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4인의 천재 (3)
검을 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지만,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법한 주제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검을 시작했고, 익히고 있고, 배워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검사에게 있어서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문제니까.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잡을 경우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반면에 자신과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할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아메드 교관이 조용히 생각했다.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에 대한 걱정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지 않았다면, 최종 평가 때의 그 무지막지한 검도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크로노 검술관에서 한 달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은 만만한 마음가짐, 만만한 각오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 도대체 어떤 뜻을 품고 있기에, 대륙 최고의 악바리들이 모인 크로노 검술관에서조차 최고의 노력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순수한 호기심을 담은 눈빛이 아이른을 향해 쏟아졌다.
허나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갑자기 이런 질문을 들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어쩌면 관주님의 앞이기에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생각을 마친 아메드가 그에게 말했다.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아이른 파레이라. 우리가 다른 검술관과 달리 도덕과 교양을 강조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단에 준하는 갑갑한 생각을 강요하는 곳은 아니다. 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니어도 좋다. 고결한 무언가를 위한 것이 아니어도 좋아. 명예, 돈 따위의 세속적인 것이더라도 상관없다. 인륜에 어긋나는 뜻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 봐라.”
평소의 아메드를 생각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자상한 목소리.
하지만 여전히 아이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메드는 이제야 이상함을 느끼며 관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주름이 파인 얼굴이 아래위로 끄덕여졌다.
“그렇군.”
그리고, 믿기 힘든 말이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른 파레이라, 너는…… 자신의 의지로 검을 든 것이 아니로구나.”
“……그렇습니다.”
놀라운 일.
아메드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검을 드는 이유를 말하지 못했던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이유 자체가 없어서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관주님? 이게 대체…….”
“나도 잘은 몰라.”
크흠, 흠. 목을 가다듬은 이안이 차를 홀짝였다.
정말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조차 눈앞의 이 어린아이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검을 대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더라고.”
“…….”
“자신의 실력이 늘어가는 걸 깨달았을 때, 브랫 로이드 수련생은 누구보다 기뻐했지. 그런 브랫에게 뒤처졌을 때의 주디스는 정말 무서웠어.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화를 내더군. 녀석들뿐만이 아니라, 크로노 검술관에서 동문수학했던 모든 아이들이 검에 울고, 검에 웃고, 검 때문에 슬퍼하고, 검 때문에 즐거워했다. 그리고 너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
그 말을 끝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심각한 표정의 아메드가 침을 삼키는 소리, 그리고 검술관주 이안이 차를 홀짝이는 소리뿐.
그 속에서 아이른 파레이라는,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없었다.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검이 아닌 꿈속 사내의 검뿐.
그의 거대하고 묵직한 철검 앞에, 소년의 생각들은 홀연히 사라질 연기처럼 덧없고 가벼운 것일 따름이었다.
“자신의 뜻 없이, 그저 다른 이의 길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지, 그에 대해 묻진 않겠다.”
그에 대해 말할 거였으면 진즉에 말했을 터. 말하고 싶지 않다면 구태여 추궁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허나 조언은 필요했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검을 들 생각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검을 드는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검을 드는지.
자신의 검이 무엇인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을 것이다.
“검술관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고 말이지. 이곳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니까.”
“……!”
관주의 말을 들은 아메드가 깜짝 놀랐다.
돌려 말하긴 했다. 허나 그 안에 무슨 뜻이 내재되어 있는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안은 지금, 아이른 파레이라의 정식 입관을 불허했다.
다른 기수였다면 수석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천재를 말이다.
“감사합니다.”
허나 당사자인 아이른 파레이라는 오히려 담담했다.
화내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관주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주님의 마지막 조언,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태 공자가 고개를 숙였다.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디스와 함께 있고 싶었다. 브랫 로이드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검술관에 남아 그들이 자신에게 베푼 마음 씀씀이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허나 관주의 결정에 불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그가 방을 나설 준비를 하는 때였다.
