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4인의 천재 (1)
최종 평가가 끝났다.
그 말은 크로노 검술관 지부에서의 일정이 전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검술관주 이안과의 최종 면담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최종 평가 때 결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비 수련생들이 할 일이라고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거나, 방 안에서 뒹굴거리거나, 넋이 나간 채 관성처럼 검을 휘두르는 것뿐.
허나 교관들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아란 예비 수련생?”
“네, 네?”
“아, 긴장하진 말게. 최종 면담 때문에 부른 게 아니니까. 그냥 해 줄 말이 있어서 말이야.”
“아…….”
“최종 평가 때 보여 준 검술, 인상적이었다. 빠른 몸놀림을 제대로 살린 연격이었어. 웬만한 녀석들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른 검술이더군.”
“가, 감사합니다.”
“다만 나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는 방법도 말해 주고 싶군. 실초에 허초를 섞고, 쾌에 환을 섞는 방식이라고 할까…….”
아메드와 카라카, 브랜든 필립스. 그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참된 교육자였다.
셋은 최종 평가를 통해 단순히 줄 세우기만 한 게 아니었다.
며칠간 잠도 자지 않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적합한 가르침을 떠올렸고, 이를 각각의 아이들에게 베풀었다.
얼떨결에 호출된 예비 수련생들이었지만, 가르침을 받고 돌아설 때는 그들 모두가 벅찬 감정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비 수련생 대부분은 깨달았다.
이것이 크로노 검술관에서 베푸는 마지막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제는, 검술관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말이다.
‘젠장…….’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물론 관주와의 면담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결과를 알고 있다.
저번 기수, 그리고 그 전 기수에 정식 수련생으로 뽑혔던 이들은 평균 20명.
즉,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체념의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얻은 게 없지 않지. 아니, 엄청 많았지.”
“아쉽다. 그래도 후회는 없네.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까.”
교관들의 마지막 선물을 받은 예비 수련생들은 천천히 마음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크로노 검술관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뛰었던 달리기 코스, 사람 진 빠지게 만들었던 모랫길, 온갖 장비가 가득했던 체력단련실과 명상하기 좋았던 휴게실.
그 모든 것을 가슴 깊이 새겼다. 본가로 돌아가서도 잊지 않기 위해.
그런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멈춰 서게 되는 곳.
대연무장.
그 중심에 새겨진 거대한 상흔을 바라보며, 대부분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대륙 최고의 검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저런 검술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격이 다른 녀석들뿐이겠지.’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
금발 소년의 이름을 떠올리며, 예비 수련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뭐 이런 놈이 있나 했다.
일반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체력과 근력.
검을 손에 잡은 건 겨우 한 달 전이고, 그전에는 헤일 왕국 남부에서 가장 게으르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소문이 좋지 않았던 녀석.
그렇기에 모두가 조롱과 멸시의 시선으로 대했던 녀석.
허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본질은 전혀 달랐다.
‘그 녀석보다 열심히 했다고 할 녀석이…… 있을까?’
‘우리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뒤진다 해도 없지 않을까?’
아이른은 ‘독하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현재의 끔찍한 고통도.
미래에 대한 의심과 걱정, 그로 인한 불안과 좌절감마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많은 이들을 주저앉게 만드는 장애물이 아이른 파레이라 앞에서만큼은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비 수련생들은 나태 공자에 대해 생각할 때 재능보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천재인 건 사실이지만.’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아이른의 노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노력만 갖고 완성되는 검사는 없다.
그가 마지막에 보여 줬던 검격이 이를 증명한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검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천재인 건 당연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가고…….’
‘그러면…….’
노력의 천재.
연무장의 검흔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동시에 떠올린, 나태 공자라는 멸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를 1년 동안 봐 왔던 예비 수련생들로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최근 20년간 대륙에 이름을 떨쳤던 세 명의 천재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대륙의 네 번째 천재…….’
* * *
아이른 파레이라가 대연무장에 남긴 검흔.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은 검술관을 떠날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식 수련생이 될 것이 확실한 이들이 더욱 오래 그 흔적을 지켜봤다.
주디스의 경우가 가장 심했다.
그녀는 벌써 몇 시간 째 타들어 가는 눈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이를 지켜봤다.
옆에 누가 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예비 수련생이 와도, 고용된 조교들이 옆에 서서 감탄을 터뜨려도, 아메드 교관이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주고 가도.
