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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0화 (20/388)

◈ 7. 입상자 면담 (2)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지났다. 말을 마친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시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술관주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턱을 쓰다듬고, 빈 찻잔을 매만지고.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다른 수련생과의 화해를 위한 조언을 해 달라, 이건가?”

“예.”

“그 수련생이 다름 아닌 일리아 린제이 양이고?”

“맞습니다.”

“으음.”

“실례되는 부탁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밖에……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정말이야.”

관주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어떤 것을 바라든 상관없다고, 편하게 말하라고 한 게 바로 자신 아닌가.

그런 주제에 훌륭한 부탁, 실례되는 부탁 같은 걸 정해 놨을 리가 없었다.

다만.

“다만, 이 늙은이가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랬다.”

정말이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주인과 크로노 검술관의 예비 수련생이 만났다.

상은 당연히 검, 혹은 검술과 관련된 것이어야 일반적일 터였다.

그러나 아이른 수련생은 예상과 전혀 다른 청을 해 왔고, 그렇기에 연륜 깊은 이안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당황보다 더욱 큰 흥미가 노인의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빙긋 웃은 관주가 말을 이었다.

“일리아 그 아이와 아는 사이였구나. 내 미처 몰랐다.”

“그런 건 아닙니다.”

“응? 그래? 그러면 검술관 내에서 친해진 건가? 이것도 놀랍군. 내가 개인적으로도 그 아이를 아는데, 친해지기 굉장히 어려운 성격인데…….”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닙니다. 그저 개인 단련 중에 말을 몇 번 한 정도…….”

“으음. 점점 더 알 수 없구나.”

관주가 여전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고, 딱히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툼이 있었고, 소년은 이를 해결하려 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이안이 아이른을 채근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꾸나. 상황을 모르다 보니 당장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구나.”

“어떤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그냥 다 얘기해봐라. 어떻게 대화를 텄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찌하여 감정이 상했는지, 또 왜 화해를 청하려 하는지. 내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조언해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럼…….”

꾸벅, 고개를 숙인 아이른 파레이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썩 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끔 내용이 두서없이 흘러갔고,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관주가 애를 써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명확하게 파악되는 것이 있었다.

검술관의 모든 수련생들은 눈앞의 소년을 무시했고.

일리아 린제이는 그러지 않았다.

검술관의 모든 수련생들이 소년에게 편견을 가질 동안.

일리아 린제이는 그러지 않았다.

이안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황당한 청을 했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는군.’

예전엔 몰랐으나 이제는 안다. 이 신비로운 소년이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는지 말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왔던 아이른의 입장에서, 일리아 린제이가 보인 호의는 훨씬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관주가 슬쩍 눈을 떴다.

무표정한 얼굴.

허나 깊은 눈빛을 던지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은 이 녀석의 고민 상담부터 해 주도록 할까.

속으로 중얼거린 그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좋아. 그럼 고민 많은 소년의 상담을 시작해 볼까?”

* *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얘기는 원활하게 마무리되었다.

관주의 조언은 일반적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아이른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린 시절을 통째로 날려 버린 그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였으니까.

나태 공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관주님.”

“감사는 뭘, 그냥 노인네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일 뿐인데.”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뭐 도움이 됐다면야 다행이지만, 별다를 거 없는 말이라는 건 여전하다. 무기 다루는 법이야 꽤 자신이 있으니 이것저것 해 줄 말이 있지만…… 허허. 내가 검 이외의 조언을 해 준 게 도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구나.”

관주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고, 아이른은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이안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일리아 얘기는 이만하면 됐고,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예? 본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

“아직 네게 아무것도 준 게 없지 않느냐.”

지금까지 해 준 조언이 상 아닌가?

아이른이 그런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관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자신이 있는 분야는 검과 검술이지, 사람 대하는 법이 아니라고.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몇 마디 건넸다고 상을 준 셈 치기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관주의 몸에서 기세가 후욱, 뿜어져 나왔다.

한 분야의 대가만이 보일 수 있는 장중한 분위기.

한참 부족한 실력의 아이른 파레이라조차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을 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마. 검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주마. 어떤 것을 물어보든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답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평소 맘에 품고 있던 무언가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털어놓아 보거라.”

