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5년 만의 재회 (1)
요술로 만들어진 이세계 속에서 수련하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가장 많이 떠올린 이들은 바로 자신의 가족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검을 든 이유도, 요술을 각성한 이유도 가족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크로노 검술관의 세 명에 대한 생각이 얕으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 외에 가장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인정해준 이들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수련을 도와주기도 했고.
그리고 또 한 명.
아니 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고양이 요술사 루루였다.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한 그에게 ‘타인의 믿음’에 대해서 말해줬던, 그러면서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깊이 믿어줬던, 그리고 지도해줬던 스승님.
그런 그와 재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른은 엄청난 속도로 침대 안을 살폈다.
빛이 없어 어두웠지만 상관없었다.
높은 경지로 올라선 그에게 있어 이 정도 어두움은 장애도 아니었다.
하지만.
애옹-!
그를 마주한 건 검은 고양이가 아닌, 흰색 고양이였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
바깥으로 기어 나오는 흰색 고양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치즈처럼 주욱 늘어나는 허리, 평소에 열심히 그루밍한 듯 깔끔한 털과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
색만 빼곤 루루를 빼다 박았다.
물론 닮았을 뿐, 진짜 루루인 건 아니었다.
흰 고양이를 안은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요술세계에 들어간 뒤에, 루루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상상도 못 했을 터.
누구보다 자신을 믿기는 했지만, 그런 그조차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예측도 못 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끝나진 않았겠지.’
아마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검은 고양이 미신’ 때문에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은 루루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난데없이 자신이 요술세계로 끌려갔다.
그 어떤 언질도 없이. 매우 오랫동안.
물론 그곳에서의 경험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을 터였다.
그저 불운한 사고로 인한 이별로만 느꼈을 것이고, 그 모든 원흉은 루루의 탓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잘 있을까, 루루?’
자신이 나온 건 알고 있을까?
지금은 어디서 지내고 있지?
가족과의 사이는 별 탈 없을까?
만약 문제가 있다면 어떡하지?
내가 무사한 모습을 보여주면, 혹여 부모님과 키릴이 안 좋은 마음을 품었다 해도 풀어줄 수 있겠지?
‘그래, 일단 가족을 보러 가자!’
애오-옹!
아이른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품에 안긴 고양이가 우렁차게 울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가볍게 웃은 그가 머리를 만져주는데, 밖에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벌컥
“이놈의 고양이! 문을 꽁꽁 닫아뒀는데 어떻게 또 들어온…… 어?”
잔뜩 성난 표정의 시종 마르쿠스가 말없이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봤다.
그는 그저 고양이를 잡으러 왔을 뿐이다.
매년 똑같은 공자의 방에 누군가 다른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대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
아이른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을 제외하면 가문에서 가장 자신을 많이 챙겨줬던 마르쿠스다. 곧바로 반가움을 표현해도 모자라다.
허나 달라진 상대의 얼굴이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주름이…… 생각보다 많이 깊어졌는데?’
약간의 불안감. 그리고 혼란.
그것을 겨우 가라앉힌 아이른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리고 먼저 물었다.
“마르쿠스.”
“어? 예, 예?”
“내가 사라진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어어…… 잠시만, 그러니까…… 5년?”
……5년!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에, 아이른 파레이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 *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입니다!’
엉엉 우는 수준으로 호들갑을 떠는 시종을 진정시킨 뒤, 아이른 파레이라는 부모님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원래는 마르쿠스가 보좌해야 했으나 너무 꼴이 엉망이라 그냥 떨어뜨려 놨다.
그렇게 홀로 복도를 걷고 있자니, 많은 사람의 시선이 꽂혔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사람.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
그런 그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사람. 즉, 자신을 본 적이 없는 사람.
‘새로 고용된 하인들이 많아. 알던 사람들도 확실히 나이가 들어 보이고. 정말로…… 5년이나 지났구나.’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다. 아무리 둔한 자신이라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5년이라니, 너무 길지 않은가?
12살의 동생이 17살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사태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키지 못한 약속들도 있고 말이야.’
1년 안에 크로노 검술관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안과의 약속.
그 전에 가문에 방문하겠다는 일리아 린제이와의 약속.
아니, 그 전에 몬스터 토벌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답답해지는 마음에 아이른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허나 그 모든 것들은,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 뒤로 밀려나 버렸다.
“아들아!”
“아이른!”
벌떡 일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른 파레이라는 나는 듯이 달려가 둘을 동시에 껴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가족 모두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멀쩡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꽤 오랫동안 격한 재회의 시간을 보냈다.
“……가문은, 별일 없다.”
어느 정도 감정을 가라앉힌 후, 하룬 파레이라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의 이야기도 무척 궁금했지만,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보다는 아들의 걱정을 앞서 달래주고 싶었다.
“토벌전은 매년 그랬듯이 별 탈 없이 끝났고, 그 뒤로도 문제없었다. 영지 상황은 오히려 나아졌지. 유리공예 길드가 유명해진 덕에 교역량도 늘었고, 새로 들인 기사와 병사들도 능력이 출중하다. 그것 말고도…….”
하룬의 말은 사실이었다.
원래도 전망이 좋았던 파레이라 영지인데, 그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남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세가 웬만한 자작가들을 앞지르는 수준이었다.
“가이른 자작가를 비롯한 다른 가문들도, 예전보단 눈치를 보게 됐지.”
“……정말 다행이군요.”
아이른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세가 커졌다 한들, 그 가이른이 가문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들의 악의는 별다른 이유조차 없이 길고 끈끈하게 이어져 왔으니까.
