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06화 (106/388)

◈ 33. 천재와 천재, 그리고 또 천재 (1)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이 브랫 로이드, 주디스와 조우한 지 사흘째.

그들은 원래부터 함께 여행을 다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파티에 녹아들었다.

물론 넉살 좋은 쿠바르와 주디스에게 호감을 보이는 루루다 보니 쉽게 친해질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거리가 가까워질 줄은 아이른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쿠바르와 브랫 로이드의 관계가 의외였다.

“버번?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마셔 본 적은 없는데…… 한 모금 마셔 봐도 됩니까?”

“물론이지. 여기 있네.”

“으음…… 생각보다 괜찮군요. 일반 위스키보다 달고 진한 느낌이긴 한데…….”

“허허. 그게 버번의 매력일세. 원료가 옥수수이기도 하고, 사용하는 오크통도 다르다 보니 맛이 다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거 아나? 지금 마신 버번, 숙성 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는다네.”

“뭣…… 3년밖에 안 됐는데 이런 맛이 난다고?”

“허허. 버번이 생산되는 지역이 워낙 덥다 보니 애초에 길게 숙성할 수가 없다더군. 그래도 괜찮지 않나?”

“확실히…… 나쁘지 않군요.”

도대체 언제부터 취미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랫 로이드는 꽤나 술에 해박했다.

허나 그런 그조차도 주당 중의 주당인 쿠바르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더 깊고 넓은 알코올의 세계를 알아가기 위해 점술사 오크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쿠바르로서도 그런 브랫을 기꺼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른과 루루라는 건전한 친구들 사이에서 외롭게 술을 마시던 그에게 처음으로 술친구가 생긴 셈이니,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둘은 아이른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아도 급속도로 친해졌다.

마차를 모는 떠돌이 오크 옆에서 진지하게 술 이야기를 듣는 고위 귀족의 모습은 말로만 들어서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지만, 아이른의 눈에는 마치 10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쿠바르가 브랫하고만 친분을 나누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브랫만큼이나 주디스와도 끈끈한 모습을 보여 줬는데, 둘 사이를 이어 준 매개체는…… 다름 아닌 점술이었다.

“자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감나무 있었지?”

“……어떻게 알았어요?”

“고양이도 많이 돌아다녔지?”

“……!”

“청새치 그림 그려져 있는 간판도 있었지 않나?”

“어, 어떻게 그것까지!”

시작은 평범했다.

돌팔이 점술사가 으레 그렇듯, 쿠바르는 무난하게 들어맞을 만한 이야기로 서두를 열었다.

감나무 하나쯤 없는 동네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 고양이 없는 동네가 얼마나 되겠는가.

심지어 주디스는 술에 취해 자신이 살던 곳에 검은 고양이가 돌아다녔다는 말도 했었다.

그녀는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유일하게 찾아보기 힘든 게 청새치가 그려진 간판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주디스가 살던 지역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동부 파바르 해안가는 청새치가 잘 잡히기로 소문난 곳이니까, 그런 간판 하나쯤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여튼, 이러한 연유로 주디스는 쿠바르의 점술 실력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짜로 점을 봐주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한심한 것.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는 너무 미신을 잘 믿어. 그러다가 루루한테도 술 먹고 실수…….”

“그때 이야기 한 번만 더 꺼내면 뒤진다. 진짜로.”

“……어쨌든, 그런 거에 너무 빠지지 마라. 다른 말은 백 번 천 번 해도 안 들어 먹으면서…….”

“지금 쿠바르 씨 욕하는 거야?”

“아니 쿠바르하고는 나도 친한데,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

“점성술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견하는, 중요 학문의 한 갈래라고. 태양과 달, 별자리랑 혜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해서 쌓인 정보를 토대로 인간의 운명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

이미 깊게 빠져 버린 주디스를 상대로 브랫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점성술을 통해 쿠바르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오히려 교류가 적은 것은 루루였는데, 물론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딱히 사이가 나빠서라기보다는, 그가 여전히 요술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앉은 자세로 명상을 하고, 밥을 먹고 난 뒤에도 또다시 수련에 전념하니 대화를 할 시간 자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주디스, 브랏 로이드. 이거 먹을래?”

