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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3화 (23/388)

◈ 9. 달라진 것은 (1)

아이른 파레이라와 브랫 로이드의 결투가 있은 후 20일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아직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

하지만 100명가량의 예비 수련생들은 지치지도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육체 단련 일변도에서 벗어나 비로소 검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도 중요했고, 클래스 차등 때문에 안 그래도 강했던 경쟁 의식에 불이 붙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으니, 바로 ‘교관들의 실력’이 그것이었다.

“동작에서 동작으로 넘어갈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 의식하고 고쳐라!”

“시야가 좁아!”

“상대와의 거리를 항시 생각해라. 좋은 움직임을 위해서는 판단의 여유가 필요하고, 그걸 가능케 하는 게 바로 거리다.”

“손과 몸, 발과 걸음! 이것들이 효율적으로 겹쳐질 때 좋은 동작이 나온다.”

단순히 검술 실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메드를 비롯한 교관들은 그야말로 남을 가르치는 일에 특화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커리큘럼을 고안해 냈고, 그것에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지도관을 갖고 있었다.

날카롭고 넓은 시야는 항시 수련생들의 동작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으며, 교정과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칼처럼 정확한 가르침이 개개인에 맞춰 떨어졌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어찌나 적절한지, 교관들 모두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교관이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가문에서 날 가르친 사람도 꽤 명성 있는 기사였는데…….’

‘전혀 달라.’

‘과연 크로노 검술관인가…….’

교관들이 가르치는 분야에서의 베테랑이라고 한다면, 예비 수련생들은 가르침 받는 분야에서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장난 같긴 하지만 이는 분명 사실이었다.

적지 않은 스승들로부터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온 그들이 베테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그들이기에 알 수 있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교관들을 만난 것은, 자신의 검술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기연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업 때는 눈에 불을 켜고 하나라도 더 얻어 가기 위해 집중했고, 저녁 시간에도 그날 배웠던 것을 잊으랴 동기들과 함께, 때론 혼자서 피나는 수련을 이어 갔다.

마치 대륙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100명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허나 그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 있었으니.

“저 자식은 진짜 한결같네.”

“……독하긴 제일 독하지.”

연무장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보며, 수련생 몇이 감탄을 터뜨렸다.

녀석의 노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됐다.

이상하다는 말로도 뭔가 부족했고, 그나마 비슷한 뉘앙스를 찾자면 ‘기괴하다’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했다.

그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없다.

이야기가 정해진 연극 속의 인형처럼, 아주 약간의 흥분도 없이 정해진 일을 하루하루 수행해나가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를 지켜보던 수련생들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래 봤자 최종 평가 때 활약하는 건 무리겠지만.’

‘나중이라면 몰라도, 고작 몇 개월 만에 우리들을 따라잡는 건…… 솔직히 무리지.’

물론 그러한 감정은 아직 미미했다.

아무리 녀석이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아직은 풋내기일 뿐이다.

룬 타르할과 함께한 일주일은 마법의 시간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검증받는 시간일 뿐이었다.

물론 나태 공자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달라진 건 없어.’

검술관에 들어오기 전에도, 들어온 직후에도, 지금도. 자신은 여전하다. 여전히 뒤에 있다.

그러나 그 사실에 좌절하지 않는 것 역시 예전과 같다. 그렇기에 아이른은 오늘도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오, 이제 좀 검사 티가 나는데? 이 누나가 한 수 가르쳐 줄까?”

“지금은 괜찮아. 잠시만…….”

“지금 거절한 거야? 감히 C클래스가? A클래스에서도 상위권인 주디스 님이 친히 가르침을 준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응? 응? 엉? 야, 야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아니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거라니까? 지금 간격 좁힐 때 균형이 조금…….”

4개월 내내 자신을 무시하고 적대하던 주디스가 화해를 청하고, 그것을 넘어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만 빼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검을 내려놓은 소년이 먼 곳을 바라봤다.

차가운 얼굴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은발의 소녀가 보였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난도의 검술을 소화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이른이 품은 감정은 질시나 선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뭐야, 갑자기. 내가 옆에서 자꾸 지랄해서 힘 빠졌어?”

“아니야. 방금 그거,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줄래?”

짧게 고개를 흔든 아이른은 주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금 검을 드는 그의 모습은 이전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하루, 크로노 검술관의 하루가 지나갔다.

* * *

중간 평가가 끝난 후로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예비 수련생들 사이의 거리감은 더욱 좁아졌다.

식사 시간, 혹은 수업 후의 개인 시간 때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건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경쟁으로 인한 숨 막히는 긴장감만이 가득했던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황.

