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 (2)
소설가, 화가, 조각가 등,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하다.
이는 실력에 자신이 있을수록 더욱 강해지고, 자신의 창작물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품이 자식보다 더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대가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드워프 불카누스는 그런 이들의 대표 격인 존재였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랑스러운 작품을 아무에게나 넘길 수 없다는 거죠.”
불카누스가 자신의 대표작, ‘넘버링 소드’를 소드마스터에게만 판매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어중이떠중이에게 자신의 자식을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
적어도 소드마스터는 되어야 자신의 검을 쥘 자격이 있다는 장인 특유의 자존심.
일견 거만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는 태도였지만, 누구도 불카누스의 그런 모습을 흉보지 않았다.
그는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대장장이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다들 엄청 놀랐죠. 그가 소드마스터가 아닌 검사에게 자신의 넘버링 소드를 넘겨줬을 때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불카누스는 자신이 7, 8, 9번째 넘버링 소드를 제작했다고 선언했고,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무려 세 개의 넘버링 소드를 한 번에 세상에 내놓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보다 놀라운 건, 세 개의 검이 전부 소드마스터가 아닌 존재에게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여론은 썩 좋지 않았다.
불카누스가 너무 유해졌다느니, 거금에 자존심을 판 것이 분명하다느니, 더는 대장장이의 대표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느니.
세 자루의 넘버링 소드 중 어느 하나 구경 못 한 이들조차 그를 욕했고, 그의 작품을 욕했다.
그 어떤 검사의 앞에서도 당당했던 불카누스였기에…… 그의 실력만큼이나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흠모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
불카누스의 선택을 욕했던 이들은 전부 자신의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7, 8, 9번째 검의 주인이 하나도 빠짐없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엄청 신기하네요.”
“그렇죠? 저도 신기합니다. 검사라면 모를까, 어떻게 대장장이가 소드마스터의 재목을 알아봤을까요? 물론 셋 모두 대단한 유망주라 기대받는 이들이긴 했지만, 마스터라는 경지는 그 대단한 유망주들 사이에서도 극소수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 아닙니까!”
사내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한 이야기였다.
다른 검에 크게 관심이 없는 자신조차 흥미가 생길 정도였으니, 다른 검사들은 오죽할까.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테이블뿐만이 아니라 여관 대부분의 검사들이 어느새 사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 베테랑 용병으로 이름이 높은 울프강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불카누스의 열 번째 넘버링 소드…… 그 대단한 검의 주인은 어떤 방식으로 정한다고 합니까?”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렇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검 자체도 무척이나 탐이 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검에 얽힌 일화였다.
마치 ‘다음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사람은 너다!’라고 말하는 듯한 불카누스의 판단.
그의 간택을 원치 않는 검사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몇몇은 침까지 꿀꺽 삼키며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행히 이야기를 풀던 이는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들은 바로는, 아마 대회를 열 것 같습니다.”
“대회?”
“예.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제자들 중 하나의 말이니 아마 맞을 겁니다. 일주일 후, 10번째 넘버링 소드를 원하는 검사들을 한데 모아 놓고 검술대회를 연다는군요.”
“참가 방법은? 규칙은?”
“그,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얘기가 없는 것 보니, 아마 당일에 말해 주지 않을까요?”
울프강의, 아니 여관에 있던 용병들 모두의 기세에 짓눌린 사내가 말을 더듬었다.
물론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대륙 최고의 명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흥분할 수밖에 없다.
여관의 모든 검사들이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를 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몇몇은 헤벌쭉 웃었고, 몇몇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베테랑 용병 울프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재밌겠네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고.”
“…….”
“저도 참여해 봐야겠어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입을 여는 순간, 그 흥분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생각해 보니 자네가 참여하면, 나한테는 기회가 없겠군.”
“아…….”
“…….”
울프강의 한마디에 용병들이 꿈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황금 기수라는 엄청난 배경.
그 엄청난 배경조차 압도하는 무지막지한 괴력!
그것을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승리를 자신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하긴, 아이른 파레이라 님이 있는데 누가 감히…….”
