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요술사 (1)
있을 수 없는 일.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 자신의 눈을 의심케 만드는 황당무계한 일.
그런 광경을 볼 때, 사람들은 주로 ‘마법 같다’라는 말을 쓰곤 한다.
허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말이다.
‘마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다루기에 오해받기 쉽지만, 마법은 엄연히 합리와 논리를 따르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울리는 말은 과연 무엇인가?
‘요술……!’
이것이 정답이다.
세상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는, 오로지 요술을 통해서만 벌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요술사가 고양이로 변신한 것인가?
아니면 고양이가 요술사가 된 것인가?
시종 마르쿠스는 혼란에 빠졌다. 어느 쪽이든 기상천외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그는 당황했고,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 이외의 요술사를 보는 것은 그 역시 처음이었다.
‘갑자기 뭐야!’
애런 가이른의 경우는 동요가 더욱 심했다.
그 역시 요술사를 직접 대면한 경우는 키릴 파레이라 때 말고는 없다. 애초에 요술사는 마법사보다도 희귀한 존재였으니까.
15살 소년은 요술사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죄다 성격파탄자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사건·사고부터 일으키는 존재들이라던데…….’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지?
아니, 이미 하고 있나?
애런 가이른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해갔다.
‘좋지 않다.’
잭 스튜어트의 반응은 자작가의 차남보단 훨씬 이성적이었다.
요술사가 특이한 존재긴 하지만 그들 역시 지성과 인성이 있다. 어린애들 겁주기 위해 쓰이는 괴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에 소속된 요술사들도 많은 마당에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곳이 파레이라 가의 영토라는 점.
상대가 이미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요술사는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도무지 파악할 길이 없어!’
상대의 강함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말했다.
“요술사님께 실례를 저질렀다면 죄송합니다. 마음이 상하셨다면 추후 가이른 자작가로 방문해 주시길.”
“뭐야, 진짜 안 싸워? 그냥 가?”
“가이른 자작가와 파레이라 남작가는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입니다. 무언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이잉.”
두 발로 일어선 고양이가 팔짱을 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잭 스튜어트가 아이른 파레이라에게 말했다.
“공자님의 시간을 오래 뺏어서 죄송합니다. 오랜 여정으로 지치셨을 테니, 저희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도련님, 마차에 오르시죠.”
“어? 아아, 그래!”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황급히 마차에 올라타는 애런 가이른,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잭 스튜어트.
마차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빠르게 멀어졌고, 길에는 파레이라 가문 일행과 검은 고양이만이 남게 되었다.
“이게 뭐야. 하나도 재미없잖아?”
서로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냥 시원하게 한 판 싸우는 게 낫지 않나?
길게 중얼거린 요술사가 자신의 옆구리에 앞발을 쑥 집어넣었다. 그러자 없던 주머니가 생기고 그 안에서 앙증맞은 목검이 튀어나왔다.
이를 솜씨 좋게 잡아든 고양이가 레이피어를 든 것처럼 휙휙, 찌르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이렇게, 슉슉! 슉슉!”
“…….”
“재밌는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실망이야.”
“…….”
아이른도, 시종도, 마차를 끌던 병사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뇌가 굳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들은 그저 멍하니 검은 고양이가 날뛰는 것을 지켜볼 따름이었고, 상대는 한참 더 검사 흉내를 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저앉아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
“…….”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마르쿠스였다.
그는 눈짓으로 병사들에게 마부석으로 향할 것을 명했고, 손짓으로 도련님을 마차 안으로 이끌었다.
다행히 고양이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루밍만이 지상과제인 마냥, 어디에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의 앞발만을 핥아대고 있었다.
잠시 후, 거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아이른이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저 요술사, 모르는 사람…… 아니, 동물…… 아, 그러니까…….”
“예, 모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잠시 말을 끊은 시종이 침을 삼킨 뒤 말했다.
“어쩌면 키릴 파레이라 공녀님과 관련이 있을 수는 있겠군요. 같은 요술사니까요.”
“그런가…….”
“가문에 복귀해서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차는 정적에 휩싸였다.
아이른과 마르쿠스, 둘 다 조금 전의 황당한 일을 되새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마차는 열심히 달렸다. 잠시 후 파레이라 영지의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만큼은 나태 공자도 요술사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익숙한 풍경을 눈앞에 둔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레이라 가의 게으른 장자가, 1년 만에 가문에 돌아왔다.
* * *
“그 고양이는 루루라는 이름의 요술사다.”
시종이 따로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고양이 요술사 루루에 대해서는 이미 가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4인 가족이 방에 모였다.
가장 먼저 나와야 할 화제는 당연히 크로노 검술관에 관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파레이라 남작이 요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키릴의…… 스승이 되고 싶다고 찾아왔지. 열흘쯤 됐다.”
