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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2화 (32/388)

◈ 13. 최종 평가 (1)

최종 평가가 치러지는 장소는 텅 빈 대연무장으로 중간 평가 때보다 훨씬 단출했다.

평가 방법도 단순했다.

예비 수련생들은 검술관주와 4명의 교관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검술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 주면 된다.

허나 그들이 1년간 쌓아온 성과만큼은 절대 얕지 않았다.

“하위권 수련생들이 기대 이상이군.”

“폭발적으로 성장한 녀석들이 많아. 이거 최종 순위는 완전 뒤죽박죽이겠는데.”

입관 초기에 교관들이 했던 말이 있다.

처음 체력 테스트의 순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어차피 1년 후에는 온통 뒤죽박죽의 순위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황은 정말로 예상 밖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인 이는 많았고, 예상보다 못난 수련생은 하나도 없었다.

교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아이들을 보며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삼 분의 이 정도의 예비 수련생들이 시험을 끝냈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하는 수련생, 주디스가 교관들 앞에 섰다.

소녀가 말했다.

“다른 예비 수련생과 함께 평가를 받아도 되나요?”

“음? 이유가 뭐지?”

“둘이 함께 보여 주는 게 저한테 가장 맞는 방식인 것 같아서요. 물론 그 수련생한테도요. 걔도 동의했어요.”

“안 될 건 없지. 그래, 그 수련생이 누구지?”

“브랫 로이드입니다.”

아이들 사이에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앙숙 사이에도 불구하고 수련 중에 꽤 자주 붙어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같이 평가를 받으려 할 줄이야. 수련생들의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디스도 대단한 수련생이긴 하지만, 최근의 브랫 로이드가 얼마나 가파른 성장을 보이는지 다들 아는 마당이었다.

그런 둘이 함께 시험을 치른다?

“기대되는구만. 브랫 로이드 예비 수련생!”

“네!”

“앞으로 나와라.”

“네!”

호명을 받은 브랫 로이드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 하지만 컨디션에 영향을 줄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적당한 흥분과 긴장을 일부러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관주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런 그에게, 브랫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각자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보여 주기 위한 대련을 하려고 합니다.”

“흐음. 대련이라.”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좋지. 부디,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봐라.”

허락이 떨어졌고, 분위기가 깔렸다. 눈빛을 교환한 둘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뒤, 자세를 갖추고 마주 섰다.

불어오는 바람, 내리쬐는 햇볕, 은은히 풍겨오는 풀냄새.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연무장에 모인 수련생들은 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두 천재가 펼칠 대련을 지켜봤다.

잠시 후.

주디스의 공격으로 평가가 시작되었다.

“흐읍!”

붉은 머리 소녀의 동작은, 일반적인 검술에 비교해 상당히 컸다.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수직 베기.

노련한 검사라면 살짝 궤적을 피한 뒤 큰 동작 후의 빈틈을 노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디스의 검을 목도한 수련생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이 굳어 버렸다.

브랫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흉포한 압박감에 발이 묶인 그는 검을 들어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주디스의 검이 위로 튕겨 나왔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은 없었다.

이를 악문 소녀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용솟음쳤다.

코어를 타고, 어깨를 타고, 팔을 타고 전해진 완력에 흉악한 기세가 더해졌다. 검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완성된 무자비한 공격이 또다시 브랫을 향해 날아들었다.

꽈아앙!

날아들었다.

꽈아아앙!

날아들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날아들고, 날아들고, 또 날아들었다.

대련을 지켜보던 예비 수련생들은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등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압도적인 폭력성!

그것이 주디스가 보여 주고 있는 검의 실체였다.

불과 같은 무자비한 공격을 토해낸다. 막히면? 상관없다. 곧바로 더욱 끔찍한 이격을 쏟아낸다.

막고, 막고, 막아도 소용없다. 공격은 상대가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이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빈틈이 노출되긴 하지만, 그 역시 상관없다.

