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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67화 (67/388)

◈ 24. 재회 (2)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감정을 진정시킨 둘은 밀렸던 대화를 나누었다.

시작은 아이른 파레이라였다.

‘내가 처음 요술세계에서 나왔을 때 생각나네.’

당시에는 아버지께서 먼저 가문의 근황을 알려주셨다.

아들의 5년이 몹시 궁금했을 터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자신을 배려해줬었다.

지금은 그때 받은 배려를 베풀어야 할 때였다.

아이른은 루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을 꾹 참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자신이 꾼 꿈과 완벽하게 똑같았던, 그러나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신비한 세상.

그 신비한 세상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 과정.

이를 통해 얻어낸 성과, 그리고 요술세계를 나온 후에 있었던 일들.

루루는 그 모든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해서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 재밌었다! 역시 요술은 신비로워! 그런 것도 가능하구나!”

“그러게. 나도 검술관 친구들까지 나올 줄은 몰랐어.”

“바깥에 나와서의 얘기도 재미있었어.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긴 하지만.”

“음…… 루루,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내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거야?”

아이른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루루가 몰래 자신을 쫓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토벌대에서 쪽지를 받았을 때부터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메시지를 전달할 만한 이도, 자신을 그만큼 아껴줄 만한 이도 루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 마인 토벌을 나가기 직전에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허공을 유영하다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루루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답했다.

“처음부터 있었어.”

“응? 처음?”

“아이른이 요술세계에서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곁에 있었어.”

“……뭐?”

아이른이 깜짝 놀랐다.

그런 반응이 민망했던 루루가 쇼쇽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얼굴만 빼꼼 내민 검은 고양이가 천천히 자신의 5년을 풀어놓았다.

“네가 요술세계로 빨려 들어간 후에…….”

그리 특별한 서사가 담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1년 정도는 어떻게든 요술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원형 결계 앞에서 매일 빌었다고 한다.

자신이 무사히 원하는 것을 얻고, 하루라도 빨리 현실로 돌아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 말은, 루루가 5년의 세월을 통째로 자신에게 할애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사실…….”

“사실?”

“네 방에 있었던 하얀 고양이도 나였어. 그냥 요술로 색깔만 바꾼 거였어.”

“뭐? 왜!”

“면목이 없어서…… 또 검은 고양이 미신도 신경 쓰였고. 물론 지금은 아니야! 이제 더는 이 일로 슬퍼하지 않을 거고, 엉터리 미신도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아이른은 내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미안하다고도 안 할 거야! 알았어?

이불에서 홱 하고 튀어나와 선언하듯 말하는 루루를 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즐겁고 행복했다.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고민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물론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기는 하지만, 감정적으로 훨씬 편해졌다.

훨씬 밝아진 모습의 그가 변화한 자신의 꿈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으음,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요 며칠 엄청 이상하더라니. 그런데 엄청 신기하네.”

꿈속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루루가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허나 뛰어난 요술사인 그로서도 딱히 말해줄 게 없었다.

애초에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꿈속 사내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꿈속 사내가 아이른 파레이라와 무슨 관계인지.

꿈속 사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게 마지막 부분이긴 했다.

“그 남자, 마인에 대한 증오가 엄청 강한 모양이야. 어쩌면 마인이 아니라 근원…… 악마 그 자체에 대한 증오일 수도 있고. 150년쯤 전의 사람이라면 말이야.”

“으음.”

“뭐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뭐가 중요해? 진짜 중요한 건, 그 정체도 모르는 남자의 의지에 네 마음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는 거야.”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조금 씁쓸했다.

검을 처음 들었던 예전에야 사내의 의지에 이끌려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던 게 당연하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던 시절이니까.

허나 지금은 자신의 검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이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그렇듯 부정적인 생각이 아이른을 흔들 때였다.

“괜찮아.”

어느새 코앞까지 날아온 검은 고양이, 루루.

그가 폭신한 발바닥으로 아이른 파레이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전히 읽을 수 없는 표정.

허나 눈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만큼은 명확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

루루가 말했다.

“가끔 흔들릴 수도 있고, 힘들어서 검을 내려놓을 때도 있지만, 결국 다시 힘차게 들어 올릴 거잖아?”

“…….”

“힘들면 나도 같이 들어주면 되고! 나 5년 동안 운동 엄청 해서 힘도 세졌거든! 파레이라 영지 고양이 중에 내가 힘 제일 세!”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포즈를 취하는 루루.

아이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머릿속에 루루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널 믿지 못할 때면 너를 믿어주는 이를 믿어. 그리고 나중에 그 존재가 힘들 때, 네가 받았던 믿음을 그대로 갚아줘.’

다행이었다.

