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성장 (4)
체력, 그리고 정신력은 서로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다. 둘 다 수치로 비교하기 어려울뿐더러, 사람에 따라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체를 단련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특히 기사나 검사에게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면,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렇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체력과 정신력, 두 요소가 정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육체의 성장이 먼저 이루어지며, 정신력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소리지. 평생 험한 일 한번 해 보지 않은 애송이의 정신력이 뛰어나겠냐, 1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두르고, 육체를 단련하며 고통과 지루함을 이겨낸 기사의 정신력이 뛰어나겠냐?’
배운 것 없는 일자무식의 용병이라도 이러한 달변을 할 수 있을 만큼, 꽤나 설득력이 있는 말.
아메드 교관 또한 오래전부터 그러한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단련을 이어 나가 조금씩 육체의 한계를 넓히고 매일매일 더욱 커다란, 무거운 고통을 끊임없이 견뎌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정신력 역시 성장한다.
근섬유가 찢기고 회복되며 발전하듯, 사람의 정신력에도 보이지 않는 근육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인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
아이른 파레이라에 대한 크로노의 검술관주, 이안의 평가는 아메드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들어보지 못한 말도 아니고.
바위에 깔린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어머니의 일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이 경우에 적용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메드는 이안의 말을 끊지 않았고, 이안도 아메드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한참 전에 식어 버린 찻잔만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 갈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야.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야. 초월적인 정신력이 순간적으로 육체를 지배하고, 그로 인해 거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나 또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런 도움을 받았던 적이 적지 않고. 자네들은 어떤가?”
“저도 한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상황에서만 발휘되는 기적이지.”
“…….”
“지금처럼 계속해서, 연속으로…… 저런 철과 같은 정신력이 유지되는 경우는, 90 평생 본 적이 없어.”
말을 마친 이안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방금 봤던 수련생, 아이른 파레이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현재의 비루한 몸뚱이를 아득히 초월하는 엄청난 정신력.
그 지고한 정신력을 따라잡기 위해 강제로 성장하고 있는, 아니 ‘진화’하고 있는 육체.
분명 한계에 도달했음이 분명해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나아가는 그 수련생의 육신을 보고 있자니, 이안은 자신이 쌓아 왔던 상식이 모조리 파괴되는 듯한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라는 말로도 모자라군. 마치 누군가 요술을 부린 것 같아.’
무너지고 망가져야 마땅할 근육과 인대, 뼈를 정신력이 억지로 붙들어 맨 채, 세상의 기운을 빨아들여 빠르게 회복시킨다.
그리고 또다시 감당 못 할 정도의 부하를 준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관주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기대, 그리고 약간의 희열이 담긴 호흡.
그와 함께 언젠가 닿고야 말 소년의 장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조용히 눈을 뜬 관주가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른 파레이라 수련생은 한동안 건드리지 말게.”
“예.”
“예.”
아메드와 카라카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이른의 몸이 망가질까 하는 걱정은 일절 하지 않았다. 관주를 향한 믿음은 절대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난감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주디스 그 아이는 어떻게 하지…….”
“으음.”
“그건…….”
주디스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아이른을 말려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이안의 쭈글쭈글한 이마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이번 기수는 정말 특이한 수련생들이 많구만. 다른 때는 한 명 보기도 힘든 아이들이 넷이나…… 허허.”
크로노 검술관주의 묘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나직이 퍼졌다.
* * *
‘합격’과 ‘탈락’이라는 중대한 기로가 결정될 크로노 검술관의 중간 평가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리아 린제이와 브랫 로이드를 포함한 상위권 아이들도, 중위권과 하위권 아이들도 모두.
몇몇 긴장이 심한 아이들만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러닝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검술관의 만년 차석 주디스.
그리고 나태 공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들어온 아이른 파레이라, 이 둘만은 달랐다.
그들은 내일이 무슨 날인지를 잊은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단련을 이어 갔다.
“저 미친년놈들.”
“진짜 또라이 아니야? 도대체 뭔 생각인 거야?”
“저러다가 골병들어서 내일 참가도 못 하겠다.”
“아쉽다. 상대 평가였으면 두 명 재끼는 건데…….”
두 수련생의 광기를 마주한 아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브랫 패밀리 역시 혀를 쯧쯧 찼고, 일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소년, 소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털썩!
“허억, 허억!”
야외 코스에 거칠게 주저앉은 주디스가 실내 단련실 쪽을 바라봤다.