“마지막 조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관주의 말에 아이른이 멈칫했다.
이안이 어떤 점을 짚은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허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의도는 확실해졌다.
“정식 입관을 못 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무슨 소리야. 무조건 합격이지. 내가 조언을 한 건 지금의 네가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야. 지금도 괜찮지만, 이 부분만 해결되면 훨씬 더 좋은 검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 거다.”
“네? 하지만, 관주님께서, 지금 상태로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그거야 지금이고. 검을 들 이유를 찾은 후에도 계속해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어?”
개구쟁이처럼 씨익 웃은 관주가 품에서 금속패를 꺼냈다.
마법 처리가 된 듯, 빛나고 있는 모양새.
“피 한 방울 빌려 가도 되지?”
“네? 앗!”
관주가 언제 손에 들었는지도 모를 바늘로 아이른의 엄지를 콕 찔렀다.
옅게 배어 나오는 피. 이안은 이를 조심스레 금속패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하얗던 빛이 음각된 무늬 안으로 사라지고,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름이 금속패 위로 새겨졌다.
[크로노 검술관 27기 정식 수련생]
[아이른 파레이라]
“1년 주마. 그 안에 자신의 검을 찾고 와라.”
“…….”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닌가? 부족한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른 파레이라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꼭, 1년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 * *
“괜찮겠습니까?”
“뭐가?”
“아이른 파레이라 수련생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검을 찾는 것 말인가?”
“예.”
아메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주가 언급하기 전에는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한 주제에 이러는 게 민망하긴 했지만,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녀석의 행동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좌절도, 고민도, 흥분도 없이 하루하루 극한의 노력을 이어 가던 모습.
예전에는 이를 높게 평가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거였군. 자신의 길을 걷는 게 아니니 흥분할 일도, 좌절할 일도 없는 거였다.’
육체적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적 고통에 몸부림칠 일은 없는 게 당연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염려가 됐다.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을 키워 왔던 이들과는 다르게, 비어 있는 상태로 움직였던 아이.
그 아이가 과연 자신의 검을 들 수 있을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관주의 한마디가 단번에 지워 버렸다.
“검술관에서 가장 재능 있는 아이 셋이 녀석을 중심으로 모였어.”
“…….”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는 아이가, 자기 색을 찾지 못할 리가 있겠나?”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 또 뭘 그렇게 자책까지…… 흠흠.”
본의 아니게 아메드를 책한 것처럼 된 이안이 헛기침을 한 뒤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자기 가문에서는 게으름뱅이로 소문이 나 있는 상태라지?”
“그렇습니다. 가문뿐만이 아니라 헤일 왕국 남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녀석이야.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소문이 났을까. 하여튼 재밌겠구만.”
대륙의 네 번째 천재.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이야기다.
칼 린제이, 이그넷, 일리아 린제이의 뒤를 이어, 아이른 파레이라가 대륙의 네 번째 천재로 자리매김할 거라고.
검술관주 이안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웃음을 머금은 그가 즐거운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년 만에 나태 공자에서 대륙의 천재가 되어 돌아간다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어.”
* * *
최종 면담이 끝나고 며칠 후, 아이른 파레이라는 검술관 밖의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문의 마차가 오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했지만, 그냥 먼저 나와 있고 싶었다.
지난 며칠간 소년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멍하니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검술관을 떠나는 마당에 끝까지 고독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은발 소녀, 일리아 린제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시간 있으면 한번 놀러와.”
“이건?”
“우리 가문의 상징패야. 이거 보여 주면, 적어도 푸대접은 안 받을 거야.”
푸대접을 안 받는 수준이 아닐 것 같았다.
손가락 두 개를 겹친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지만, 한눈에 봐도 굉장한 값어치를 가진 금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을 부리에 문 독수리 문양도 정교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허나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놀러 오면 선물도 줄게.”
“선물? 무슨 선물을…….”
“꽃 줄게.”
“꽃?”
