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요술사 (5)
“그냥 제자 삼고 싶으니까 그런 건데?”
“아무 이유도 없다고?”
“꼭 이유가 필요해? 내가 누굴 마음에 들어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
아이른 파레이라는 할 말이 없어졌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꼭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진짜 아무 이유도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일 수도 있고.
중요한 건 이 요상한 고양이가 동생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느냐, 이 부분이다.
‘잘 모르겠다.’
당연했다. 사람 대하는 것도 어색한 아이른이 고양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표정을 살폈지만, 역시나 고양이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시종 마르쿠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응?”
“그런데 말입니다. 저기, 그…… 묘안석 말인데, 그리고…… 방금 제가 한 말, 그러니까 저희 영지…….”
그의 화법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더듬고, 끊고, 빙빙 돌리고. 직관적이지 않게, 무척 애매하게 말을 끝냈다.
허나 어떤 의도인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조용히 마르쿠스의 말을 기다려 준 고양이 루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지금 나 보고 돈 개념 없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니긴, 맞구만. 누굴 바보로 알아? 아무리 내가 고양이라 그래도 묘안석이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죄, 죄송합니다.”
“이 정도 보석이면 내가 좋아하는 훈제 연어 천 마리도 넘게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잖아.”
“…….”
“어? 아니야?”
마르쿠스의 표정이 미묘해졌지만, 루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애초에 인간들은 보석이니, 금이니, 돈이니 하는 것들을 너무 신경 쓴단 말이지. 그거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은데도.”
“네?”
“이거 봐봐.”
고양이가 자신의 옆구리에 쑤욱 손을 집어넣었다.
신기한 광경이지만, 요술사란 으레 그런 존재였기에 아무도 이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오히려 요술사 루루가 꺼낸 물건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허나 고양이의 앞발에 놓인 물건은 볼품없는 나무 공에 불과했다.
“이건?”
“나무 공이야.”
“나무 공이군요.”
“그리고 아까 보여 준 묘안석 수십 개랑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꿀 내 보물이야.”
“네?”
“이 나무 공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향기가 나는데, 똑같은 것을 구할 방법이 없거든.”
평범한 냄새라면 조향사, 혹은 마법사에게 의뢰해 같은 향을 제조해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나무 공에서 나는 냄새는 극히 희미했다. 인간이 아닌 고양이의 예민한 후각으로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때? 이런 건 금덩이나 보석을 얼마만큼 줘도 얻을 수 없다고.”
“그렇긴…… 합니다.”
“또! 그리고 또 있어!”
요술사 루루의 보물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은 고양이는 자신의 컬렉션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자신이 요술을 체득하기 이전의 추억이 생각난다는 강아지풀.
떠돌이 고양이에게 선물 받은 실밥 터진 봉제 인형.
그 밖의 수많은 잡동사니들.
이를 하나씩 설명하는 루루의 모습은 무척이나 뿌듯해 보였다.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마르쿠스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수긍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슴 깊이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루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았지만, 그래도 돈은 돈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 대신 자신만의 소중한 무언가를 선택할 인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허나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그러했다.
‘내가 귀족이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태 공자는 돈이 아쉬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평생을 안락한 공간에서 살았고, 평생을 끼니 걱정 없이 살았다. 하인들이 수발을 들어주는 것에도 무척 익숙했다.
요술사 루루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 건, 어쩌면 그런 배부른 환경에서 형성된 철없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른은 이 고양이가 마음에 들었다.
‘동생을 그만큼 아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동생과의 관계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에 포함된다는 점.
그 점이 가장 중요했다.
소년은 희미한 미소로 요술사 루루를 바라봤고, 시선을 느낀 고양이는 빠르게 자신의 보물들을 챙긴 뒤 그의 앞으로 폴짝 뛰었다.
그리고 예의 묘안석을 내밀며 말했다.
“어쨌든, 이거 받고 말 좀 잘해 줘.”
“미안, 그건 안 돼.”
“왜! 아까 말했잖아! 이거 엄청 비싼 거라니까?”
“돈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다는 말도 했잖아.”
“아!”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듯이, 동생의 일에 내가 왈가왈부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왈가왈부라니! 소중한 동생을 위해 오빠로서 조언해 주는 게 뭐가 나빠?”
“그건 맞지만, 조언을 해 준다면…… 내가 너에 대해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해 줄 거야. 뇌물 받고 좋은 말을 전해 주는 게 아니라.”
아이른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간의 아쉬움도 없는 모습. 오히려 옆에 있던 마르쿠스의 표정에 더 큰 감정이 묻어 있었다.
루루도 이를 알았다.
묘안석을 옆구리에 넣은 검은 고양이가 말했다.
“으음, 키릴은 몰라도 너는 이걸로 꼬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래도?”
