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악마를 베는 검 (3)
“……!”
“……!”
공동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검은 핏물을 잔뜩 흘리며 좌우로 갈라지는 마인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황혼 기사단의 부단장마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렇듯 모두가 멈춰버린 것 같은 세상 속에서.
투우웅-!
아이른 파레이라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린 그의 눈이 차가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마인의 쪼개진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캬아아악-!
그녀가 모시는 악마 라스트로는 그림자의 악마.
덕분에 두 동강 난 몸뚱이도 두 개의 그림자처럼 쉬이 합쳐질 수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몸이 붙는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마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뭐야? 타격이 생각보다 훨씬 커!’
허나 느긋하게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마인은 전력을 다해 몸을 수복했고, 가장 먼저 자신이 잡은 인질에 집중했다.
이놈들은 자신의 목숨 줄이었다.
다시금 녀석들의 목을 조인다면 저 천둥벌거숭이도 행동을 멈출 것이다.
‘미친!’
아니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금발 녀석의 눈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하늘 높이 치켜 올려진 대검의 기세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의 머릿속에 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노린다.
그러니까…….
‘막지 않으면…… 죽어!’
콰아앙!
인질을 내팽개친 마인의 아름다운 흑발로 몸을 가렸다. 그 위에 아이른의 대검이 떨어졌다.
간발의 차이로 방어에 성공한 그녀가 저 멀리 날아갔다. 표정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재차 돌진한 아이른이 검을 휘둘렀다.
끊임없이,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콰앙!
콰앙!
콰아앙!
바윗덩이를 부숴버리겠다는 느낌으로 떨어져 내리는 연격!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반탄력과 회전력, 중력이 한꺼번에 담긴 힘은 악마의 권능을 듬뿍 받은 그녀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가중되는 압박 속에서 마인이 생각했다.
‘이 정도로 격차가 날 상대가 아닌데!’
분명 저놈은 뛰어나다.
검술도, 마인인 자신을 대하는 자세도 다른 토벌대 녀석들과 비할 수 없이 훌륭하다.
허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밀리고 있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금발 청년의 검에서, 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자꾸만 마기(魔氣)를 흩어버리고 있는 탓이었다.
‘어떻게 이런…….’
콰아앙!
“크윽!”
집중력이 흩어진 틈을 타 내리꽂힌 강격. 마인의 상·하체가 분리되었다.
표독스러운 표정의 그녀가 재차 권능을 사용하려 했다.
허나 아이른이 한발 빨랐다. 뻐엉, 하체를 저 멀리 걷어찬 그가 다시금 칼질을 시작했다.
“하아압!”
콰광!
뒤이어 도착한 힐 버넷이 마인의 하체를 맡았다.
아이른보다도 더욱 야만적인 느낌으로 쏟아지는 폭력.
최후를 직감한 마인이 피비린내 나는 웃음을 보였다.
잠시 후, 걸레짝이 된 상체가 검은 불꽃과 함께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아이른!”
“아이른 파레이라!”
“허억! 파레이라 공자!”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진 하룬 파레이라, 그리고 그에 비할 수는 없지만, 걱정이 가득 들어찬 얼굴의 힐 버넷과 기사단원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무색하게, 아이른 파레이라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후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흙먼지 속을 걸어 나오는 금발의 청년.
그를 바라보는 토벌대원 전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보잘것없는 헤일 왕국에서, 대륙을 놀라게 할 만한 천재가 나타났다고.
“……할 말이 없군.”
힐 버넷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렇게 3일간 치러진 헤일 왕국 남부 마인 토벌전은 끝이 났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은 채.
“와,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헤일 왕국의 보물!”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해, 황혼 기사단원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남부 가문들도 마찬가지였다.
토벌대끼리 상잔할 수도 있었던 방금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의 결과는 최선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러셀과 레스터 남작마저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룬 파레이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직 가이른 자작가의 사람들만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있을 뿐.
“와아아아아아아!”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끊이지 않는 기쁨의 함성 속에서, 필 가이른은 말없이 아들을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를 휘하 기사들이 부축했다.
잭 스튜어트에게도 병사 하나가 붙었다.
“아니, 괜찮다.”
“하지만…….”
“정말 괜찮다. 부축을 받을 정돈 아니야.”
병사의 부축을 거절한 잭 스튜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가이른 자작가 쪽으로 합류했다.
토벌에 성공한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
뒤늦게 다가온 황혼 기사단 부단장이 그에게 말했다.
“……미안하네, 정말로.”
“아닙니다. 토벌대장님은 성국의 지침을 따랐을 뿐이니까요. 오히려…….”
