀 감추지 않고,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세 명.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놈들, 전부 엑스퍼트였다.

‘미친…… 말이 돼? 저 나이에? 셋 다 엑스퍼트?’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재능이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자신도 재능 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22살에 엑스퍼트에 올랐고, 35살에는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올랐다.

허나 저들의 자세에서 느껴지는 수준은…….

‘그냥 평범한 엑스퍼트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음인가.

중앙에 있는 푸른 머리 청년, 브랫 로이드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선배님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족하나마 저희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크로노 검술관의 27기 수련생, 브랫 로이드라고 합니다.”

“크로노 검술관 27기 수련생, 주디스입니다.”

“크로노 검술관 27기 수련생, 아이른 파레이라라고 합니다.”

“……!”

“무례할 수도 있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잠깐……!”

화아아악-!

제트 프로스트가 당황한 얼굴로 외쳤지만, 브랫 로이드는 멈추지 않고 더욱 강하게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옆에 서 있던 주디스와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한껏 기세를 끌어올렸다.

슬금슬금 좌우를 점령하려는 둘을 보며 제트 프로스트가 속으로 말했다.

‘이런 젠장!’

당했다.

설마하니 크로노의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27기가 한꺼번에 몰려올 줄이야.

게다가 소문보다도 훨씬 강하잖아!

허나 이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 전에 세 명의 엑스퍼트가 자신을 향해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팟-!

콰앙!

“……!”

돌덩이처럼 밀고 들어오는 금발 청년.

공격이 상당히 묵직했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격에 검을 잡은 손이 찌르르 울렸다.

물론 이 정도로 당황할 제트 프로스트가 아니었다.

힘에는 더 강한 힘!

오러를 끌어올린 그가 괴력으로 상대를 밀어냈다.

그리고 균형을 잃은 상대를 향해 재차 검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터엉!

허나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푸른 머리, 브랫 로이드가 제트 프로스트를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주디스라는 이름의 녀석이 빠르게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뒤를 잡히면 배는 까다롭다!’

물러서야 할 때임을 깨달은 그가 빠르게 지면을 박찼다.

“와!”

주디스가 순수한 감탄을 토해냈다.

뒷걸음질 한 번으로 미끄러지듯 물러나는 제트 프로스트의 움직임이 빠르면서도 매끄러웠다.

보법에 특히 신경 쓰는 그녀였기에 상대의 발걸음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동작을 각인하듯 기억해 둔 주디스가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해 열심히 발을 놀렸다.

브랫 로이드와 아이른 역시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쾌속하게 전진했다.

그렇게 끈질긴 추격전이 이어졌다.

쾅!

카앙!

터엉!

쒜에엑-!

콰앙!

따라잡히고, 도망가도. 또 따라잡히고. 크로노 삼인방은 계속해서 제트 프로스트를 몰아세웠다.

물론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밀함도, 힘도, 빠르기도 엄청난 그의 검을 혼자서 막아 내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제트는 어떻게든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내 순간적인 압박으로 셋 중 하나를 거칠게 찍어누르려 했다.

허나 곧바로 따라붙는 나머지 둘 때문에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한 명을 제압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녀석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트 프로스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하나하나가 하이람보다 강하다. 친우에게 미안하지만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이 정도면 증명의 땅의 킹(King) 급 무대에도 너끈히 설 수 있는 실력이다.

그런 녀석들의 나이가 스물이라고?

불합리했다.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자신조차 용납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아니, 천재고 나발이고 지면 절대 안 돼!’

화가 난다.

짜증도 난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랐고 뭘 보고 배웠기에 그렇게 빨리 강해졌냐고, 싸움을 멈춘 뒤에 멱살 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저 녀석들은 지금 자신을 벗겨 먹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니까.

그리고 안달 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동안 스승 노릇이라니, 절대 안 돼!’

자원봉사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심심할 때만 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노예 짓이다!

불행한 미래를 상상한 그의 눈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아이른이 멈췄고, 주디스 역시 거리를 벌린 채 상황을 살폈다.

브랫 로이드는 반대였다.

기세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더욱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셋의 의견이 갈린 상황.

원하는 흐름이 된 것을 느낀 제트 프로스트가 기합과 함께 검을 집어던졌다.

“하아압!”

쒜에에엑-!

“읏!”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보며 주디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검을 집어던질 줄이야.

물론 놀란 것과 별개로 몸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중심을 낮춘 그녀가 단단한 자세로 검을 쳐 냈다.

그 사이 허리춤에서 새로운 검을 뽑아낸 제트 프로스트가 브랫을 향해 돌진했다.

예비용 검을 믿었던 거구나!

아차 싶은 주디스였지만 호흡을 뺏겼다.

