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노력의 요소 (2)
검은 고양이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악마가 마녀를 돕기 위해 세상에 풀어놓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울음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소리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근거 없는 미신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검은 고양이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품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루루는 사람들의 편견을 한 몸에 안을 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사람 말을 하는 검은 고양이, 게다가 성격 이상하기로 소문난 요술사.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흐를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안 좋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루루에 대해 말하는 시종 역시 그랬다.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그는 누가 들을까 조용한 목소리로 검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륙 동부에 있는 요술사 길드 ‘오라클’에 몸을 담은 뒤, 탈퇴하자마자 단체가 산산이 조각났다는 소문.
잠시 몸을 의탁했던 쟈칼 영지의 둘째 아들이 불운한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
남동부 지역에서 손에 꼽히는 거상이었던 발바니 상단이 검은 고양이를 들이자마자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곧이어 이어진 내부 분쟁 때문에 일곱 세력으로 쪼개졌다는 말까지.
루루에 대한 소문은 하나같이 불운한 것밖에 없었다.
“확실한 이야기야?”
“오라클과 발바니 상단이 망한 것, 쟈칼 영지가 횡액을 당한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떠도는 소문일 뿐이지만…….”
“그 사건들에 루루가 연루되어 있다는 근거는?”
“솔직히 말해 없습니다. 그냥 몸담고 있었다는 것밖에는.”
“그러면…….”
“도련님.”
시종 마르쿠스가 아이른의 말을 끊었다.
감히 도련님의 말을 끊는 것이 얼마나 큰 무례인지는 알고 있지만, 지금은 강하게 말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검은 고양이 미신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 몇 개가 얽혀서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 그 천진난만해 보이는 요술사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거.”
“…….”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방 안이 고요해졌다.
시종의 말을 들은 아이른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고, 마르쿠스는 그런 도련님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안다. 외톨이나 다름없던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있어서 그 고양이 요술사는 꽤나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거리를 두는 게 맞아. 좋지 못한 소문을 잔뜩 품은 검은 고양이 요술사라니.’
거리를 두는 게 맞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도련님께 부탁했다. 루루와 천천히 거리를 둘 것을.
자연스레 멀어져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되기를.
아이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을 만치 옅게 한숨을 쉰 마르쿠스가 다음 얘기를 꺼냈다.
“두 번째 얘기는, 곧 있을 토벌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몇 주 뒤에 남부 연합 토벌전이 있을 예정이며, 그에 대한 회의가 우리 가문에서 진행될 것이다.
아마 며칠 후에는 가주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니, 미리 마음을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시종은 이러한 얘기를 아주 간략하게, 빠르게 말했다.
사실 이쪽이 더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도저히 길게 다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가 죄송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편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덜컥.
문이 닫혔다. 두 명에서 한 명이 되고, 더욱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러지는 않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내가 말했지. 동생의 일에 참견하는 건 별로지만, 그래도 조언을 해준다면…….”
“다른 부분에 휩쓸려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에 대해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해줄 거라고 말이야. 뇌물 받고 좋은 말을 전해 주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뤄지는 독백.
허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소년의 말은 혼잣말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본 너는, 남을 해코지할 정도로 나쁜 성격은 아닌 것 같아.”
“…….”
“남들보다 특이하고, 인간하고 조금 다르고, 어떨 때는 좀 짜증나고 황당하게 구는 구석도 있지만, 그냥 그뿐이야. 그런 것들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아.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런 부분을, 동생에게도 그대로 말해 줄게. 소문과 상관없이 말이야.”
“……하지만, 그러다가 너나 키릴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어떡해?”
역시 있었구나.
침대 밑에서 들려오는, 잔뜩 위축된 루루의 목소리에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미루지 말고 자신의 진심을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하나 물어볼게.”
“응.”
“방금 마르쿠스가 했던 이야기, 사실이야?”
“……응.”
“그런 일이 벌어진 게 너 때문이야?”
“그건 아니야! 나는 그냥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그냥, 그냥 그렇게 됐어! 오라클에서는 성격 나쁜 할아버지 둘이 싸우다가 탑이 날아갔고, 상단에서는 상단주의 자식들이 막, 막 싸웠고, 쟈칼 영지에서는…….”
우연한 불행의 연속.
혹은 검은 고양이 요술사의 거짓말.
후자라면 굉장히 위험하고, 전자라도 꺼림칙하다. 그 우연이 동생에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괜찮겠지.”
“어?”
“아, 나는 괜찮다고. 너랑 계속 친하게 지내도 말이야.”
“……하지만, 나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검은 고양인데?”
“애초에 그걸 알았으면서도 다가온 건 너잖아. 왜 새삼스레 그래?”
“그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까보다 더 시무룩해진 목소리.
아이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평소의 당당하던 루루가 이렇게까지 의기소침한 건 처음 봤기에, 약간이지만 재밌기도 했다.
물론 이를 오래 즐길 정도로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 공자가 말했다.
