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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00화 (100/388)

◈ 32. 재회 (1)

이그넷 크레센시아와의 만남이 있고 며칠 후,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은 서부 5왕국 중 하나인 마이오스 왕국으로 향했다.

쿠바르가 마차를 몰아 이동한 덕분에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아이른의 부상 때문은 아니었다.

비교적 도로 상태가 좋기도 했고, 데린쿠에서 익힌 심상 수련을 이어 가고 싶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

마차 안의 아이른 파레이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엉덩이에 진동이 느껴지고 자세도 불편하지만 상관없었다.

물론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 자세로 명상을 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의 집중력은 이런 상황에 흐트러질 정도로 엉망이 아니었다.

이윽고 아이른의 마음속에 거대한 쇳덩이가 나타났다.

‘신기하네.’

대장장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거대한 기둥 같은 모습이었던 쇠말뚝이다.

자기 마음대로여야 마땅한 마음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변형도 일으킬 수 없었던 투박한 쇳덩이.

지금은 그 밑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불의 거인이 강하게 움켜쥔 듯, 손자국이 나 있는 모습.

이그넷과의 대련 전에 일어난 변화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후우.”

옅게 심호흡을 한 아이른이 재차 집중했다.

그러자 마음속에 또 다른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꽃이었다.

쿠바르의 조언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커다란.

그러나 이그넷과 마주했을 때보다는 훨씬 초라한 불꽃.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이만큼이라도 발전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야 마땅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마음을 일으켜 불꽃을 쇠말뚝의 몸통 부분으로 옮겼고, 그 상태로 강하게 집중하였다.

화르륵-!

이때부터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화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오래토록 유지한다.

쇠말뚝 전체가 노을빛으로 물들 때까지 쉬지 않고 지속한다.

다행히 여기까진 어찌어찌 성공했다. 불꽃이 커진 덕분이었다.

예전이라면 쇳덩이를 달구기 전에 집중력이 먼저 바닥이 났을 터였다.

허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문 아이른이 새로운 심상을 떠올렸다.

단단하게 뭉친 마음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망치의 모습으로 재탄생하였다.

꿈속 사내의 거대하고 단단한 의지를 다듬기 위한 청년 검사의 의지.

잠시 뜸을 들인 아이른이 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까앙!

깡!

까앙-!

마음속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쇳소리.

변화는 없었다. 단조가 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것이다.

대장장이들 역시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망치질을 하고는 한다.

아이른은 의심을 거두고 끊임없이 쇠말뚝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선을 따라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길면서도 짧은 오전 시간이 전부 지났을 때, 마차를 멈춘 쿠바르가 문을 열었다.

“아이른, 루루! 식사…… 으음. 아직도 심상 수련 중이었군.”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명상에서 깨어난 아이른 파레이라가 눈을 뜨며 대답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땀으로 흥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쿠바르가 말했다.

“아주 열심히 하는군. 성과는 좀 있나?”

“아직은 없지만, 하다 보면 있겠죠.”

“그렇지, 그렇지.”

쿠바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살짝 걱정했었다.

이그넷과의 만남이 아이른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분명 좋은 일이나, 그 불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자신을 망쳐 버린 이 또한 여러 번 봐 왔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 아이른의 상태를 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대단하단 말이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침착해.’

열정을 불태우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과욕을 부리다가 자신까지 불꽃에 집어 던질 경우 괴로움과 번뇌는 피할 수 없다.

허나 지금의 아이른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수십 년간 도를 닦은 구도자처럼 자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처음 품고 있던 쇠말뚝 덕분인지도 모르겠군.’

쿠바르가 수건으로 땀을 닦는 아이른을 바라봤다.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저 젊은 청년이 어찌하여 마음속에 저만한 금기(金氣)를 품고 있는지 말이다.

뭐, 때가 되면 내게도 얘기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가 이번에는 아이른의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루루.”

“…….”

“루루, 루루!”

“불러도 안 깨어날 것 같은데요.”

“……흠.”

아이른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눈을 감은 루루.

그의 자세는 무척 특이했다.

사람처럼 등을 기댄 자세로 앉아서 앞발을 하복부에 모으고 있었는데, 마치 사람이 명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쿠바르가 물었다.

“요술사들은 다 이렇게 수련하나?”

“아니요. 각자 다른데…… 아마 루루는 이 자세가 가장 효율이 좋나 보네요.”

“그렇군. 점심은 우리끼리 먹어야겠어.”

루루를 마차 안에 놔둔 둘이 점심 준비를 했다. 딱히 시간이 오래 걸릴 건 없었다.

아이른이 냄비에 재료를 쏟고 쿠바르가 손짓을 하자 물, 불, 장작이 튀어나와 빠르게 요리 준비가 끝났다.

보글보글

잠시 후, 스튜가 완성되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요리치고 맛도 좋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쿠바르가 마지막에 넣은 소스 덕분인 것 같았다.

“도대체 뭘 넣은 거예요?”

“영업 비밀이네.”

아이른이 쿠바르를 쳐다봤다.

쿠바르 역시 아이른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 보던 둘은, 함께 피식 웃어 보인 뒤 식사에 전념했다.