아주 작은 목소리.
뒷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허나 힐 버넷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잘한 일들은 성으로 복귀해서 생각해야겠어.’
일단은 쉬고 싶다.
그러려면 이곳부터 빠르게 정리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힐 버넷이 사제들에게 다가갔다. 마인의 본거지를 정화하기 위해서였다.
“…….”
그렇듯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한 가운데.
토벌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활약을 한 인물, 아이른 파레이라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이틀 뒤, 마인 토벌대 전원은 무사히 가이른 영지로 복귀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망자는커녕 다친 사람조차 아무도 없다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정말로.”
“그러게 말이야. 별 볼 일 없는 마인도 아니었잖아? 내 살면서 그렇게 강한 마인은 처음 봤다니까.”
“이거 웃기는 놈이네. 마인 토벌 고작해야 이번이 두 번째면서. 그리고 너는 마인 앞에서 검 한 번 안 휘둘렀잖아?”
“아!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딱 보면 알지 않습니까! 처음 정신세뇌 걸었을 때도 그렇고, 잭 스튜어트 경과 가이른 가의 대공자한테 쓴 능력도 그렇고! 아마 부단장님도 놀랐을걸요? 와, 그런데 그 강력한 마인을 혼자서…….”
황혼 기사단의 젊은 기사 하나가 신이 나서 아이른 파레이라의 무용담을 쏟아냈다.
이미 꽤 시간이 지났고, 게다가 주변에 있는 이들 역시 같은 광경을 본 이들이라 이야기의 재미는 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흥미진진하게 젊은 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만큼 여운이 강했기 때문이다.
왕국을 넘어 대륙에서도 놀랄 정도의 재능!
21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엄청난 실력의 검사가 나타났다.
그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기사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을 터였다.
그들은 꿀처럼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며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아이른 파레이라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나 모든 이들이 황혼 기사단원들처럼 팔자 좋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가이른 자작가가 그러했다.
필 가이른 자작은 힐 버넷의 명령을 정면에서 무시한 것도 모자라, 성국의 지침을 어기고 내부 분열까지 일으키려 했다.
이는 토벌대장의 입장에서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허나 필 가이른 자작은 준비된 변명거리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뭐?”
“그 마인 녀석의 정신세뇌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
“아무리 아들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륙의 평화를 저버리면서까지 고집을 부릴 정도로 얼간이는 아닙니다, 내가. 정말입니다. 정말 그 간악한 마인 녀석의 세뇌만 없었더라면…….”
힐 버넷은 기가 찼다.
그럴 리가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렇기에 세뇌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표정부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말이다.
허나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가이른 자작가에 강하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생각 보다 어려워졌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배상 건과는 상관없지만, 자작가는 아이른 파레이라의 흠을 부풀리는 소문을 통해 자신들 쪽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단독으로 행동할 권한을 줬다지만, 마인을 앞두고 돌발 행동을 벌인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는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질 구출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귀족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약자보호의 덕목을 완전히 무시했다!’
물론 힐 버넷을 비롯한 황혼 기사단원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오히려 가이른 자작가의 역겨운 태도에 학을 뗐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아이른 파레이라는 당시의 행동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의 검을 들지 못했다.’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마인과의 격전을 떠올린다.
전투 내용만을 봤을 때는 흠 잡을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허를 찌른 공격 이후 기세를 잡았고, 그로 인한 이점을 시종일관 이어갔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은 덕에 폭발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가족을 위한 검이 아니었어. 그건…… 오로지 마인을 베기 위한 검이었어.’
그 사실이 아이른에게 준 감정은, 자신에 대한 실망이 아니었다.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는 지난 5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했다.
그 과정에서 방황도 하고 좌절도 했다. 허나 결국에는 이겨내고 단단해졌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검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명검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 듯, 자신의 의지도 흔들릴 날이 오긴 할 거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그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역시 꿈…… 사내 때문인가?’
아이른 파레이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항상 자신을 돕기만 했던 꿈이다.
그는 꿈이 변할 때마다 성장의 발판을 얻었고, 높이 도약해왔다.
지금도 검술만 보면 그것이 맞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검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겨우 스물이 넘은 청년은 답을 알지 못했다. 답을 향해 나아갈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이른은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도와줄 사람이 찾아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깜짝 손님.
잭 스튜어트의 방문을 확인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잭 스튜어트 경?”
“안녕하십니까, 아이른 파레이라 공자.”
“어떻게 여길…… 왜…….”
허나 더 놀라운 손님은 따로 있었다.
잭 스튜어트의 뒤로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존재.
검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고양이 요술사, 루루를 보는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