“……브랏 아니라 브랫.”

“아 맞다, 미안. 하여튼 이거 먹을래? 생연어에 특제 소스를 바른 건데, 인간들 입맛에도 꽤 맞다고 하더라고. 맞지, 아이른?”

“응. 나는 맛있더라.”

“그래? 생선을 생으로 먹어 본 적은 없는데…… 음! 뭐야 이거, 생각보다 엄청 괜찮은데?”

“……확실히 나쁘지 않군.”

허나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 때만큼은 루루 역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둘과 교류했기에, 아이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데린쿠에서의 일 이후로 워낙 신경이 곤두선 느낌이라 걱정했었는데…….’

처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샬럿&빅터의 습격 사건.

그리고 그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이그넷과의 일.

그 때문에 최근의 루루는 어딘가 쫓기는 사람처럼 여유 없고 초조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것이 브랫과 주디스 덕분에 많이 완화된 느낌이었다.

“아이른, 다 먹었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점심 식사를 마친 주디스가 아이른 파레이라를 불렀다. 그가 답했다.

“응. 왜?”

“왜긴 왜야. 밥 먹고 할 일은 정해져 있잖아? 빨리 일어나서 검 들어.”

검집에서 검을 빼 든 주디스가,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희게 웃었다.

“대련해야지.”

“……그래.”

식사 이후의 대련.

이것 역시 둘을 만나기 전과 달라진 부분이었다.

* * *

아이른 파레이라와 주디스, 브랫 로이드 사이의 대련은 전력으로 치러지지 않았다.

진검을 들고 겨루는 이상 힘의 여분을 남겨 놓지 않으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도시나 마을이라도 가까우면 모를까, 노상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수습할 길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힘을 빼고 검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력의 약 80~90% 정도.

검술 실력의 우열을 가르기엔 충분한 수준으로, 아이른 역시 동기들과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약하구나.’

예상한 일이긴 했다.

코라 머레이의 별장에서 대련했을 때도 느꼈지만, 둘의 검술 완성도가 자신보다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지. 검술관에서는 둘 상대로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했으니까…….’

자신이 최종평가에서 차석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발 필살의 참격 덕분.

실전에서는 브랫과 주디스에 비해 한참 모자랐었다.

사실 검술관 최고의 천재인 둘과 일대일 승부가 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넘어 자만해도 충분할 성장 속도였다.

물론 아이른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 둘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주디스의 검술은…….’

주디스의 경우 거칠고 폭력적이던 성향에 자유로움과 경쾌함이 더해졌다.

애초에 형체가 없는 불을 닮았기 때문일까, 강하게 몰아치다가도 도깨비불처럼 휙 꺼져 버리는 보법은 아이른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였다.

브랫 로이드도 마찬가지. 그 역시 아이른의 마지막 기억보다 훨씬 더 세련된 검술을 뽐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훨씬 더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공격을 모조리 흘려 버리는 브랫에 비해, 걷어내는 게 고작인 자신의 방어술은 훨씬 둔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러한 간극을 더욱 벌려놓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가 간간이 섞어 쓰는 ‘오러 활용’이었다.

콰앙!

쾅!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주디스의 연격.

헌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불똥이 튀기듯 터져 나오는 오러가 아이른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소드마스터의 오러 소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완성된 오러 소드는커녕 샬럿과 빅터가 무리해서 검에 둘렀던 오러와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힘.

상대에게 타격을 줄 에너지 따윈 거의 담겨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나 그 극소량의 오러에 불꽃 같은 투기가 담기니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용암이 튀듯 사나운 태세로 짓쳐드는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후우, 졌어.”

“좋아! 이걸로 8승 1패!”

시종일관 유리한 상태에서 승리를 따낸 주디스를 보며 아이른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예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그넷과의 만남에서 투쟁심을 깨달은 이상 패배는 쓰리고 아플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을 두려워해서 주저앉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차례를 기다리던 브랫 로이드가 다가와 말했다.

