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83화 (83/388)

◈ 28. 알하드 산채 (1)

“……?”

“지금, 고양이가……?”

루루의 말을 들은 여관 안의 손님들이 깜짝 놀랐다.

여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잠만 자고 있었던 탓에 모두가 그를 애완 고양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잘 따르네, 오크가 드루이드인가, 나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이 정도가 테이블 위의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이었다.

허나 루루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 말하는 고양이라는 게 밝혀진 지금, 장내는 충격에 휩싸였다.

허나 단 한 명.

동료의 만류를 받아들여 테이블로 돌아가던 덩치 큰 사내만은 이 상황을 알지 못했다.

몸을 뒤로 돌린 상태였기에 루루가 말하는 것을 못 본 것이다.

우뚝 멈춰선 그가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취기에 의해 빨개진 얼굴에 더욱 피가 몰렸다.

관자놀이에 불거진 핏대와 충혈된 눈이 사내의 감정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니까…….”

“아니야, 트랜트! 저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그럼 누가 했는데, 오크? 어쨌든 둘 중 하나가 목소리 바꿔서 나 들으라고 한 말일 거 아니야!”

“둘 다 아니라고!”

“그럼 누군데?”

“저, 저 고양이가…….”

덩치 큰 사내, 트랜트의 동료가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이 가물가물한 고양이가 보였다.

트랜트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스르르 엎어졌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게 미쳤나. 뭐? 고양이가 어째?”

“아니, 방금 진짜 고양이가…….”

“내가 아무리 술 취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다. 그딴 헛소리 할 거면 말리지 말고 구경이나 하고 있어.”

“…….”

“하, 고양이가 말을 한다고? 그딴 고양이가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트랜트가 고양이가 잠든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주변에서 아무리 만류를 해도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표정.

아이른은 황당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루루를 바라봤다.

‘얘는 잘 자고 있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무슨 그런 소리를…….’

동생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시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키릴의 의견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아이른이 그런 행동을 못 하는 성격일 뿐이지.

다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가만히만 있으면 무사히 넘어갈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잠결에 그랬나? 이거 다시 깨워도 자기가 한 말 기억도 못 할 거 같은데…….’

아이른의 트랜트라 불린 사내를 바라봤다.

오해가 단단히 쌓인 모양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오해도 아니었다.

루루 역시 같은 일행이니까.

쿠바르와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찝찝했다.

그러나 쿠바르는 달랐다.

무척 평온한, 오히려 살짝 미소까지 띤 그가 트랜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커다란 양반.”

“왜. 이제 와서 갑자기 겁이 나나, 오크?”

“물론 겁이 나지. 나는 점술사야. 용병인 자네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그래? 근데 이거 어쩌나. 나는 싸우고 싶은…….”

“방금 전에 한 말, 진심인가?”

“응?”

“말하는 고양이가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발언 말이야.”

“하, 갑자기 뭔…….”

“우리, 내기 하나 할까?”

트랜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뒷수습이 무서워진 오크 녀석이 말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화를 터뜨리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허나 쿠바르의 말이 더 빨랐다.

“이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할 수 없다면, 자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과를 해주겠네. 맞으라면 맞고, 무릎을 꿇으라면 꿇지. 돈을 원하면 돈을 줄 수도 있고.”

“이게 지금…….”

“반대로 이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지는 건 너무하니까 봐주지. 대신 우리 일행의 오늘 밥값을 그쪽이 계산하는 걸로. 어때? 참고로 안 해도 괜찮아. 쫄리면 어쩔 수 없지.”

“……이 자식이! 그래, 좋다! 어디 한번 해봐!”

큰 소리로 대답한 트랜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뒤에서 몰래 복화술을 하거나 하는 개수작을 부리면 죽여 버린다는 협박이었는데, 표정이 몹시 살벌했다.

허나 그의 엄포에 진지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다툼을 지켜보던 손님들도, 소란에 전전긍긍하던 여관주인도, 트랜트와 함께 있던 용병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낀 트랜트가 주변을 돌아봤다.

‘뭐야? 설마…….’

표정이 굳어가는 덩치에게 쿠바르가 씨익 웃음을 보여줬다.

아이른에게도 똑같이 미소를 날린 그는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쿨쿨 자고 있던 루루를 흔들어 깨웠다.

“루루, 일어나 보게. 지금 잘 때가 아니야.”

“…….”

“루루, 루루!”

그 잠깐 사이에 깊게 잠들었는지, 루루는 마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쿠바르가 몸을 번쩍 들어 올린 다음에는 깨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공중에 매달려 허리가 주욱 늘어난 그에게, 트랜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 너…… 진짜로 사람 말 할 수 있냐?”

“……누구야? 이 못생긴 사람?”

“…….”

앞발로 눈을 비비며 말하는 검은 고양이를 보며 트랜트가 어금니를 부드득 갈았다.

쿠바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루루에게 말했다.

“루루.”

“응?”

“오늘 저녁은 먹고 싶은 거 이것저것 다 시켜도 되니까, 마음껏 시키게.”

