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9화 (19/388)

◈ 7. 입상자 면담 (1)

크로노 검술관은 기사 양성소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검을 가르치는 곳이다.

허나 대륙의 누구도 크로노 출신을 ‘평범한 검사’로 취급하지 않았다.

실력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와 도리, 소위 ‘기사도’를 중요시하는 기사들만큼이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그야말로 기사보다 더욱 기사답다고 칭송받는 자들.

그들이 바로 크로노 출신 검사들이었다.

“경쟁이란 참 재밌습니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단련의 시간을 즐겁게 만들죠. 또 경쟁이란 무척 소중하기도 하죠. 혼자서는 절대 이를 수 없는 경지도 다다를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앞서가는 누군가를 쫓아가거나, 뒤따라오는 누군가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보면, 자기 자신도 놀랄 정도로 굉장한 성취를 얻고는 합니다.”

“다만.”

그것에만 너무 매몰되다 보면, 주변을 살피지 못해 중요한 것을 못 보고 지나치게 될 수도 있죠.

이안이 합격자들 전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비 수련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빙긋 웃은 관주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나 아이른 파레이라 수련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했고, 그 결과 물에 빠진 동기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본 관주를 포함한 교관 모두는 그것이 가치 있는 행동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이 수련생이 단상으로 올라온 이유입니다.”

말이 멈췄다.

좌중은 침묵을 유지했다.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관주와 교관들,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던 관주가 재차 입을 열었다.

무게감 있는 목소리였다.

“본 검술관은 여러분들이 재능을 온전히 개화할 수 있도록, 더욱 검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

“어떻게 하면 더 검을 잘 다룰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자신이 어째서 검을 연마하고 있는가, 그렇게 얻은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윽고 설교가 끝이 났다. 이후는 판에 박힌 상장 수여 절차가 진행되었다. 입상자는 5명이 아니었다. 아이른 파레이라를 포함한 6인이었다.

짝짝짝짝짝-

수련생 모두가 의례적으로 박수갈채가 쏟아냈다.

하지만 생각은 제각각이었다.

브랫 패밀리 중 하나인 랜스 페터슨은 아이른을 흉봤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다른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나태 공자가 관주의 눈에 들려고 일부러 착한 척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껏 아무 생각도 없다가 처음으로 검을 드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이도 있었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교양 시간의 인성 교육을 되짚어보는 수련생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아이른 파레이라를 더욱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 * *

강당에서 치러진 시상식이 끝난 후, 일주일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예비 수련생들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 시간이었다.

중간 평가 직전에도 자유를 허락하긴 했지만, 테스트 직전에 휴식을 취하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자신을 놓아 버렸다.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에겐 해당하지 않는 얘기였다.

그는 여전했고, 그렇기에 그의 일과도 여전했다. 힘든 걸 넘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복해 왔던 수련을 계속했다.

변한 건 없었다.

꾸준히 자신을 신경 써 줬던 일리아 린제이와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바뀐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트랙을 돌고 있을 때였다.

툭툭-

“야.”

“응?”

“미안했다. 그리고 고맙다.”

“……?”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주디스.

아이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아, 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중간 평가 때 그녀를 구해 준 것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주디스가 고맙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였지만, 이해 못 할 건 없었다. 아이른은 희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건 뭘…….”

“됐고. 하여튼 미안한 거 하나, 고마운 거 하나. 이렇게 내가 너한테 빚진 게 두 개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시상식 때 네가 상을 받게 된 건 내 도움이 꽤 큰 거 같거든?”

“어?”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자신을 구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으니, 자신에게도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재차 주디스의 입이 열렸다.

“그니까 하나 갚았고, 하나 남았다. 그거 어떻게 갚을지는 천천히 생각해 볼게.”

“…….”

“하여튼 그럴 거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

“왜 대답 안 해?”

“어? 어, 어…….”

“그럼 더 방해 안 할게. 열심히 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우다다 쏟아낸 뒤 사라지는 붉은 머리 소녀.

그녀를 쳐다보던 아이른이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내용이야 어찌 됐건, 말을 하는 내내 주디스가 풍기던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일리아 이후로 수련생 동기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의였다.

다만 그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했을 뿐.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렇게 아이른이 방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얼굴의 조교 하나가 다가왔다.

“311번 예비 수련생, 아이른 파레이라.”

“네!”

“관주님께서 부르신다. 씻고 준비해라.”

“……네.”

용건을 말해 주는 이도, 물어보는 이도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빠르게 준비를 마친 나태 공자가 마른침을 삼키며 관주의 방으로 향했다.