주디스의 기세와 공격에 노출된 상대가 더욱 큰 빈틈을 드러낼 테니까!

“크아아압!”

콰아아아앙!

주디스의 기합이 온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튕겨 나간 검을 붙잡아 세운다. 아니 그것을 넘어 다시금 휘둘러 친다.

무지막지한 코어, 그리고 체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붉은 머리 소녀는 그야말로 상대를 죽여 버릴 각오로 철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뚫을 수도, 부술 수도 없었다.

공격을 받아 내는 존재가 그 누구도 아닌 브랫 로이드였기 때문이다.

쒜에에엑-!

묵직하게 내리꽂히는 공격.

절대 정면으로 받아 낼 수 없다. 원심력의 가속도가 더해진 참격을 순진하게 막았다가는 팔이 부러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브랫은 조용히 힘을 모았고, 날카롭게 눈을 떴다.

침착하고 완벽한 타이밍을 계산한 그가 검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콰앙!

여전히 커다란 충돌음.

하지만 이전보다 확실히 작았다. 이상적인 각도의 검로를 통해 상대의 힘을 흘려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주디스의 검은 화염이 폭발하듯 계속해서, 계속해서 내리꽂혔다.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허나 브랫이 그려나가는 원도 끊임이 없었다.

콰앙!

콰앙!

터엉!

콰앙!

터어엉!

마치 물로 이루어진 구체를 두드리는 듯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점차 빈도가 늘어나더니, 잠시 후에는 합의 대부분에서 그러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모두가 알았다. 주디스의 검은 조금씩 파훼되고 있었다.

뿌득

주디스가 이를 갈았다.

역시 힘들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녀석을 무릎 꿇리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아무래도 다음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

생각을 마친 그녀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터어엉!

아래에서 튕겨 나온 검을 크게 위로 회전시킨다.

후우웅!

완벽한 수직은 아니다. 사람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45도 각도의 사선 베기.

주디스의 검이 브랫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강하게 떨어져 내렸다.

원심력, 중력, 거기에 더해 주디스 필생의 힘이 낭비 없이 모아진 최강의 검격!

놀랍게도, 그에 대처하는 브랫 로이드의 검도 거울을 반전시킨 듯 완벽하게 같았다.

불꽃 같은 주디스만큼이나 난폭한 공격이 해일처럼 날아들었다.

대련 후 처음으로, 둘의 검이 정면에서 맞닥뜨려졌다.

카강!

쩌저정!

“……후우.”

“하아, 하아.”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박살 나 버린 브랫의 검. 그리고 주디스의 검.

대련은 끝이었다.

부러진 검을 든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둘을 보며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교관들조차 말을 아꼈다.

오로지 이안 관주만이 즐거운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훌륭하다! 둘 다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푸른 머리, 붉은 머리가 꾸벅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한 명은 만족스러운 얼굴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러지 못했다.

교관들은 이해했다.

아메드가 속으로 생각했다.

‘둘 다 훌륭하긴 했지만, 역시 브랫이 위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강검(强劍)을 유감없이 보여 준 주디스는 대단했다.

하지만 상대가 최선을 보일 수 있도록 조율하면서, 자신의 최선도 함께 펼쳐낼 수 있었던 브랫 로이드는 더욱 대단했다.

‘어쩌면, 정말로…….’

아니,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아메드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미리 생각할 필요 없다. 기다리고, 순서가 되면 그때 비교해도 늦지 않는다.

흥분을 가라앉힌 그가 재차 평가에 집중했다.

다음 차례인 수련생이 앞으로 나왔다.

“으음…….”

하지만 그 수련생의 검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훌륭했다. 적어도 이전 수련생들에 비해 못나진 않았다.

브랫 때문이었다. 주디스 때문이었다. 그 둘이 자신의 눈을 너무 높여 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젠장. 저 녀석들 전에 해야 했는데.’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냐고…….’

최종 평가는 중간 평가 순위의 역순으로 치러진다.

