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62화 (62/388)

◈ 22. 헤일 왕국의 잠룡(潛龍) (6)

“뭐야, 지금?”

“아무래도 대련하는 것 같은데?”

“부단장님하고? 진짜야?”

“응. 내가 지나가다가 들었어. 아무래도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신가 봐.”

“허어…….”

숙영지 바로 옆의 공터로 걸어가는 황혼 기사단의 부단장과 아이른 파레이라.

둘을 본 남부 6가문의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 중 첫 번째가 남의 집 불구경, 두 번째가 싸움 구경이다.

심지어 이번에 싸우는 대상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헤일 왕국의 미래라고 불리는 젊은 기사, 힐 버넷.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미친 활약을 보인 아이른 파레이라.

이 둘이 검을 맞댄다고 한다면, 불구경보다도 훨씬 재미있는 볼거리가 펼쳐질 터였다.

물론 6가문 사람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호기심뿐만이 아니었다.

‘이젠 부정할 수 없겠어. 아이른 파레이라는 완전히 부단장 인맥을 잡았다.’

‘하긴, 오늘 보여준 활약이면 누구라도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하…… 내 아들이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나도 부단장님 같은 검의 고수와 대련할 기회가 있었으면…….’

숨길 수 없는 부러움.

그러한 감정을 진하게 뿌려대는 사람들을 보며 파레이라 남작은 한 번 더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가이른 자작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앉아있는 황혼 기사단의 기사들은…….

“부단장님과 대련을 한다고? 으으…….”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한 일이지, 끔찍한 일이고말고.”

남부 6가문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부러움이나 질투 따위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아이른 파레이라를 보는 시선도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동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장 젊은 기사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저기, 부단장님과의 대련이 그렇게 빡빡한가요?”

“어? 아, 너는 입단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나?”

“예, 기사단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파견 나온 거라…… 그래서 그런데, 도대체 부단장님이 어떻기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 틈이 없는 성격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고수와의 대련은 얻는 게 많을 텐데…….”

“얻는 거?”

신입 기사의 말을 들은 주변 기사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모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얻는 거…… 물론 있지. 부단장님과 대련 한 번 하고 나면 몬스터든, 마인이든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거든. 아마 너도 돌아가서 한번 해보면 알 거야.”

“…….”

“남이 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는 실감이 안 나니까, 꼭 직접 해보라고. 하하하!”

“맞아. 직접 꼭 해보라고! 어차피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지만. 하하하하!”

선배들의 웃음소리에, 신입 기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부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힐 버넷은 좌중의 이목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 있는 건 오로지 아이른 파레이라, 한 명뿐.

그가 말했다.

“그리 어둡진 않지? 달빛이 진하기도 하고, 옆에 모닥불도 있으니 말이야.”

“예, 괜찮습니다.”

“하긴, 자네 정도 실력이면 어둠 따위 상관없긴 하겠어. 이미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과찬이십니다.”

“그런 겸손한 면이 자네 매력이긴 하지만, 그게 과하면 남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거 명심하게. 아마 나와 단장님을 빼면 우리 기사단 중에 자네보다 뛰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데, 그렇게 겸양만 떨면 그 치들은 뭐가 되나?”

“유념하겠습니다.”

“좋아.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스르릉-

힐 버넷의 검이 뽑혀 나왔다. 달빛을 머금고 예리하게 빛나는 날이 꽤 위험하게 느껴졌다.

허나 더욱 신경 쓰이는 점은 따로 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상대의 눈을 바라봤다.

“…….”

방금 전과는 판이한 눈빛.

단순히 고수가 뿜어내는 안광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보다 훨씬 더 흉포하고, 날것의 분위기.

약간이지만 피비린내마저 나는 듯한 모습에 아이른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내 기사 생활에 있어 굵직한 사건들은, 대부분 마인 토벌이었지.”

힐 버넷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진지한 모습은 아니었다. 마치 동네 골목대장 꼬마가 장난스럽게 갖고 노는 것 같은 모습.

허나 아이른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가 요술세계에서 불러온 대검을 들었다.

“자네도 오늘 봤으니 알겠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녀석들이야. 짐승보다 훨씬 추악하고, 몬스터보다 훨씬 역겨운 놈들.”

“처음엔 녀석들과 마주하는 게 너무 싫었어. 모두가 다 그렇지만 나는 특히 심했다.”

“내 검술 스타일상, 남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맞대야 하거든.”

부단장의 검술은 특별하다.

정확히 말하면 검술이 아니다. 주먹, 발, 어깨, 박치기 등 무기보다 몸뚱이를 더 많이 활용하는 그의 기술은 더 넓은 범주에 두는 것이 맞을 터.

그런 투박한 싸움법을 즐겨 쓰다 보니, 힐 버넷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마물과 눈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마인의 소름 끼치는 시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공포에 질려 검을 꺾고자 했던 순간도, 한 번이지만 있었다.

허나 그 시련을 이겨낸 이후.

그의 눈에는 마인 조차 두려움에 떨 만큼 강렬한 기운이 담기게 되었다.

후우욱-!

“길게 하진 말지. 이 대련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 전력은 제대로 파악해둬야 할 것 같거든. 생각보다 마인이 꽤 센 것 같아서 말이야.”