“괜찮아. 나도 안 좋은 소문 많았거든.”
“응?”
“나도 너랑 똑같았다고.”
아이른 파레이라가 생각하기 싫은 과거를 떠올렸다.
어머니를 여의고 충격을 받은 어린아이에게 처음 쏟아진 것은 동정과 연민, 안타까움이었다.
허나 그것은 잠시, 소년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에 대한 인심은 나날이 곤두박질쳤다.
나약한 사람, 얼간이, 게으른 사람, 나태 공자.
그리고 그에 따른 온갖 좋지 않은 소문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 근거도 없는 악의적인 얘기에 불과했지만, 한 번 굴러간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문의 힘으로도 막기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마 꿈의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크로노 검술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그러한 소문 속에 갇혀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내가 보고 느낀 대로만 판단할게.”
“…….”
“그리고 혹시 미신이 걱정되는 거면, 일단은 나하고만 몰래 만나. 그렇게 해서 아무 일도 없으면 미신이 잘못된 거니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려도 되고,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나 혼자로 끝…….”
“아니거든! 그럴 일 없거든! 그거 다 우연이야!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불운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단 말이야!”
‘나는 불운을 몰고 다니는 검은 고양이인데?’라는 말을 먼저 한 주제에 저렇게 성을 내다니.
황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하, 하고 웃은 아이른이 답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으니까, 내가 조금씩 풀어보도록 할게.”
“…….”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방에서 만나는 게 어때?”
“……이거 줄게.”
쑤욱, 침대 밑에서 고양이의 앞발이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엄청나게 큰 흑진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란 아이른이 물으려는데, 루루가 한발 빨리 말했다.
“이거 엄청 비싼 거야! 묘안석보다 더 좋은 거거든? 이거 받고 잘 좀 말해줘. 나 나쁜 애 아니라고!”
“…….”
“그럼, 나 간다!”
스슷-
약간의 노이즈, 그리고 이어지는 고요함.
얼떨떨한 표정이 된 아이른이 침대에서 내려와 밑을 살폈다.
루루가 정말로 떠난 것을 확인한 그가 이번에는 흑진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 엄청 큰데.’
여동생은 한 손으로 움켜쥘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흑진주.
고양이 요술사의 말 대로였다. 이 정도 크기와 품질이라면 묘안석보다도 훨씬 비쌀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이른이 즐거운 표정을 짓는 건, 흑진주의 값어치 때문이 아니었다.
‘이거, 루루의 보물 컬렉션에 있던 거였지.’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보물 컬렉션 중 하나.
아마 특이한 바다향이 나서 좋다고 했었던 것 같다.
소년이 흑진주 가까이 코를 가져다 댔다.
‘아무 냄새도 안 나네.’
인간의 후각으로는 느낄 수 없는 부분.
하지만 루루의 마음만큼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흑진주를 소중히 품은 아이른이 웃는 얼굴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 * *
다음 날 아침.
평소라면 검술 수련을 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지금의 아이른 파레이라는 연무장이 아닌 가주의 방에 있었다.
시종 마르쿠스가 언질을 준 지 하루 만에 아버지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토벌전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토벌전.
일 년 사이 잔뜩 번식한 몬스터들이 숲에서, 산에서 밀려 나와 사람이 다니는 도로를 습격하기 전에, 정예 전력을 꾸려나가 몬스터의 개체 수를 줄이는 작업이다.
매년 5월마다 행해지는 작업으로 남부 6가문이 함께하며,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영주, 그리고 나이가 찬 소영주 역시 토벌에 참여한다.
귀족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고귀한 핏줄 때문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의무를 지기 때문.
그렇기에 다른 가문의 자식들은 12~13살의 어린 나이부터 토벌전에 발을 들여놓는다.
사실 대부분의 일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다 하다 보니 딱히 위험한 일이 없기도 하고.
물론 나태 공자에게까지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15살인 작년까지도 이런 일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여하겠습니다.”
진지한 얼굴의 아이른 파레이라가 말했다.
아들을 지켜보던 하룬 파레이라가 물었다.
“괜찮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른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문에 복귀해서 애런 가이른을 만났을 때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고.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물론 부담스럽고 힘들다. 특히 육체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토벌전은 몬스터와 싸우는 곳이 아니다.”
“…….”
“다른 가문과 싸우는 곳이지.”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피를 본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음습하고 치열한 기 싸움을 뜻한다. 하룬 파레이라는 아들이 이를 신경 썼으면 했다.
날붙이보다 날카롭고, 독보다 치명적인 늙은 생강들의 혓바닥.
그러한 압박을, 여리 여린 아들이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의자에서 일어선 아버지가 아들의 등을 두드려줬다. 아이른은 그의 손길을 말없이 느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허허, 반갑습니다. 오오! 아이른 파레이라…… 못 본 사이 굉장히 늠름해졌구나!”
인자한 웃음을 짓는 필 가이른 자작.
그를 필두로, 헤일 왕국 남부 6가문이 파레이라 영지로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