2차 시험 최하위부터 2차 시험 최상위가 평가를 받은 뒤, 1차 시험 최하위부터 1차 시험 최상위 순서대로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헌데 예상치 못하게 주디스와 브랫이 일찍 검을 보였고, 덕분에 시험의 긴장감이 확 줄어 버렸다.

뒷순번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검술을 펼치면서도 짜증을 숨길 수 없었다.

물론 그러한 것도 잠시.

1차 시험을 포함한 모든 테스트 수석에 빛나는 대륙의 천재, 일리아 린제이가 호명되는 순간, 수련생들은 또다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리아 린제이 수련생. 어떤 것을 보여 줄 생각이지?”

관주가 묻는다.

아이들은 조용히 입을 닫고, 귀를 열었다.

모두가 일리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문의 검을 펼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그녀의 오만한 말에 브랫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가문의 검을 보여 주지 않으면 수석을 지킬 수 없을 거라고.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잠시 후, 그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가문의 검을 펼치겠습니다.”

“마룡왕의 목을 벤 하늘검 말인가? 좋지.”

모두의 시선이 브랫 쪽으로 향했다.

경탄, 환호, 질시, 부러움. 다양한 눈빛 속에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이를 본 브랫이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일리아 린제이를 바라봤다.

닿을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넘어서기는커녕 뒤따를 수도 없는 천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하늘검을 끌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자신은 그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브랫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은발 소녀의 얼굴에 꽂히는 그녀의 시선이 뜨겁게 타올랐다.

일리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브랫 로이드의 눈도, 주디스의 눈도, 다른 예비 수련생들의 눈도.

차분한 얼굴로 검을 집어 든 소녀가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폭풍이 펼쳐졌다.

* * *

브랫 로이드는 가만히 서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주먹에는 힘이 없었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넋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힘없는 숨결이 흘러나왔다.

시작은 대단치 않았다. 일리아의 검은, 처음에는 그저 나비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냘픈 나비의 날갯짓이 바람을 부르고, 불러온 바람이 힘을 받고, 힘을 키우며 주변을 잡아먹기 시작했을 때.

그리하여 어느새 하늘을 지배하는 폭풍이 되었을 때.

비로소 브랫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벽이 얼마만큼 두껍고, 높은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해.’

다시금 주먹에 힘을 쥐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무너지던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고, 표정을 관리했다.

그래, 자신은 졌다.

하지만 완전히 진 것은 아니다.

최종 평가는 녀석의 승리로 돌아갈 테지만, 결국 자신은 린제이 가의 하늘검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녀석에게 다가가는 한걸음으로써는 충분했다. 충분히 커다란 발걸음이었다.

‘다시 해 보자.’

꺾이려는 의지를 다잡았다.

아직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청발의 소년은 눈을 부릅뜬 채 돌아서는 일리아의 눈빛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검을 거두고 물러서는 은발 소녀의 시선은, 그를 향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이른 파레이라 수련생.”

“아 맞다, 아직 끝난 거 아니지.”

“그러게. 끝난 줄 알았네. 저 녀석은 특별 수상이라 순위 외였지.”

“근데 벌써 끝난 느낌이네.”

관주의 호명에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3개월간 특별한 일 없이 조용히 지내왔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닌가.

아이들은 그에게 별다른 기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붙기야 할 것이다. 녀석의 잠재력은 대단하니까.

하지만 녀석이 보여 줄 검술이 주디스의, 브랫의, 대륙의 천재인 일리아의 검술을 뛰어넘을 거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들이 남긴 여운을 걷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 순번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예.”

검을 들고 명상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나태 공자가 눈을 뜨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

“……!”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파묻혀 있던 꿈에서 솟아난 아이른을 보는 순간, 모든 이들은 자석에 이끌린 듯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꽈악

브랫 로이드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꽉 쥐어진 손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그만이 유일하게 일리아 린제이와 아이른 파레이라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둘 다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이윽고,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나태 공자가 걸음을 옮겼다.

강철로 빚어진 거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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