물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살짝 뒤처져있긴 하지만 아이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브랫 녀석의 뺀질거리는 방어를 생각하면, 아이른이 합세할 때까지 버티는 것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제트 프로스트의 돌발 행동이 터졌다.

콰아아앙!

“……!”

그가 강하게 바닥을 걷어찼다.

그러자 매끄럽던 연무장의 돌바닥이 굉음과 함께 파였다.

허공에 파편이 튀었고, 그중 가장 큰 덩어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해 날아갔다.

검을 던지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이런 공격은 정말이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아이른 역시 마찬가지여서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빠르게 브랫을 향해 다가선 제트 프로스트가 강렬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침착해. 두 번, 아니 한 번만 막아 내면 된다!’

제대로 흘려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브랫은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았다.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막아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여태껏 수많은 크로노의 선배 기사들을 상대해 왔던 자신이 아닌가!

결연한 표정을 지은 그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깊은 눈동자가 상대의 검날, 그리고 눈을 주시했다.

“…….”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제트 프로스트의 눈동자에 담긴 필살의 의지.

막아서는 무엇이든 가차 없이 베어 버리겠다는 마음!

“읏……!”

기세에서 밀린 브랫 로이드가 뒤로 후퇴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는 듯 매끄러운 움직임이었지만, 제트 프로스트가 상대하기에는 훨씬 쉬운 대처였다.

한 발자국 크게 내디딘 그가 손목을 움직였다.

베기에서 찌르기로 궤적을 바꾼 검이 브랫의 명치를 톡 건드렸다.

“하나 끝났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주디스가 측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아이른 역시 늦게나마 그를 향해 쏘아져 왔다.

허나 괜찮았다. 둘을 상대하며 호시탐탐 뒤를 노리는 상대까지 신경 쓰는 것과 온전히 둘만 상대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약 1분 정도 치열하게 검을 나누던 제트 프로스트가 아이른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혼자가 된 주디스의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둘 끝났다. 후우…….”

아이른이 균형을 잡았을 때는 이미 주디스까지 정리된 상황.

상대의 상냥한 검에 찔린 그녀의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설마 3 대 1로 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브랫 로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한숨 돌린 제트 프로스트가 조언했다.

“브랫 로이드라고 했나? 자네.”

“예.”

“검술이 안정적이야. 나이에 맞지 않는 완숙한 솜씨가 무척 인상적이었어. 하지만 견적을 내는 안목이 부족해. 아니면 너무 안전 중시거나.”

“못 받아낼 검이었지 않습니까?”

“아니. 절대 지기 싫은 내기가 걸려 있긴 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지도 대련에 충실했어. 자네 수준에서 가까스로 받아낼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검을 휘둘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난 건, 기백에서 밀린 건 물론 평정심을 잃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어.”

“…….”

“할 말 있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랫이 깨끗이 승복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제트 프로스트가 주디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격이 단조로워.”

“뭐요? 어디가…….”

“찌르기는 어따 팔아먹었어? 도를 쓰는 것도 아니고, 검 다루면서 베기만 하는 건 무기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꼴이야.”

“하지만…….”

“됐어. 이건 제대로 알려 주기엔 너무 이야기가 길어져서 어쩔 수 없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나름의 답을 가지고 오면, 한 번쯤은 상대해 주지. 발놀림이 마음에 들어서 호의를 베푸는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제트 프로스트는 반론을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주디스는 그런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패배한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셋이서도 이기지 못한 상대를 그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것을 아니까 제트 프로스트 역시 대련이 끝난 것처럼 조언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너는…… 그래. 기왕 혼자 남은 거, 조금 더 놀아주지.”

“예?”

“선수를 양보하마. 공격이 꽤 무겁던데, 네가 부딪칠 수 있는 전력으로 한번 와 봐라.”

“……!”

“그다음에 너와 똑같은 방식으로, 중검의 맛을 더욱 잘 살려서 보여 줄 테니까. 마음 편하게 들어와.”

“푸, 푸하하하하하하하!”

“……?”

제트 프로스트의 말을 들은 주디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 재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쾌한지, 밀폐된 연무장이 떠나갈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제트 프로스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웃는 것은 주디스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던 브랫 로이드마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저러니 제트 프로스트는 괜히 마음이 찜찜해졌다.

그가 하이른을 쳐다봤다.

“이 녀석들, 왜 그러는지 알아?”

“나도 모르네.”

하이람 검술관주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지금껏 잠자코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자 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

“……!”

하이람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른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을 보다 더욱 놀란 모습이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제트 프로스트 역시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금발 청년의 모습을 바라봤다.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모두의 시선을 받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나직이 말했다.

“선수를 양보하겠다고 하셨죠?”

“…….”

“낙장불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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