루루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지금 자신의 곁에는 루루가 있다.

또 부모님도 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동생 역시 자신을 믿고 사랑해준다.

크로노 검술관의 인연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해결 못 한 일들이 있구나.’

일리아 린제이와의 약속.

검술관주 이안과의 약속.

한참 기한을 넘기긴 했지만, 절대 저버릴 수 없는 약속들이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보고 싶기도 했다.

‘주디스도 보고 싶고…… 브랫 로이드는 어떻게 지내지? 마지막 모습이 많이 안 좋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음.”

검술관 사람들을 하나씩 그리던 아이른이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자신이야 요술세계에서 그들의 아바타(Avatar) 같은 존재와 함께 있었다지만, 그들 입장에서 자신은 5년이나 보지 못한 옛 인연이다.

‘설마, 나 혼자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혼자서 강력한 마인을 토벌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소심함.

그러나 이것이 아이른 파레이라의 본모습이었다.

쓸데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허나 아이른보다 훨씬 불안한 이는 따로 있었다.

“아이른, 아이른.”

“응?”

“부탁이 있는데…….”

“뭔데?”

“저기, 그…… 키릴…… 키릴이랑 얘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어, 또…… 화해도 하고, 그러니까…… 그러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약속한 거다! 약속한 거야!”

여동생의 새침한 얼굴을 떠올린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의 걱정에 비하면, 자신의 걱정은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 * *

가이른 자작가에서 하루를 묵은 파레이라 가문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영지를 떠났다.

원체 불편한 관계기도 했고, 분위기도 몹시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아쉽군요. 마음 같아서는 저 혼자라도 따라가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럴 순 없겠군요.”

황혼 기사단 부단장 힐 버넷이 특히 아쉬워했지만, 그의 말대로 할 일이 있다 보니 따라오지는 않았다.

대신 고양이 요술사 루루가 따라왔다.

물론 대놓고 아이른 파레이라와 함께한 것은 아니고,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몰래 행동했다.

아직은 가족들의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허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법.

파레이라 영지에 도착하고 하루 뒤, 루루는 파레이라 내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오히려 아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힘써주셨으니, 감사를 표하는 게 맞겠죠.”

“맞아요. 혹시 마음고생이 심하셨다면, 더는 그럴 필요 없어요.”

당연하게도 파레이라 부부는 루루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아들은 무사히 요술세계를 빠져나왔다.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검사가 되어 돌아왔다.

‘정말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아드님은 왕국의 보물, 아니 대륙의 보물입니다!’

‘정말 뿌듯하시겠습니다. 부럽습니다!’

힐 버넷과 황혼 기사단원들이 했던 말들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하룬 파레이라가 또다시 벅차오르는 감정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며 말했다.

“앞으로도 불편해하지 말고 편히 있어도 됩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루루가 테이블 위에 납작 엎드려 감사를 표했다.

물론 키릴 파레이라와의 대면은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

“…….”

“……아무 말 안 할 거야?”

“아니, 그러니까…….”

토벌이 끝날 시점에 맞춰 스승의 허락을 받고 가문을 방문한 키릴 파레이라.

그녀의 표정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예전처럼 루루를 밀어내고 배척하지는 않았다.

어색하게나마 화해도 했고, 아이른이 힘을 쓴 덕분에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다.

여전히 차가운 키릴의 표정에 루루가 조금 시무룩하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원만한 결과였다.

앞으로의 관계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렇듯 파레이라 가문 사람들과 루루가 밝은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가이른 자작가는 그와는 정반대로 먹구름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챙그랑!

“차 맛이 왜 이래!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차를 내올 수 있지? 누가 탄 거야, 이거!”

“그, 그것이…….”

“너냐? 네년이야?”

“히, 히익!”

가이른 자작의 고함에 하녀가 울상을 지었다. 몸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몹시 애처로웠다.

허나 자작에게 자비란 없었다. 있는 힘껏 하녀를 걷어찬 그가 말했다.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저리 꺼지라고!”

“으윽! 네, 넵! 죄송…….”

“닥치고 빨리 나가!”

마인 토벌이 끝난 이후, 필 가이른의 히스테리는 더욱 심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랑이었던 큰아들은 망신을 당했고, 가문 역시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다.

거머리 같은 힐 버넷이 토벌 마지막 날의 책임을 끊임없이 물어왔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건, 여론이 그들에게 있어 나쁘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정신 세뇌를 당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덕에 변명에 설득력이 생겼던 까닭도 있고, 토벌이 실패한 것도 아닌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물론 불행 중 다행일 뿐, 이번 일이 가이른 가문에 가져온 손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던 잭 스튜어트.

그의 입이 열리는 순간,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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