기세가 더욱 진해졌다.

상대를 압박하는, 그러면서도 믿음직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깔렸다. 그 속에서 아이른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소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더욱 깊어졌다.

묘한 긴장감.

그것을 뚫고 나온 아이른의 대답은, 꽤나 맥빠지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떤 것을 물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흐음.”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이른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검을 수련한 기간은 검술관에 들어오기 전의 한 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지도를 받은 것이 아니고 혼자 멋대로, 되는대로 휘둘렀죠.”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떤 것을 여쭤봐야 할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조차 아는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말뿐이 아니었다. 실제로 민망한 듯, 아이른은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가 진심을 담아 말을 이어 갔다.

“죄송합니다. 관주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얼마만 한 값어치가 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형편없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고개를 들어보게.”

“네? 아, 네!”

아이른이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푸른 호수와 같은,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이 안 갈 정도로 깊은 눈동자. 그것으로부터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소년은 실례라는 것도 잊고 멍하니 노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짝!

“아!”

이안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홀린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뒤늦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너무 자주 사과하지 말거라. 좋은 검사는 당당해야 한다.”

물론 예의 없이 행동하라는 말은 아니지. 조용히 덧붙인 관주가 식어 버린 차를 홀짝였다.

그 모습은 뒷짐 진 채로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늙은이와 다를 바 없었다.

방안을 가득 채운 분위기는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아이른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가운데,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알겠다. 그럼 상은 미루도록 하지.”

“예?”

“나중에 네가 부족함을 느낄 때, 그때 찾아와도 된다는 말이다.”

“아…….”

“아니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점에 먼저 가르침을 내릴 수도 있고. 혹시 불만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른이 꾸벅 인사를 했다.

관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나가 봐도 좋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른이 재차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섰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안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소년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표정이 변한 것은,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난 후였다.

‘정말로, 정말로 특이한 아이구나.’

당혹스럽다.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검에 뜻을 둔 소년이, 나의 가르침을 두 번씩이나 사양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자신의 지도는 그야말로 엄청난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대륙의 검사들 중에서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그중에서도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한 손에 꼽히는 실력을 보유한 자신의 가르침은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인가?

깊게 따지고 들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한 기회를 두 번이나 걷어찼다.’

엄밀히 말하면 걷어찬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검과 무관한 질문을 했을 뿐이고, 두 번째는 대답을 유보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안은 그것조차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아이른 파레이라가 보여준 태도는 일반적인 검사 지망생의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이질적이었으니까.

그래, 마치…….

‘이미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와중이라, 다른 이의 지도까지는 필요가 없는 사람 같았다.’

“……허허, 내가 무슨 생각을.”

검술관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그가 다시금 고개를 흔든 뒤 차를 비웠다.

어찌 됐건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아이다.

개인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다른 수련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자신이 지부에 남으려는 이유의 8할 정도는 저 아이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만큼 특이했던 녀석이 예전에도 있었지.’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8년 전,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수련생 하나를 떠올렸다.

압도적인 재능, 넘치는 자신감, 종잡을 수 없던 성격…….

“뭐, 색은 완전히 다르지만.”

혼잣말을 마친 검술관주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 * *

중간 평가 입상자들의 면담이 있은 다음 날.

100명가량의 예비 수련생들이 강당에 모였다. 아이들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단상을 바라봤고, 이내 아메드 교관이 등장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부터 검술 지도에 들어간다.”

“……!”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른 파레이라를 제외한 모두가 검술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검을 연마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 단련만을 해 왔던 지난 4달은 굉장히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이들은 주먹을 꽉 쥐었고, 또 다른 몇몇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항상 근엄한 표정을 짓던 아메드 교관 역시 씨익 웃음을 보였다.

“기대되나? 나 역시 기대된다.”

“…….”

“너희들도 알다시피, 같은 검술이라도 누가 검을 휘두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인다. 허약한 학자의 사선 베기와 건강한 나무꾼의 사선 베기, 왕국 근위 기사의 사선 베기의 위력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아메드가 예비 수련생들을 쭉 훑어봤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그 끝에는 아이른 파레이라가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교관이 더욱 진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모두 대 연무장으로 이동한다. 지난 4개월간의 성과를 마음껏 느껴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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