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노력의 요소 (1)
“너, 내 제자해라.”
“…….”
아이른 파레이라는 고양이 요술사 루루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평소의 실없는 말이 아닌, 의미심장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상대의 제안보다도.
상대의 눈빛에서.
상대의 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더 정신을 팔렸기 때문이었다.
‘무겁다.’
굉장히 무겁다.
또 진하다.
몇 차례 느낀 적 있다.
크로노 검술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단상에 선 아메드 교관이 뿜어냈던 기세가 바로 그랬다.
사람 좋게 허허 웃다가도 가끔씩 깜짝 놀랄만한 눈빛을 보이던 카라카 교관의 분위기가 바로 그랬다.
아니, 지금의 것이 더욱 무거웠다.
잠시, 아주 잠시지만…….
‘이안 검술관주님이 생각날 정도로.’
아이른은 이내 그 생각을 털어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검술관주 이안은 검사들 중에, 아니 대륙의 모든 강자들 중에서도 첫손에 꼽니, 마니 하는 인물이다.
요술사 루루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에 비견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잠시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검은 고양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허나 루루에 대한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말없이 서 있는 아이른의 눈앞까지 접근한 요술사가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여러 번 말했다.
“야.”
“야야.”
“야야야.”
“내 말 듣고 있어? 내 제자 되라고.”
“이것저것 잘 알려줄게. 우리 함께 신나는 요술의 세계로 떠나자!”
“…….”
방금 전의 진중한 분위기가 무색하게 가벼운 어조를 보이는 루루.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이른 파레이라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답했다.
“안 해.”
“아니! 왜!”
“왜라니, 당연하지. 나는 요술사가 아니잖아.”
“괜찮아. 이제부터 요술 배우면 돼. 내가 가르쳐줄게.”
“아니, 마법도 아니고 요술을…… 요술은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마법도 어렵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검사, 마법사, 요술사.
지고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셋 모두 어렵지만, 입문은 아니다.
검이 제일 쉽고 마법은 그다음, 요술은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이미 발현한 능력을 갈고닦는 것이면 모를까, 작정하고 배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이른은 요술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검을 찾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다른 분야에까지 손을 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소년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적당히 풀어 말했다. 완곡한 거절이라 봐도 무방했다.
허나 검은 고양이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검사인 게 뭐가 문제야?”
“응?”
“애초에 강한 의지를 가진 검사만큼 요술사에 어울리는 존재도 없을뿐더러…… 너는 아마 검을 보조하는 쪽의 능력을 발현할 가능성이 커.”
“그게 무슨…….”
“너, 상식이 부족하구나? 검사와 마법사, 요술사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고 있어?”
아이른 파레이라가 입을 다물었다.
루루의 말대로다. 그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쯧쯧, 고양이가 혀를 찼다. 스르르 바닥으로 내려온 고양이가 탁탁 바닥을 두드렸다.
물론 조막만 한 앞발이기에 진짜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허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앉으라는 의미.
소년은 얌전히 앉았고, 그 앞에 자리한 루루가 목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고양이의 입에서 검사와 마법사, 요술사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 * *
검사를 포함한 모든 무술가는 자신의 육체, 즉 내우주(內宇宙)에 집중한다.
끊임없이 단련하고, 수련하여 심신의 성장을 꾀한다.
자신을 더욱 자세히 파악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신비롭기 그지없는 힘, 오러(Aura)를 체득한다.
반대로 마법사는 자신의 바깥 환경, 즉 외우주(外宇宙)에 집중한다.
삼라만상에 깃들어 있는 신비로운 힘, 마나를 분석하여 세상의 이치와 법칙, 논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진리에 가까워질수록 경지가 높아지고, 더 거대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술사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요술사? 그것들 다 떼쟁이들 아니야?’
세상에 생떼를 부리는 존재.
있을 수 없는 일을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존재.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고, 상식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실제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파격적인 존재.
그러한 세간의 말에 대해, 고양이 요술사 루루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해. 요술사들 입장에서야 이런저런 할 말이 많겠지만, 솔직히 남들이 보기엔 황당할 거야. ‘돈 많이 벌고 싶다!’라고 소리쳤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금덩이가 튀어나오는 거랑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다만 이거 하나는 알아둬야 해.”
“어떤 거?”
“그런 황당한 일을 가능케 할 정도로, 요술사들의 염원이 강하다는 거.”
“…….”
“일반 존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는 셈이지. 사실 당연한 거잖아? 홀로 세상을 바꿀 정도의 존재가 평범하다니,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어때,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양인지 이제 좀 알겠어?”
“그러니까…….”
아이른은 대충이나마 루루가 한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저 운만 좋은 놈처럼 보일 수도 있다.
허나 그렇지 않다. 요술사에게는 요술을 부릴 수 있을 만큼의 비범한 마음이, 독보적인 의지가 존재한다.
즉, 요술사의 힘은 마음의 힘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른의 요약을 들은 고양이 요술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잘 이해했어. 그럼 이제 알겠네?”
“뭐를?”
“네가 얼마나 요술에 적합한 재목인지 말이야.”
루루가 지그시 소년을 바라봤다.
평소와 같은 모습. 평소와 같은 표정. 당연했다. 익숙하지 않은 고양이의 얼굴은,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항상 같은 느낌으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눈빛.
지금 루루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저 불처럼 뜨거운 눈빛만큼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그가 이어 말했다.
“느껴져. 방금 네가 보여줬던 그 검. 무언가를 베어버리겠다는…… 엄청나게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던 그 내려 베기!”
“…….”
“그 정도 의지라면 충분해. 물론 의지만 갖고 되는 건 아니고, 태생적으로 요술에 적합한 존재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만…… 너는 돼. 너는 요술에 재능이 있어.”
