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 (4)
“……!”
고양이 요술사의 담담한 발언에 아이른 파레이라가 눈을 부릅떴다.
마스터(Master).
한 분야의 대가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상황에서 마스터라 불릴 이는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 루루는 저 잿빛 머리의 사내를 소드마스터(Sword Master)라 판단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소드마스터가 요정족이니, 드래곤이니 하는 신화에서나 등장하는 존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수가 극히 적은 것은 사실이었고, 그나마 대부분은 강대국의 고위귀족이거나 왕족, 혹은 이름난 검술관의 주인이었다.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귀하신 몸이라는 뜻이다.
‘저런 소드마스터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놀란 것은 아이른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쿠바르의 동요가 더욱 컸다.
보고 들은 것이 많은 그는 소드마스터의 특징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특히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용병, 모험가, 방랑기사의 경우는 빠삭했다.
허나 그들 중 누구도 눈앞의 사내와 겹치는 점이 없었다.
그 말은…….
‘대륙에 새로운 마스터가 탄생한 것인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였다.
물론 마스터가 아닐 수도 있다.
눈썰미에 나름 자신이 있는 자신도, 아이른도 상대를 엑스퍼트라고 단정 지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루쯤 되는 요술사가 틀렸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
그렇듯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였다.
한창 아냐와 투덕거리던 잿빛 머리의 검사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마스터로 안 보였다.
밸런스 잡힌 신체에 걸음걸이가 가볍긴 했지만, 유약해 보이는 외모는 오히려 학자를 연상시켰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가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아냐의 동료인 게오르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른 파레이라라고 합니다.”
“쿠바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 보다시피 오크요.”
“난 고양이야! 이름은 루루고.”
“아냐만큼이나 독특한 분들이군요. 아! 나쁜 뜻은 아닙니다. 혹시나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전혀 그렇게 안 느꼈습니다.”
아이른이 손을 흔들며 답했다.
아냐와 말싸움을 벌일 땐 껄렁껄렁한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예의가 발랐다.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인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 버릇없는 꼬맹이와 말을 섞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가 있어서…….”
“아냐는 버릇없지 않거든! 상인 아저씨들도 전부 칭찬해 줬어!”
“자기는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게오르그가 싱긋 웃었고, 아이른 일행은 묘한 표정으로 응답했다.
그 모습을 본 아냐가 성을 내려고 할 때, 잿빛 머리의 검사가 한 박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이른 파레이라 님?”
“예?”
“초면에 굉장히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혹시 검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어…….”
“아! 물론 아냐처럼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려는 것은 아닙니다. 검사에게 자신만의 애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냐를 힐끗 쳐다본 게오르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천방지축 녀석이 정말 대단한 검이라고, 한 번 보면 저도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칭얼대기에…… 염치 불고하고 청을 드리는 겁니다.”
부디,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게오르그가 정중히 말했다. 잠시 생각한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누가 본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 소드마스터가 자신의 검을 보고 어떤 평을 내릴지도 조금은 궁금했다.
그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우우웅-!
이윽고 투박한 모습을 드러낸 자신의, 아니 꿈속 사내의 대검.
아이른은 아닌 척 게오르그의 눈빛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말없이 검을 주시했다.
“…….”
다소 특이한 건, 그가 지켜보는 게 검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웃는 얼굴을 벗어던진 채 몹시 진중한 얼굴로 검을 쳐다봤다.
그리고 아이른을 쳐다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후자 쪽에 더 오래 시선을 뒀다.
오래. 아주 오래.
아이른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지?’
유리알 같은 게오르그의 눈이 자신의 전신을 더듬는다.
다리, 몸통, 얼굴을 타고 올라온 시선이 이내 눈동자에 꽂히고, 그 너머를 바라본다.
겉은 물론이고 속까지, 속의 속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그의 시선에 아이른이 뒷걸음질을 치려고 할 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빤히 쳐다봤군요.”
다시금 웃는 표정으로 돌아간 게오르그가 공손히 사과했다.
방금 전까지의 기묘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
연신 고개를 숙인 그가 말했다.
“과연, 대단한 검이군요. 아냐가 탐을 낼 만해요.”
“그렇지? 대장이 엄청 좋아할 것 같지?”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뺏으려고 하면 안 되지.”
“뺏는 거 아니거든? 1년 모은 저금통이랑 바꾸려고 했거든?”
“1년이나? 음, 아니다. 확실히 그 이상의 가치가 있지.”
검도, 저 청년도.
게오르그의 뒷말을 덧붙였지만, 그 목소리는 아주 작았기에 루루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대단히 실례 많았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따로 혼내도록 하겠습니다.”
“흥이다! 루루랑 친구들! 나중에 또 봐!”
“후우……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결국 끝까지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퇴장하는 아냐와 게오르그.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둘을 보면서 루루는 아쉬워했고, 아이른은 침묵에 빠졌다.
쿠바르는 아이른 쪽에 가까웠다.
그가 생각했다.
‘정체가 뭘까?’
아냐와 게오르그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다.
물론 그 둘도 굉장한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그가 정말로 궁금한 쪽은 그들이 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한쪽은 소드마스터.
한쪽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망한 꼬마 요술사.
그들 모두에게 깍듯한 대우를 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 평범한 자는 아닐 터.
