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69화 (69/388)

◈ 25. 크로노 검술관 (1)

“흐아암…… 일하기 귀찮구만.”

소도시 의류점의 주인인 윌슨이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매일매일 하는 생각이지만, 역시 아침 일찍 가게를 여는 건 효율이 좋지 못하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혹시 아는가?

아침부터 부잣집 도련님이 가게에 방문해서 값비싼 옷들을 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일은 없지.’

의류점 주인 윌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요즘 사정이 빡빡하다 보니 이런 망상만 늘어간다.

몇 차례 더 투덜거린 그가 으그극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막 먼지떨이를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손님!”

자동으로 지어지는 미소.

억지웃음이 아니었다. 이런 이른 시간부터 손님이 들어오다니, 오늘 운수가 꽤 좋다고 생각했다.

먼지떨이를 내려놓은 그가 황급히 손님을 맞이하러 움직였다.

그리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고양이?’

멍한 표정의 윌슨이 손으로 눈을 비볐다.

뭔가 잘못 본 거겠지.

고양이가 손님일 리가 없잖아. 아마 고양이 가면을 쓴 어린애를 잘못 본 걸 거야.

결론을 내린 그가 눈을 뜨고 다시 손님을 바라봤다.

“…….”

하지만 눈에 보이는 손님의 모습은 여전했다.

검은 고양이.

그런데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멋들어진 가죽옷과 가죽 부츠에, 깃털로 포인트를 살린 모자까지 착용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수인족 같았다.

심지어 말도 했다.

“네가 주인이야?”

“헉! 아, 넵! 제가 윌슨 의류점의 주인, 윌슨입니다. 원하시는 옷이 있으신가요?”

깜짝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자신이 할 말을 잊지 않았다.

수년간 장사를 하면서 입에 밴 버릇 덕분이었다.

질문을 받은 검은 고양이가 대답했다.

“으음! 잘 모르겠어.”

“예?”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뭔가, 뭔가 나한테 부족한 게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를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

“어떡하지, 나?”

역으로 질문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윌슨이 당황해하는데, 또 한 명의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다행히 사람이었다. 꽤 잘생긴 얼굴의 선한 인상의 청년.

그가 말했다.

“루루, 옷가게 가고 싶으면 말을 하고 가야지. 찾았잖아.”

“아, 미안! 간판이 멋져 보여서 들어왔어.”

“그래. 뭐 사고 싶은데?”

“그건 모르겠어. 근데 뭔가 사고 싶기는 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어색함도 없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금발 청년을 보며, 윌슨은 또다시 당혹감을 느꼈다.

뭐지, 내가 아침잠이 덜 깼나. 아직도 꿈을 꾸고 있나.

그것도 아니라면,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해버렸나?

“저기, 이곳 주인이시죠?”

“아, 예!”

“친구가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다는데, 좀 둘러봐도 될까요?”

“다, 당연하죠! 편하게 둘러보십시오!”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가게 안쪽으로 손님들을 이끌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원래라면 대화를 나누며 취향을 알아내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추천해주겠지만…… 윌슨은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멍하니 옷을 고르는 둘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이거다, 이거!”

어린이 사이즈의 빨간 망토를 발견한 고양이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스르르 날아온 망토가 자동으로 등에 둘렸다.

거울 앞으로 비행한 고양이가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더니, 청년에게 말했다.

“어울려?”

“어울려. 엄청 좋아.”

“좋아! 이거 사야지. 여기 옷값이야!”

“헉! 아, 네!”

코앞까지 날아온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윌슨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품에 앞발을 집어넣어 뭔가를 꺼낸 그가 말했다.

“손.”

“네?”

“손 펴.”

“아…… 헉?”

“됐다. 이제 가자, 아이른!”

“잠깐, 가격 제대로 알아보고 준 거 맞…….”

“괜찮아! 내가 마음에 드는 만큼 줬어! 주인도 만족할 거야!”

순식간에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가는 고양이, 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서는 금발의 청년.

폭풍이 몰아치고 간 듯한 분위기 속에 남아있는 것은, 주인장 윌슨과 그의 손에 놓인 생쥐 모양의 황금 조각이었다.

* * *

아이른 파레이라와 고양이 요술사 루루, 둘의 여정은 꽤 한가롭게 흘러갔다.

이미 5년이나 지난 마당에 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루루가 아이른과 함께하는 시간을 굉장히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나 누군가랑 같이 여행 다니는 거 처음이야!”

“어, 진짜?”

“응. 생각보다 훨씬 재밌네.”

도시의 길거리를 날아다니며 루루가 말했다.

휘날리는 망토 자락이 퍽 인상적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은 망토보다는 날아다니는 고양이 그 자체에 꽂혔지만, 이 검은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옆 사람과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그런 루루를 보며, 아이른이 의문을 가졌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 다니는 게 처음이라고?’

의외였다.

그도 대부분의 요술사가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고양이의 성격도 정상과는 먼 편이고.

하지만 루루가 여태껏 수차례 강조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서로 간의 믿음이 요술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한 오십 번은 들은 것 같네.’

그랬던 그이기에 당연히 자신 말고도 소중한 인연이 있을 거라 여겼고, 그 인연과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과 하는 첫 여행이라니…….

‘혹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도중에 사이가 틀어졌나?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쪽으로 사고가 흐르지 않았다.

대화 주제를 바꾸는 게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이른이 다른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는데, 다행히 루루쪽에서 먼저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그 이안? 검술관주?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야?”

“못 들어봤어?”

