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새로운 변화 (2)
꿈.
수면 중에 일어나는 정신 현상을 일컫는 말로,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물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준다.
물론 대부분의 꿈은 상식적이지 않다.
울창한 숲속을 거닐다가 갑자기 사막으로 배경이 바뀌는가 하면, 뜨거운 여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갑자기 겨울로 돌변하곤 한다.
사건의 흐름도 뒤죽박죽, 등장하는 인물들도 연관성 따윈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태 공자, 아이른 파레이라만은 달랐다.
‘……시작됐나.’
꿈속에 빠진 소년이 주변의 풍경을 느꼈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마당, 그 안에 멋대로 자라나 있는 잡초들, 죽 둘러쳐진 담장, 그 모든 것을 잠자코 내려다보는 푸른 하늘과 흰 조각구름.
그리고 그 속에서 묵묵히 검을 치켜드는 이름 모를 사내.
모든 것이 똑같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아이른 파레이라는 벌써 6달 동안이나 똑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심지어 꿈은 꿈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년은 이 심상 속에서 사내의 몸에 빙의하고, 수련한다.
끊임없이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깨어난 뒤에도 이어져 현실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나태하고 게을렀던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꿈 덕분이지…… 어?’
오늘도 똑같이 벌어지는 기적에 나태 공자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가 달라졌다.
앞서 밝혔듯이, 지금의 아이른은 아이른이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정체불명의 검사일 뿐, 그의 의식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헌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물론 의식만 깨어 있을 뿐, 꿈속을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늘 그래 왔듯 호흡을 가다듬었고, 검을 치켜들었고, 강하게 휘둘렀다.
휘익!
‘음!’
아이른이 깜짝 놀랐다.
사내의 몸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현실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강렬한 심상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꿈은 꿈.
소년이 느껴왔던 건 안개 낀 새벽녘을 걷는 듯 흐리멍덩하고 흐릿한 기억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씻겨 난 뒤에도 남아 있을 만한 굵직한 감정 외에는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휘익!
‘으음!’
묵직한 철검을 휘두른다.
그에 따라 몸 구석구석에 힘이 들어간다. 근육의 이완과 긴장, 심장박동, 호흡을 통한 열기의 배출마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그 상태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다.
휘이익!
반복, 반복, 또 반복.
보통 사람이었다면 몇 번이고 탈진했을 횟수가 쌓였다.
심지어 대충 휘두른 것도 아니다. 사내는 매 순간순간 정성을 다했다.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그조차도 고통을 느낄 만큼 힘든 시간이었고, 그러한 감각은 아이른 파레이라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소년이 집중한 것은 전신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격통이 아니었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해 나가고 있는, 사내의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집중력이었다.
‘대단해.’
검을 위로 치켜든 뒤 수직으로, 혹은 사선으로 떨어뜨리는 동작.
어찌 보면 대여섯 살짜리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행위인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렇지 않다. 아무리 쉽고 초보적인 동작이라 한들,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정제된 호흡.
안정된 중심.
완벽한 균형.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근육, 인대, 관절의 완벽한 움직임.
사내의 검술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집중력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평소에 생각했던 ‘최선’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위치했다.
소년은 시골 마을에 방문한 영웅을 마주하듯 몽롱한 감정이 되어 계속해서 사내의 감각을 느꼈다.
허나 그러한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깼나.”
꿈에서 깨어난 나태 공자가 중얼거렸다.
많이 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3시간 정도? 창밖의 깜깜한 풍경이 이를 증명했다. 아마 아직 새벽 4시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물론 체력적인 부담은 전혀 없었다.
침구에 걸려 있는 회복 마법, 그리고 매일같이 행해지는 회복술은 수련생들이 최소한의 수면으로 최대의 효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니까.
아이른은 입관 이후 잠이 아쉽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서라도 조금 전의 꿈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비한 꿈은 하루에 여러 번 꿀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여러 번 잘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른은 그런 몸이 돼 버렸다.
결국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이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른 파레이라의 꿈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보다 생생해졌고, 보다 현실에 가까워졌다.
시각, 청각, 촉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잠에 빠져드는 순간 또 다른 세상으로 전이되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소년은 더욱 진하게, 깊게 꿈속 사내의 검술에 몰입할 수 있었다.
동작이 행해질 때마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그의 육신을,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꿈의 변화는,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자, 지금 보여 준 게 크로노 기본 검술 4식과 6식을 합쳐 응용한 동작입니다. 회피와 동시에 공격도 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죠. 다시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휘익, 휙, 휘익!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작.
기본 검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적어도 C클래스 예비 수련생들에게는 그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달랐다.
커다랗게 떠진 그의 눈이 카라카 교관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담았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밤 꿈속 사내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진 집중력을 공유하는 그다.
사내에 비하면 미숙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소년의 관찰력은 놀랄 만큼 향상되었다.