“그건 어떻게 알아?”
“요술사니까! 요술사가 요술사의 재목을 몰라봐서야 되겠어? 장담할게! 너라면…… 아주 약간의 도움만 있어도 올해 안에 능력을 각성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검술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어때? 이래도 내 제자가 될 생각이 없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은 뒤 팔짱을 끼는 고양이 루루.
아이른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절대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지만, 아이른은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역시 안 돼.”
“뭐? 왜! 왜애!”
“요술을 배우기 싫은 건 아닌데, 일단…… 방금 전에 보여줬던 내려 베기는…… 그건, 그건 안 돼. 내 검이 아니거든.”
“응?”
“음…… 설명하기 좀 애매한데.”
나태 공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꿈에 대해 남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평생을 방 안에 틀어박혀 살았던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면, 모두가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양이가 날 그렇게 대하진 않을 거 같아.’
루루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다.
소년이 본 검은 고양이는, 이런 걸로 사람을 이상하게 볼 정도로 편협한 성향은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단 한 번의 내려 베기에 곧바로 반응한 통찰력.
그것 역시 중요했다.
‘어쩌면, 내 얘기를 듣고 나도 모르는 비밀을 알아챌지도 몰라.’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였고, 찬찬히 자신의 꿈에 대해 설명했다.
매일 밤 꿈에 나타나는 낯선 사내와, 그가 휘두르는 검에 대해서.
“와, 신기하다. 빙의 같은 건가?”
“빙의?”
“응. 몇몇 사람들 중에 전혀 다른 존재의 영혼이나 기억, 성격 같은 게 덧씌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 본 적은 없지만.”
“그렇구나.”
“너랑 완전 똑같은 경우는 아니긴 해. 그래도 비슷하긴 하네. 으음…… 그런데 뭐, 그래도 여전히 요술 배우는 데에는 지장 없는 거 아닌가?”
애석하게도 루루 역시 별다른 조언을 해주지는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꿈이든 말든 요술을 익히는 데는 상관없지 않은가, 하는 쪽에 더 생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또다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나의 검은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데, 사내의 검은 저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는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루루의 제안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사내의 검은 잊어야 할 대상이지, 갈고 닦아야 할 게 아니었다.
허나 요술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생각 역시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이 말했다.
“어쨌든 안 돼. 나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요술을 각성할 생각은 없어.”
“아아! 그러지 말고 조금만 해보자! 분명 재미있을 거…….”
“대신, 꿈속 사내의 검이 아닌 나의 검을 키우는 쪽이라면 나도 생각이 있어.”
“어? 너의 검?”
“그래, 나의 검.”
“어떤 게 너의 검인데?”
“음…….”
“지금 보여준 거 말고, 평소에 네가 휘두르던 검? 그게 너의 검이야?”
“…….”
네,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 자신의 검이 무엇인지는 아직 자신도 모르는 상태다.
‘결국 원점이네.’
요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니, 고양이의 제안은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소년은 옅게 한숨을 쉬고, 조곤조곤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루루가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노력을 응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약간은 담아서.
그런데, 고양이 요술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네가 하고 있는 건 노력이 아니야.”
“응?”
“노력이 아니라고.”
아이른이 루루의 눈을 쳐다봤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침묵이 흘렀다. 소년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고양이 특유의 날카로운 동공에 닿았다. 답을 재촉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런 그에게, 고양이가 다시 한번 말했다.
“그건 그냥 헛고생일 뿐이야.”
냉정한 대답이었다.
* * *
늦은 오후.
평소보다 훨씬 빨리 수련을 마치고 방에 들어온 아이른 파레이라가 침대에 앉았다.
기력이 달리는 건 아니었다. 크로노 검술관에서 쌓아 올린 체력이 이 정도로 고갈될 리 만무했다.
그렇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소년은 방금 전, 고양이 요술사 루루가 해준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행동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몸만 혹사한다고 해서 노력이 아니야.’
‘노력의 정확한 정의에 대해 알고 있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해 애를 쓰는 게 바로 노력이야.’
‘몸을 쓰는 것만큼이나, 마음을 쓰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얘기지.’
‘사실 신기하긴 해. 보통은 마음만 급한 경우가 많거든. 일하지도 않고 당장 오늘부터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연습하지도 않고 당장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 마당 한 바퀴 뛰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살이 빠졌으면 하고 괴로워하는 사람…… 모두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이지.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마음이 지극해도 노력한다고 할 수 없어.’
‘반대로, 너는 행동은 충분해. 하지만 네 마음은 들썩이지조차 않고 있어. 지금 당장 이뤄져도 기뻐하지 않을 것처럼.’
‘이것 역시 노력한다고는 볼 수 없어. 행동을 뒷받침할 만큼의 충분한 마음이 없으니까.’
‘내가 왜 노력이 아니라 헛고생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겠어?’
“지극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지극한 마음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
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할 말이 없네.’
고양이의 말 대로였다.
쉼 없이 검을 휘두른 것에 비해, 밀도 높게 움직이고 또 움직인 것에 비해…… 자신의 검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흐름에 휩쓸려 적당히 하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허나 지금 당장은 이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루루의 모습을 떠올린 아이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비범한 요술사라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다. 루루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였다.
자연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10년을 방구석에만 처박혀있던 자신이 궁금해해봤자 알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똑똑
“도련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나태 공자의 대답에 시종 마르쿠스가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두 가지 전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방을 둘러봤다.
“여기 그 고양이 요술사…… 루루 님이 계신 건 아니겠죠?”
“없을걸? 왜?”
“그렇군요. 첫 번째로 드릴 말씀이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눈을 빛냈다.
잠시 후, 시종의 입에서 고양이 요술사에 대한 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