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66화 (66/388)

◈ 24. 재회 (1)

요술세계에서 벗어난 후에도 아이른 파레이라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인 토벌이라는 중요한 일 앞에서 마냥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난날의 과오를 씻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이들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안 검술관주.

일리아 린제이, 주디스, 브랫 로이드.

그리고 고양이 요술사 루루.

그중에서도 루루에 대한 그리움은 특히 강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결계에서 벗어난 직후 침대 밑에서 들었던 소리, 5년 만에 루루를 만난다는 설렘, 그것이 착각임을 알았을 때의 허탈함…….

그러나 지금, 그때의 감정은 아무 상관도 없게 되었다.

진짜 루루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루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른 파레이라가 앞으로 다가갔다. 확실히 루루가 맞았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검은 고양이는 그가 알기로는 하나뿐이니까.

그가 상대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렸다.

그때, 루루가 앞발을 들어 아이른을 제지했다.

발바닥에 있는 분홍색 육구가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귀여웠다.

물론 이런 진중한 분위기에서 그걸 말할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른이 물었다.

“왜?”

“나랑 얘기는 나중에. 일단 잭 스튜어트의 얘기를 들어.”

“어?”

“이 사람이 하는 얘기가 네 마음의 짐을 덜어줄 거야. 아마도.”

말을 끝낸 루루가 스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아이른이 잭 스튜어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각한 얼굴.

마인 소굴에서의 일이 있었을 때와 별반 차이는 없지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가 물었다.

“잭 스튜어트 경?”

“예, 파레이라 공자님.”

“할 말이 있다고요?”

“맞습니다. 마인 소굴에서의 일…… 그 때문에 힘들어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내가 그랬어.”

아이른이 루루를 돌아봤다.

루루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거 맞잖아. 마음 흔들렸던 거. 굳이 가이른 자작의 수작질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

“그리고 자작의 말을 아예 신경 안 쓰는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사내의 의지에 휩쓸려 검을 들었다는 점,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다.

허나 가이른 자작의 말 역시 가슴에 남은 것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그때의 나는…… 인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

오로지 마인을 베는 것에만 온 관심이 쏠려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두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말이다.

자신의 검이 흔들린다.

그로 인해 누군가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한 사실은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부담감을 주고 있었다.

허나 이어지는 잭 스튜어트의 말은, 그런 그의 생각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었다.

“제 목숨을 신경 써준 사람은, 토벌대에서 아이른 파레이라 님이 유일했습니다.”

“네?”

“그 누구도 제 목숨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힐 버넷 부단장도, 제 부하들도…… 제 주군인 필 가이른 자작도 말입니다.”

잭 스튜어트가 당시를 떠올렸다.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상황에 대한 난감함이 가득했던 토벌대의 시선.

대륙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던 힐 버넷의 냉엄한 눈빛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을 버리려던 가이른 자작의 역겨운 눈빛.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았다.

라이언 가이른의 목숨만을 귀하게 여겼을 뿐.

그러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달랐다.

그만이 자신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신은 그저 마인을 베고 싶다는 마음뿐, 누군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때문에, 잭 스튜어트의 말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허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는 반박할 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공자님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솔직히 말해 제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파레이라 공자님만이 검을 들었고.”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른 파레이라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무조건 죽었을 겁니다.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빠르게 말을 쏟아낸 뒤, 마지막으로 감사를 표하는 잭 스튜어트.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의 감정도 진심이었다.

거대한 분노와 서러움, 허탈함 속에 한 송이 꽃처럼 피어있는 자신에 대한 고마움.

상대의 눈을 본 아이른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루가 말했다.

“네 의지가 흔들렸다는 건 안 좋은 일이지. 엄청, 엄청 심각한 일이기도 하고.”

“…….”

“하지만 그 덕분에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면, 그것보다도 더…… 엄청, 엄청, 엄청 좋은 일이 아닐까?”

고양이 요술사의 현자 같은 말에,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격해졌던 감정이 가라앉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잭 스튜어트는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고해성사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파레이라 가문의 활약을 막기 위해 자신이 식사에 독을 탔다는 것.

그것이 통하지 않자 전투 시에 훼방을 놓으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지시가 필 가이른 자작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물론 제 잘못 역시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군의 지시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짓이었습니다. 기사 된 도리로 봐도 그렇고, 인간으로서도 그렇습니다. 마인을 토벌하러 가는 일원으로서 그런 짓을 하다니……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굉장히 기분 나쁜 이야기.

