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03화 (103/388)

◈ 32. 재회 (4)

“……?”

브라이언 번스의 고개가 절로 브랫 로이드 쪽으로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라고?

그러면, 지금까지는 제대로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둘이 보여 준 검술만 해도 젊은이들 사이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보다 강했다. 엑스퍼트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자신보다…….

‘그 말은…… 저, 20살이 될까 말까 한 이들 모두 엑스퍼트에 도달했다는 뜻인데…….’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라고?

그는 한참이나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다시 연무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코라 머레이를 비롯한 머레이 상단의 모든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다가와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을 휙 둘러본 주디스가 말했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 아이른.”

“수련을 열심히 했거든.”

“그러게, 그런 티가 나. 자신의 검을 찾는다기에 명상 같은 거나 주구장창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봐?”

“하하…….”

“혼자 배웠을 리는 없고, 누구한테 배웠어?”

“음…….”

질문을 받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배웠다고 하기도, 너희들에게 배웠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간단히 설명하려다가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다.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하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주디스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땀 한 방울 나지 않은 몸뚱이와 웃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

그것들이 그녀가 얼마나 여유 있는 상태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허나 여유가 있는 것은 아이른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집중한 그가 주디스를 바라봤고, 주디스 역시 긴장과 기대, 흥분이 서린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대련의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장감.

순간, 주디스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쩌적-!

연무장 바닥에 균열이 갈 정도로 강한 도약!

허공으로 뛰어오른 것이 아니었다.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스치듯이 날아오는 그녀의 모습이 한 줄기 섬광과 같았다.

아이른은 놓치지 않았다.

날카롭게 빛나는 그의 눈이 상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뒤이어 거대한 검이 내리꽂혔다.

퍼엉!

주디스가 피했다. 뒤나 옆으로 피한 것이 아니었다.

한 번 더 발을 굴러 빠르게 대쉬한 그녀가 왼 팔꿈치로 아이른의 복부를 노렸다.

검보다 훨씬 짧은 직선거리를 타고 날아오는 기습 공격!

아이른이 오른 무릎을 들어 방어했다.

터어엉

무게중심을 뒤로한 덕분에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다. 그 틈에 검을 회수한 아이른이 자세를 갖췄다.

허나 주디스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쾅!

쾅!

쾅!

콰앙!

콰아아앙!

불꽃이 폭발하듯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베기 공격!

무지막지한 빠르기였다.

연무장에 모인 대부분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주디스의 공세를 바라봤다.

머레이 가의 인물들 중 오로지 브라이언 번스만이 그녀의 동작을 눈으로 좇았으나, 그 또한 저것을 막아낼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그렇기에 더 충격이었다.

30년간 검에 매진해 온 자신조차 막아 낼 수 없는 저 무자비한 공세를 모조리 막아 내는.

아니, 주디스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공격으로 응수하는 아이른 파레이라란 청년의 검술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푸른 머리, 브랫 로이드라는 청년의 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공증을 서기 전 들었던 말로 이 자는 주디스, 아이른 파레이라의 동료라 들었다.

저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까 했던 말도 있고 말이야.’

허나 대련을 지켜보는 그의 표정은 자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놀란 모습이었다.

‘무슨 일일까?’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브라이언 번스는 이내 이 생각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런 것에 집중하기에는 둘의 검술이 너무나도 대단했다.

브랫을 쳐다보느라 낭비했던 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대련 자체에 몰입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다 보니 깨달았다.

두 남녀의 검술이, 꽤나 흡사하다는 것을 말이다.

콰앙!

쾅!

콰아앙!

엄청나게 단련된 코어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균형감.

그렇기에 가능한 엄청난 회전력, 그리고 충돌에서 나오는 반작용력이 더해진 엄청난 강격(强擊)들.

물론 차이가 있기는 했다.

금발 청년의 검술이 단조롭고 투박한 것에 비해, 적발 여성의 검술은 훨씬 경쾌했다.

무엇보다 발이 자유로웠다.

실제로 그녀는 청년의 주변을 빙빙 돌며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강렬하면서도 자유로워 마치 들불이 번지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 줄 정도였다.

하지만 청년은 쓰러지지 않았다.

“…….”

“…….”

상대보다 둔하고 무거운 움직임. 반 박자씩 늦게 따라가는 대검이 그를 위태위태하게 만든다.

허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지켜보는 이들이 숨을 죽일 정도의 긴박감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버텨 냈다.

그에 따라 조마조마하던 브라이언 번스의 마음 역시 점차 안정되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감탄했다.

어느새 금발 청년의 검술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밀도 높은 물로 주변을 둘러친 것 같다!’

