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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50화 (50/388)

◈ 19. 각성 (1)

새벽이 밝았다.

대부분은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다.

물론 나태 공자는 아니었다. 그는 항상 그랬듯 일찍 일어났고, 빠르게 세면과 식사를 마쳤다.

언제나처럼 연무장에 검을 휘두르러 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상이 똑같았지만, 앞으로는 다를 터였다.

‘요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까다롭고, 예측할 수 없는 능력.

오늘의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전부 물리도록 하마.”

비전이라 할 수 있는 요술을 배우는 데 공개된 장소에서 할 순 없는 노릇.

때문에 아이른은 아버지께 연무장의 출입 통제를 부탁했고, 하룬은 이를 받아들였다.

성 밖으로 나가 따로 배우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시종 마르쿠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겠습니까?”

많은 것이 생략된 말이지만 의미를 모를 수는 없다.

고양이 요술사 루루에 대한 소문 이야기겠지. 하룬 파레이라 남작이 말했다.

“본 적 있나?”

“예?”

“내 아들이 먼저 무언가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 이토록 강하게 뭔가를 바랐던 것, 본 적 있냐고 물었다.”

“……처음이지요.”

마르쿠스는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가주와 마찬가지로 소년이 사라진 자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파레이라 가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봄 냄새가 가득한 4월 말이었지만, 이른 아침의 공기는 쌀쌀했다.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이를 느끼지 못했다.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빨랐다.

연무장에 들어서는 것에도, 진열대에 걸려 있는 검을 잡는 것에도 어제와는 다른 조급함이 느껴졌다.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는 조급함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얻고 싶다는 마음.

염원하는 바를 지금 당장 손에 넣고 싶다는 마음.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앞선다는 말은 이런 뜻이구나.

비로소 요술사 루루의 말을 이해한 그가 하늘을 바라봤다.

스르르르

“왔어? 여전히 괜찮은 마음이네! 예전과 달리 불꽃이 느껴져.”

“…….”

“그 불꽃이 부디 오래 가길 바랄게. 아, 너무 걱정할 필욘 없어! 내가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그 안경은 어디서 난 거야?”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은 고양이 요술사를 보며 아이른이 물었다.

그의 말대로 루루는 평소와 달리 안경을 끼고 나왔다. 목에는 붉은색 나비넥타이를 두르고 옆구리에 조그마한 책까지 상태다.

“복장은 중요해.”

“응?”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마음가짐을 다르게 만든다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보면 돼.”

“그런 거야?”

“그런 거야. 그러니까 칭찬해줘, 어서.”

“어…… 고맙습니다?”

“하하, 좋아!”

신이 난 루루가 허공을 빙빙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일곱 바퀴를 돈 그는 옆구리에 낀 책이 불편하다며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마침내 사지가 자유로워진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요술은 마음이 중요해.”

“응.”

“마음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네 경우는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지. 그를 위해 더욱 검술을 갈고 닦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그래.”

“그러면, 그 염원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아이른은 물끄러미 루루를 쳐다봤다.

당연했다. 그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요술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고양이 요술사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범한 교사들이 그렇듯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소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특이하고 산만한 녀석이다 보니 수업도 그럴 줄 알았는데, 꽤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집중하고 있어?”

“아, 미안. 다시 한번 말해줄래?”

“자꾸 그러면 혼난다! 스승님 회초리 맛보기 전에 정신 차려!”

어느새 꺼낸 나무 막대기를 붕붕 휘젓는 고양이, 그의 엄포에 찔끔하는 인간.

신기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끝나고, 이내 루루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장 흔한 건 미신이야.”

“미신?”

“그래. 합리적인 근거 따위 없는 믿음. 하지만 그것 역시 믿음이고, 요술의 세계에선 믿음만큼 중요한 게 없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가 보다는, 그걸 얼마나 진지하게 믿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야.”

무너지지 않고 매일 같이 돌탑을 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대중적인 미신.

신발 끈을 맬 때 왼쪽부터 해야만 하루가 잘 풀릴 거라는 개인적인 미신.

그 밖에 크든, 작든 상관없이 어떠한 근거도 없는 조잡스러운 미신들일지라도,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믿음이 생긴다.

요술사 루루는 그 점을 말하고자 했다.

“일 년, 십 년 동안 미신을 따른 사람이라면 억울해서라도 믿음이 생길걸? 그에 대한 마음은 그만큼 강해지겠지.”

“음…….”

아예 일리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몇몇 이들은 그러한 미신을 세상의 진리로 여기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루루는 그 밖에도 마음을 강화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알려주었다.

“고대의 어떤 왕은 적국의 왕에게 당한 패배를 잊지 않기 위해 복수의 날까지 가시덤불 위에서 잠을 잤다고 하더라.”

해이해지는 마음을 다시금 불태우기 위한 자극과 고통.