물론 놀랄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이니까.

하지만 알고 있었다고 해서 그에 대한 대책까지 마련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이른 파레이라 공자님.”

“…….”

아이른 파레이라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사람의 악의와 무시, 조롱을 받아왔다.

때문에,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여럿 알았다. 예전에는 회피했고, 지금은 당당히 맞섰다.

허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대했던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찾아오고, 또 자신의 잘못을 빌며 처벌을 받겠다고 한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솔직히 당황스럽네.’

물론 잭 스튜어트를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끼친 인물이었으니까.

허나 지금 당장은 무언가 똑 부러지게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가 힐끗 시선을 뒤로 넘겼다.

한참 멀리, 방 끝쪽에 둥둥 떠 있는 루루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그는 지금 루루와 대화하고 싶었다.

소중한 인연과의 5년 만의 재회를 잭 스튜어트로 인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죠.”

“파레이라 공자님…….”

“당신을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복잡하니 이만 물러가세요. 알겠습니까?”

“……예. 반드시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 잭 스튜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열었다.

헌데 루루마저 그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아이른이 외쳤다.

“루루!”

소리치기만 한 게 아니다.

빠르게 달려가 루루가 나가기 전에 문을 닫았다.

등이 밀린 잭 스튜어트가 문밖에서 어어! 하며 당황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잠깐의 고요.

아이른은 눈을 마주치려 했고, 루루는 피했다.

공중에서 내려온 그가 터벅터벅 걸어 방의 구석으로 향했다.

자신을 등진 모습.

그 쓸쓸한 모습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요술세계에 들어간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아마 키릴과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자신 때문에 사이좋은 가족이 5년간이나 생이별을 했으니, 볼 면목이 없다고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열 번, 백번 말해도 모자랐다.

자신이 요술세계에 진입한 것은 자신의 의지로 인해서였고, 어디까지나 성장을 위해서였다.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루루가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의 닫혀있는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잘 가르쳐줬으면, 다른 능력이 발현됐을 거야.”

“5년이나 가족들과 떨어져 있지 않았을 거고.”

“키릴도 그렇게 슬퍼할 일 없었겠지.”

“다 나 때문이야. 미안해.”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고, 네 잘못이기는커녕 네 덕분에 이렇게 멋있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해줬다.

네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대륙에 한 줌도 안 되는 요술사가 되어 검술을 갈고 닦을 수 있었고, 이처럼 무사히 마인 토벌도 마칠 수 있었다고, 두 번 세 번 말해줬다.

그러한 정성이 통했음인가. 루루의 귀가 쫑긋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다시금 루루의 귀가 추욱 처졌다.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불운한 고양이야. 불운한 검은 고양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거 미신이라고,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이라고 네가 그랬잖아.”

“미신에도 힘이 있어.”

특히 유명한 미신은 더욱.

잠시 뜸을 들인 루루가 설명을 이어갔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많은 사람이 믿으면 현실이 돼.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라도 많은 사람이 떠받들면 대단해져. 많은 사람의 의지가 모여 요술이 되고, 세상의 법칙을 바꾸는 거야.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들어봤어?”

“아니.”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걸 말하는 거야. 옛날 사람들이 태양을 믿고, 거대한 바위를 숭배하고, 그랬던 거. 그런데 그게 마냥 헛소리는 아니야. 어떤 요술사들은 성국의 신도 그렇게 탄생한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

“그러니까 나는 불운한 검은 고양이야.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새로운 지식에 아이른이 당황했다.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제들이 듣는다면 대노하겠지만, 요술을 각성한 그는 루루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검은 고양이를 설득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할 터였다.

아이른이 방의 구석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깜짝 놀란 루루가 도망가려고 했지만 늦었다.

능력이 발동하기 전에 잽싸게 상대를 품에 안은 그가 말했다.

“오늘부터 검은 고양이는 행운의 상징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검은 고양이는 불운하다니까.”

“아니야. 나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믿어. 옛날부터 그랬고, 오늘부로 더 확신해.”

“이상한 말 하지 마!”

루루가 강하게 꼼지락거리며 소리쳤다.

그런 그에게, 아이른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믿는 거를 다 합친 것보다, 내가 더 강하게 믿을 거야. 네가 행운을 불러오는 고양이라고 말이야.”

“…….”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 아니야?”

담담한 듯하지만, 심지가 굳은 목소리.

이번에는 고집 센 루루도 저항할 수 없었다.

발버둥을 멈추고 얌전히 아이른 파레이라의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

그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