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95화 (95/388)

◈ 30. 뜻밖의 손님 (2)

샬럿과 빅터 듀오는 용병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격자다.

단순히 사회성이 좋다, 인상이 좋다 정도의 말이 아니다.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이 베푼 선행은 굵직한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이 넘어간다.

가난한 남부 영지민들을 위해 고블린 부족을 토벌하고.

소규모 마을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무보수로 처리해 주고.

마인이 도사리고 있는 던전을 단둘이 공략한 적도 있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날 때부터 강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허나 샬럿과 빅터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남았고, 용병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수많은 후배 검사들의 존경과 함께.

‘그런 그들이…… 이런 짓을 한다고?’

그렇기에 쿠바르는 지금의 상황을 믿기 어려웠다.

물론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정말로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적당히 서로의 안부와 궁금한 것을 물은 뒤, 평화롭게 헤어지는 쪽이 더 그럴듯한 일이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요술사인 루루와 아이른의 감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지금 샬럿과 빅터가 보이는 표정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듯 위험한 상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란…….

‘넘버링 소드겠지. 내가 실수했구나.’

쿠바르가 뒤늦게 자책했다.

넘버링 소드의 완성이 미뤄졌다는 사실은 그들만이 아는 일이다.

다른 이들은 이미 아이른이 검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강도가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것을 간과한 결과가 이것이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 둘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 말인가?”

“일단 가까이서 얘기하지. 지금 너무 먼데…… 왜 자꾸 물러나나?”

“이 정도 거리가 적당할 듯싶은데.”

“허허, 섭섭한걸. 데린쿠에서 함께 술자리도 한 사이 아닌가?”

“그렇지. 다만 지금은 갈 길이 바빠서, 대화할 여유가 없을 듯하네.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세.”

“아니, 우리는 지금 나누고 싶은데?”

“그러니까. 자네들을 위해 우리가 수고를 많이, 아주 많이 했는데 말이야.”

“그게 무슨…… 으음!”

말을 하던 쿠바르가 신음을 흘렸다.

아이른 파레이라도, 루루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빅터가 배낭에서 사람의 머리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부릅뜬 눈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

란델 클랜시.

‘일격의 란델’로 명성이 자자한 사내가, 목이 잘린 채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네를 노리는 이런 도적놈들을 수없이 많이 치우고 오는 길인데,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다니…… 너무해. 정말로 너무해.”

빅터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허나 눈만은 웃고 있지 않았다. 싸늘하게 날아오는 시선이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쿠바르의 어깨에서 뛰어내린 루루가 성을 내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헛소리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해!”

“하하, 우리 귀여운 고양이 친구가 성격이 급하구만. 하지만 우리도 바라는 바야. 우리 역시 마음이 급해서 안달이 난 상태거든.”

“넘버링 소드를 내놔라.”

“없어! 아직 완성이 안 돼서 우리도 없다고!”

루루가 대답했다.

이젠 성을 내는 것을 넘어 악을 쓰는 목소리였는데, 진심이 뚝뚝 묻어나고 있어 웬만한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탐욕에 물든 샬럿과 빅터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샬럿과 빅터가 웃음을 거뒀다.

그러자 호탕하게만 보였던 얼굴이 기괴하게 변했다.

마치 건조한 대리석 조각에 눈만 지옥 불을 갖다 붙인 모습. 소름이 돋은 루루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쿠바르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아이른 파레이라만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몸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흠.”

그 모습을 본 빅터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허나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

다시 섬뜩한 눈동자로 돌아온 그가 낮게 말했다.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넘버링 소드, 그리고 파블로와 드완슨의 검을 내놔라. 아마 요술로 숨기고 있겠지만, 소용없다.”

“…….”

“살려준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고통 없이, 일검에 죽여주마. 하지만 끝까지 검을 내놓지 않는다면, 서로 피곤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거야.”

“자네들, 이 일로 인해서 인생을 망칠 셈인가? 이미 주인이 정해진 검을, 그것도 불카누스의 검을 탐하다니, 데린쿠는 물론이고 온 대륙에 수배될 일일세!”

“걱정해 줘서 고맙군. 하지만 괜찮아. 검을 노린 건 우리만이 아니었으니까. 보다시피 란델을 비롯한 수많은 녀석들이 검을 노렸다. 너희들은 거기에 휘말린 불운한 피해자가 되는 거고, 넘버링 소드의 행방은 자취를 감추겠지.”

“…….”

“허나 우리를 의심하는 이는 아마 없을 거야. 이걸 위해 했던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착한 일을 꽤나 많이 했거든.”

‘틀렸어. 말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빅터의 말을 들은 쿠바르가 주먹을 꽉 쥐었다.

피할 방법이 없다. 이제는 무조건 싸워야 한다.

허나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둘이 함께라면 소드마스터도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샬럿과 빅터다.

그 말은 둘 중 하나만 나서도 이쪽의 최고 전력인 아이른을 압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요술사인 루루도, 정령사인 자신도 전투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이 있습니다.”

쿠바르가 깊은 고뇌를 이어 가던 때였다.

지금껏 내내 침묵을 고수하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입을 열었다.

이에 샬럿이 건조하게 웃었다.

더는 시간 끌 생각 말라고 하려던 찰나, 아이른의 눈을 본 그가 표정을 굳혔다.

“…….”

대회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

그것을 가볍게 상회하는 미증유의 힘.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샬럿이 말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빅터도 형의 판단을 존중했다.

긴장이 감도는 평원에서, 아이른이 물었다.

“데린쿠의 술집에서 당신들이 했던 말들은, 전부 위선이었습니까?”

“…….”