‘나를 이용해 더 열심히 흠집을 냈겠지.’
아마 맞을 것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더 짙어지는 법이니까.
게다가 아무리 파레이라 영지가 발전했다 한들, 가이를을 포함한 세 가문의 영향력을 웃돌 정도는 아닐 터.
아마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소 과장을 섞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이번에는 어머니의 입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네 동생은 세자르 공국에 있단다.”
“예?”
“아주 훌륭한 요술사님의 제자로 들어갔지. 스키나 키튼 님이라고, 들어봤니?”
들어봤다.
요술로 유명한 세자르 공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력한 요술사, 스키나 키튼.
물론 자신의 견문이 넓기 때문에 아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키릴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난 마음에 안 드는데, 자꾸 귀찮게 한단 말이야.’
루루만큼이나, 아니 루루 이상으로 끈질긴 구애를 했던 요술사.
허나 동생은 끝까지 그녀를 거부했었다. 이유는 잘 몰랐다.
동생의 호불호는 그가 이해하기 힘든 매우 복잡한 영역이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아이른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여튼, 키릴은 어째서 그렇게 귀찮아했던 사람의 제자가 되었는가?
그러한 궁금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말이다.
‘나 때문이겠지.’
몇 년이 지나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강제로 꺼내기 위해, ‘자신의 힘을 키우자.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요술사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한 과정에서 루루가 배제되었다는 것은……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겠고.
‘또 폐를 끼쳤네.’
아이른이 푹 고개를 숙였다.
자책과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허나 그것은 잠시, 아주 잠시였다.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은 그가 속으로 다짐했다.
‘괜찮아.’
과거 부모님이 우울한 나날을 보냈던 것은, 자신이 아들의 몫을 못 했기 때문이다.
지금 동생이 원치 않는 세자르 생활을 하는 것 역시, 자신이 오빠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잘못에 얽매여 계속해서 땅을 파고 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돼!’
세상 모든 일에 정해진 답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이 생각이 정답이었다.
가족들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했다면, 이제부터 더욱 행복하게 해주면 된다.
가문의 명예가 자신 때문에 더럽혀졌다면, 이제부터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관주와의 약속도, 일리아와의 약속도 걱정할 것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갈 수 있고, 사정을 설명할 자신이 있다. 어수선한 일들을 정리하면 곧바로 방문할 것이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아이른은 이처럼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를 이끌어갔다.
예전 나태 공자 시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각오를 다진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하룬 파레이라와 아멜 파레이라가 깜짝 놀랐다.
5년 새 몰라볼 정도로 자란 외관.
그보다 더욱 놀라운 표정의 변화, 태도의 변화.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는 분위기의 변화.
그들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5년의 세월은 아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성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말이다.
“걱정 많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계속 괜찮다고 하셨지만, 염려할 거 하나도 없다고 하셨지만…… 1년도 아니고 5년이나 이상한 곳에 갇혀 있던 아들 생각에라도 하루하루 힘드셨겠죠.”
“이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힘들어하실 필요 없어요.”
“파레이라 가의 장자로서 부끄러움 없는 모습, 오늘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룬도 마찬가지.
가주의 체면 때문에 억지로 참고는 있었지만, 찡그린 표정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단순히 훌륭한 각오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밑에 깔린,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자신감’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에 둘의 감정은 격해졌고, 계속해서 아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루루, 그 고양이 요술사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5년간 갇혀만 있던 거 아니에요.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고,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런 형태로 나온 거고…… 제게 안 좋은 일이 닥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꼭 필요했던 행운이 찾아온 거죠.”
“수련…… 검술, 검술 수련 말이냐?”
“예. 열심히만 한 게 아니에요. 충분한 성과도 거뒀습니다.”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는 말에 하룬 파레이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신감이 몹시 부족했던 아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상당한 표현.
절로 흥미가 생겼다. 검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훌륭한 성취를 얻었다면,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특히 레스터 남작과 러셀 남작, 가이른 자작 가문에 여봐란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과시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간 그들에게 겪어왔던 수모가 워낙 컸던 탓이다.
‘아니, 너무 들떴군.’
파레이라 남작이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몰라보게 성장한 아들이 대견하긴 했다. 전에 없던 자신감도 느껴졌다. 아마 검술이 늘었다는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아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것이다.
고생 많았다고. 수고했다고 말이다. 그것이 제일 우선이다.
‘주책이 늘었구나.’
하룬이 속으로 반성했다.
얼마나 큰 성취를 얻었는지는 상관없다.
그보다는 항상 의기소침하던 아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그만큼의 노력을 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아무래도 아들의 당찬 포부에 자신이 더 흥분했나 보다.
그런 생각과 함께 따스한 격려의 말을 해주려던 때, 잠시 뜸을 들였던 아들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저번에 참여하지 못했던 몬스터 토벌전을 대신해서…… 마침 4월이네요. 다음 달에 있을 토벌전에 참여하겠습니다. 거기서…….”
거기서 활약하여, 파레이라 가의 장자로서의 몫을 다 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에는, 아무리 평정을 유지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내리누를 길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눈물과 미소가 반씩 섞인 하룬 파레이라가 힘겹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벌컥
갑작스레 열리는 문.
그리고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목소리.
“토벌전에 참가하겠다고?”
“…….”
“누구 마음대로?”
몰라보게 달라진 소녀. 아니, 소녀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성장해버린 하룬 파레이라의 딸.
그리고 왕국을 넘어 대륙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전도유망한 요술사.
키릴 파레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