“원시인들은 거대한 바위나 태양 같은 걸 신으로 모시고, 공양을 통해 염원을 이루려 했다고도 하네. 실제로 괜찮은 방법 같아. 신앙만큼 강한 믿음은 없거든.”

믿음 중 가장 굳건하다는 신앙을 이용한 방법.

“자신의 희생을 대가로 한 방법도 꽤 효과가 좋기는 해.”

대가를 위한 반대급부로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

검은 고양이는 이 부분을 언급할 때 특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웬만하면 희생은 피하는 게 좋아. 신비로운 요술의 힘을 끌어오기보다는…… 악마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훨씬 크거든.”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명이나 영혼을 대가로 저 깊은 심연의 존재들과 계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마인들이 종종 사건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그도 들은 바 있다.

물론 소년은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악마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

아이른에게 있어서는 힘을 위해 가족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이야기였으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막대기를 검처럼 잡고 휘두른 요술사 루루가 말했다.

“검술 수련이야.”

* * *

후웅!

후우웅!

평범한 소년은 들기조차 힘든 검을 흔들림 없이 휘두르는 아이른 파레이라.

물론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도련님이 검술 수련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허나 연무장 관리인을 포함한 하인들은 지금 이 순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께서 요술을 배운다고 성 밖을 나간 게 두 시간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아닌데. 그냥 검술 수련인데.’

‘저게 요술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아이른도 처음 루루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들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랑 똑같이 검술 수련을 하라고?’

‘똑같지 않은데? 약속…… 아니, 더 무거운 단어를 사용할까? 그래, 계약이라고 하자.’

‘계약?’

‘그래, 계약.’

하루 천 번, 진심을 담아 검을 휘두른다.

자신과 자신의 검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담아서, 하루하루를 쌓아나가는 것이다.

‘처음에 말한 미신과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 매일 같이 검술 수련을 한다고 해서 꼭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염원과 관련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염원은, 믿음은, 마음의 힘은 더욱 강해질 거야.’

‘계약을 이행한 날이 쌓여갈수록 더욱.’

‘여기서 중요한 건, 지극한 마음을 담는 거야.’

‘그냥 휘두르기만 해서는 예전과 다를 게 없어. 이해해?’

“후우, 어렵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낮게 읊조렸다.

행동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천 번?

솔직히 말해 만 번도 우스웠다. 크로노 검술관에서의 가장 게을렀던 날조차 자신은 그 이상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극한 마음’을 담는다는 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의 검을 세우고, 발전시키기 위한 마음을 담아 검을 휘두르라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휘익!

‘강하게, 온 힘을 담아 휘두르면 되나?’

휘이익!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바보 같았단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반성하면서?’

휘이익!

‘그것도 아니면, 가문이 누구에게도 무시 받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검술 실력을 얻고 싶다고 빌어야 하나?’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

이는 아이른에게 있어서 난생처음으로 찾아온 난제였다.

지금까지의 그는 자신의 주관이 아닌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사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한참을 헤맸다. 검을 휘두르는 매 순간을 허덕였다.

천 번의 숫자?

이미 채운 지 오래였다. 정말로 지극한 마음을 담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열 번의 휘두르기 중 한 번 횟수를 채우는 것도 벅찼다.

나태 공자의 전신이 물에 빠진 듯 땀으로 적셔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검은 고양이는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지금까지의 아이른 파레이라는 홀로 생각하고 홀로 고민하는 것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

행동이 아닌 마음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여전히 ‘나태 공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것이다.

연무장의 나무 위에 웅크려 앉은 요술사 루루가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각성할 수 있을 거야.’

노력으로 요술을 각성한다.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요술사들조차 자신들의 능력을 하늘에서 떨어진 금덩이, 운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의 아이른에겐, 그런 각성도 꽤 어울릴 것 같아.’

누구도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누구나 알고 있으나 따르기 힘든 하루하루를 우직하게 쌓아나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적을 일으킨다.

루루는 그렇게 믿으며 소년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흘렀을 때.

다시 아이른 파레이라의 앞에 등장한 그가 질문을 던졌다.

“아이른.”

“허억, 헉…… 응?”

“뜨거운 마음을 식게 만들고, 바위 같은 마음을 모래알처럼 바스러뜨리는 게 뭔지 알아?”

“…….”

“의심이야. 자신에 대한 의심.”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는지, 루루는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그의 말을 들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단단한 마음에 균열을 낼 수 있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걸 안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의심’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부분.

이것이야말로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달려 나가는 모든 이들이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고양이는 곧바로 그에 대한 말을 꺼냈다.

“해결 못 해.”

“……응?”

“아, 미안! 혼자서는 못 한다는 뜻이었어. 대신…….”

잠시 뜸을 들인 루루가 꼬리를 살랑이며 덧붙였다.

“다른 존재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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