“자, 해 볼까요?”
단순히 보고 기억하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대검을 치켜든 아이른 파레이라가 심호흡을 한 뒤, 4식과 6식의 응용 동작을 재현했다.
그러자 주변 수련생들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검술이 펼쳐졌다.
말투는 상냥한 주제에 칭찬에는 인색한 카라카 교관마저 손뼉을 칠 정도였다.
“훌륭합니다! 검을 휘두르는 팔의 동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경쾌한 발놀림이라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군요.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며칠 전까지는 3식도 제대로 못 하지 않았었나?”
주변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사실이었다. 실제로 아이른은 고작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C클래스 수업 진도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세 번 연속 동작을 반복한 소년이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그러자 맑은 호수 위에 이미지가 떠오르듯, 신체 각 부위의 감각이 선명하게 뇌리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몸은 커다란 덩어리가 아니다. 하나의 동작을 행하기 위해 제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많은 부위의 결합체…….’
극한으로 끌어올려진 감각이 수십 개의 덩어리들을 구분하여 인지하고, 이해하고, 감독한다.
낭비도, 어긋남도 없는 효율적인 역할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로 모여 이상적인 동작을 완성한다.
쉼 없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검로를 펼쳐낸 나태 공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금 동작을 행했다.
더욱 깔끔한, 그렇기에 더욱 위력적인 초식.
카라카 교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른 파레이라 수련생의 재능이 이렇게 대단했나?’
그렇지 않다. 아이른의 재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저 매 순간, 매 동작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무의미하게 흘려 버렸을 사소한 정신력마저 오롯이 검술에 집중한 결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장시간 그러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심적 부담을 유발했다.
“허억, 헉, 허억…….”
“저 자식 요즘 유독 헥헥거리네.”
“그러게? 체력만 놓고 보면 주디스보다도 대단한 놈이…….”
“뭐 잘못 먹었나?”
자율 수련 중 유독 지친 모습을 자주 보인 나태 공자를 향해 몇몇 수련생들이 수군댔다.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아이른 파레이라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알지 못하던 때에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꿈속 사내의 검을, 그가 보내는 시간의 밀도를 가슴 깊이 느낀 지금마저 예전처럼 대충대충 검을 휘두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후우.”
쒜에엑!
아이른이 검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휘둘렀다.
안타깝게도 매 순간 최상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발이 느려지는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소년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막을 길이 없었다.
허나 이것은 낯선 경험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다시 한 달이 흘러 검술 수업에 들어선 지 딱 3달이 됐을 무렵.
비로소 아이른 파레이라는 아침의 집중력을 늦은 밤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으음.”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소년은 여전히 꿈을 꾸고, 매일 밤 꿈속 사내의 감각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자신의 가장 강하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조차, 사내의 지극히 평범한 순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그 수준에 닿을 수 있을까?’
자신이 세분화하여 다룰 수 있는 수준은 기껏해야 이두, 삼두, 대흉, 광배, 대퇴근 따위의 근육 덩어리들 정도.
사내의 경우에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마치 근섬유 하나하나를 통제하에 둔 듯 섬세하고 날카로운 집중력을 보인다.
물론 지금 얻은 것만 하더라도 남들이 볼 땐 굉장한 것이다.
허나 아이른은 거기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욕심이나 갈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뜻에 가까웠다.
소년은 이 이름조차 모르는 사내에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마치 처음으로 신비한 꿈을 꾸고 나서, 평생 관심조차 없던 검에 강한 충동을 느꼈던 것처럼…….
“꿈이라…….”
“어? 뭐라고 했어?”
“뭐야. 대련 중에 멈추지 마라.”
아이른의 혼잣말을 들은 주디스가 물었고, 브랫은 짜증을 냈다.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지만, 브랫의 제안 이후로 대련을 할 정도로는 관계를 회복한 둘이었다.
아이른은 그들의 옆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연무장 구석에 있는 벤치가 있는 쪽이었다. 휴식을 위해 설치된 것이지만 아이른은 한 번도 이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주디스도, 브랫도 의아함을 느꼈다.
“야, 야! 뭐하냐고! 내 말 씹냐? 야!”
“냅둬. 지쳤나 보지.”
지쳐서 쉬러 가는 아이른 파레이라라니. 굉장히 어색하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관심이 사라진 브랫이 다시금 대련하기 위해 주디스를 채근하려 했다.
그때, 벤치에 도착한 아이른이 다소곳이 몸을 눕혔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뭐야 지금?”
“자는 거야?”
“설마?”
“그 아이른 파레이라가?”
근처에 있던 예비 수련생들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주디스도, 브랫도, 랜스 페터슨을 비롯한 브랫 패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잘 때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면, 조금이라도 그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놀라 까무러치건 말건, 나태 공자는 꿈속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번쩍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