몹시 흥미로웠다.
쿠바르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보고 들었던 정보들을 하나씩 떠올려 갔다.
그때, 지금껏 잠자코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입을 열었다.
“맞는 것 같네요. 마스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네. 제가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에요. 후, 아마 저 사람도 참여하겠죠?”
“그렇겠지.”
“생각대로 빡빡한 대회가 되겠네요.”
상대를 관찰한 것은 게오르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른 또한 게오르그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그의 강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걱정은 없었다. 아쉬움도 없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기 위함이다.
이기느냐 지느냐.
우승하느냐 마느냐.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한 수 배운다는 느낌으로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그를, 쿠바르는 이번에도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다.
확실히 변했다. 지금의 아이른은 배움에 있어서 여행 초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허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쿠바르가 말을 꺼냈다.
“아이른. 내 조언 하나 함세. 꼰대 같으면 그냥 흘려들어도 되고.”
“그럴 리가요. 편하게 말하시죠.”
“그럼 편히 하지. 이번 대회,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 나가지 말게. 이기려는 각오로 나가게.”
다소 강한 발언에 아이른의 표정이 굳었다.
루루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쿠바르를 쳐다봤다.
허나 쿠바르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을 시절의 쿤이 이안에게 도전할 때, 가르침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검을 들었을까? 아니, 아마도 그는 진심으로 이기려고 했을 걸세. 이기고 싶다, 이겨야만 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길 것이다…… 그러한 투지가 쌓이고 쌓였기에 동등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네.”
“…….”
“검사에게 있어서 향상심은 중요하지. 겸손한 자세로 누구에게든 배우려고 하는 자세는 커다란 장점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지고 들어가는 모습은, 그리 좋은 태도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네.
쿠바르의 말은 여기서 끝이 났다.
강한 어조는 아니었다.
허나 워낙 부드러운 말투만 써오던 그였기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
쿠바르의 말을 들은 아이른은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데린쿠의 길거리를 거닐고, 대회 전까지 묵을 숙소를 찾고, 식사가 나올 때까지.
심지어 음식이 나온 후에도 한참이나 그랬다.
자신이 말을 너무 세게 했나?
쿠바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분위기를 깼네요.”
“아닐세. 나야말로 미안하네. 쓸데없는 소릴…….”
“쓸데없는 소리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제가 외면하고 있던 부분을 발견한 것 같아요.”
아이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제야 쿠바르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자신의 괜한 욕심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조언을 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어지는 아이른의 행동에 그의 마음은 또다시 불편해졌다.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으응?”
“쿠바르의 조언,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살짝 빠른 걸음걸이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는 금발 청년.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쿠바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이른 일행이 데린쿠에 도착하고 사흘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쿠바르와 루루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뛰어난 대장장이들도 구경하고, 그들이 만든 무구와 방어구들도 살펴보고.
맛있다고 소문난 지역 음식과 술도 즐기고.
허나 그 모든 일에서 아이른은 빠졌다.
쿠바르의 말에서 시작된 고민이 길어진 탓이었다.
“으음,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군.”
대회 당일, 두문불출하는 아이른을 떠올리며 쿠바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욕심이 그에게 번뇌를 안겨준 것 같았다.
빠르게 성장하는 청년의 모습에 취한 나머지 과한 조언을 건네 버렸다.
그가 생각하는 아이른 파레이라는 구도자에 가깝다.
누군가와 겨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수양을 위해 검을 드는 쪽.
때문에 일반적인 검사는 누구나 갖고 있을 만한 승부욕, 투쟁심 따위의 감정은 부족한 면모를 보였는데, 쿠바르는 그 부분이 못내 아쉬웠었다.
젊은 시절의 성장에 있어 남과의 경쟁만큼 훌륭한 촉매제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 생각했어. 아이른의 성향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쿠바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매력은 타인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의 끈질긴 고민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간과한 채 맞지 않는 옷을 권했으니…….
‘이번 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건 온전히 내 책임이겠어.’
생각에 잠긴 쿠바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질 때였다.
그와는 달리 별 고민 없이 테이블에 퍼져 있던 루루가 2층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아이른 파레이라가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른!”
쿠바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과할 생각이었다.
아니, 사과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말을 마음에 담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다.
소화할 수 없는 약이 환자의 몸을 악화시키듯,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이 아이른의 마음을 방황케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허나 그의 눈앞에 선 금발 청년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다.
“…….”
“쿠바르? 왜 그래요?”
“어? 아이른, 뭔가 변했는데?”
“그래?”
“응. 잘은 모르겠는데, 더 보기 좋아졌어.”
“고마워.”
아니,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다.
쿠바르가 힘껏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다시 아이른 파레이라를 살폈다.
‘불씨가, 더…….’
“쿠바르? 왜 그래요?”
“어? 아니, 아닐세. 그냥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반가워서. 하하…….”
“하긴, 제가 좀 오래 방에 있었네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른이 웃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느새 날아와 그의 어깨에 안착한 루루도 쿠바르를 바라봤다.
어딘지 모르게 한심하다는 눈빛.
그가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하기는.”
“하, 하하. 이거 참…….”
쿠바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루루의 말이 맞았다.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또다시 웃어 보인 아이른 파레이라.
그가 말했다.
“그럼,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