* * *

“그렇군요.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너무 편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부족한 점을 곧바로 인정하는 것부터가 편협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지. 늙은이의 말 때문에 과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않습니다. 늙은이라니요. 어찌 제가 검술관주님의 말을 가벼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말씀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데…… 오만하게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했습니다. 관주님의 조언대로, 지금부터는 누구에게라도 배울 점이 보인다면 배우겠습니다.”

그게 설령 나보다 훨씬 못나 보이는 이의 것이라 하더라도.

브랫이 조용히 다짐했다. 마지막 생각은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를 지켜보던 관주가 기꺼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치는 맛이 있는 아이야.’

하나를 배우면 열을 배우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두셋을 배울 정도의 오성은 갖추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흠잡을 부분이 없다.

고위 귀족 특유의 고집과 자부심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책임감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흠도 아니었다. 충분히 교정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올해 수련생들은 확실히 수준이 높아.

속으로 생각한 검술관주가 입을 열었다.

“알아들은 것 같아 다행이군. 그래, 상은 마음에 들었나?”

“당연히……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말씀,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그건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구만.”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브랫은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

13살 소년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고귀한, 그리고 강인한 분위기.

다른 기수였다면 분명 수석을 차지했을 인재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 기수에는 쟁쟁한 사람들이 너무 많지.’

정말로 그랬다.

원래라면 당연히 수석을 차지했어야 마땅할 인재가 셋, 아니 넷이나 되었다.

심지어 하나는 그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그리고 지금, 그 문제의 인물이 방으로 들어왔다.

달빛을 머금은 듯 아름다운 은발을 찰랑거리며, 일리아 린제이가 말했다.

“상으로, 감히 관주님의 지도 대련을 원합니다.”

“……아주 맹랑하구만.”

“들어주실 수 없는 부탁인가요?”

“들어줄 수야 있지. 다만 괘씸하잖냐. 우리 검술관에 적을 둘 생각도 없는 녀석이 말이다.”

“…….”

일리아는 긍정의 침묵을 지켰다.

혀를 쯧쯧 찬 이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충고 하나 하마. 더는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라. 괜한 집착에 묶여 이곳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문으로 돌아가 가문의 검을 배워라. 그게 훨씬 더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니.”

“…….”

“알아들었는가?”

“관주님의 지도 대련을 원합니다.”

“……고집이 아주 쇠심줄 같구만.”

후우, 한숨을 내쉰 관주가 안쓰러운 눈으로 은발 소녀를 바라봤다.

남들은 느낄 수 없다. 허나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수면을 통해 사람의 얼굴을 비춰 볼 수 있듯, 자신의 물과 같은 기운은 일리아의 마음속 깊은 곳의 증오 어린 불꽃을 엿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꺼뜨릴 방법까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벽에 걸려 있던 목검을 일리아에게 던져 줬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뽑아 들며 말했다.

“방이 꽤 넓으니, 여기서 해도 상관없겠지?”

“감사합니다.”

일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허리가 펴지며 올라오는 소녀의 시선에 불꽃이 일렁였다.

20분의 시간이 지났다.

지도 대련을 마치고 검과 관련된 조언까지 듬뿍 받은 그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러갔다.

“과분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달칵-

“…….”

반대로 이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재능 있는, 대륙의 보물이라 할 만한 아이가 힘들고 괴로운 길을 걸어간다.

심지어 그 끝에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노인의 경험에 의하면, 소녀가 마지막에 마주할 것은 후회와 허탈함 뿐일 터였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

누군가의 마음을 맘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스스로 헛된 것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관주는 진심으로 소녀를 걱정했고, 그 앞날이 밝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소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들어와, 들어와.”

이안은 일리아에 대한 생각을 빠르게 털어냈다.

걱정을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다. 그건 다른 수련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빙긋 웃음 지은 그가 마지막 입상자,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래,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예상했다시피 상을 주기 위해서지. 혹시 뭔가 받고 싶은 것이라도 있나?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크로노의 검술관주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 다섯 명의 수련생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의 성향을 파악하고, 각자에게 적합한 상을 결정해 뒀기 때문이다. 비록 일리아 린제이에게는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지만.

허나 아이른의 경우는 달랐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기른 안목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비치는 자신의 물과 같은 기운으로도, 눈앞의 소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남은 기간은 계속 이곳에 남아 지켜봐야겠어.’

이미 이곳에 눌러앉을 생각까지 마친 이안이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수련생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해도 된다. 이 늙은이가 나름대로 능력이 있어. 웬만한 건 다 들어줄 수 있고, 들어주기 힘든 거여도 역정을 내진 않을 거다. 자, 받고 싶은 게 무엇이냐?”

그 말이 용기를 주었음인가.

살짝 시선을 내리깐 채 앉아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관주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짧게 숨을 뱉은 뒤, 속에 품고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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