“들어는 봤는데, 관심이 없어서. 나는 내가 관심 없는 건 잘 몰라.”

“그렇구나. 음…….”

아이른이 검술관주 이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늙고 볼품없는 외관.

허나 대륙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놀라운 검술 실력을 지닌 초인.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 첫 번째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아아, 저번에 들었던 것 같아! 첫 번째 스승이라고 해서 기억났어. 그럼 두 번째는 나인가?”

“응. 네가 내 두 번째 스승님이야.”

“히히. 신난다.”

스승 소리를 듣는 게 좋았던 루루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아이른도 웃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분이라면, 아마 지금 내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 거야. 물론 꿈에 대한 건 관주님도 어쩔 수 없겠지만…….”

“혹시 모르지. 어쩌면 꿈 문제도 해결해줄지도.”

“으음, 그건 힘들지 않을까.”

아이른이 고개를 저었다.

마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마 요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신비로운 현상.

심지어 뛰어난 요술사인 루루조차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검사인 이안 관주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이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루루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사람, 대륙 최고의 검사라며.”

“응. 그게 왜?”

“어떤 분야든 대륙 최고라고 할 만한 사람은 요술사나 다를 바 없어. 상식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능력과 의지를 가졌으니까.”

뭐 안 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거지.

여기까지 말한 루루가 갑자기 모자를 벗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망토와 조끼, 그 밖의 모든 옷을 집어 던져 자신의 아공간에 쑤셔 넣은 그가 아이른의 등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쏙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졸리다.”

“…….”

“좀 잘게. 별일 없으면 깨우지 마.”

“……그래.”

역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아이른이 보다 빨라진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 * *

“도착했다!”

“와아, 도착했다!”

소도시의 의류점에서 망토를 사고 며칠 뒤,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은 크로노 검술관이 있는 알칸트라에 도착했다.

그들만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른의 뒤쪽에는 고양이 다섯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뭔가를 붙잡기 위해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루루 때문이었다.

가방에서 상체만 내놓은 그가 고양이 전용 장난감이 달린 낚싯대를 흔들어 길고양이들을 홀린 것이다.

휙, 휘익!

“하하, 약 오르지? 못 잡겠지?”

미야옹-!

야아아옹!

“루루, 그만해. 얘들하고 같이 안에 들어가면 소란스러워져.”

“그런가? 근데 나는 괜찮나?”

“음, 말만 안 하고 있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조용히 있어야겠다.”

가방에서 빠져나온 그가 어깨 위로 올라와서 말했다.

루루는 보통 주변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성문에 들어갈 때만큼은 얌전히 있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는 고양이 요술사를 처음 본 성문 경비병들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무척 귀찮았기 때문이다.

“혼자 다닐 때는 그냥 텔레포트로 슉 들어가면 됐는데. 그냥 지금도 그렇게 할까?”

“음.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 안에서 만나자.”

“그래!”

슈슉-!

순식간에 사라지는 검은 고양이.

루루가 사라지자 장난감이 달린 낚싯대도 사라졌다.

길고양이들은 멀뚱멀뚱 아이른을 쳐다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그 광경을 웃는 얼굴로 쳐다봤다.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졌네, 나.’

나쁘지 않은 기분.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대도시 알칸트라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리에 마법 등이 이렇게 많다니…….”

성문이 닫히기 직전이라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어둡지 않았다.

길 곳곳에 설치된 마법 등 덕분이었다.

그 밖에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았다.

소도시나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련된 건축물.

알 수 없는 향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

곳곳에 설치된 아름다운 조각상과 분수대.

아름다웠다. 들어오기 전에도 커다란 규모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내가 사는 곳은 완전 촌구석이었구나.’

소규모 왕국인 헤일 왕국에서도 지방 쪽이었으니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꽤 충격이었다.

물론 이곳 알칸트라가 유독 발전한 도시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공업자들이 모여 만든 도시다 보니 자본도 엄청난 데다, 크로노 검술관의 본관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웬만한 나라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거듭났으니까.

그렇다.

결국 이 도시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은, 크로노 검술관의 공이 컸다.

‘그렇게 대단한 곳이었구나, 크로노 검술관.’

크로노 검술관의 저력을 새삼 느낀 아이른.

그는 분수대에 앉아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묵을 곳을 찾았다.

시간이 늦었기에 하루 자고 내일 검술관에 방문하려는 거였다.

마침 적당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크로노 검술관의 본관에서 무척 가까운 ‘검의 요람’이라는 간판의 여관.

‘루루는 알아서 잘 찾아오겠지.’

건물을 슥 훑어본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기름칠이 잘 되지 않았는지 문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다행히 내부는 나름 깔끔한 편이었다.

넓은 1층 홀의 테이블 곳곳에는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건장한 체격이었다.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였다.

‘뭐지?’

심지어 모두가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는 모습.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규모가 큰 도시니만큼 용병 혹은 검을 소지한 여행자들이 많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숙객 전원이 검사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른은 카운터로 걸어갔다.

어쨌든 투숙을 하기 위해서는 여관주인에게 말을 걸어야 하니까.

그런데, 웬 거한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너도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이냐?”

대뜸 하는 반말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른은 귀족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의 나이가 자신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것도 이유였다.

허나 대뜸 ‘크로노 검술관의 손님이냐?’고 묻는 것에는 신경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런데요? 어떻게 아셨…….”

“하하하하하하하!”

“아하, 아하, 아하하핫!”

“저 녀석도 손님이라고? 이럴 수가…….”

“진짜 개나 소나 다 모이는구만.”

직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비아냥거림.

아이른 파레이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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