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6화 (16/388)

◈ 6. 중간 평가 (1)

이른 아침.

크로노 검술관의 대연무장은 많은 사람으로 인해 북적였다.

물론 이유는 중간 평가 때문이었다.

예비 수련생들의 명운이 걸린 테스트를 대충 치를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검술관에서는 진행을 도울 인원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그들 중 하나인 대머리 용병이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말했다.

“거 참, 살다 살다 꼬맹이들 체력 테스트 보조를 맡을 줄이야.”

“그러게. 뭐 소일거리로 괜찮지. 안전한 데다가 보수도 나쁘지 않으니까.”

말을 받아 주는 이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용병 중개소의 테스트 보조를 맡은 경험이야 있었지만, 거기에 참가하는 이들은 전부 성인이다.

반면에 지금부터 자신들이 감독하게 될 이들은 12~13살가량의 어린아이들.

제아무리 명성 높은 크로노 검술관의 수련생들이라 할지라도, 솔직히 기대감이 안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을 대충할 생각은 없지만, 보는 맛이 없으면 좀 많이 지루할 텐데…….’

‘그래도 일반 꼬맹이들보다야 낫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두 건장한 사내들이, 그리고 나머지 용병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나둘씩, 중간 평가를 치르기 위해 수련생들이 모여들었다.

“후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몸이나 풀어 볼까…….”

도착한 수련생들은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자기최면을 걸었다. 몇몇 이들은 가볍게 몸을 푸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별거 아닌 동작이 외부인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꼬맹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대머리 용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평균 13살이 안 되는 녀석들의 움직임이라고?’

황당했다.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얼굴과 작은 키를 제외하면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습들을 보여 주는 수련생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당장 용병으로 뛰어도 손색이 없을 만치 대단한 동작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동료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괴물들 집합소냐…….”

“……그러게.”

모두들 더는 예비 수련생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단련된 육체, 그리고 전쟁 직전을 방불케 하는 무겁고도 진중한 분위기.

이건 결코 어린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 용병들이 숨을 죽였다.

그 속에서 수련생들 역시 조용히 칼을 갈았다.

허나 모든 시험 참가자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

“왜 안 오지?”

상위권.

아니, 상위권이라는 말도 부족한 최상위권의 수련생들.

역대 최악의 난이도라고 원성이 자자한 이번 중간 평가조차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을 진짜 실력자들은, 오히려 곧 있을 테스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있어야 할 사람들, 중간 평가의 총 책임자인 아메드 교관과 카라카 교관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도 없어.’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이제 곧 평가가 시작되는데.’

처음엔 그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했던.

하지만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가진 바 실력에 비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특이하고 이상한 녀석.

아이른 파레이라, 그 녀석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에 브랫 로이드, 주디스, 심지어 타인에게 별반 관심이 없는 일리아 린제이까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연무장 한쪽 구석에서부터 소란이 일었다.

교관들이 온 것을 직감한 예비 수련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

“뭐야. 옷을 안 갈아입었네.”

“설마…….”

“밤새…… 계속?”

아이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식 밖의 일이지 않은가.

중요한 신체 능력 테스트를 앞에 두고, 밤새 몸을 혹사시키는 얼간이가 세상에 있다니 말이다.

몇몇은 나태 공자가 자신들을 놀리기 위해 쇼를 하는 거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가 곧 깨달았다.

흠뻑 젖어 있는 옷이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얼굴에 들러붙어 있는 허연 소금기마저 연출할 수는 없는 법.

그것이 말해 주는 바는 명확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는 정말로 지난밤 내내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정황으로 보아, 이를 뒤늦게 발견한 교관들이 녀석을 멈춰 세워 시험장으로 데리고 왔다.

이에 대해 수련생들이 나름의 생각을 늘어놓으려 할 때였다.

아메드 교관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노인이, 몸을 움직였다.

휘익-

탓!

한걸음에 수십 미터의 거리를 도약한 그를 보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정체를 알고 있던 눈치 빠른 아이들, 그리고 고용된 용병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단상에 오른 대(大) 크로노 검술관의 관주,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음,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지? 흠흠, 뭐 대충 하지.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 늙은이가 크로노 검술관의 관주입니다.”

“……!”

“……!”

“어디 보자, 시간이…… 5분 정도 남았군요. 규칙이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테니, 따로 할 얘기는 없겠죠? 남은 시간, 나름대로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아무런 후회도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방해가 될 테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짝!

말을 마친 이안이 손뼉을 쳤다.

당황스러운 일을 연속으로 마주한 아이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아, 지금 중요한 것은 중간 평가지, 다른 자잘한 일들이 아니야.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수련생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4분.