“애초에 우리는 파레이라 님이 아니어도 꿈도 못 꾸지. 데린쿠에 검사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그것도 맞아. 황금패 용병들도 심심찮게 오고, 서부 5왕국의 기사들도 많다고 들었어.”
“그런데 황금패 용병이나 왕실 기사들도 아이른 파레이라 님은 못 이길 거 같은데…….”
“어쩌면, 진짜 파레이라 님이 열 번째 넘버링 소드의 주인이 되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데?”
“어어?”
여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자신이 검의 주인이 될 거란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검술대회, 그리고 우승을 위해 모여드는 강자들. 생각만 해도 피가 끓어오르는 화제가 아닌가.
심지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라 생각되는 인물이 자신들과 연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용병과 상인들은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물론 이를 듣고 있는 아이른 파레이라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숙소로 올라가야겠네요.”
“뭐 하러? 듣기 좋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부담스러워서요. 정말로요. 저보다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른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물론 그가 나이에 비해, 아니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것은 사실이다.
허나 세상에 자신보다 대단한 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장 크로노 검술관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자신은 댈 수도 없는 강자다.
그런 이들이 데린쿠라고 해서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관의 구석 테이블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도대체 아이른 파레이라가 누군데 이렇게 찬양을 하는 거야? 뭐 소드마스터라도 돼?”
“…….”
“소드마스터가 아니면 그 입들 좀 다물지? 지금 데린쿠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거 형씨, 우리끼리 기분 좋아서 얘기하는데 괜히 시비 걸지 맙시다.”
“시비는 무슨, 이름도 못 들어 본 양반을 무슨 우승 후보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럼 형씨가 생각하는 우승 후보는 누구요? 진짜로 마스터라도 옵니까?”
“아니. 내가 듣기로 마스터는 없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품이 걸리긴 했지만, 아직 소문이 안 퍼진 모양이야.”
“그니까 말 길게 하지 말고, 댁이 생각하는 우승 후보는 누구냐고 물었소.”
술 취한 용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트랜트의 옆에 있던 사내로,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를 찬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기세에 지기 싫었음인지, 구석 테이블의 남자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명의 이름을 꺼냈다.
“샬럿, 그리고 빅터.”
“……!”
“뭐? 그 최강 쌍둥이?”
“허어, 샬럿과 빅터라니. 꽤 거물이구만.”
“아는 사람입니까?”
아이른이 물었고, 쿠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꽤 유명한 듀오니까. 쌍둥이 검사인데, 합이 어찌나 좋은지 둘이 함께 검을 들면 소드마스터와도 겨룰 수 있다는 소문의 베테랑 용병들일세.”
“정말인가요?”
아이른이 깜짝 놀랐다.
그는 소드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안다.
이안과는 직접 검을 맞대 봤고, 부관주인 케이라 핀과도 대면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관주님은 당연히 못 이기고…… 내가 둘이라고 해서 부관주님을 상대로 싸움이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만약 샬럿&빅터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둘 모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검사라는 말이 된다.
허나 이어지는 쿠바르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과장된 얘기일 걸세. 내가 검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스터가 어떤 존재인데.”
“아,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강한 양반들이라는 건 사실이지. 워낙 미담이 많아서 용병들 사이에서 존경도 많이 받는 것 같고.”
쿠바르가 그들과 얽힌 몇 가지 일화를 말해 줬다.
시골 영지에서 토벌하기 힘든 마인 소굴을 헐값에 토벌해 주거나, 위기에 빠진 상단을 대형 몬스터로부터 구해 주거나…….
하나같이 훌륭한 일들이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능히 짐작할 만했다.
단둘이서 마인을 토벌했다는 것부터가 평범한 용병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네도 대단하지. 마기에 취한 산적으로부터 상단 연합 전체를 구해냈으니까.”
“띄워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자네는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동생분도 더 당당하게 다니라고 말했다면서? 나는 나쁘지 않은 조언이라고 생각하네.”
“으음…….”
“그런 의미에서, 저 사람들에게 실력 좀 보여 주는 게 어떤가?”
“예?”
“저기, 우리 쪽 용병들이랑 주먹질하기 직전인 사람들 말일세.”