“남부 밀림지대 마을들을 위해 고블린을 토벌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은 영지를 위해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않고 목숨 걸고 마인과 싸웠던 일들은…… 전부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서였습니까?”

다소 답답한, 듣는 이에 따라서는 멍청하다고 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그딴 게 중요하냐고, 살길을 모색해도 부족할 판에 왜 상대가 불편해할 말을 지껄이냐는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태도.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있어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가 데린쿠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우연히 다시 만난 샬럿과 빅터.

그들의 과거 선행에 대해 질문하던 쿠바르와 쑥스러워하면서도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당시의 일을 설명해 주던 둘의 모습, 이에 심취해 짝짝짝 박수를 치던 루루까지.

그때의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결코 이런 짓을 벌일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선하고 강한 사람들이, 어째서 검 따위를 얻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그렇게, 그렇게 보람찬 얼굴로…… 과거의 일을 말했던 당신들이,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나를 죽여도 넘버링 소드를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절대로.”

슈우욱-

콱!

말을 마친 아이른이 검을 소환해 바닥에 꽂았다.

투박하지만,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대검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샬럿과 빅터가 눈빛을 교환했다.

저 녀석의 말은 진짜다.

이를 직감한 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말을 고르려는 듯 잠시 시선을 깔았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포장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모든 것보다, 불카누스의 넘버링 소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왜 말이 없지?”

“그게, 다입니까?”

“그래. 이게 전부다. 왜, 뭔가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나?”

샬럿이 되물었다.

도대체 뭘 바랐냐는 듯한 눈빛이 대답을 재촉했다.

허나 아이른은 한참이나 입을 열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가 말했다.

“고작, 그것 때문입니까?”

“고작?”

“예. 고작, 고작 검 하나 따위가…… 당신들이 지금껏 지켜 온 인생관보다, 당신들의 손길에 구원받은 이들 모두를 배신감에 떨게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소중했습니까?”

“넘버링 소드는 고작 검이 아니다!”

샬럿과 아이른의 대화를 끊고 빅터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쿠바르와 루루가 귀를 막았다. 기운이 잔뜩 담겨 소리도 컸지만, 그보다는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그들의 마음을 긁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가 벽에 마주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엑스퍼트에 오른 것은 더 길지. 30년이 넘었어. 그것을 깨기 위해 도전하지 않은 일이 없고, 부딪쳐 보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럼에도 뚫리지 않았다. 나와 형은, 여전히 지옥 속에 갇혀 있다.”

“…….”

“우리뿐만이 아니다. 마스터에 닿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해 수십 년을 몸부림치는 검사들이, 그것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걸고, 목숨을 거는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아. 그들이 짊어진 무게를, 우리들이 견디고 있는 고통을…… 너는 모른다. 젊다 못해 어린 너는 절대로 알 수 없어.”

스릉-!

빅터가 검을 뽑아 들었다. 눈에는 잔뜩 핏발이 섰고, 몸에서는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샬럿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얼굴은 어느새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눈빛도 마찬가지.

자신이 품은 것보다 훨씬 뜨거운 불꽃이 일렁인다.

알 수 있었다. 검에 목숨을 걸었다는 저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허나 그 불꽃이, 아이른은 도무지 부럽지가 않았다.

‘달라.’

아이른이 자신의 인연들을 떠올렸다.

멀게는 5년 전에 부대꼈던 일리아, 브랫, 주디스, 가깝게는 몇 달 전에 마주했던 랜스 페터슨을 비롯한 동기들.

그들이 뿜어내던 빛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꽃보다 훨씬 따스하고, 찬란했다.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저들은 달랐다.

욕망과 집착에 먹혀 자기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저들의 모습은, 마인(魔人)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그가 또다시 과거를 떠올렸다.

최종평가 후의 브랫 로이드, 그가 보였던 음울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켜켜이 쌓이면 저들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저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휙!

후우우욱-!

아이른 파레이라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지금껏 통제하고 있던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샬럿과 빅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의 기세가 훨씬 거셌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른이 빌려온 힘은, 둘보다도 훨씬 긴 세월을 견뎌왔던 이로부터 이어진 힘.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처절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타락하지 않았던, 사내의 의지.

우우우우우웅-!

잔잔하게 들려오는 검명(劍鳴)을 들으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마지막 끈을 놓았다.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꿈속 사내에 휩쓸리는 것은 탐탁지 않지만,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아이른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했다.

이윽고 뻗어 나가는 강철의 기운.

금속을 부어 만든 듯 단단하면서도 육중하게 밀려오는 기세에, 샬럿과 빅터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른은 물론이고, 그의 옆에 있던 쿠바르와 루루도 각자의 힘을 끌어올려 곧이어 시작될 싸움을 대비했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

그것을 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우와! 우와!”

“…….”

“게오르그, 저거 봐! 봤어? 그때보다 더 대단해! 훨씬 더 단단해 보여!”

“……조용히 좀 해라.”

난데없이 들려오는 박수 소리, 그리고 소녀와 사내의 말소리.

깜짝 놀란 샬럿과 빅터가 고개를 돌렸다.

아이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다섯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꽂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진한 화장과 검은색 드레스로 치장한 귀여운 소녀와 권태로운 분위기의 잿빛 머리 검사.

그리고 황금색 포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검은 제복의 여성.

그 정체를 파악한 쿠바르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

고아에서 크로노 검술관의 수석으로.

크로노 검술관의 수석에서 용병대의 대장으로.

용병대의 대장에서 명예기사를 거쳐, 성국에 셋밖에 없는 기사단장의 위치까지 오른 인물.

이그넷 크레센시아.

그녀가 칠흑 같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도(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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