이는 검술관의 커리큘럼이 ‘육체 단련’에서 ‘검술’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검은 무기의 한 종류이고, 무기는 전쟁이나 싸움에 사용되는 도구를 일컫는 말이다.

즉, 검을 다루는 법인 ‘검술’은 필연적으로 상대가 필요한 셈이 된다.

실제로 저녁 식사를 마친 수련생들은 각자 어울리는 상대와 대련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관들도 조교들이 참관한다는 전제하에 이를 장려했다.

당연했다. 홀로 자세를 갈고 닦는 것만큼이나 실전 수련도 중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야! 대련하자!”

“……그래.”

심지어 입관 내내 외톨이에 가까웠던 아이른 파레이라마저 주디스라는 짝을 찾았으니, 다른 예비 수련생들은 두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오직 한 명.

일리아 린제이만큼은 계속해서 혼자만의 수행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검술관에 입관한 다른 아이들과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린제이 가문의 검술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그래. 크로노 검술관처럼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데?”

“뭐야? 그러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잖아?”

“제길, 부럽다. 나도 린제이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첫 번째로, 태생이 달랐다.

그녀는 날고 긴다는 검술관과 검가(劍家)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누구보다 좋은 환경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지원을 받고,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의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허나 그녀의 우월한 실력은 비단 가문의 힘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훌륭하군. 흠잡을 구석이 없는 완벽한 동작이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

“……미쳤네, 그냥.”

A클래스 수련생조차도, 아메드 교관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재능.

그것이 다른 수련생들과 일리아 린제이 간에 있는 두 번째 차별점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천재라 한들 마찬가지였다.

린제이 가문에서도 역대급이라는 소리를 듣는 은발 소녀의 앞에서는, 마치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허나 앞의 두 가지보다 더욱 큰 차별성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목표가 크로노 검술관의 정식 수련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예비 수련생 중에서는.

허나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아이들은 일리아가 보이는 태도에서 적지 않은 위화감을 느꼈고, 벽을 느꼈다.

이는 곧 불편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그녀에게 친근함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브랫의 친위대들이 그랬듯 린제이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던 수련생들은, 입관 5개월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일리아의 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오늘도 몰래 수련하러 가나?”

“그렇겠지. 가문의 비전 검술을 우리 같은 미천한 놈들한테 보여 주면 안 되잖아?”

“그럴 거면 도대체 여기 왜 온 거야?”

“그러니까. 우월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나?”

“진짜 재수 없는 녀석이야.”

“내 말이.”

저녁 식사 후, 남들과는 달리 대연무장이 아닌 소연무장들 중 하나로 이동하는 일리아 린제이를 쳐다보던 몇몇 수련생이 말했다.

은발 소녀도 그걸 들었다. 물론 지금뿐만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발달한 육체, 그리고 감각은 예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험담을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험담을 늘어놨던 대부분이 처음에는 자신에게 친한 척을 다가왔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화날 일은 아니지.’

이미 알고 있다.

원래 사람들이 그렇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곤 한다.

그런 것에 상처받을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할 일이라곤, 그저 어제와 마찬가지로 충실한 오늘을 보내는 것.

그리하여 중간 평가에서 그랬듯 최종 평가에서도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뿐이었다.

생각을 마친 일리아 린제이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검을 들었다.

수련생은커녕 조교조차도 없는 적막한 소연무장에서, 린제이 가의 검술이 막 펼쳐지려는 순간이었다.

바스락-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밟는 소리.

일리아의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험담을 늘어놓는 아이들의 말 중에 사실인 게 하나 있다면, 그녀가 자신이 수련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 주기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자리가 부족한 거라면 모를까, 널린 게 연무장인 검술관에서 다른 수련생과 함께 검을 휘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세를 내뿜었다.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이를 향해서.

우우우웅-

단순히 분위기를 말함이 아니었다.

입관 초기 아메드 교관이 그랬듯, 일리아 린제이는 분명 상대를 강제할 만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물리력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마음을 꺾을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12살 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허나 다가오는 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은발 소녀가 눈매를 찌푸렸다.

우우우우웅-!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그것도 모자라 한 곳, 걸어오는 수련생의 근처를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아메드나 카라카 교관, 심지어 검술관주인 이안이 봤더라도 감탄의 표정을 지었을 만한 기예(技藝)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수련생을 보며, 일리아 린제이가 결국 기세를 거뒀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상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유?

그런 걸 물어보는 게 더 이상했다.

여기 있는 100명의 수련생 중 누구에게 묻더라도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고. 그게 녀석이 지금까지 보여 왔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용건 있어?”

일리아 린제이가 평소와 같은 얼굴로 물었다.

아니, 사실 조금 더 차가웠다. 소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에게 수련생, 아이른 파레이라가 처음 건넨 것은 말이 아니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그가 일리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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