“체력은 문제없지? 바로 할까?”

“얼마든지.”

“하긴, 네 체력을 걱정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겠지. 간다.”

이어지는 두 번째 대련.

처참한 주디스와의 대전 결과와는 다르게, 아이른의 대 브랫 로이드 전적은 4무 2패였다.

전적만 놓고 보면 나름 비등비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른은 브랫을 이길 자신이 거의 없는 데 반해, 브랫은 아이른에게 질 자신이 전혀 없었다.

둘 사이에 무승부가 많은 것은 브랫의 검술이 공세보다 수세에 뛰어난 탓이지, 아이른의 실력이 뛰어나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를 더욱 벌려놓는 브랫 로이드만의 오러 활용법.

그것이 대련이 이어지는 내내 조금씩 흘러나왔다.

스아아……

새벽녘 강가를 산책할 때면 느낄 수 있는 옅은 기운.

허나 어느새 자신의 몸을 축축하고 무겁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

브랫의 오러는 마치 습기와 같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아주 옅게, 주디스보다도 더욱 적게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처음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허나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주변을 짙게 채우는 그의 오러 덕분에, 아이른은 점차 동작이 둔해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내 체력이 좋은 편이어서 오래 버텨 낼 수 있는 거지, 평범한 수준이라면 진즉에 결판이 났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브랫의 오러는 끊임없이 흘러나와 아이른의 행동을 제약했다.

그렇게 20분가량 대련이 이어지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결판은 나지 않았다. 지루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주디스가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이었다.

“아, 재미없어! 그만해!”

“난 재밌는데.”

“언제까지 너희들끼리만 놀 건데?”

“무슨 소리야. 너랑 아이른 한 번, 나랑 아이른 한 번. 이제 겨우 두 번째잖아.”

“나 한 번 하는 데 5분 걸리고, 너희 둘이서 1시간씩 칼질하고 있으면 그게 같은 한 번 맞아? 비켜. 나 아이른이랑 한 번 더 뜰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브랫이 상대를 바라봤다.

엷게 웃은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또 다시 무승부로 대련을 끝낸 브랫이 물러나고, 주디스가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쾅!

콰앙!

콰아앙!

아까보다 더욱 강렬한 기세로 맞부딪치는 둘을 보며, 브랫 로이드가 생각했다.

‘주디스도 자극이 많이 되는 모양이야.’

브랫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이른은 모를 것이다.

그가 자신과 주디스를 의식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과 주디스 역시 그를 신경 쓰고 있음을.

그러나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둘의 싸움에서 시선을 뗀 브랫이 위를 올려다봤다.

눈은 하늘을 향했지만, 머릿속은 아이른이 머레이 가의 별장에서 펼쳤던 참격을 향하고 있었다.

오러의 발현, 그리고 집중.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재능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는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여기 있는 셋 중 소드마스터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저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본격적으로 검을 수련한 지 6년 만에, 아니 1년 만에 마스터로 향하는 길을 열다니.

그런 천재를 앞에 두고 방심할 검사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터였다.

‘꿈속 남자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따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니까.’

콰아앙!

쒜엑-!

“큭…….”

“오 예! 이걸로 9승 1패! 승률 90퍼센트 달성!”

또다시 아이른을 쥐어패고 기뻐하는 주디스를 보면서, 브랫이 혀를 찼다.

이긴 거면 이긴 거지, 왜 저렇게 도발을 하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저 자식은 평생 저럴 자식이었다.

한숨을 내쉰 그가 터벅터벅 둘에게 다가갔다.

주디스가 말했다.

“뭐야. 표정 왜 그렇게 띠꺼워? 이번엔 아이른 말고 너랑 한번 붙어야겠는데?”

“최근 전적 2승 무패인 내 입장에서 아주 같잖아. 당장 박살 내 주지. 대신…….”

허억, 허억. 숨을 고르고 있는 아이른 파레이라 쪽으로 시선을 돌린 브랫 로이드가 말했다.

“몸으로 싸우는 건 이쯤하고, 이번엔 입으로 한번 싸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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