루루가 껴 있을 때와는 달리 조용한 분위기.

허나 그 잔잔함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있었던 시간, 함께 쌓은 경험, 주고받은 말들이 둘 사이의 어색함을 말끔히 걷어내고 있었다.

허나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아이른이 대검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후웁!”

부웅!

“흐으읍!”

부우웅!

‘……대단해, 정말로.’

잠깐의 틈도 놓치지 않고 검술 수련에 매진하는 아이른을 보며, 쿠바르가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그가 성실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심상 수련에 매진했으면서, 식사를 끝내자마자 몸을 움직이는 모습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만 강철인 게 아니라 체력도 강철이구만.’

“흠.”

잠시 아이른을 지켜보던 쿠바르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가지 정령들에 집중했다.

아이른의 불꽃 같은 열정과 강철 같은 의지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 역시 샬럿과 빅터, 이그넷을 만난 뒤 자극을 받은 게 사실이다.

아무리 게으른 자신이라도 이런 흐름에선 노력하는 게 맞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신비로운 정령술사의 힘을 끌어내려 할 때였다.

“밥 줘.”

“…….”

“뭐 해. 밥 줘. 오늘 특제 생선요리 해 주기로 했잖아.”

어느새 명상에서 깨어난 루루가 그의 집중을 방해했다.

눈을 뜬 쿠바르가 자기 앞에 드러누운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바라봤다.

벅벅

앞발로 배를 긁는 모습이 묘하게 성질을 자극했지만, 쿠바르는 얌전히 요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생선요리를 해주기로 한 건 사실이니까.

삼류 점술사이자 이류 정령사, 일류 여행 가이드인 쿠바르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 * *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완연한 가을 날씨에 사람들의 옷차림이 아침저녁으로 두터워졌다.

그러는 사이 아이른 일행은 목적지인 마이오르 왕국의 도시 중 하나인 라티온에 거의 도착했다.

아단 왕국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깊은 왕국.

그곳에서 가장 많은 검술관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 입성할 생각을 하니 아이른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훌륭한 검사들이 잔뜩 있겠지.’

대륙으로 나오기 전의 자신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검만을 들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가족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들이지만, 그것만이 자신의 삶을 대변한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러 일을 겪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생긴 변화였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되었다.

크로노 검술관에 버금갈 정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많은 검술관들.

그리고 그 검술관들을 대표하는 많고 많은 검사들.

그들이 쌓아 온 신념과 생각은 무엇일까?

그들이 가슴에 품은 검은 어떤 것일까?

며칠 후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힌 아이른이 다시금 심상 수련을 시작했다.

우우웅……

천천히 떠오르는 쇠말뚝과 불꽃, 그리고 망치.

안타깝게도 단조 과정은 진척이 없었다.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아무리 열심히 두드려도 형태가 변할 기미도 안 보였다.

그런데도 그가 심상 수련에 매진하는 것은 특유의 인내심 덕분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성과 때문이었다.

검술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꿈속 사내의 검을 내 식대로 다듬고 있어서 그런 건가?’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지금의 아이른이 익힌 검술은 주디스, 브랫 로이드, 일리아 린제이와 사내의 검술을 합친 형태로, 웬만한 엑스퍼트들조차 깜짝 놀랄 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허나 근본이 되는 사내의 검술이 단조로운 탓인지 다소 투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쇠말뚝과 비슷한 셈.

헌데 그 쇠말뚝을 계속해서 두드려 자신의 손에 맞는 형태로 바꿔가고 있으니, 검술 역시 더 손에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재 아이른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지.’

심상 수련이 자신에게 건네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당장의 능력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껏 그를 가로막고 있던 벽, 한계를 넓혀 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한계까지 성장해나가는 데는 또 한 번의 노력이 필요했다.

상관없었다.

오히려 환영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오랜만에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을 때였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지.”

“좋아.”

“그러죠.”

마이오스 왕국의 라티온에서 사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

그곳에 들어선 일행은 빠르게 숙소부터 잡았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쿠바르는 순식간에 괜찮은 여관을 찾아냈고, 합리적인 가격에 방을 잡았다.

저녁 식사까지 주문한 그가 아이른에게 말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고양이도 인간들이 쓰는 화장실 쓰나?”

팍!

“윽.”

펄쩍 뛰어오른 루루가 쿠바르의 정수리를 때린 뒤 사라졌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오크 점술사도 그 뒤를 따랐다.

아이른은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다.

“…….”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워낙 자유분방한 둘이다 보니 이렇듯 테이블에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는 라티온의 유서 깊은 검술관들, 그리고 자신의 검술에 대해 생각하며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쿠당탕!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의자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이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야 사소한 소란에도 놀랐었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일은 여관이나 술집에서 다반사라는 것을.

물론 그것과 상관없이 다툼의 당사자들이 누군지는 궁금한 법.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삿대질을 하는 여자, 그리고 황당해하는 반대편 남자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표정을 굳혔다.

침을 튀기며 말을 쏟아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

그녀의 얼굴이 몹시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주디스?”

“아이른 파레이라?”

그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아이른이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푸른 머리가 인상적인 고상한 분위기의 청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자란 브랫 로이드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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