3분.

2분, 그리고 1분.

마침내 예고했던 시간이 되기 몇 초 전, 아메드 교관의 입이 열렸다.

“그럼, 지금부터 중간 평가를 시작한다!”

천둥같이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크로노 검술관의 중간 평가가 시작되었다.

* * *

“후우, 후우.”

감독관 역할을 하는 용병을 앞에 두고, 아이른 파레이라가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움직여 무거운 원판이 달린 바벨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평가 동작 중 하나인 푸쉬 프레스(Push Press)를 시작했다.

“훕, 후읍!”

상체의 힘만을 쓰는 일반적인 프레스 동작과는 다르게 하체의 힘과 몸의 탄력성, 순발력 등을 요구하는 운동. 물론 지난 4개월 동안 수도 없이 해 왔던 동작이다 보니 어색함 따윈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른이 느끼는 감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벼워!’

몸이 가볍다. 바벨도 가볍다. 양 끝에 달려 있는 원판의 무게가 절반 이하로 느껴질 정도로.

심지어 지금의 자신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동작을 반복하는 와중이었다. 그런데도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그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은 밤새 무리한 트레이닝을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오버 페이스가 되는 건 아닐까?

아니, 그렇지 않다.

생각을 마친 아이른 파레이라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감독관의 얼굴에 놀람의 감정이 떠올랐다.

“후읍, 후읍, 흡!”

빠르게 횟수를 채운 그가 바벨을 내려놨다. 그리고 직사각형의 상자 앞에 다가섰다.

박스 점프(Box Jump). 간단한 동작이지만 높이, 그리고 타임 리미트를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았다.

허나 전혀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이른은 하체에 힘을 주었고, 가볍게 뛰어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반복했다.

“저 새끼 뭐야?”

“미친놈, 저러다 완주도 못 하지.”

주변 수련생들의 비아냥거림이 귓속에 꽂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태 공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세트를 끝낸 뒤, 그다음 동작마저 순식간에 끝내고 다시 바벨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더욱 빠르게. 더욱 안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관의 표정이 더욱 크게 변화했다.

아이른은 그런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놀라고 있으니까.’

지난밤, 자신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평소 페이스보다 훨씬 더, 훨씬 더 속도를 높이고 있음에도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조금 더 힘을 쏟아도 완주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더 높여야만 한다.

아까보다 더욱 강한 생각. 확신이 그를 이끌었다.

아이른은 또다시 속도를 높여 무시무시한 속도로 반복 동작을 수행해 나갔다.

그러자 주변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저거 진짜 뭐 하는 놈이지?”

“탈진하고 싶어서 환장했나?”

“허…….”

“도라이 새끼! 미친 새끼!”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언급했고, 자신을 쳐다봤다. 그는 이번에도 무시하려 했다.

그저 자신의 과업에나 집중하고 주변의 소리는 한 귀로 흘리려고 했다.

허나 그러지 못했다.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

자신에게 찾아온 또 다른 변화들이, 나태 공자를 새로운 생각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에 몰입할 때, 주변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성장’하기 위해 크로노 검술관에 입관한 그였지만, 사실 심적으로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

유독 뒤떨어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롱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이른은 억지로 외부의 정보를 차단한 채 고독한 단련을 계속해 왔다.

잠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숨고, 검을 들어 주변의 뒷말로부터 도피했던 것처럼 말이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젠장, 무리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어차피 떨어질 놈이야. 신경 쓰지 말자. 신경 끄자.”

활짝 열린 귀는 주변의 날 선 음성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고.

“후우, 후우.”

“……!”

맑게 트인 시야는 조용히 자신을 노려보는 수련생들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 있는 감독관의 표정을 선명히 머리에 담았다.

그 독하고, 아프고, 부담스러운 반응들을 아이른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주변의 반응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억지로 눈과 귀를 닫을 필요도 없었다.

파레이라 가의 장자는 난생처음으로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후웁, 후웁, 훕…….”

더, 더욱더, 조금 더 속도가 빨라졌다. 웬만한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처에 있던 최상위권 수련생 브랫 로이드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웅성거림은 반대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오직 질시와 경악이 가득한 시선만이 더욱 진하게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1분 후.

아이른 파레이라는 모든 반복 동작을 마무리하고 첫 번째 코스를 통과했다.

두 번째 코스인 모랫길 달리기를 준비하며 정면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는 오직 한 명, 일리아 린제이만이 고독하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태 공자가 힘차게 지면을 박찼다.

이를 지켜보던 주디스의 입에서 소녀답지 않은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씨바아아아아아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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