“복수초(Adonis). 네가 준 팔찌에 음각된 꽃이랑 똑같은 거.”
“아…….”
갑자기 꽃을 준다기에 놀랐는데, 자신이 준 팔찌에 음각된 꽃이 복수초였구나.
그로서는 처음 알았다. 그저 동생에게 부탁해 만든 팔찌를 건네줬을 뿐이었으니까.
그가 물었다.
“집에서 기르는 꽃이었구나. 그것까진 몰랐어.”
“아니, 안 키워.”
“응?”
“일곱 살 때 다 뽑았어.”
“뭐?”
“그런데 이제 다시 기를 거야. 4~5월에 피니까, 내년 이맘쯤에 검술관 복귀하기 전에 한 번 오면 좋겠다.”
“…….”
“물론 그 전에 와도 좋고.”
오늘의 일리아 린제이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옛날부터 속내를 알기 힘든 성격이긴 했지만, 지금 같은 느낌은 결코 아니었다.
덕분에 대답이 늦어졌다.
그러자 일리아가 재차 입을 열었다.
“설마, 친구의 부탁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친구?”
“왜? 1년 동안 같이 지냈고, 나름 사이 나쁘지 않고…… 이러면 친구 아니야?”
“맞긴 한데…….”
역시 오늘의 일리아는 이상했다.
평소보다 말이 많은 것도 그렇고, 낯부끄러울 수 있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이 모습이 본래 모습일 수도 있겠네.’
마음의 짐을 던 덕분에 가벼운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굳이 따지자면 지금이 더 보기 좋긴 했다. 대하는 것도 훨씬 편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담담하게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일리아의 귓가가 평소보다 빨개져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이를 눈치채지 못한 소년이 흔쾌히 대답했다.
“알았어. 갈게.”
“좋아.”
그 뒤로도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일리아가 말했고, 아이른은 들었다.
린제이 가문에 관한 이야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파레이라 영지에 관한 질문, 자신을 향한 응원.
아무래도 이쪽이 진짜 성격인 게 분명해 보였다. 훨씬 밝아진 소녀의 모습에 아이른이 살짝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로이드 가의 문양인 방패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달고서.
“…….”
검술관 앞에 도착한 마차에서 사람 하나가 내렸고, 안으로 소식이 전달되었다.
이제 곧 브랫 로이드가 나올 터.
그 생각을 하니 둘의 표정이 절로 어두워졌다.
‘브랫 로이드…… 정식 입관을 포기하고, 가문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재능 넘치고, 열정 넘치고, 그에 부족하지 않은 노력을 쏟아부은 소년.
특유의 오만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빛나는 당당함으로 많은 아이들의 귀감이 되었던 진짜 귀족.
허나 지난 며칠간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처참했다.
감히 다가가서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절망이 너무나도 짙고 어두웠다.
‘부디, 잘 떨쳐낼 수 있기를.’
아이른 파레이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가 좌절을 딛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허나 그뿐이었다. 경험 부족한 소년은, 브랫을 위해 그 이상 무엇을 해 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일리아 린제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경우에는 관계 또한 애매했고, 브랫이 느끼고 있을 감정을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의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무거운 생각을 하는 사이, 검술관의 정문이 열렸다. 그리고 브랫 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퀭한 눈.
푸석푸석한 피부.
열정 넘치던 수재는 더 이상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듯 무기력한 소년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 상태로, 그가 걸음을 걷는다.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검술관을 떠나 자신의 가문으로 향할 마차에 오르기 위해 움직인다.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는 먹먹한 가운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콰아앙!
뒤늦게 검술관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붉은 머리 소녀.
주디스가 마차에 타기 직전인 브랫의 어깨를 홱 잡아챘다.
그리고 주먹을 날렸다.
퍼억!
쿠당탕!
얼굴을 얻어맞은 브랫 로이드가 고통과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봤다.
그가 물었다.
“뭐, 뭐야?”
퍼억!
주디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한 대 더 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