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74화 (74/388)

◈ 25. 크로노 검술관 (6)

랜스 페터슨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착각인가 싶기도 했다. 연격을 장기로 쓰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뿐인 것은 아니니까.

물론 검 하나하나가 전부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 역시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아이른 파레이라일 수도 있고.

허나 상대의 검을 받아내면 받아낼수록,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져갔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끊임없이, 쉬지 않고 날아든다.

마치 여러 명이 공격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공격. 허나 그렇지 않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아이른 한 명이었다.

그저 반작용력에 회전이 더해져 가속도가 붙었을 뿐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이 무지막지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격량을 견뎌낼 엄청난 악력, 그리고 원심력에 휩쓸리지 않을 단단한 중심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신체능력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높은 것이다.

게다가 아이른이 두드리고 있는 것은 사물이 아니었다.

상대의 행동에 따라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인간, 그것도 크로노 검술관의 정식 수련생인 랜스 페터슨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굉장히 익숙했다.

스타일 자체가 방어 후 반격에 특화되어 있기도 했지만, 동기 중 한 명이 이와 흡사한 검술을 사용했기 때문.

녀석의 공격일변도 성향을 막아내기 위해 랜스 페터슨은 오랜 시간을 노력했고, 연구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주디스의 검술을 익혔어. 확실해!’

콰아앙!

“큿!”

랜스 페터슨이 신음을 흘렸다.

딴생각을 하는 사이 반응이 조금 늦었던 탓이다.

그는 흩어지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도 크게 뜨고 상대의 검로를 예측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허나 힘들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의문부호가 랜스 페터슨의 머릿속을 마구 헝클었다.

화염 돌풍이 몰아치듯 한 검격 속에서 그가 생각을 이어갔다.

도대체 언제 익혔을까?

자신이 모르는 사이 둘이 만난 적이 있었던가? 주디스와 몰래 만난 아이른이 자신을 놀라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타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아는 바로는 주디스는 한 번도 도시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브랫 로이드나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는 부모가 없었고, 당연히 돌아갈 본가도 없었다.

그렇기에 5년 내내 이곳에서만 지냈다.

그렇다면…….

“……!”

아이른의 검을 막던 랜스 페터슨의 눈이 커졌다.

드디어 알았기 때문이다. 오답을 하나하나 배제하고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이 말해줬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5년 전, 100명의 수련생이 모여 자신의 깨달음을 선보였던 최종 평가.

그 한 번의 기억을 토대로, 주디스의 검술을 자신의 검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콰아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아이른은 불꽃처럼 사납게 휘둘렀고, 랜스 페터슨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막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충돌 후의 양상이었다.

공세 이후 처음으로 아이른의 자세가 무너졌다.

예상을 초월한 상대의 힘에 밖으로 튕겨 나는 검을 수습하지 못한 것이다.

십여 합 만에 처음으로 드러난 빈틈!

랜스 페터슨은 놓치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가 섬전 같은 찌르기를 내질렀다.

“하아압!”

냉철한 계산에서 나온 공격이 아니었다.

랜스 페터슨에게는 그런 여력이 없었다.

눈앞의 상대가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5년 전에 느꼈던 박탈감이 또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의 차가운 이성을 무너뜨렸다.

그 자리를 뜨거운 분노가 대신했다. 직전의 공격을 받아친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정교함과 힘의 등가교환.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그렇게 끝났어야 할 공격이었다.

슈욱-

허나 그렇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에도 불구하고 랜스 페터슨의 검은 아름다웠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여태까지 내지른 찌르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검로를 그리며 아이른 파레이라에게로 향했다.

요행이 아니었다.

우연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오늘까지 쌓아 올린 수천수만 번의 노력, 그 위에 얹어진 가장 꼭대기의 돌.

그가 그토록 깨부수고 싶었던 벽을 허무는 최선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터어엉!

어느새 방어자세를 갖춘 아이른이 검을 휘저었다.

지금까지의 검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동작,

랜스 페터슨의 찌르기는 이를 뚫어내지 못했다. 예상을 벗어난 반격에 그의 검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휘익……

콱!

지면에 사선으로 꽂힌 대검.

랜스 페터슨이 뒤돌아 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봤다.

처음과 똑같은, 5년 전과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

“하, 하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브랫의 검술까지 재현하다니…… 아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랜스 페터슨이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

재현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그가 꼬맹이 시절의 브랫 로이드, 그리고 주디스를 생각했다.

당시의 녀석들과 자신이 검을 겨룬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2대1로 겨루더라도 자신이 압승할 것이다. 이는 추측이 아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 나를 이겼으니…… 재현했다고 말하면 녀석에게 실례겠지.’

아이른 파레이라는, 5년 전의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의 검술을 자신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현재의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가 과거에 비해 성장했듯이.

그러한 성취의 뒤편에는…….

‘아마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지.’