심지어 최종 평가에서 수석을 차지한 자신이 옆에 서 있을 때도.
‘……내가 수석을 차지한 게 맞는 걸까?’
잠시 고민한 일리아 린제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자신은 충분히 1위의 자격이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대륙 최고의 검사 이안 관주의 결정 아닌가. 그에 의심을 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이, 내 턱 밑까지 쫓아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반갑지 않은 일이다.
무사히 수석의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가 아니다.
이것이 최종 목표라면 모를까 그녀에게는 더욱 큰 목표가 있었으니까.
최종 평가에서 수석을 따내는 것 정도야 첫걸음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여정의 시작부터 다른 이의 추격을 허용한 지금은…… 결코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여전히 검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일리아가 최종 평가 당일을 떠올렸다.
시험 직전까지 현실과 환상 속에 걸쳐있는 듯 희미했던 존재감이, 호명 받은 순간 거세게 드러났다.
그 위세는 마치 철갑을 두른 거인이 일어난 듯 묵직했다. 그 순간 아이른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가로막는 것이 뜨거운 화염이든, 거대한 해일이든, 심지어 창공을 지배하고 있는 폭풍이든.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고, 검을 잡았다. 휘둘렀다.
여기까지 생각한 일리아 린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이른이 뛰어났던 거구나.’
그랬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줬다.
아마 지금 똑같이 하늘검을 펼치더라도, 그때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가 아슬아슬했던 것은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었다.
상대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아.”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남을 후려칠 생각도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오랜만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지금껏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기분.
일리아는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신형을 돌렸다. 아무라도 붙잡고 지금의 감정을 얘기하고 싶었다.
아니, 아무라도는 좀 그런가?
그렇다면, 기왕이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년.
브랫 로이드를 발견한 일리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
그는, 자신이 오기 한참 전부터 대연무장의 검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주디스보다도 먼저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냈다.
‘……브랫도, 주디스도, 만만치 않았지.’
사실이었다.
솔직히 예상외였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들과 자신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격차를 좁히기에는 3개월의 시간이 무척 짧다고도 생각했다. 아니, 더욱더 벌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리아가 가문의 검을 꺼내 보인 이유는, 아이른 파레이라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금 말해 주는 건…… 도움이 되지 않겠지.’
잠시 망설이던 일리아가 브랫으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짐작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둘을 뒤로한 채, 일리아 린제이가 대연무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하고 있을 일이야 뻔했고, 그렇기에 장소를 특정하는 것도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은 소연무장의 구석에서 명상에 빠져 있었다.
큰 검을 든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특이한 모습.
피식 웃음을 흘린 일리아가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른 파레이라.”
“…….”
스르르, 소년의 눈이 떠졌다.
그러자 장막을 가르고 등장한 사람처럼, 일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변해 갔고, 몇 초가 지나자 일리아가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느낌이 와닿았다.
진짜 아이른 파레이라였다.
‘신기해.’
최종 평가 때의 아이른도 지금과 비슷했다. 잠깐이지만,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소녀는 소년과 대화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일리아가 말했다.
“잠깐 시간 좀 뺏어도 돼?”
“괜찮아.”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더 꿈속 사내의 검에 닿고 싶었지만, 일리아의 청을 거절할 정도로 급한 건 아니었다.
둘은 자연스레 벤치로 향했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몇 초의 정적 이후, 일리아가 입을 열었다.
“나, 크로노 검술관에 안 남아.”
“뭐라고?”
“떠난다고. 애초에 정식 수련생이 될 생각이 없었어. 중간 평가, 최종 평가에서 수석을 따내고…… 바로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아이른은 당황했다.
물론 일리아 린제이에게 크로노 검술관은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린제이 가의 검 또한 대륙에서 손꼽히는 것이니.
하지만 애초에 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입관하여 1년간 갖은 고생을 해 놓고 가문으로 돌아간다는 말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놀란 눈동자, 놀란 목소리.
일리아는 소년의 반응이 좋았다.
평소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물었다면, 꽤나 섭섭했을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의식하는 만큼, 상대도 자신을 의식했으면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소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이른.”
“응?”
“대륙 최고의 천재가 누군지, 알고 있어?”
질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화제.
하지만 아이른은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일리아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녀가 슬쩍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후, 대륙 모두가 첫손가락에 꼽는 괴물의 이야기가 찬찬히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