“……스승이요?”
“이런,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말이 고양이 얘기라니…… 미안하구나. 1년간 고생했다, 아들아.”
“아! 아니에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좋았어요. 정말로.”
아이른 파레이라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파레이라 남작은 아들의 진심을 알아챘다.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10년간 방에서만 생활하던 아들이, 그 고된 검술관의 일정을 1년이나 버텨 내다니.
아니, 억지로 버틴 게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다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검술관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요술사 이야기부터 하면 안 될까요? 너무 궁금해서…….”
“아무래도 그렇지? 사실 나도 입이 근질근질하다.”
이야기가 안 나왔으면 모를까, 이미 나온 마당에 뒤로 미뤄 둘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요술사, 그것도 ‘고양이’ 요술사라는 존재가 너무 자극적이었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하룬 파레이라가 그 신비로운 존재에 관한 설명을 풀어갔다.
딱히 특별한 게 없기는 했다.
인간이 고양이로 변신한 게 아니라 진짜 고양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고, 뭔가에 쉽게 빠지는 반면 또 쉽게 질리는 성격 같고, 의외로 위협적인 느낌은 아니고…….
“그리고…… 강하지.”
“강하다고요?”
“응, 강해.”
지금껏 얌전히 아멜 파레이라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키릴이 입을 열었다.
“그냥 보면 알 수 있어. 왕국 수도에서 봤던 그 어떤 요술사보다도…… 강할 거야. 아마도.”
아무런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재능 넘치는 요술사인 동생이 그렇다는데 어찌 감히 토를 달겠는가.
그 고양이…… 아니, 루루라는 요술사는 분명 강할 것이다. 능력이 좋을 것이다.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실력 좋은 요술사는 찾기 힘들지.”
“잘은 모르지만…… 그럴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요술사를 찾는 건 더욱 힘들고.”
“그렇죠.”
맞는 말이었다.
파레이라 남작은 키릴이 요술사로 각성하자마자 수도로 향해 왕을 알현하는 한편, 딸의 재능을 빛내 줄 스승을 찾았다.
허나 허사였다. 요술사는 세 부류였다.
키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부류, 키릴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부류, 그리고 키릴의 능력과 영 어울리지 않아 가르침을 내릴 수 없는 부류.
파레이라 남작은 이 일 덕분에 ‘왜 요술사 대부분이 스승 없이 혼자 능력을 갈고닦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
“그 요술사는 첫 번째로 실력이 좋고, 두 번째로 키릴을 마음에 들어 한다. 아마 능력도 키릴과 어울릴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스승이 되고 싶다고 생떼를 쓰…… 절절한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따로 있나요?”
“아무래도 신원이 확실하지 않다 보니, 그 부분이 가장 문제지. 일단은 요술사 협회 쪽으로 사람을 보내놓긴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남작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있는 자신의 딸에게 시선을 건넸다.
그렇다.
키릴 파레이라가 스승을 구하지 못했었던 이유들 중 하나.
키릴의 마음에 들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른 모든 것이 충족되어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짱 꽝이었다.
눈치를 보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동생에게 물었다.
“키릴.”
“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가.”
“그 고양이 요술사 말이야.”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
역으로 질문이 날아오자 아이른이 당황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요술사 간의 일이기에 자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했다.
“어, 네 일이니까, 네 의향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
“응, 아무래도 나는 요술사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상관없는데?”
“응?”
“오빠가 요술사에 대해 잘 모르는 거야 나도 아는데? 그거랑 상관없이 그냥, 편하게 오빠 의견을 말해 주면 되는 건데?”
“…….”
아이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동생은 가끔 저렇게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할 말이 궁해져서 자신의 방으로, 이불 속으로 도망가곤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이른은 난처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키릴, 오랜만에 보는 오빠 곤란하게 만들면 어떡하니?”
“아니, 그냥 물어보기만 한 건데 왜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니까 그렇지.”
“그냥 편하게 말해 줘도 되는데.”
“표정부터 풀고 그런 말 하렴.”
항상 그래왔듯 능숙하게 딸을 달래는 아멜 파레이라.
하지만 키릴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아이른은 계속해서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
그리고 그건 아마 자신 때문이었다. 대화 방법이 문제였거나, 혹은 자신이 상상도 못 한 부분이 문제였거나.
중요한 건, 아이른은 그걸 알아낼 만큼 눈치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부분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 크로노 검술관까지 다녀온 그가 동생을 피해 달아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더 좋은 방법도 있었다.
품속에 손을 집어넣은 아이른이 뭔가를 꺼내 동생에게 건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가 물었다.
“이게 뭐야?”
“선물이야.”
“서, 선물?”
키릴 파레이라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인 하룬 파레이라와 어머니인 아멜 파레이라, 둘 역시 자신들의 아들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아이른이 선물을 사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