“네가 키릴보다는 만만해 보이니까, 앞으로도 종종 설득하러 올게. 그리고…….”
너도 생각보다는 조금 재밌네.
그 말을 끝으로 루루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모여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고양이의 요술을 한번 봤던 아이른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텔레포트는 고명한 마법사들도 어려워한다던데, 엄청 쉽게 하네.’
요술사라 그런가?
그는 잠시 루루가 있던 공간을 바라봤다.
물론 오래 그러지는 않았다. 이내 고개를 돌린 아이른이 다시금 검을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휘둘렀다.
휘익!
* * *
“아이른.”
“응?”
“여기 와 봐.”
뇌물 청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날 이후, 루루는 이전보다 자주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말을 걸었다.
딱히 중요한 용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왜?”
“일단 빨리 와 봐. 빨리.”
검은 고양이가 다시 한 번 재촉했고, 나태 공자는 호기심 동한 표정으로 상대의 근처로 다가갔다.
루루는 그런 그를 보며 훈제 연어가 담긴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나 밥 먹는 동안 옆에 있어 줘.”
“……그게 용건이야?”
“응.”
“도대체 왜?”
“나는 밥 먹을 때 누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더라.”
“…….”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루루는 항상 그랬다. 종잡을 수 없는 부탁, 종잡을 수 없는 화제,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아이른을 당황케 했다.
동생에 관한 얘기는 오히려 한 번도 꺼내질 않았다.
허나 이상하게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검술관 생각나네.’
크로노 검술관은 나태 공자에게 있어서 무척 힘든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리운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곳이었고, 처음으로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편히 얘기를 한 곳이었다.
그리고…… 슬픈 일이지만, 검술관을 떠난 이상 그러한 기회는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른이었다.
허나 아니었다.
이 특이하면서도 순수한, 그리고 황당한 고양이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대했다.
둘 사이에 애초에 벽이 없었다는 듯이. 혹은 그런 개념 자체를 모른다는 듯이.
어찌 보면 주디스보다도 더 대책 없는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이게 먹혔다.
아이른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건 힘들어해도, 남의 접근을 받아 주는 쪽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저기 엎드려 있는 새끼 고양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 어떤 생각 하고 있어?”
“내가 물어봤잖아.”
“어?”
“내가 물어봤는데 왜 네가 다시 물어봐?”
“……맞춰 보라는 뜻 아니었어?”
“다른 고양이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
또다시 어이없는 말을 툭 던진 뒤 연무장 구석에 자리를 잡는 요술사 루루.
그런 그를 보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피식 웃었다.
상대와 자신이 무슨 관계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왜 웃어?”
“그냥.”
“그래? 흠.”
루루가 사람처럼 옆으로 누워 한쪽 앞발로 머리를 기댔다.
신기하고, 약간은 귀여운 모습.
이를 본 아이른이 또다시 슬쩍 웃었다. 허나 이내 표정을 굳히고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나의 검은 뭘까.’
검술관을 떠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고민.
허나 소득은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이 자신의 검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
허나 이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정답으로 향하는 과정조차 아이른은 알지 못했다.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사내의 검에 의지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지치네.’
예전의 그는 힘들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누구보다 오래 몸을 혹사시켰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꿈속의 사내는 항상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 줬고, 소년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를 따랐다. 그저 열심히 뒤를 쫓기만 하면 되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망망대해(茫茫大海).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 나태 공자가, 슬며시 눈을 감았다.
“…….”
사내의 검.
하면 안 되는 것은 안다.
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세우고, 자신의 검을 세워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른은 지쳤고, 힘들었고, 머리가 복잡해 기댈 곳이 필요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벗어나 잠시 뭍으로 올라오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때문에 나태 공자는 다시금 사내의 검을 꺼내 들었고.
부웅!
휘둘렀다.
……일련의 동작을 마친 아이른 파레이라가 슬며시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
다행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미증유의 힘이 끓어오른 것도 아니고, 땅이 갈라진 것도 아니다.
100퍼센트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금 전의 일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련님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고, 그뿐이다.
아니, 눈을 감고 휘두르셨으니 조금은 다른가? 그래 봤자 조금 더 집중한 정도겠지. 이 정도가 평범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었다.
허나 그렇지 않은 존재도 있었다.
“아이른.”
“응?”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루루를 보며, 아이른이 대답했다.
별 생각은 없었다.
별일 없이 말을 거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검은 고양이의 말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중요한 말이었다.
“요술 배운 적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멍한 표정이 된 나태 공자가 물었다. 고양이 요술사 루루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라 그와 눈을 맞췄다.
아이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상대를.
이윽고, 검은 고양이의 입에서 제안이 흘러나왔다.
“너, 내 제자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