“…….”

“그러니까, 최선을 다한 일검(一劍). 그것만 깔끔하게 보여주게. 무리하다가 다치거나 할 필요 없이…… 그 일 합으로 끝내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세를 잡았다.

정중선. 좌우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정확히 중심에 자리한 대검.

힐 버넷이 속으로 감탄했다.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군.’

검사, 특히 저 정도 수준의 검사가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저보다 한참 못한 자신의 부하 기사들만 하더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허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거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거나.

부르르 몸을 떠는 녀석도 본 적 있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기세는 그 정도로 흉악했다.

그런 기세를 정면으로 받았음에도 자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칭찬 한마디로 끝낼 일이 절대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데.’

마음속으로 상대에 대한 평가를 더 올리고 있는 때였다.

아이른을 응시하던 부단장은, 뭔가가 달라졌다는 느낌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뭐지? 이건…….’

다르게 보인다.

21살의 젊은 청년일 뿐인 상대방에게서, 전과는 다른 것이 느껴진다.

단단한 바윗덩이.

아니, 그보다 강건한 무언가.

‘강철?’

맞다. 그와 비슷하다.

단순히 타고난 것을 과시하는 느낌이 아닌, 한계까지 두드리고 두드려서 완성한 강철 같은 기운.

그 압박감에, 힐 버넷의 입안이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심지어 끝이 아니었다.

아이른의 뒤로 보이는 이미지는 계속해서 커졌다. 끝을 모르고 제 몸집을 불렸다.

사람에서 중형 몬스터로, 중형 몬스터에서 그보다 더욱 큰 무언가로.

더욱 거대한 무언가로!

후우우욱-!

힐 버넷이 더욱 강하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더는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역으로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잡아먹히게 생겼다.

부단장은 후배의 검을 봐주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그의 눈빛이 마인을 대할 때, 아니 그 이상으로 서늘하고 예리하게 바뀌었다.

과열되는 분위기. 점점 팽팽해져만 가는 분위기.

그것을 깨뜨린 것은, 대련의 당사자들이 아니었다.

챙그랑!

“앗! 아아…….”

“…….”

“죄, 죄송, 히끅, 죄송, 합니다!”

대치 중인 둘을 넋 놓고 바라보던 러셀 가문의 병사 하나가, 들고 있던 식기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

토벌대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는 극심한 두려움에 떨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얼굴은 이미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 아이른 파레이라가 물었다.

“계속하는 편이 좋을까요?”

“……아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아, 대련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식기를 떨어뜨린 병사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다행히 그런 분위기가 오래가진 않았다. 부단장이 병사를 신경 써준 덕분이다.

그렇게 약간 아쉬운 상태로 상황이 마무리된 후, 힐 버넷이 선언하듯 말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앞으로 나의 통솔을 받지 않고 개별적으로 움직여도 좋다.”

“……!”

“이 정도 실력이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놔두는 편이 훨씬 토벌대에 도움이 되겠어. 마물이 아닌 마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포함이다.”

그 말을 끝으로 부단장은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갔다.

강한 신뢰로 묶여있는 황혼 기사단원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남부 6가문의 인사들은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를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앉은 힐 버넷은.

‘이정도 실력이라…….’

자신이 방금 한 말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자신은 그의 실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나?

그렇지 않다. 당장 자신이 그보다 위인지, 아래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거대한 충격이 힐 버넷을 덮쳐왔다.

‘세 번째군. 이정도 충격은…….’

첫 번째는 대륙 최고의 천재, 이그넷이 스무 살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역사상 가장 빠른 나이에 위대한 경지에 도달한 그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에 비견되는 천재, 일리아 린제이가 14살에 월광기사단의 명예 단원이 되었을 때.

이 역시 대단한 일이었다.

이그넷의 최연소 소드마스터 기록을 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일리아 린제이뿐일 터였다.

“으음…….”

앞서 생각한 두 사건에 비하면, 사실 아이른 파레이라의 성취는 손색이 있는 편이었다.

21살에 자신과 동급이라는 건 물론 엄청난 일이긴 하지만, 대륙 전체를 뒤져보면 그만한 천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약소국의 기사단 부단장이라는 건 그 정도 위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 비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느낌이야.’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순 없었다. 아니, 아직은 제대로 파악하지조차 못했다.

힐 버넷은 속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헤일 왕국 사람이다.

그 말은 지금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는 뜻.

비로소 힐 버넷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

반면, 아이른 파레이라의 얼굴은 평소보다 심각했다.

마물을 두 차례 상대했을 때 느꼈던 감각을, 방금 또다시 느낀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단장의 눈빛이 보다 흉포하게 바뀌었을 시점부터였다.

‘대단한 기세였지. 마치 사람이 아니라 마물 앞에 선 기분이었어.’

물론 힐 버넷이 타락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두렵고 강한 기운이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 기세에 노출된 뒤, 자신의 검은 보다 단단해졌다.

그리고 예리해졌다. 세 번째여서 그런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러한 생각을 깊게 하려던 차, 아이른은 극심한 수마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 사이 많은 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봤자 크로노 검술관이나 요술세계 시절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혹시 첫 살생의 피로감이 지금 몰려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생각한 아이른 파레이라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이내 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

아주 오랜만에, 꿈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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