쿠바르가 손가락을 펴 여관의 구석을 가리켰다.
처음 시비를 걸었던 사내를 비롯해 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용은 유치하기 그지없었는데, 샬럿&빅터가 더 강한가, 아이른 파레이라가 더 강한가에 관한 토론이었다.
“저러다가 싸움 나기 전에, 자네가 실력 좀 보여 주게. 그러면 먼저 시비 건 양반들도 어느 정도 납득하고 물러서겠지.”
“…….”
“내키지 않나?”
“……아니요. 하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건 맞았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는 편이 상황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이럴 땐 동생 말이 맞는 것도 같네.’
시비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키릴 파레이라의 말을 되새기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소환한 뒤, 주먹으로 두드렸다.
텅텅텅텅-!
순식간에 모이는 시선.
처음 시비를 걸었던 이도,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용병도, 양쪽으로 나뉘어 주먹을 치켜들려던 이들도 모두 그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른 파레이라가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어, 음, 그러니까…… 흥분 조금 가라앉히시게, 밖에서 제 검술이나 구경하실래요?”
* * *
“흥. 어디 두고 보자고. 내가 검술은 별로여도, 안목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이야.”
“기가 막힌 안목도 필요 없어. 그냥 눈이 단추 구멍만 아니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으니까. 파레이라 님이 얼마나 대단한 검사인지 말이야.”
“…….”
아직도 옥신각신하는 여관 손님들을 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관을 나서기 전날 관주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필연적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테니,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거라고.
‘그래.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해야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채에서 보여 줬던 것처럼 바닥을 깨뜨릴 생각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일이 커진다.
지금 아이른이 생각하는 건 일리아 린제이의 검술.
그것이 가장 화려하기도 했고, 주디스나 브랫의 검술은 상대가 없을 때는 보여 주기 힘들었다.
결정을 내린 그가 다시금 검을 소환했다.
그러자 뒤늦게 구경에 합류한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몇몇은 박수까지 쳤다.
짝짝짝짝
“오오, 마법인가?”
“검사라는데?”
짝짝짝짝짝짝
“그래? 그럼 저건 뭐야?”
“몰라. 그냥 구경이나 하자.”
짝짝짝짝짝짝짝짝
“아직도 박수 치는 사람이 있네.”
“그러게, 거 신기한 건 알았으니 이제 그만…….”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
사람들이 당황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도 당황했다.
적당히 하고 그칠 줄 알았던 박수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몇몇이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나마 욕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박수의 주인공이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와아, 진짜 대단하다.”
“…….”
“엄청 멋있어. 엄청 멋있어!”
계속해서 감탄사를 터뜨리는 검은색 드레스 복장의 여자아이.
열 살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소녀가 덩치 큰 용병들 사이에서 겁먹지 않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와 나이에 맞지 않은 진한 눈 화장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윽고 박수를 끝낸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해 다가갔다.
뒤에서 잠자코 있던 루루가 호다닥 뛰어와 그에게 말했다.
“요술사야.”
“응.”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능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요술을 다룰 줄 알기에,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순 있었다.
그러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소녀가 그에게 말했다.
“이거, 아냐한테 주면 안 돼?”
“이 검 말하는 거야?”
“응. 우리 대장한테 선물해 주고 싶은데.”
뜬금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물론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다.
줄 생각도 없지만, 애초에 자신이 요술로 만든 검이라 타인은 들 수조차 없다.
힘 좋은 쿠바르도, 요술사인 루루도 불가능했으니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안, 이건 줄 수 없어.”
“왜?”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검이기도 하고, 애초에 남은 못 들어.”
“아냐는 들 수 있는데.”
“응?”
“아냐는 들 수 있어. 아! 참고로 아냐는 내 이름이야. 그러니까 주라. 응?”
“…….”
“검 주면 대신, 아냐도 좋은 것 줄게.”
“아니, 잠깐…….”
아냐라는 이름의 소녀가 허공에 쑤욱 손을 집어넣었다.
상식을 초월한 광경에 구경꾼들의 얼굴에 또다시 놀람이 스쳤다.
잠시 후, 공간의 틈에서 기상천외한 물건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