밖에서 아무리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도, 강렬한 폭발을 쏟아내도 모조리 걷어낼 것만 같은 기이한 분위기.

그야말로 무적의 방어술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저것을 뚫어낼 자신이 없었다.

아마 저 기묘한 원의 흐름에 휩쓸려 원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검이 엇나갈 것 같았다.

브라이언이 힐끗 옆을 돌아봤다. 브랫이라는 청년 역시 이를 느낀 듯, 표정이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저 청년의 실력에 놀랐다기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놀란 것 같은 느낌인데…….’

그의 머릿속에 또다시 의문이 들어찰 때였다.

한참을 수세에만 매달렸던 청년의 대검이 쏜살같은 속도로 내질러졌다.

“헙!”

주디스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상대의 방어를 깨부수기 위해 보다 강한 공격을 날리려던 참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찌르기에 호흡과 균형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결국 공세를 포기한 그녀가 우악스러운 동작으로 이를 걷어냈다.

터엉

파팟-!

그리고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났다.

또다시 고요가 내리깔렸다.

“…….”

“…….”

넋이 나가 버린 코라 머레이와 구경꾼들.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라이언 번스.

그리고 누구보다 심각한 얼굴로 아이른 파레이라를 쳐다보는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

잠시 후,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주디스가 물었다.

“지금 보여 준 검술, 설마 나 따라 한 거야?”

“……참고를 많이 했지.”

“설마 지금 보고 바로 따라 한 건 아니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중반부터 쓰던 건 브랫의 검술이었으니까. 그리고…….”

주디스가 휙 검을 내질렀다. 어설프지만 아이른이 마지막에 보였던 찌르기와 흡사한 동작.

그녀가 물었다.

“……이건, 하늘검이지?”

“……!”

“……!”

그녀의 말에 연무장에 모인 대부분이 놀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부 5왕국 중 하나인 마이오스 왕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늘검’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지금 언급된단 말인가?

그때, 지금껏 조용히 있던 브랫 로이드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실하다. 하늘검 맞다.”

“그래?”

“본 건 최종평가 때, 딱 한 번뿐이지만……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때의 충격을.”

브랫 로이드가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속에서 5년 반 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준 두 검술 중 하나.

후우, 한숨을 내쉰 그가 눈을 뜨고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물었다.

“설마, 최종평가 때의 기억을 토대로 지금의 검술들을 완성한 건가?”

“…….”

아이른이 또다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브랫 로이드와 주디스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한번 본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허나 이를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요술세계에서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고, 아이른은 이를 공개된 장소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이것도 이따가 말해 줄게.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런가?”

“응. 그런데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브랫이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 모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엄청난 실력을 보인 건 다른 둘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의 눈빛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이곳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분위기.

그 속에서, 브랫 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따 말하지.”

“그래. 저기 브라이언 번스 경께 결과만 듣고 바로…….”

“아니.”

“어?”

자신의 말을 끊은 브랫에게 아이른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들은 여기서 끝장을 보는 승부를 하려던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디스에게 시비를 건 코라 머레이에게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것이 끝났으니, 둘이 가장 궁금해하는 지난 5년간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물론 그것 역시 중요했지만.

브랫 로이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아직 보여 주지 않은 게 있잖아.”

“…….”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최종평가 때 보였던 그 기술, 그걸 보여 줘.”

“아, 맞아! 그걸 안 보면 섭섭하지!”

주디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는데, 그 정도가 대련하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허나 그녀보다 더 강렬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것은 브랫 로이드였다.

“보여 줄 거지?”

“…….”

브랫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흔한 모험가의 복장에도 불구하고 귀티가 흐르고, 침착한 듯하고,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반쪽짜리라고는 하나 요술사인 아이른 파레이라이기에, 남들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상대의 눈을 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브랫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야!’

꿈속 사내의 기술을 보여 주지 않으면 뭔가 사고라도 칠 것 같은 눈빛.

브랫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아이른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것과 별개로, 그 역시 브랫의 청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그넷과 만난 이후로 그걸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그넷 크레센시아와의 만남 이후 투쟁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고, 나아가 심상 수련과 검술에도 도움을 받았던 아이른이다.

비록 실전에서 쓰긴 어려워 잊고 있던 기술이지만, 이 역시 무언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것을 이 자리에서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그걸 쓰면 연무장이 많이…… 많이 훼손될 것 같은데…… 괜찮나? 이거 그냥 흙바닥도 아니고, 꽤 비싼 연무장 같아서 말이야.”

‘젠장!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딴 소리를 하는 거야!’

아이른 파레이라의 무시무시한 발언을 들은 코라 머레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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