* * *

쿠바르의 즉석 내기로 무사히 다툼을 피한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

허나 잠에서 깬 루루는 트랜트가 속한 용병 무리를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키릴 때문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한 ‘못생겼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트랜트라고 했지? 미안해! 자다 깼는데 사람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놀라서 그랬어.”

“…….”

“너 안 못생겼어! 잘생긴 건 아니지만,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

“…….”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구나. 어떻게 하지? 내가 안마라도 해줄까? 사과의 의미로, 여기 사람들 모두 어깨를 주물러 줄게.”

“뭐? 좋아. 루루라고 했지? 사과받아줄게. 우선 나부터…….”

“뭐야! 난 아직 사과받아주겠다는 말 안 했어!”

“트랜트, 그래서 안 받아주면 뭐 어쩔 건데? 내 말도 안 듣고 무작정 내기했다가 져서 돈도 털린 주제에, 다시 가서 또 시비 걸게?”

“…….”

“적당히 하고 풀어. 나 고양이한테 안마받아보고 싶단 말이야. 루루! 트랜트도 이제 괜찮대. 그러니까 빨리 나부터 해줘!”

“알았어!”

“흐으, 흐어아…… 좋아…… 아아.”

루루의 말랑말랑 앞발 안마 서비스 덕분에 여관엔 평화가 찾아왔고, 아이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차피 더는 안 볼 사이니까, 이제 문제 생길 일은 없겠지.’

잘못된 생각이었다.

목적지가 같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그들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똑같은 마을에 방문했고, 똑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트랜트라는 이름의 사내는 자신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다행히 예전처럼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지만, 그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보다 앞서 걷는 용병 무리를 보며, 아이른이 쿠바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겹칠 것 같죠?”

“그럴 수밖에. 데린쿠가 목적지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맥 너머에 볼일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이네.”

“결국 동행하겠네요.”

“아마도?”

쿠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이 위치한 곳은 알하드 산맥의 근처 도시로, 데린쿠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야 한다.

허나 그 길목에는 규모가 큰 산적집단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많은 인원과 함께 모여서 가는 편이 좋았다.

아이른 일행이 상단 호위 병력으로 들어가려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보긴 하겠지만, 자네라면 문제없지.”

“나도 문제없어!”

“으음, 고양이한테까지 테스트를 강요할 것 같진 않네만…….”

“쿠바르는 자신 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쿠바르는 오크 점술사고, 오크 점술사는 행운의 상징일세. 내가 상단에 합류한다고 하면 누구든 반길 거라고.”

쿠바르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루루는 고개를 저었고, 아이른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상단으로 향하는 내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허나 그들보다 한발 앞서 걸어가고 있는 용병, 트랜트의 기분은 가볍지 못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아이른 일행의 말소리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애송이 새끼가 허세는!’

그는 저 녀석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아이른라는 이름을 가진 애송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능글능글한 말투로 내기를 제안한 오크보다도, 자신보고 못생겼다고 말한 고양이보다도 더욱.

녀석이 검사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검사답지도 않은 녀석이 검사인 척을 하고 다녀서였다.

고생 한 번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하얀 피부.

검사임을 자처하면서 검을 갖고 다니지 않는 안일함.

대 크로노 검술관의 관주인 이안 님을 쉽게 입에 담는 가벼움까지.

녀석은 어떻게 봐도 겉멋만 잔뜩 든 풋내기에 불과했다.

아마 검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분위기에 취해 제대로 된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나네. 어떻게 이안 관주님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

그때의 일을 떠올린 트랜트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은 아마 모를 것이다.

평민 출신으로 대륙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안 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쿤 님이 얼마나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것인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평민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는지.

이를 아는 녀석이라면, 장난으로라도 여관주인이나 의류점 주인 따위를 그분들과 비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는 트랜트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이른은 이안을 비롯한 검사들을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경지를 이루며 거쳐 왔을 고난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려 했고, 헤아려보려 했다.

허나 술에 취해있던 그의 머릿속에서 아이른은 검사를 가볍게 본 풋내기이자 얼간이였고, 그 생각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바뀔 기미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트랜트는 결심했다. 상단 호위 테스트에서 녀석이 엄두도 못 낼만큼 현격한 수준 차이를 보여줘야겠다고 말이다.

“하아압!”

쒜에에엑!

상단 호위대장 앞에 선 그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처음 용병패를 받기 위해 검술을 펼쳤을 때보다도 더 최선을 다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통해, 검사라는 칭호를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는 금발 애송이의 표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음인가.

상당 호위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합격일세.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검술 실력이 대단하군.”

“과찬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칭찬을 들은 트랜트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쪽을 쳐다봤다.

자신의 실력을 잘 봤느냐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허나 녀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능글맞아 보이는 오크와 함께, 여전히 재수 없는 고양이를 어깨에 태우고 상단 호위대장 앞에 설 뿐.

허나 상관없다.

테스트를 보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이 트랜트 님을 대할 때와 자기를 대할 때의 호위대장 표정이 얼마나 다른지.

호위로 고용되어 보수를 받기는커녕, 얹혀가는 처지가 되어 호위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이제부터 똑똑히 알게 될…….

“음! 은(銀) 등급의 용병패라니, 나이가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정말 대단하시오. 테스트는 볼 필요 없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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