랜스 페터슨이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헛웃음이 아니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개운한 미소였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재능은 진짜다. 녀석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속이 뒤틀릴 정도로 질투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그의 노력도 진짜다.

이거야말로 보지 않으면 모른다.

녀석이 얼마나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람을 질리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그게, 아이른 파레이라.’

오랜만에 27기 최고의 노력가를 마주한 랜스 페터슨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졌다. 좋은 승부였다.”

“좋은 승부였어.”

바야흐로, 결착이 났다.

승리는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은 자.

아이른 파레이라의 차지였다.

* * *

“우…… 와…….”

“…….”

“진짜 대단하네요. 이게……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저 금발도 27기일 거 같다고 했었나? 맞죠? 진짜 미쳤네요. 수준이…… 진짜 미쳤습니다.”

“…….”

랜스 페터슨과 아이른 파레이라의 대련을 본 동생이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무장에 모인 검사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에 가득 차,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허나 길버트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한 마디라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지금의 감정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지? 이 기분은?’

형용할 수 없었다.

원래도 말재주가 없는 길버트에게 있어서, 지금의 간질간질하면서도 복잡한 감각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뭔가가 복받쳐 오른다.

근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 오묘한 기분 속에서 그는 대련의 여운을 즐겼다.

직접 검을 들고 움직인 것도 아닌데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

“고양이가 하늘을 난다!”

“뭐 그런 거 가지고 놀라. 말하는 고양이면 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검은 고양이를 보며 검사들이 소곤거렸다.

아마 평소의 루루였다면 그들을 향해 무슨 식으로든 반응을 해줬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높이, 더 높이. 3층 건물 높이까지 올라간 루루가 먼 곳을 바라봤다.

도시 알칸트라에 도착하고 가장 진중한 모습.

그가 중얼거렸다.

“저 사람인가?”

“응? 저 사람?”

“누굴 말하는 거지?”

“냥이야, 누가 여기 오고 있니?”

“……그딴 흉악한 얼굴로 냥이 같은 귀여운 말 하지 마라.”

얼굴에 의문부호를 띄운 사람들.

대부분은 눈만 말똥말똥 뜬 채 가만히 있었지만, 몇몇 감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수련생 혼자 보낸 게 걱정된 졸업자가 뒤늦게 오고 있는 게 아닐까.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인 하나가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

노인의 외모는 평범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체구에,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입가에 인자한 웃음을 달고 있는 게,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심 좋은 촌장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 소탈한 분위기의 노인 앞에서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크로노 검술관을 제집처럼 활보하는 늙은이는 알칸트라에 단 두 명.

그중에서도 남자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크로노 검술관의 주인, 이안.

그의 출현에 모든 이들이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허허……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로구만.”

검술관주 이안이 연무장을 슥 훑어봤다.

눈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검사들.

평소라면 웃는 얼굴로 농담이라도 건네 긴장을 풀어줬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존재가 검술관을 찾아왔다.

물론 그런 그라고 해도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있기는 했다.

‘저 검은 고양이는 뭐지?’

멋들어진 옷을 입고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루루. 관주가 일순 멈칫했다.

몹시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지.’

노인이 고양이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느긋하게 연무장의 중앙까지 걸어간 그가 나직이 이름 하나를 불렀다.

“아이른 파레이라.”

“……관주님.”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예. 일단은 잘 지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구나.”

관주의 말 대로였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도통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를 지경.

아이른 파레이라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허나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허리춤에서 검을 빼든 관주가 말했다.

“검사과 검사가 만났으니, 검의 대화를 나누는 게 먼저겠지?”

“…….”

“스승과 제자 된 도리로 봐도 그게 맞겠지. 오랜만에 봤으니 마땅히 자신의 실력을 보여야 할 터.”

우우우웅웅-!

말이 끝난 직후, 이안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기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검사들조차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심지가 약한 몇은 버티지 못하고 한참이나 뒤로 물러났다.

허나 자신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크로노의 주인이 검을 꺼내 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다른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관주가 외부인 앞에서 검을 꺼내든 게…… 몇 년 만이었지?’

‘4년? 5년? 더 됐나?’

모두의 눈이 검술관주 이안, 그리고 그의 앞에 선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했다.

저 금발 청년은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기에, 크로노의 주인이 자신의 무거운 검을 들게 만드는가.

물론 아이른은 그러한 시선들에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관주의 기세를 견디며, 그가 생각했다.

‘아까와 비슷하구나.’

랜스 페터슨과 마찬가지로 보자마자 검을 꺼내 드는 이안.

신기했다. 또 어색했다.

이것이 진정한 검사의 모습이라면, 자신은 아직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네.’

의외로, 즐거웠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부웅, 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륙 최강의 검사를 상대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할 터. 아이른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가겠습니다.”

“와라.”

제자가 예를 표했고, 스승이 받았다.

직후 아이른의 몸이 화살 같은 빠르기로 쏘아져 나갔다.

랜스 페터슨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묘하게 달라졌음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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