마법등이 안을 비추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 녀석’은 아직도 단련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이 주디스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녀는 일리아 린제이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패배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미친 새끼! 저 지랄을 하고, 허억, 시험은 어떻게 보겠다고, 허억!”
병신, 머저리, 버러지, 한심한 새끼. 거친 욕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있던 소녀가 힘들게 기숙사로 향했다.
절대 내가 물러선 게 아니야.
내일 시험을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필수야.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 주디스를 위로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껏 그녀를 이끌어왔던 것은 불같은 감정과 투쟁심이지 얼음 같은 이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은 정말로, 정말로 무리였다.
‘내일 박살 내 주마.’
붉은 머리 소녀는 이를 갈며 몸을 씻었고, 불편한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하여 모든 예비 수련생들이 잠에 빠져든 때.
그 늦은 시각까지도, 아이른 파레이라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후웁, 후욱!”
전신의 근육이 쉼 없이 약동하고.
“후욱, 허억!”
온몸의 혈류가 속도를 더해간다.
그에 따라 산소와 영양분, 그리고 미지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었다.
망가져 가던 신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어 다시금 움직이고 있었다.
“크윽, 윽, 끄으윽…….”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라면 며칠이 걸려 회복될 부하가 순식간에 재생되다 보니,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포기할 정도로. 땅바닥에 쓰러져 엉엉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하지만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러지 않았다.
껍데기를 깨고 나온 소년은, 더는 소년이라 부를 수 없는 단단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조금 더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해 보자.’
입관 후 처음으로 치러졌던 체력 테스트를 아득히 상회하는 고통이 연달아 밀려왔다.
그러나 나태 공자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나아가고,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렇게 시간도 잊고, 아픔도 잊고, 주변의 시선도, 과거의 좋지 못했던 기억도,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혀왔던 모든 자질구레한 것들도 잊고.
마치 꿈속의 사내가 그랬듯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달려갔을 때.
아이른 파레이라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육체의 한계가, 어느새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을 말이다.
“…….”
아이른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 곳곳을 살폈다.
땀에 절고 절어서 장대비에라도 맞은 듯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허연색 소금기, 그리고 땀 냄새보다도 더욱 고약한 정체 모를 악취가 그를 반겨 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했다.
상의를 벗어 던진 아이른 파레이라가 제2단련실을 나섰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온 아침 바람이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시원한 기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른은 검술관에 들어온 이후 보여 줬던 그 어떤 웃음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휙휙!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주먹이 움직이고.
파앗!
발 구름 한 번에 이전보다 훨씬 높은 지점까지 몸이 떠올랐다.
다른 동작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수월하게 움직이는 몸뚱이에 아이른 파레이라는 고양감과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도대체 뭘까.’
지난 열흘간은 그야말로 본능에만 몸을 맡긴 시간이었다.
무언가 확신이 있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 검을 잡을 때와 비슷했다.
휘두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달리고, 움직이고, 몰아치지 않으면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충동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그 덕분에 상상 이상의 소득을 얻기는 했지만, 약간의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꿈의 도움을 받은 셈인가.’
혼란스러워지는 정신.
하지만 이는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살짝 감았다 뜬 그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왔다.
‘고민해 봤자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집착하지 말자.’
그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자.
열흘 전의 꿈을 꾸고 깨달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순식간에 마음을 단단히 다잡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뒤편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자신의 뒤를 따라 제2단련실 밖으로 나온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오늘 밤 내내 자신이 단련하는 것을 지켜봤을 사람들.
아메드 교관, 카라카 교관, 룬 타르할 교관,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노인 하나.
그들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바라보며, 나태 공자가 질문을 던졌다.
“중간 평가까지 몇 시간 남았죠, 교관님?”
“……15분 남았다. 꽤 촉박해.”
“늦지는 않은 거죠?”
“뭐? 하하, 하하하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 가는 아이른 파레이라.
그 모습을 본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뚝 웃음을 그친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다른 수련생들의 몸 상태는 최고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몸도 풀어 놓은 지 오래지. 반면에 너는 평가 시간 직전까지 몸을 혹사시켰다, 미련한 곰탱이처럼 말이야.”
“…….”
“그래도, 엄살 피우지는 않겠지?”
“네.”
“좋아. 중간 평가 장소로 가자.”
검술관주 이안이 빠른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이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뒤를 따라,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 명의 교관들이 몸을 움직였다.
마침내, 예비 수련생들의 명운을 가르는 중간 평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